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498
교랑의경 498화
옳거니! 풍림, 아주 잘하는구나! 더 세게 물어라!
네가 이번에 정 낭자와 진소를 동시에 내쫓아 준다면, 나 고능준이 삼 년은 더 널 경성에 데리고 있어 주마.
이렇게 훌륭한 개를 그냥 보내긴 아쉽거든.
“폐하, 신은 무고한 언사로 조정 대신을 모함한 풍림의 죄를 묻고자 합니다.”
진소 역시 분을 참지 못하고, 황제에게 예를 표한 후 소리쳤다. 진소는 자신을 향하는 탄핵과 질책 앞에서 전진을 위한 후퇴로 사직을 청하며 항의하는 일이 없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즉각 반박하곤 했다.
황제가 웃음을 지었다.
“중승 대인이 억측을 내놓은 것이니, 곧이듣지 마시오.”
“신은 풍림을 모독죄로 발고하고자 합니다.”
진소는 끝까지 가 볼 작정이었다.
“중승, 그대가 결례를 보였소.”
황제가 풍림을 보며 말했다.
“신은 소임을 다했을 뿐, 결례를 보인 일이 없습니다.”
풍림도 물러서지 않았다.
두 대신이 조당에서 강경하게 대치했다. 그 누구도 황제의 체면을 세워 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황제 또한 개의치 않는 듯했다. 대신들이 황제의 체면을 세워 주지 않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으니까.
“정동의 일은 어사대에서 검증하시오.”
황제가 하는 수 없이 화제를 돌렸다.
“우선 대리시에 명해 정씨 여인부터 조사하시지요.”
풍림이 즉시 말을 받았다.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은 부모의 과오이나, 부모가 제대로 못 배운 것이 자식의 과오라는 말은 금시초문이외다.”
진소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씨 여인이 활개를 치며 백성을 현혹하지 않았다면, 어찌 정동이 안하무인으로 오만방자하게 굴겠소? 같은 이치로, 진소 그대가 중서성에 있지 않았다면, 그대의 부친이 경성에서 사사로이 저택 두 채를 사들일 수 있었겠소이까?”
그 말이 떨어지자 조당이 삽시간에 시끄러워졌다. 고능준은 거의 뒤로 넘어갈 뻔했다. 너무 좋아서······. 잘한다는 말 외에는 달리 떠오르는 말도 없을 정도였다.
줄곧 꼿꼿한 태도를 유지하던 진소도 그 말에 분노로 몸을 떨었다. 양옆에 있던 대신들은 진소가 그대로 혼절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진소는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진소가 대전 중앙으로 걸어 나와 옷을 털고 꿇어앉았다.
“신은 능력이 변변치 않아 조정 일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폐하의 근심을 덜어 드릴 수 없으니 이는 곧 불충입니다. 신은 열세 살에 유학길에 올라 스물일곱에 출사하여 관리로 반평생을 보냈습니다. 관직에 있느라 부모님께 효를 다하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부친께 이런 치욕까지 안겨 드리게 되었으니 실로 불효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소는 예를 올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을 이었다.
“신처럼 불충하고 불효한 자는 조당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에 어질고 재능 있는 자에게 자리를 양보하고자 사직을 청합니다. 신은 뒤로 물러나 부친을 봉양하며 효를 다하겠습니다.”
진소가 또 사직을 청하다니!
이번에는 고능준뿐 아니라 조당에 있는 모두가 속으로 외쳤다. 황제조차도 멈칫할 정도였다. 불과 며칠 만에 사직을 청하는 진소의 말을 두 번이나 들었으니 그럴 수밖에.
역시 이런 장난은 한번 그 맛을 보면 중독을 피할 수 없나 보군. 그 청렴하고 강직하다는 진소조차도 예외는 아니었어.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실제로 사직하고자 사직을 청하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황제에게 어서 입장을 표명하라는 규탄에 가까웠다.
풍림이 내게 이런 수모를 안겼으니, 이제 조당에서 벌어질 일은 하나뿐이다. 풍림이 떠나지 않으면 내가 떠난다. 내가 남는 한, 풍림은 반드시 떠나야 한다.
정씨 여인의 일을 논하고 있었을 뿐인데, 어쩌다 갑자기 조정 대신이 사직을 청하게 된 거야?
황제는 머리가 지끈지끈한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래서 어사가 주청 올린 일은 단칼에 끝내야 한다니까. 시간을 끌었다간 결국 누굴 물어뜯을지 몰라!
풍림 저자도 참······. 대단하긴 대단한 자야. 상경한 지 불과 사나흘 만에 진소 아버지 소유의 저택까지 조사하다니. 아차, 어쩌다 생각이 여기로 왔지?
황제는 속으로 뜨끔했다.
“진 대인, 말이 심하구려. 나라와 집안 모두 그대를 필요로 하니, 짐은 그대의 사직을 받아들이지 않겠소.”
황제가 풍림을 보며 말을 이었다.
“풍 중승은 경솔한 언사로 결례를 보였으니, 벌로 석 달 치 녹봉을 삭감하고, 추후 죄를 묻겠소.”
일이 이 지경이 되자 계속해서 조회를 진행하기란 불가능했다. 황제는 적당히 마무리하고 서둘러 퇴청을 선언했다.
“폐하, 정씨 여인에 대해 결정을 내려 주십시오.”
풍림은 퇴청하라는 황제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아무래도 오늘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궁으로 돌아갈 생각은 접어야겠군. 하여간 정씨 여인 때문이야.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어.
“말만으로 죄를 논할 순 없지.”
황제가 말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풍림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다시 입을 열려 하자, 황제가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대리시에 명해 사실 관계를 조사한 후 결정하겠소.”
해냈구나!
대전에서 허리를 숙인 채 황제를 배웅한 고능준은 가볍게 손바닥을 쓸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들자 황제를 배웅하는 풍림의 모습이 보였다.
아주 잘했다! 내 오늘은 돌아가서 그대를 위해 한잔하겠네.
고능준이 고개를 돌려 진소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여유로운 모습으로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던 진소가 오늘은 허둥대며 인사도 받지 않은 채 성큼성큼 걸어 나가고 있었다.
폐하께선 아직 진소를 내칠 마음이 없으시니 참으로 안타까운지고. 저자가 사직 상소를 올린다 한들 폐하께선 어르고 달래고 타이르며 거절하시겠지. 그렇게 몇 번 고집을 부리고 나면 결국 풍림이 외직으로 쫓겨나고, 진소는 다시 조당으로 돌아올 거야.
하지만 사직을 청하는 일이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거듭되면 폐하께서도 결국 성가시다는 생각이 드시겠지.
은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흐려지고 잊히기 마련이고, 돈독했던 정도 풍파를 겪으면 소원해지기 마련이거든. 감정이야말로 가장 야박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이지.
고능준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옷소매를 털었다.
오늘 조회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시작됐으나 전혀 뜻밖의 결론을 이끌어냈다.
풍림이란 자가 대단하구나. 신선의 제자라는 강주 정씨를 문 것도 모자라 진 상공까지 들이받다니, 어사중승 자리가 무색하지 않도다.
“아무래도, 귀신을 속이긴 쉽지 않은가 보군.”
고능준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아침 식사를 하던 중 소식을 들은 진십팔랑은 그릇과 젓가락을 내팽개치다시피 내려놓고 일어나 조부의 거처로 달려갔다.
“안에 노야께서 계세요.”
마당에 있던 여종이 얼른 진십팔랑을 막아서며 말했다. 진십팔랑은 여종을 밀치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문을 열자 진소와 대화 중인 진 노태야의 모습이 보였고, 집사도 몇 명 불려와 앉아 있었다.
“이것도, 그리고 이것도, 전부 팔거라.”
진 노태야가 계약서 몇 장을 밀어 주며 말했다.
“아버지, 이건 아버지의 사유 재산이 아닙니까. 어찌 이 아들 때문에 팔려 하십니까.”
“내 사유 재산이라고는 하나 어쨌거나 시중 가격보다 싸게 사들였으니 내 잘못이다. 네 형제들을 얼른 경성으로 데려오고 싶은 마음에 너무 성급했어.”
“더구나 그때는 제가 상경하기도 전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무관한 일입니다. 저 때문에 아버지께서 수모를 겪으셨어요.”
진소가 엎드려 절을 올리며 사죄했다.
“어찌 네 탓이라 할 수 있겠느냐. 내 잘못이다. 삼가고 조심했어야 했어. 어사는 본디 풍문을 듣고 주청을 올리는 자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말하기 나름이지. 사실이 어떠한지는 아무도 상관하지 않아.”
목멘 목소리로 끊임없이 자책을 늘어놓는 진소의 목소리가 안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더는 못 듣겠는지 진십팔랑은 손을 들어 눈물을 닦고 뒤돌아 뛰어나갔다.
이게 어떻게 조부님 잘못이야? 조부님의 돈이잖아. 아버지께서 뇌물을 수수한 것도 아니고.
이게 어떻게 아버지 잘못이야? 아버지가 경성으로 오시기도 전에 조부님이 사들이신 저택인데.
그럼 누구 잘못이지? 아버지께서 그 여인의 편을 드셨기 때문이야. 그래서 어사중승이 아버지를 물고 늘어진 거라고.
다 그 여인 때문이야, 그 여인! 그 여인 때문에 이런 사달이 벌어졌어.
그러게 경성만 떠나면 이 일은 여기서 매듭짓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안 떠나는 거야? 대체 왜!
“십팔랑, 어디 가?”
뛰어나가는 진십팔랑을 보고 뒤에서 진단랑이 소리쳤다. 하지만 진십팔랑은 이미 쏜살같이 뛰어나간 후였다.
같은 시각 대리시승(大理寺丞)은 어사대의 통보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인데, 이렇게까지 못 잡아먹어 안달이라니.”
대리시승이 중얼거렸다.
“염라대왕이 삼경에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그 누구도 오경까지 붙잡아 둘 순 없는 노릇이잖습니까. 대인, 서명하시지요.”
수하가 말했다.
귀판관이 생명의 은인에게 참으로 모질게도 구는군. 하여간 이런 인사와 잘못 엮이면 재수 옴 붙는다니까.
하긴, 그 유명한 진 상공까지 궁지로 몰아 사직을 청하게 만들었으니 말 다 했지.
대리시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와라.”
수하가 얼른 일어나 대답하며 밖으로 나가려 하자, 대리시승이 말렸다.
“천천히 가도 된다. 그래도 식사는 조용히 마치게 해 줘야지.”
“귀판관에 비하면 시승께서는 보살님이 따로 없으십니다.”
수하가 웃으며 대꾸하고는 허리 숙여 인사하고 물러갔다.
“어쨌거나 신선의 제자가 아니더냐. 매사에 여지를 남겨 둬야 훗날 좋은 얼굴로 만나는 법, 지나치게 몰아세울 건 없지.”
대리시승이 중얼거렸다.
대리시승의 느긋한 태도에도 정교랑의 식사는 순조롭지 않았다.
쾅쾅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지기가 문을 열었다. 누구냐고 묻기도 전에 두봉을 두르고 두봉에 달린 모자까지 푹 눌러 쓴 여인이 대뜸 안으로 들어왔다.
“뭐 하는 겁니까? 대체 누구요?”
문지기가 소리쳤다.
상대가 여자다 보니 막무가내로 막을 수 없어 잠시 주춤한 사이, 진십팔랑이 안으로 치고 들어왔다. 하지만 문지기의 고함을 들은 시종 둘이 문간방에서 달려 나왔다.
시종들은 남녀유별이고 뭐고 따지지 않고 다짜고짜 손을 뻗어 진십팔랑을 우악스럽게 끌어냈다. 진십팔랑의 비명이 마당에 울려 퍼지는 바람에 저택 식구들이 모두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아기를 안은 황씨는 물론이고 정교랑도 밖으로 나왔다.
“진 아씨, 어찌······.”
반근이 소리쳤다.
정교랑을 힐끔 보고 난 두 시종은 그제야 손을 풀고 한쪽 옆으로 가서 섰다. 그러면서도 진십팔랑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진십팔랑은 씩씩거리며 모자를 홱 벗고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왜 안 떠나는 거죠? 잠시 예봉을 피해 물러났다가 때를 기다리는 거, 모르겠어요?”
또 아씨를 질책하려는 사람이 왔네.
시녀는 세 점포를 관리하느라 바빠 집을 비울 때가 많았다. 반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말재주가 없는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지금 당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는지 알아요?”
진십팔랑의 눈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우리 아버지는 당신 때문에 탄핵당했고, 조부님도 수모를 당하셨다는데······.”
진십팔랑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교랑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잘랐다.
“그건 나 때문이 아니에요. 나와는 무관한 일이죠.”
진십팔랑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열이 받기도 하고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기도 했다.
“정교랑, 정말 매정하네요.”
진십팔랑이 말했다.
“이보세요.”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황씨가 어린 몸종에게 아기를 맡기고, 용감하게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손님으로 온 거면 안으로 들어가 얘기하고, 싸우러 온 거면 그만 돌아가시죠.”
“댁한테 말한 거 아니잖아요.”
진십팔랑이 정교랑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꾸했다.
“근데 지금 댁이 내 집에서 얘기하고 있잖아요.”
황씨도 열이 확 받는지 목소리가 커졌다. 진십팔랑은 그제야 황씨를 돌아보고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싸움이요? 내가 감히 어떻게 이 사람이랑 싸우겠어요. 난 대체 그쪽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진십팔랑이 코웃음을 쳤다.
“이해할 필요 없어요.”
정교랑이 대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내가 이해하는 걸로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