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50
교랑의경 550화
진십삼의 말을 듣던 주육낭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내가 그거 때문에 화를 낸 게 아니잖아! 나는 그 애가 고씨 가문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난 게 아니라고! 나는 그저, 난 그저 그 애 주변에 있는 멍청한 놈들한테 화가 나는 거야. 괜히 그 애한테 골칫거리만 떠넘기니까.”
“다른 건 없고?”
진십삼이 넌지시 말했다.
“그래, 그런데도 그 애가 그 멍청한 놈들한테 잘해 준다는 게 화가 난다! 됐냐? 그래, 맞아! 난 정확히 이것 때문에 화가 났다, 왜!”
주육낭이 눈을 부릅뜨고 버럭 화를 냈다.
주복, 그건 화가 난 게 아니라, 질투야.
“그런데도 그 여인이 그 사람들에게 잘 대해 주니까, 우리가 그 여인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정사낭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해서, 정 낭자가 정사낭을 매몰차게 내쳐야만 해? 정 낭자가 정사낭을 먼지 나게 두드려 팼다면, 우리는 정 낭자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진십삼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주육낭은 속에 부아가 치밀었지만, 금세 풀이 죽은 모습으로 생각에 잠겼다.
맞는 말이야. 그 여인이 몹시 짜증 나고 밉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야.
창피해하기도, 부끄러워하기도 하는 주육낭의 표정을 본 진십삼이 그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 어쨌든 황당한 일에 불과하고, 어린 낭자가 성질 한번 크게 부린 일로 치부할 수도 있으니까. 고씨 가문 쪽에는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보겠네. 관기의 수작에 두 가문이 놀아난 것이니, 따지고 보면 둘 다 피해자일 뿐이야. 자연스럽게 큰일을 작은 일로, 작은 일은 없던 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주육낭은 아무런 대꾸 없이 걸음을 옮겼다.
“저녁은 먹고 가지? 정 낭자에게 급하게 사과하러 갈 필요는 없어.”
진십삼이 웃으면서 말했다.
“사과는 무슨.”
주육낭이 걸음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공자님, 공자님.”
사환 한 명이 급하게 대청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정 아씨께서 오셨습니다.”
두 사람이 또 한 번 화들짝 놀라서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또?”
“하, 저녁에는 성문이 닫히니까, 등불 아래서 꽃놀이할 생각은 마라.”
주육낭이 언짢은 기색으로 말했다. 진십삼이 입을 막 열려던 찰나, 사환이 먼저 말했다.
“공자님, 정 아씨께서는 공자님을 데리러 온 거라고 하십니다.”
사환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를, 데리러 와?
주육낭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물었다.
“날 왜 데리러 와?”
진십삼이 피식 웃으면서 주육낭의 어깨를 탁탁 쳤다.
“네 진심이 보였나 보지. 육낭, 진심을 보이는 게 뭐냐고 물었지? 지금 자네의 마음이 바로 진심이야.”
예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거 같은데.
주육낭이 멍한 표정으로 회상했다.
– 그 사내들이 믿을 만한 사람들이긴 한 것 같네. 시키는 대로 할 배짱이 있으니, 쓸모가 있는 게 맞지.
– 육낭, 저번부터 자네가 계속 진심이 무엇이냐고 물었지? 이런 게 바로 진심이야.
다른 것은 고려하지 않고, 그 여인을 믿고, 그 여인을 걱정하는 것.
주육낭이 퉤 하고 침을 뱉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러더니 걸음을 옮기다 말고 고개를 돌려 진십삼을 쳐다보았다.
“아, 좀 전에 자네한테 하려던 말을 아직 못 했네.”
주육낭이 말했다. 진십삼은 좀 전에 대청 안에서 헤벌쭉 웃던 주육낭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내가 하려던 말은, 아까 그 애가 왔던 일, 실은 나 때문이었단 거야.”
주육낭은 헤벌쭉 웃으면서 장포를 손으로 쓱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득의양양한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자네와의 약속 때문이 아니라, 나한테 옷을 가져다주려고 온 거거든.”
진십삼은 흠칫 놀란 얼굴로 멍하니 제자리에 서서 멀어져가는 주육낭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진십삼이 뒤늦게 고개를 저으며 읊조렸다.
“그래서 온 거였구나.”
날이 저물 무렵이 되자 거리를 오가는 행인의 수는 점점 많아졌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빠르게 내달리는 말과 마차들 때문에, 정교랑이 탄 마차의 속도가 더뎌졌다. 말을 타고 있던 주육낭은 마차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마차를 따라갔다.
“말, 가져다줘서 고마워.”
머뭇거리던 주육낭이 먼저 입을 열었다.
따뜻한 봄바람이 부는 날씨인지라, 마차의 휘장이 들어 올려져 있었다. 마차 안에 앉아 있던 정교랑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고마워할 거 없어요. 나 때문에 말을 잃어버린 거잖아요.”
“아니야.”
주육낭이 정교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대답했다. 정교랑이 주육낭을 쳐다보자, 주육낭이 이어서 말했다.
“나 때문이야. 내가 너한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서, 스스로한테 화가 나서 그래.”
“이번 일은, 아무도 나를 도울 수 없어요.”
정교랑이 말했다.
그래. 뭘 어쩔 수 있겠어.
참······ 재수가 더럽게 없었지.
말고삐를 쥐고 있던 주육낭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아무런 대화 없이 주씨 저택에 도착했고, 정교랑이 마차에서 내려 예를 표했다.
“어이.”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던 정교랑을 향해 주육낭이 외쳤다. 정교랑이 걸음을 멈췄다.
“너무 초조해하지 마. 너무 속상해하지도 말고. 네가 그 멍청한 놈을 지켜주고 싶으면 지켜.”
주육낭이 굳은 표정으로 잠시 뜸을 들이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너는 내, 내가 지켜줄 테니까.”
마, 말해 버렸어! 이렇게 남사스러운 말을 뱉어내다니!
이제 빨리 가야지, 빨리!
주육낭이 속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주육낭의 발은 도통 움직이지 않았다.
정교랑이 주육낭을 쳐다보고 웃으며 물었다.
“간식 먹을래요?”
“또 간식이야? 간식 말고 딴 건 없어?”
주육낭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뭘 원하는데요?”
정교랑이 물었다.
뭘 원하냐고?
“그림.”
주육낭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고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 말이야. 진십삼한테 준 그림 같은 거.”
“알겠어요.”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헤벌쭉 웃던 주육낭은 얼른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을 수습하고 잠시 망설이다가 재빨리 정교랑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나도 꽃 그려줘. 밤에 피는 꽃 같은 거. 진십삼한테 줬던 그림보다 더 좋은 거.”
“부인, 부인.”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가 정씨 저택의 조용한 새벽을 깨웠다.
머리를 단장하고 있던 정 이부인이 언짢은 표정으로 방 안에 들어온 여종을 흘겨보았다.
“여긴 경성이야. 품위 없이 호들갑 좀 떨지 마라.”
여종은 재빨리 걸음을 늦추고 알겠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무슨 일인데?”
화려한 비녀로 가득한 장신구 함에서 신중하게 하나를 골라 머리에 꽂은 정 이부인이 별 관심 없다는 투로 물었다.
“좀 전에 반근 낭자한테 가서 돈을 받으려고 했는데, 반근 낭자가 돈이 없다고······.”
여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 이부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 돈이 없긴 왜 없어? 우리가 바본 줄 알아? 자기가 뭐라고 우리한테 돈을 안 줘? 나랑 뭐 하자는 거야 지금?”
여종은 연이어 다그치는 정 이부인의 날카로운 목소리 때문에 귀가 아파 왔다.
“웬 호들갑이오? 체통을 지켜야지.”
조식을 먹은 뒤, 여유롭게 산책을 한 바퀴하고 대청 안으로 들어온 정 이노야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노야, 내 말이 맞잖아요. 주씨 가문은 돈 때문에 교랑을 데려간 거예요. 이젠 우리한테 돈도 한 푼 안 주겠대요!”
정 이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 이노야 앞으로 다가갔다.
정 이노야가 콧방귀를 뀌었다.
“허튼소리. 그 돈은 내 돈인데, 누가 감히 내 돈을 빼돌린다는 거요?”
정 이노야가 집사를 불러서 말했다.
“점포에 보낼 사람을 골라 놨으니, 오늘 당장 점포에 가서 관리인들을 싹 바꾸게. 앞으로 장부는 다른 사람을 거치지 않고, 곧장 우리 손으로 들어올 걸세.”
정 이부인이 찌푸렸던 미간을 펴고, 싱글벙글한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가 왔구나! 그 점포들이 드디어 완전히 내 것이 되겠어!
“노야, 부인. 노야, 부인!”
대청 밖에서 또 하인들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집안 단속도 좀 하시오. 집안 꼴이 이게 뭐요?”
정 이노야가 눈썹을 치켜뜨고 정 이부인을 나무랐다.
“알겠어요, 노야. 지금까지는 안주인이라고 하기도 그랬잖아요. 관리인들부터 바꾸고 나면, 안주인 노릇 제대로 할게요.”
정 이부인이 웃으면서 예를 표했다. 이때, 가노 하나가 거의 구르다시피 대청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부인, 큰일 났습니다. 집 앞에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정산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가노가 겁에 질린 모습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정산? 무슨 정산? 잘못 찾아온 거 아니야?”
정 이부인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아닙니다. 점포에 납품하는 업자들인데, 뭘 정산해야 한다며 돈을 달랍니다.”
가노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정산할 게 있으면 반근을 찾아가야지, 왜 우리를 찾아와!”
정 이부인이 화를 냈다.
“반근 낭자가 돈이 없다고 해서 부인을 찾아왔다는데요.”
가노의 대답에 정 이부인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날 찾아서 뭐해? 내가 행수도······.”
“부인, 행수를 찾아온 거라고 합니다. 부인께서 그 점포들의 행수 아니십니까.”
정 이부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노가 서둘러 말했다. 흠칫 놀란 정 이부인은 문득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이때다 싶어서 행수를 찾아?”
“노야, 노야.”
또 다른 가노가 대청 안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또 뭐냐?”
정 이노야는 아침부터 집안이 시끄러워 몹시 짜증이 나 있었다.
“노야, 사람들 말을 들어 보니, 저희 큰 아씨가 화괴 다툼에 오만 관을 썼다고 합니다!”
가노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오만 관! 화괴! 큰 아씨!
정 이노야 부부가 경악했다.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아, 그래서 반근 낭자가 돈이 없다고 한 거였나?”
옆에 있던 여종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만 관! 오만 관을 통째로 화괴한테 썼다고?
“자네 오만 관이 얼마인지는 알고 있나?”
“대학사의 한 달 녹봉이 기껏해야 일백 관이네. 아마 조정 관리들의 한 달 녹봉을 다 합쳐도 사만 관이 채 안 될걸세.”
“하하하. 그렇게 따지면, 조정 관리들은 기루의 관기보다도 돈을 못 버는군.”
이 층에 앉아 있던 노인 몇 명이 시끌벅적한 대청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일세.”
노인 중 한 명이 혀를 찼다.
이때, 밖에서 갑자기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찻집에 있던 사람들이 밖을 내다보자, 사람들이 어딘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어서 가세! 정씨 가문 사람들이 덕승루에 가서 오만 관을 도로 내놓으라고 깽판을 치고 있다는군!”
누군가가 거리에서 소리쳤다.
정씨 가문이 덕승루에?
이 층에 있던 노인들이 감탄했다.
“이상한 일은 매년 있었지만, 유독 올해는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군.”
찻집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구경거리를 찾아 우르르 밖으로 뛰어나갔다.
“황당하네, 황당해.”
이 층에 있던 노인들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