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49
교랑의경 549화
한편 진십삼의 방에 있던 주육낭은 언짢은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 공자님, 식사하시겠어요? 부엌에서 식사 준비가 다 됐다고 합니다.”
시녀가 물었다.
“안 먹는다. 지금 나갈 거야.”
주육낭이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사환 한 명이 허둥대며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공자님!”
사환이 반가워하며 외쳤다. 자신을 따르는 사환임을 알아본 주육낭이 걸음을 멈췄다. 주육낭의 시선은 사환이 안고 온 보따리로 향했다.
“공자님, 갈아입으실 옷을 준비해 왔습니다.”
사환이 부리나케 보따리를 펼치고 내의부터 겉옷까지 하나하나 꺼내 놓았다. 주육낭이 콧방귀를 뀌면서 중얼거렸다.
“네놈이 쓸모 있을 때가 다 있구나.”
주육낭이 두 팔을 넓게 벌리자, 시녀들이 서둘러 주육낭에게 다가가 그의 옷을 갈아 입혀주었다.
사환이 헤헤 웃으면서 말했다.
“어제 공자님이 소인더러 끝까지 따라오지 말라고 하시면서, 공자님 혼자 어디론가 사라지시는 걸 보고는 정말 제대로 취하셨구나 싶었습니다요.”
주육낭은 사환이 조잘대면서 한참 동안 자기 자랑을 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표정을 굳힌 채 대꾸하지 않고 그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잠시 머뭇거리던 사환이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정 아씨께서 저더러 공자님께 옷을 갖다 주라고 하셨어요.”
사환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정 아씨?
주육낭이 흠칫 놀라서 반문했다.
“뭐라고?”
사환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설명했다.
“사실, 공자님께 옷을 가져다드리는 게 소인 생각은 아닙니다. 정 아씨께서 어젯밤부터 공자님을 찾으셨는데, 진 공자님 댁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심하셨어요. 소인이 정 아씨께 공자님이 만취하셨다고 아뢰니까, 아씨께서 소인더러 옷가지를 챙겨서 진 공자님 댁에 같이 가자고 하시지 뭡니까.”
다른 때였다면, 사환은 분명히 다 자기 덕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부풀렸을 텐데, 옷을 가져오게 만든 사람이 정교랑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 주육낭에게 이야기했다.
주육낭이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사환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그 애가 내게 옷을 갖다 주기 위해, 일부러 여기까지 온 거라고?”
주육낭이 너무 갑작스럽게 움직이기도 했거니와 워낙에 힘이 센 탓에 주육낭의 허리띠를 묶어 주고 있던 시녀들이 그를 따라 앞으로 쏠려갔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시녀들이 주육낭을 향해 볼멘소리를 냈다.
“됐다. 그만들 나가 봐.”
주육낭이 시녀들에게 손짓하고는 사환을 더욱 세게 잡았다.
“맞느냐고 물었다.”
사환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나를 위해서?”
주육낭이 재차 확인했다.
“예.”
사환이 대답했다.
“정확히 어떻게 말했는데? 토씨 하나 빼먹지 말고 소상히 이야기해 봐.”
주육낭이 눈을 부릅뜨고 사환을 재촉했다.
“어디서부터요?”
사환이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 아씨께서 어젯밤부터 공자님을 찾으셨는데······.
어젯밤부터 나를 찾았다고?
주육낭이 입꼬리를 씰룩대다가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간신히 참고 말했다.
“어제부터 이야기해.”
주육낭은 아직 못다 입은 옷을 여밀 생각조차 안 드는 듯 앞섶을 반쯤 풀어 헤친 모습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어제라면······.
“자세하게, 자세하게 말해 봐.”
주육낭이 또 한 번 당부했다. 사환이 알겠다고 대답하자, 뒤로 물러났던 시녀들이 조용히 웃음 지었다.
“공자님, 식사를 대령해오라고 했으니, 천천히 식사하시면서 이야기를 듣는 건 어떠세요?”
시녀가 물었다.
주육낭이 큰 손을 내밀며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좋다.”
바람이 불어오자, 벚나무 가득 핀 벚꽃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벚나무 아래에 있던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담소를 나누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나무 아래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다. 사내도 있고 여인도 있고, 앉은 사람도 있고,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벚나무를 올려다보았고, 어린아이들은 바닥에 떨어지는 벚꽃을 잡겠다며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있으면 명산이라는 말처럼, 성에서 오 리 밖에 있는 도관도 별다른 것 없이 벚꽃 하나만으로도 유명해질 만하네요. 이 도관을 처음 지을 때 벚나무를 잔뜩 심어 놓은 사람 덕분에, 이 도관은 몇 대 동안 향불 값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요.”
진십삼이 웃으면서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정교랑의 두봉과 두모 위에 내려앉은 벚꽃 때문인지, 오늘따라 정교랑의 모습은 더욱 부드러워 보였다.
“무심코 꽂아 둔 버드나무 가지가, 숲을 이루게 된 것일 수도 있어요.”
정교랑이 말했다.
“세상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이 다 그렇죠.”
진십삼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 앞에 있던 찻잔을 들어 올렸다. 시녀가 미리 두 사람의 찻잔 위에 씌워 둔 얇은 망사 덮개 덕분에 벚꽃이 찻잔 안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다들 그 이야기 들었소?”
행인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덕승루에서 화괴 다툼이 일어났다는군.”
“에이, 화괴 다툼이 뭐 희귀한 일이라고. 그건 흔히 일어나는 일이잖소.”
하긴, 화괴 다툼 없는 화괴가 무슨 화괴라 할 수 있으랴.
이야기를 듣고 입꼬리를 올리던 진십삼은 정교랑을 향해 손을 내밀고 간식을 먹어보라고 청했다.
“이것 좀 먹어 봐요. 어머님이 직접 만들어 주신 간식이에요.”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끝으로 간식을 조금 떼어내 먹었다. 진십삼이 웃으면서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근데, 맛이 있지는 않아요. 어머니께 불경스러운 말을 하자는 게 아니라, 정말로 이 간식은······.”
“이번에는 좀 다르다던데? 어떤 여인이 화괴 다툼에서 이겼대.”
“어떤 여인이 화괴를 하고 싶어서 다툰 거라고?”
“그게 아니라 어떤 여인이 돈을 걸고, 어떤 사내와 화괴 다툼을 해서 이겼다고.”
행인들의 대화를 들은 벚나무 아래 사람들이 일제히 행인들을 쳐다보며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진십삼도 말을 하다 말고 대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내다보며 웃었다.
“저 사람들 말, 들었어요?”
진십삼이 고개를 돌려서 정교랑에게 물었다.
“낭자는 저런 이야기 믿어요?”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요.”
진십삼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직접 본 사람처럼 말하네요? 진짜로 믿는 거예요?”
진십삼이 찻잔을 들어 올리고 천천히 차를 음미했다. 정교랑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본 게 아니라, 그 화괴 다툼을 한 사람이 나거든요.”
그 화괴 다툼을 한 사람이 나거든요?
진십삼이 입에 머금고 있던 차를 풉 하고 내뿜었다.
몸종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서둘러 손수건을 꺼내 정교랑의 두봉과 두모에 튄 차를 닦아 주었다.
정교랑이 담담한 표정으로 진십삼을 쳐다보았다. 진십삼은 놀라 잠시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정교랑을 쳐다보다가, 공수의 예를 표하며 활짝 웃었다.
“미인을 얻으신 걸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정교랑이 답례했다.
“주복!”
진십삼의 목소리가 밖에서부터 전해져 왔다.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진십삼이 마당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주육낭은 편한 자세로 대청에 비스듬히 누운 채 시녀 둘이 고무줄놀이를 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왜 아직도 집에 안 갔어? 괜히 자네 집까지 갔다 다시 왔잖아.”
진십삼이 주육낭을 탓하듯이 말했다.
“자네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는 서로 놀라서 마주 보았다.
“말할 필요 없어. 다 알고 있으니까.”
진십삼이 먼저 말하고는 대청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은 후 시녀들을 향해 손짓했다. 두 시녀가 서둘러 고무줄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주육낭은 절로 웃음이 나는지 입을 벌리다가 곧 표정을 수습했다.
“너무 속상해하진 마. 그래도 자네와는 꽃놀이를 갔잖나.”
주육낭이 말했다. 진십삼이 미간을 찌푸리고 무슨 소리냐는 식으로 되물었다.
“뭔 소리야? 그나저나, 그렇게 큰일을 나한테 왜 숨겼어!”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주육낭이 헤헤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 그 사람이 살의까지 내비쳤다면서? 그래도 큰일이 아니라는 거야? 그게 큰일이 아니었으면, 어제 자네가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신 이유는 또 뭔데?”
진십삼이 주육낭을 다그쳤다. 주육낭은 잠시 넋을 놓았다가 아, 하고 대꾸했다.
“그 일을 말하는 거였군. 자네가 알 정도면, 이미 경성에 그 이야기가 다 퍼졌다는 소린가?”
“쓸데없는 소리.”
진십삼이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삽시간에 이야기가 퍼질 만한 소재가 다 들어 있잖아. 화괴며, 고씨 가문이며, 게다가 미모에, 돈에, 권력에 뭐 하나 빠지는 거 없이, 천만 명에 한 명 날까 말까 한 신선의 제자 정 낭자까지 있는데. 이야기가 안 퍼지는 게 더 이상하다, 이놈아.”
주육낭이 멍한 표정으로 아, 하고 내뱉었다. 그는 잠시 잊고 있었던 그 골치 아픈 일이 떠올라 표정을 굳혔다.
“정말로 주 낭자 혼자서 벌인 일이야?”
진십삼이 물었다.
“몰라. 아무튼, 걔는 누가 벌인 일이든 관심 없대. 풍류를 즐기는 오라비가 기쁘기만 하면 된다더라.”
주육낭이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진십삼이 주육낭을 잠시 쳐다보다가 말했다.
“설마 그거 때문에 정 낭자를 그 자리에 내버려 두고, 혼자 고주망태가 되어 우리 집으로 쳐들어온 거야?”
주육낭이 콧방귀를 뀌었다.
“나 참, 내가······.”
“그런 거라면, 자네는 정말 그 풍류를 즐긴다는 오라비보다 못한 놈이네.”
진십삼이 주육낭의 말을 끊고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했다. 주육낭이 발끈하여 진십삼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이번 일 말이야. 정 낭자가 깨진 이를 배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을 만큼 속상한 일이었는데, 거기서 뭘 했다고? 정 낭자한테 성질을 부려? 그게 오라비로서 누이에게 보일 모습이야? 정사낭이 멍청하긴 해도, 적어도 제 누이를 아낄 줄은 아는 사람이야.”
진십삼이 말했다.
“속이 상하긴. 내가 보기엔 아주 기뻐서 환장을······.”
주육낭은 이를 바드득 갈며 말끝을 흐렸고, 진십삼은 코웃음을 쳤다.
“그럼, 정 낭자가 자네처럼 고주망태라도 되어야 속상하다는 말이야?”
주육낭이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꾹 다물었다.
“일이 이미 그 지경이 됐는데, 정 낭자가 거기서 뭘 더 할 수 있었겠나? 대부분은 아마 그 자리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고 관인에게 빌며 사죄할 생각만 했겠지. 절대 그 오만 관을 화괴 다툼에 쓰진 않았을 거야. 공손히 고 관인에게 받치면서 화를 가라앉히라고 아부를 떨었을 테지. 하지만 주복, 만약 자네였다면, 고 관인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을 텐가?”
진십삼의 말에 주육낭은 말없이 주먹을 쥐었다.
절대로 그럴 리 없지.
“자네도 그러지 않는데, 정 낭자가 어떻게 그러겠나?”
진십삼이 주육낭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 낭자는 단 한 번도 아랫사람의 잘잘못을 따진 적이 없어. 정사낭의 손목을 부러트린 하인에게도 화를 내지 않았지. 왜 그런 줄 알아? 자신이 일개 하인들과 다투는 걸 하찮다고 여기니까. 그만큼 그 여인은 자존심이 센 사람이니까. 그런 여인이 퍽이나 고 관인에게 사죄하고 싶었겠다. 더군다나 그 여인의 잘못도 아닌 일에!
누가 봐도 이건 정 낭자가 정사낭을 위해 자신의 목에 올가미를 씌운 거야! 아둔하고 착해 빠진 정사낭은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무척 속상해할 테고, 죽을 만큼 자신을 자책하겠지.
그런데 정 낭자가 거기서 고 관인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사죄하면, 정사낭은 어땠겠어? 자기 때문에 누이가 이런 일에 휘말리고, 치욕스러운 사죄를 한다는 것에 더 미안하고, 더 속상하고, 더 창피해서 그 자리에서 죽고 싶은 심정이었을 거야. 그런데 정 낭자 같은 사람이, 일을 그렇게 만들었을 거 같아?
자네는 어떻게 정 낭자가 이 일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속으로 기뻐한다고 말할 수가 있지? 남의 수작에 놀아나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고, 고씨 가문과 입에 담기도 망신스러운 일로 원수를 졌어. 정 낭자가 속으로 얼마나 화가 났겠나?
정 낭자가 어째서 화낼 리 없고, 속상해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지? 정 낭자도 사람이야. 오욕칠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그런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이지. 제멋대로 구는 사람보다, 엄격하게 자신을 통제하는 사람이 더욱 고통스럽다는 걸 왜 몰라?
일이 이 지경이 된 이상, 정 낭자가 뭘 할 수 있어? 화를 낸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데? 없어, 아무 소용없다고. 정 낭자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지금 처한 곤경에서 어떻게 살길을 마련할지 고민하는 것뿐이야. 그러니 정 낭자가 고 관인과 화괴 다툼을 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동시에 최선의 결정이기도 해.
음모여도, 함정이어도, 설령 고씨 가문과 원수지간이 되더라도, 정 낭자는 모든 것을 제쳐두고 딱 한 가지 중요한 것만 생각한 거야. 화괴 다툼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생각.
화괴 다툼으로 시작했다면, 화괴 다툼으로 끝내자. 승패를 가를 수 있는 일이니, 결과가 어찌 되든 일단 해보자. 모든 일은 결국 화괴 다툼으로 시작하고, 끝을 내자. 정 낭자는 그렇게 생각했겠지.
화괴 다툼을 하는 게 얼마나 덧없고 황당한 일인지는 온 경성 사람이 다 알고 있을 거다. 황당한 일인 만큼, 서로 승패를 받아들이고, 그냥 한 번 웃고 훌훌 털 수 있는 일이야. 그런데 고작 화괴 다툼으로 가문 간의 불화가 일어난다면, 그거야말로 더욱 황당한 일이 되는 거지.
고씨 가문이 이번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걸?
어린 여인이 제 오라비를 위해 화괴 다툼에 나섰다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로 세간에 떠돌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어린 여인의 용기에 손뼉을 칠 거야.
만약 그 자리에서 정 낭자가 고개 숙이고 사죄했다면, 신선 낭자도 비굴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비웃음을 샀을 거라는 사실을 정녕 모르겠나?
자네가 거기서 성질부릴 일이 뭐 있어? 자네까지 설칠 필요가 뭐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