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91
교랑의경 591화
번개까지 치네.
“전하, 전하, 괜찮으십니까?”
황궁 안, 천둥 번개 때문에 놀라서 자빠질 뻔한 내시들이 황급히 우산을 고쳐 쓰고 진안 군왕을 쳐다보았다.
우두커니 빗속에 서 있던 진안 군왕의 머리카락과 옷은 벌써 비에 흠뻑 젖은 채였다.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놀란 표정으로 감탄했다.
“엄청난 천둥 번개로구나.”
멀리서 천둥소리가 몰려오자, 내시들이 재빨리 진안 군왕의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워 주며 재촉했다.
“전하, 어서 가시지요. 근정전으로 가서 비를 피하셔야 합니다.”
진안 군왕과 내시들이 더욱 빠른 걸음으로 근정전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진안 군왕이 돌연 걸음을 멈췄다.
“저 앞에······.”
진안 군왕이 다소 놀란 기색으로 웅장한 근정전 앞을 내다보았다.
억수처럼 쏟아지는 빗속에서 누군가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평왕 전하, 전하!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제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더는 이렇게 무릎을 꿇고 계셔서는 안 됩니다. 번개까지 치고 있습니다!”
내시들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평왕을 말렸지만, 비에 흠뻑 젖은 평왕은 일어날 기색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는 좀 전에 내리친 번개에 놀라지는 않았지만, 주위 사람들이 천둥 번개에 놀라 기겁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며 묘한 흥분감을 느꼈다.
평왕의 얼굴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고, 눈빛도 반짝이고 있었다.
“아니다. 본왕은 죄를 뉘우치는 중이니라. 폐하께서 아직 본왕을 책망하지도 않으셨는데 어찌 자리를 뜬단 말이냐.”
평왕이 큰 소리로 외치고는 고개를 들고 활짝 열린 근정전 문을 올려다보았다.
비 때문에 날씨가 흐려져 근정전 안은 더욱 어둑했다. 평왕의 시야에는 근정전 안에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사람들만 보일 뿐,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본왕은 굳이 보지 않아도, 저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지.
놀랐거나, 화가 났거나, 두려워하는 거겠지?
죄를 뉘우친다고? 본왕이 무슨 죄를 뉘우쳐야 하는데?
죽은 놈들은 죽어 마땅하니까 죽었겠지, 본왕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똑똑한 데다 노력까지 열심히 하는 본왕을 모두가 칭찬했어.
그런데 본왕을 어찌 감히 그 바보와, 살아남지도 못한 그 고깃덩이와 비교할 수 있단 말이냐!
폐하, 두 눈 똑바로 뜨고 보시지요. 누가 폐하에게 있어 가장 뛰어나고, 유일무이한 아들인지!
지나가는 고양이나 개 따위는 그리도 아껴 주시면서, 어찌 소자에게는 한없이 야박하신 겁니까!
평왕이 이를 악물고 안간힘을 쓰면서 속에서 외쳐대는 말들을 삼켜냈다. 입가에 웃음이 걸려 있던 평왕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아바마마, 통촉하시옵소서! 다 소자의 잘못입니다. 부디 소자를 외직으로 보내 주시옵소서!”
평왕이 소리쳤다.
“전하, 하실 말씀이 있다면 안으로 들어가서 폐하께 아뢰시지요.”
내시들이 한쪽에서 무릎을 꿇은 채 애원했다. 평왕을 위해 가져왔던 우산도 평왕이 힘껏 내던지는 바람에 비바람에 쓸려 멀리 날아가 버렸다.
“천둥 번개가 치고······.”
내시가 덧붙여 말했지만,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가 내시의 목소리를 덮었다.
대전 안에 있던 조정 관리들도 가만히 보고만 있기가 힘들었는지, 서로 눈짓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대치하면 어떡합니까? 어서 말려야 합니다.”
“누굴 말리자는 뜻이오?”
“폐하를 말리자는 게요? 지금 그게 무슨 뜻이오? 폐하의 말씀이 틀렸다는 것이오?”
그럼 어쩔 수 없이 평왕을 말려야겠지.
평왕이 이런 식으로 난리를 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폐하께서 기가 차서 말씀도 못 하실 정도니.
진소는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진소가 걸음을 옮기자, 관리 몇 명이 재빨리 진소의 뒤를 따랐다.
“가지 말라! 아무도 평왕에게 가서는 아니 된다! 무릎을 꿇겠다고 하니 저대로 꿇고 있게 두어라!”
황제가 눈썹을 치켜뜨고 호통쳤다. 진소를 뒤따르던 관리들은 걸음을 멈췄지만, 진소는 예를 표하며 말했다.
“폐하, 근정전 앞에서 결례를 보이는 것은 친왕이어도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신이 필히 가서 제지해야 합니다!”
진소가 엄숙한 얼굴로 말하고는 황제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곧바로 근정전 밖으로 나갔다. 황제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근정전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자, 평왕은 더욱 흥분했다.
하! 하!
“전하, 소란 피우지 말고,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진소가 목청을 높여서 외치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회랑 아래에 서 있던 내시들이 서둘러 진소의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워 주며 그를 따라갔다.
“본왕은 소란 피운 적이 없소!”
평왕이 큰소리로 대답하면서 벌떡 일어나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본왕의 뜻은 지금 이 자리에서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는 것이고, 진심으로 벌을 받겠다는 것이오! 본왕이 한 말에 한 치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기꺼이 하늘이 내리는 벼락을 맞을 것이오!”
평왕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하늘이 쩍 하고 갈라지는 듯한 폭발음 같은 굉음이 들려왔다.
진소는 순간적으로 두피부터 발바닥까지 찌릿한 느낌이 들더니, 곧이어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쓰러지던 순간, 진소의 앞에 있던 사람도 쓰러지는 게 진소의 눈에 들어왔다.
사방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진안 군왕에게 우산을 씌워 주던 내시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겁에 질린 모습으로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심지어 몇 명은 혼절하기까지 했다.
진안 군왕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빗속에 서 있었다.
세상에나.
다른 쪽에 서서 근정전을 내다보던 고 관인도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게 평왕 전하인 게냐?”
“예, 전하께서 폐하께 죄를 뉘우치신다고 저렇게 반나절 가까이 빗속에서 무릎을 꿇고 계십니다.”
“자식, 독하기는 엄청······.”
좀 전까지만 해도 내시와 이런 대화를 하고 있던 고 관인은 마지막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한 채, 눈앞의 광경을 목격했다.
고 관인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젠장!
이건 고 관인의 뇌리에 남은 유일한 말이었다.
이런 젠장!
천둥소리가 근정전 위를 지나가는 동안, 굵은 빗방울이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무거운 적막이 근정전 앞을 짓눌렀다. 그런데 누군가가 갑자기 쓰러진 평왕에게 달려가면서 모든 것이 멈춰 버린 듯한 적막을 깼다.
넋이 나간 사람들이 빗속을 내다보았다. 뛰어온 사람은 진안 군왕이었다.
“여봐라, 여봐라! 어서 태의를 불러오너라!”
진안 군왕이 큰 소리로 외쳤다. 진안 군왕의 외침과 함께 사람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렸다.
“여봐라, 여봐라!”
사람들이 뒤늦게 소리치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평왕 근처에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비가 내리는 근정전 앞, 여러 사람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은 벼락에 맞아 죽어서가 아니라, 질겁하면서 넘어지고 정신없이 울부짖느라 일어설 힘이 없어서였다.
근정전 앞의 광경은 털끝이 삐쭉 설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이 와중에 귀가 찢어질 듯한 천둥소리가 또 한 번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또 누가 벼락에 맞을지 어떻게 알아. 벼락 맞은 평왕을 가까이했다는 이유로, 하느님께서 화가 나 또 누군가에게 벼락을 내리꽂으시면 어떡해?
고 관인이 속으로 미친 듯이 외쳤지만, 이는 아무런 의미 없는 외침들이었다.
벼락에 맞았어! 벼락에 맞았어!
– 본왕의 뜻은 지금 이 자리에서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는 것이고, 진심으로 벌을 받겠다는 것이오! 본왕이 한 말에 한 치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기꺼이 하늘이 내리는 벼락을 맞을 것이오.
정말로, 진짜로, 진짜로 벼락에······.
고 관인이 악 소리를 내지르고는 잽싸게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리가 후들거린 탓에, 그는 몇 걸음도 못 가 바닥에 넘어졌고 버둥거리며 기어갔다.
바닥에 쓰러졌던 진소도 간신히 고개를 들고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아직은 하반신이 마비된 것처럼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는 앞에 쓰러져 있던 평왕을 쳐다보며 그에게 힘겹게 기어갔다.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무슨 일인가?”
뒤에서 들려오는 황제의 목소리에 근정전 문 앞에 서 있던 조정 관리들이 깜짝 놀랐다.
큰일 났다!
문가에 있던 사람들 그 누구도 황제를 향해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며칠 만에 연이어 자식을 둘이나 잃은 아비를 어떻게 봐야 하지? 게다가 그 아비는 하필이면 황제여서, 뒤를 이어 강산을 돌봐야 할 계승자를 둘씩이나 잃어버린 셈인데.
대전 안에 정적이 흘렀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소.”
황제가 목청을 높여 다시 한번 물었다. 좀 전에 머리가 울릴 정도로 컸던 천둥소리 때문에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던 황제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고 곧이어 조정 관리들이 모두 문가에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좀 전에 벼락이 친 것 같은데, 비명이 들린 것 같기도 하고. 혹시 누가 벼락에 맞았나?
설마 진소인가? 좀 전에 대전을 나갔던 사람은 진소인데. 설마 진소가 벼락에 맞은 거야?
“무슨 일이냐니까!”
황제가 답답한 마음에 소리쳤다. 관리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진소의 목소리가 대전 안으로 들려왔다.
“어서, 어서 대전 안으로 모시고 가거라.”
황제가 한시름 놓은 얼굴로 생각했다.
참으로 다행이구나. 저 힘찬 목소리가 그대로인 것을 보니, 진소는 무사하군.
참으로 다행이야. 절대로 진소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는 안 돼. 진소는 평왕을 잘 보좌하고, 그의 성장을 책임지고 지켜 봐야 하니까.
“어서 태의를 불러오거라, 태의를.”
누군가가 분주하게 외치자, 호통 소리가 그의 말을 끊었다.
“태의를 부를 때가 아니오!”
모두의 시선이 호통을 친 대신에게로 쏠렸다. 평왕을 들고 회랑 아래까지 온 내시들도 황급히 걸음을 멈췄다.
대신이 고개를 숙여 평왕을 살펴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정 낭자를 부르시지요.”
대신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면, 바로 장례를 치를 준비를 해야 하나?
아마 바로 장례를 치른다 해도 어렵진 않을 거야. 태상시와 예부에서 황후의 장례를 준비해 온 지 몇 년은 됐을 테니, 수의는 새로 짜긴 해야겠지만, 관곽이나 다른 것들은 바로 쓸 수 있을 거야. 무덤도 이미 준비되어 있을 거고.
다만, 평왕이 황릉에 안장될 수 있을지가 문젠데. 어찌 됐든, 벼락에 맞아서 죽은 것이니까. 황제 앞에 죄를 빈다는 명목이긴 했지만, 귀비가 안비를 해친 죄를 평왕이 대신······.
잠깐, 내가 지금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대신의 뇌리에 마지막 생각이 스치던 찰나, 그의 등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왕을 둘러싸고 있던 조정 관리들이 놀란 기색으로 고개를 들어보자, 언제 가까이 다가온 건지 모를 황제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폐하!”
대전 안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황제는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새까맣게 탄 평왕의 얼굴만이 그의 눈앞에 둥둥 떠다녔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저 사람은 짐의 아들, 평왕이 아니다. 절대 아니라고!
다행이긴 뭐가 다행이야. 진소는 무사할지언정, 그가 보필해야 할 평왕이 더 이상 없는데!
이 생각을 마지막으로 황제는 짙은 어둠 속에 빠져들었다.
벌떼처럼 황제를 둘러싼 다른 대신들과는 달리, 진소는 황제에게 달려가지 않고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항상 진중하고 단정한 모습만 보이던 진소였지만, 지금은 몹시 남루한 꼴이었다. 비에 흠뻑 젖은 머리카락과 관복, 빗속에서 평왕을 향해 기어가느라 잃어버린 신발 한 짝, 엉망이 되어버린 버선발까지.
진소는 멍하니 제자리에 선 채 아무도 돌보지 않는 평왕과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황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정말 큰일이 났구나.”
진소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럴 수가?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이게 꿈이라면,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악몽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