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481
교랑의경 481화
태후가 추궁하듯이 물으면서 눈물을 떨궜다. 진안 군왕은 무릎을 꿇은 채로 태후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마마, 아닙니다.”
“왜 아니라는 것이냐. 이 녀석아, 언제까지 애가를 속이려는 게야?”
태후가 눈물을 훔치면서 말했다.
“마마, 육가아의 병은 고칠 수 없습니다. 정 낭자가 육가아의 병을 치료해 주는 것도 아니고요.”
진안 군왕이 대답했다. 진안 군왕의 뒤에 앉아 있던 귀비는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그래, 어디 한번 끝까지 연기해 봐라. 네놈이 뭐라고 할지 정말로 궁금하구나.
“그럼 왜 육가아가 춥다고 한 거지?”
태후가 물었다. 진안 군왕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정 낭자 말로는, 그 곡은 사람에게 들려주는 곡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칠현금으로 액막이를 하여 악운과 속된 것들을 몰아내고, 사람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집에 있는 악귀를 몰아낸다?
사람에게 들려주는 연주가 아니었으니, 현장에 있던 내시와 영인들은 대화를 멈출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연주 소리를 듣는다 해도 그저 귓가를 스칠 뿐, 마음속까지 닿지는 못했기 때문에 별 감흥이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모두가 아무런 감흥이 없을 때 경왕 혼자서만 춥다고 했다는 것은, 경왕이 보통사람과 다르다는 뜻이고, 더 나아가 경왕은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럼 최 악공은? 설마 최 악공도 사람이 아니라는 거요?”
하급 관리가 이해 안 간다는 투로 물었다. 한창 떠들고 있던 다른 하급 관리가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나 참, 그래도 이해가 안 되오? 최 악공도 당연히 보통사람은 아닌 거지. 그 사람은 칠현금에 통달하여 신의 경지에 이른 악공이니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거요.”
“그런데 그 자리에 악공이 그렇게나 많았다던데, 왜 최 악공 한 사람만 그렇게 됐지?”
“최 악공의 실력이 제일 뛰어나다는 뜻 아니겠소.”
하급 관리들이 웃고 떠드는 사이, 조정 대신들이 그 앞을 지나갔다. 대신들이 발을 세게 구르며 호통쳤다.
“체통들을 지키시게!”
고개를 돌리던 하급 관리들이 조정 대신들을 알아보고는 재빨리 머리를 조아리며 자리를 피했다.
“온 경성 사람들이 무원산을 떠들고, 온 조정의 관리들이 신비궁을 말하며, 저잣거리에는 온통 비석에 새겨진 행서 이야기뿐이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잊히기도 전에,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더해졌구려. 칠현금으로 액막이를 하다니.”
조정 대신 중 하나가 웃으면서 말했다.
“정 낭자가 또 무슨 기예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지 궁금하군.”
다른 관리가 맞장구를 쳤다.
경성에 있는 종친들이 하루가 멀다고 연회를 열다 보니, 군왕이 한 사람만을 위한 연회를 연 것은 딱히 특별한 일 축에도 끼지 못했다. 연회에 초대한 사람이 조정 대신만 아니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일이었다.
다만 군왕이 초대한 이는 경성에서 명성이 하늘을 찌르는 정 낭자였다. 물론 그 역시 문제 될 건 없었다. 어쨌거나 경왕의 상태가 그러했으니까. 정 낭자는 치료할 수 없다고 거듭 말했다지만, 신의가 자주 찾아온다 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정 낭자는 병을 치료한 것도 아니고, 글씨를 쓴 것도 아니고, 칠현금을 연주했다고 했다. 심지어 칠현금 연주로 악공 하나의 혼을 쏙 빼놓았고, 바보인 경왕까지 놀라게 했다고.
특히 사람을 위해 연주한 게 아니라는 진안 군왕의 말로 인해 이 이야기는 삽시간에 사람들의 입을 타고 널리 퍼졌다.
진안 군왕이 그 말 뒤로 내놓은 해명은 이러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기에 칠현금 소리를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지만, 경왕은 마음이 없기에 칠현금 소리에 반응한 것이라고.
그 말인즉슨, 칠현금 소리로는 경왕의 병을 치료할 수 없을뿐더러, 경왕은 마음이 없기에 병이 나을 가능성이 아예 없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덧붙여진 해명보다는 앞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많았다. 경왕의 병이 나을지 낫지 않을지는 세간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뭇 사람들은 신기하고 기괴한 이야기에 더 열광했다.
관청에 있는 관리들이 하는 이야기는 그나마 사실에 가까웠지만, 입에서 입을 거쳐 저잣거리의 찻집까지 흘러간 이야기에는 과장이 많이 섞여 있었다.
“사람이 들으라는 연주가 아니라, 귀신들한테 들려주는 연주였다는군.”
“보통사람은 귀신을 볼 수 없다지만, 개나 당나귀 같은 동물은 귀신을 볼 수 있다잖아.”
“자네 말은 지금 경왕이 개라는 건가?”
“자네 죽고 싶은 게야? 어찌 그런 헛소리를!”
“모르면 좀 가만히 있게나. 마음이 없어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경왕께선 아직 영혼이 모이지 않은 갓난아기 같다는 뜻이야. 갓난아기는 잡념도 없고 세상을 보는 눈도 무척 깨끗하잖아. 그러니 보통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것도 느낄 수 있지.”
“그렇다면 말이 되긴 하네. 그런데 칠현금 소리에 홀린 최 악공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최 악공은 바보가 아니라, 신기가 있는 사람이지.”
“왜 최 악공은 개나 당나귀라고 하지 않고?”
“그런 짐승들이 칠현금 소리에 매혹될 리가 없잖아. 최 악공은 칠현금 연주가 신의 경지에 다다랐기에 그런 신기 있는 연주를 알아들을 수 있었던 거지.”
“그러게. 그 자리에 그렇게 많은 악공 영인이 있었는데도, 딱 최 악공 한 명만 넋이 나갔다잖아. 최 악공도 신선의 계시를 받았던 거네.”
“맞아, 맞아. 내가 듣기로는, 최 악공이 정신을 차리고 나서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칠현금 기교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대.”
“역시 최 악공은 천하제일의 악공이야.”
“에이, 지금도 최 악공이 천하제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사람아, 정 낭자는 제외해야지. 그분은 신선의 제자니까 평범한 사람과는 달리 논할 수밖에.”
대화를 듣던 장 노태야가 웃음을 터트렸다.
“보아하니, 정 낭자가 또 한 사람에게 깨우침을 주었구나.”
장 노태야가 웃으면서 말하자, 옆에 앉아 있던 노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최 악공의 연주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는 있지만, 특출 나다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요. 다들 최 악공은 스승의 후광 덕에 영인이 된 거라고 말하곤 했으니까요. 심지어 어떤 이는 최 악공의 유일한 자랑거리가 바로 그가 가진 칠현금이라고 했다더군요. 그러던 것이 이제는 정 낭자의 칠현금 소리에 매혹되어 큰 깨우침을 얻고 천하제일의 악공이라는 칭호까지 얻었으니, 신선이 도와준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쇠를 두드리려면, 우선 쇠가 단단해야 한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구나. 최 악공이 본디 칠현금에 통달하지 않았더라면, 정 낭자의 칠현금 소리를 듣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겠지. 아무리 신선이 최 악공을 깨우쳐 주고 싶다 해도, 최 악공에게 그럴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면 아무 소용 없었을 것이다.”
장 노태야는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감탄했다. 노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말편자를 만들어 낸 서사근이 생각납니다. 매일 마구간을 드나들며 쇠붙이 말굽을 관찰하고 개량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말편자도 없었겠지요. 신비궁을 얻은 범강림 또한 직접 나설 배짱이 없었다면, 신비궁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거고요.”
“맞네, 맞아. 또 그 왼손잡이 숙수 이대작도 마찬가지지. 오른손을 잃었다고 해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비웃음이나 자괴감도 이겨내지 않았나.”
장 노태야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어디 그뿐입니까. 어사대의 탄핵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사건을 조사한 노사안도 있고, 비문을 보고 글씨의 도를 깨우친 서생들도 있죠.”
이어서 말하던 노복이 갑자기 손뼉을 치면서 외쳤다.
“아차, 하마터면 장반근을 놓칠 뻔했습니다. 타고난 손재주로 요리에만 집중해서 득도했으니까요.”
장 노태야가 노복의 말을 듣고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정 낭자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그렇게나 많단 말이더냐? 너무 많아서 이젠 하나하나 기억하기도 힘들어졌어.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서 병풍에 써 놓아야겠다. 이러다 병풍을 가득 채우는 건 아닐지 모르겠구나.”
장 노태야가 몸을 일으키자, 노복이 웃으면서 그를 부축했다.
“하지만 노야께서는 그런 잔재주를 탐탁지 않게 여기시잖습니까.”
노복이 조용히 말했다.
“탐탁지 않아도 어찌하겠느냐? 정 낭자는 여인의 몸이니, 과거를 치를 수 없는 것을. 정 낭자는 그런 잔재주로 돈을 모으려는 사람도 아니고, 그것을 빌미로 좋은 혼처를 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남을 해치려는 것도 아니다. 단지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원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없이 지낼 뿐이지. 누구 앞길을 막는 것도 아니고.”
“바로 그 점이 걱정이죠. 정 낭자에겐 그럴 의도가 없지만, 재능이 있다는 이유로 시샘을 받아 화를 입을까 봐서요.”
노복이 말했다.
대청을 지나가던 두 사람의 귀에 수많은 사람의 대화 소리가 얽혀 서로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노복의 말을 들은 장 노태야가 걸음을 멈추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노복을 향해 목청을 높여 외쳤다.
“낭자가 그걸로 남을 해치지 않는다고 했지, 낭자가 방어하고 반격할 줄 모른다고 하지는 않았다.”
장 노태야가 웃으며 말했다. 그 목소리가 너무 컸던 탓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대화를 멈추고 장 노태야를 쳐다보았다.
대청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는 것을 자각한 장 노태야는 머쓱한 듯 껄껄 웃으며 찻집을 떠났다. 노복이 서둘러 장 노태야의 뒤를 따라가자, 찻집 안은 금세 다시 왁자지껄해졌다.
“그날 있다던 선약이 경왕부 연회에 가는 거였군요.”
진십삼이 반근이 건넨 찻잔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정말로 미룰 수 없는 약속이었네요.”
진십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룰 수 없는 약속이 아니라, 내가 초대에 응했기 때문에 미룰 수 없는 거였죠.”
정교랑이 말했다. 미소를 짓던 진십삼은 무언가 떠오른 듯 정교랑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그 말은 진짜로 낭자가 한 말입니까?”
“어떤 말이요?”
정교랑이 반문했다.
“진안 군왕 말로는, 그 연주는 사람에게 들려주는 게 아니라고 낭자가 말했다던데.”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내가 한 말이 맞아요.”
“그 말은 좀 적절치 않은 듯합니다.”
진십삼이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뭐가 적절치 않다는 거죠?”
정교랑이 미소를 지었다.
“낭자가 진안 군왕에게 말하는 것은 당연히 문제 될 게 없죠.”
진십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진안 군왕이 멋대로 남들에게 낭자의 말을 전하는 건 적절치 않아요. 이번 일은 낭자를 신의라고 부르는 것과는 달라요.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잖아요. 자고로 군자는 괴력난신을 입에 올리지 않는 법인데, 낭자의 명망이 높아진 지금 그런 얘기가 돌면 사람들은 더욱 그 이야기를 부풀릴 테고, 그렇게 되면······.”
진십삼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면서 말끝을 흐렸다.
“낭자가 일부러 교활한 술수를 부린 듯 이야기가 왜곡되는 건 좋지 않아요.”
진십삼이 말을 덧붙였다.
“말한 사람은 아무런 의도가 없지만, 듣는 사람에게 다른 의도가 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정교랑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애초에 진안 군왕이 말할 때 더욱 조심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군왕이 저지른 경솔한 행동이 차후에 낭자에게 어떤 어려움으로 돌아올지, 낭자에게 어떤 위협이 될지 걱정도 안 된답니까?”
진십삼이 다그치듯 말했다.
“그러니까 말한 사람에게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했잖아요. 듣는 사람에게 다른 의도가 있는 거라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정교랑이 대답했다. 진십삼이 정교랑을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군왕을 감싸 주는 겁니까?”
정교랑이 진십삼을 바라보았다.
“이걸 어떻게 감싸 준다고 할 수 있죠? 내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뿐인데.”
정교랑이 대답했다.
“낭자가 신경 쓰지 않는 일을, 내가 신경 쓸 수 있겠어요?”
진십삼은 정교랑이 입을 열기도 전에 자신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내가 신경을 쓰든 말든 그건 내 일이니까, 낭자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는다고 말하려는 거죠?”
반근은 정교랑이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자신이 이해하기 힘든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십삼마저 말장난하듯이 신경을 쓰네, 마네, 개의치 않네, 어쩌네 하는 것을 보니, 반근은 더욱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정교랑이 진십삼을 쳐다보며 웃었다.
“내가 초청에 응하지 않고, 원하는 선물을 주지 않은 것이 그렇게 신경 쓰였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