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607
교랑의경 607화
대단하군, 대단해! 취한 척하면서 소심하게 한 마디 내뱉고는 두 번 다시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위관과 저 강직한 진소를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역시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었어!
탁 소리가 들리고, 옥좌 뒤의 의자에 앉아 있던 태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아가 잔뜩 치밀어 오른 태후가 진소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그런 말을 지껄이는 것이냐! 진소! 애가는 안중에도 없구나!”
“그 후로 진 상공이 태후께 뭐라 말씀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내시가 무릎을 꿇은 채 조용히 말하다가 머뭇거렸다.
“않았지만?”
황후가 물었다.
“양견(楊堅)이 수나라를 세웠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황후가 통쾌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진 상공이 아예 면전에 대고 태후를 욕한 것이나 다름없구나. 그런 욕을 누가 견딜 수 있겠느냐.”
“네, 태후마마께서는 탁자를 발로 차서 뒤엎고 휘장을 홱 뜯어내시고는 옷소매를 뿌리치며 자리를 뜨셨습니다.”
내시가 말했다.
“태후가 수렴청정하고 싶다고 해도, 그리 쉬운 일이 되진 않겠구나.”
황후의 눈가에 웃음기가 가득 서렸다.
“태후가 수렴청정하든 말든, 그건 조정의 일이지요. 후궁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겁니다.”
정교랑의 말에 황후의 웃음이 어색하게 굳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달라지지?”
정교랑이 황후를 쳐다보았다.
“양자를 들이셔야 합니다.”
양자!
황후가 흠칫 놀라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씨! 도대체 본궁이 어찌하길 바라는 것이야!”
* * *
안 그래도 내시와 궁녀의 수가 적은 황제의 침궁에서 또 몇 명의 내시와 궁녀들이 물러났다.
“태의 말로는 폐하께서 조용히 요양하셔야 하고, 황후마마께서도 좀 쉬셔야 한다는군.”
“그래, 황후마마께서도 좀 쉬시긴 해야지.”
궁 밖으로 나온 내시 몇 명이 목소리를 낮춰 가며 말했다. 침궁에서 물러나는 궁녀들과 내시들을 보고 저쪽에 서 있던 내시 몇 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나온 거요?”
미간을 찌푸리던 내시가 물었다.
“태의가 안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황후마마께서도 침전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나가지 않으시니.”
밖으로 나온 내시가 아무 문제 없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두 궁녀가 침전 문을 닫고 황후를 향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정씨,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는 있는가?”
황후는 그제야 목소리를 낮추고 간신히 화를 참으면서 말했다.
“양자 입적이라니, 어찌 그런 말을 입에 올릴 수가 있느냐! 황실의 권력을 어찌 남의 손에 넘기겠다는 것이야!”
황후가 이리저리 서성이면서 말했다.
“양자 입적은 그렇지 않습니다. 양자 입적으로 황실의 대를 잇는 것인데, 남의 손에 권력이 들어갈 리가 있나요.”
정교랑이 고개를 저으면서 황후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이대로 폐하의 혈통만을 고집한다면, 황실의 모든 권력은 결국 남의 손에 들어가게 될 겁니다.”
평왕처럼 제정신이었던 황자도 강산을 망쳐 버릴 정도니, 정신도 온전치 않은 경왕이 그 뒤를 잇는다면, 아마 지금 황제가 재위했던 사십오 년간 이룬 치적들은 전부 무위로 돌아갈 터였다.
황후가 걸음을 멈추고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대를 이어? 폐하께 아무런 혈육도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아직은 폐하의 혈육이 남아있느니라. 가남풍이니, 혜제니 말이 나와서 그런데, 왜 무제(武帝)는 혜제가 바보인 것을 알면서도 황위를 넘겨주었을까? 혜제가 자신의 혈육이라서, 자신의 대를 잇는 아들이기 때문이겠지!”
“양자도 충분히 그리할 수 있습니다.”
정교랑이 말했다.
“복의(濮議) 논쟁은 양자여도 일어날 수 있다. 본궁은 폐하의 대를 남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없고, 재상과 문무백관들 앞에서 눈물로 호소하고 싶지도 않아. 양자 입적이라니. 그런 짓을 하고도 본궁에게 열성조를 뵐 면목이 남아 있겠느냐. 또 무슨 낯으로 천하 만백성을 대하고? 본궁은 차라리 부부의 정을 중시하며 폐하와 함께 안장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그런 오명은 뒤집어쓰고 싶지 않느니라.”
황후가 이를 악물고 말하자 정교랑이 그런 황후를 쳐다보았다.
“조(曹) 태후는 그런 오명을 짊어지지 않았어요.”
그런 오명은 양자 입적을 결정했던 황제와 조정 대신들에게 씌워졌지.
황후가 잠시 멈칫했다.
“어쨌든 안 된다! 그런 일은 하고 싶은 사람더러 하라고 해. 본궁은 아니야. 본궁은 절대로 양자 입적을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황후가 소매를 홱 털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그 일은 황후마마께서만 언급하실 수 있습니다. 신하들이 먼저 입을 열기는 힘드니까요.”
정교랑이 말했다.
신하들이 먼저 입을 열기는 힘들다?
황후가 정교랑을 바라보았다.
신하들이 먼저 입을 열기 힘들다고 했지, 입을 열 수 없다고 하지는 않았어. 그렇다면······.
밖에서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마마.”
궁녀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옴과 동시에, 누군가가 휘장을 들어 올리고 편전 안으로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온 이가 내시인 것을 확인한 황후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무엄하구나!”
황후가 소리쳤다. 황후의 호통에도 내시는 전혀 긴장한 기색 없이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태후마마께서 정 낭자에게 여쭐 것이 있어서요. 정 낭자, 폐하의 병을 고치거나 호전되도록 치료할 수 있는지요?”
내시가 자신의 허락도 없이 자신이 잠시 쉬는 편전에까지 들어오고, 자신에게 양해를 구하는 일도 뛰어넘은 채 정교랑에게 질문하는 모습에 황후는 몹시 화가 났다.
정교랑이 황후를 힐끔 쳐다보고 내시에게 대답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소녀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만 출궁하시지요.”
내시가 말했다. 정교랑이 알겠다고 대답한 뒤, 황후를 향해 예를 올렸다.
“마마, 봉체를 보존하시옵소서. 이토록 많이 회복되었는데, 허망하게 건강을 잃는다면 얼마나 아깝겠습니까. 드셔야 할 약은, 드셔야 하옵니다.”
정교랑이 말했다.
내시가 미간을 찌푸리고 정교랑과 황후를 번갈아 쳐다보던 그때, 궁녀 하나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으로 탕약 한 그릇을 황후에게 바쳤다.
“마마.”
“황후가 약을 끊었었다고?”
태후가 묻자 내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듯하옵니다. 정 낭자가 직접 황후마마께 다시 약을 드시라고 권했습니다.”
태후가 콧방귀를 뀌었다.
“황후는 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가 났구나. 좋은 보약을 줘도 안 먹어? 정 그리 죽고 싶으면 알아서 죽으라지. 급할 게 뭐 있다고.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태후가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자, 내시들은 감히 대꾸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 여인은 내보냈느냐?”
태후가 또 물었다.
“예, 소인들이 직접 궁 문 앞까지 배웅했습니다.”
내시가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던 태후가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
“진소 그 몹쓸 놈만 아니었다면! 분을 참을 수가 없구나!”
편전 문이 굳게 닫히자, 황후는 순간 온몸에 힘이 쭉 빠진 듯 침상에 몸을 비스듬하게 기대고 눈을 감았다.
누군가가 휘장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어 좌우를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휘장 안으로 들어왔다.
“마마.”
안비가 황후의 침상 옆에 무릎을 꿇고 소매로 얼굴을 가린 채 울음을 터트렸다.
“관둬라. 본궁은 아직 살아 있다.”
황후가 눈을 감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안비가 울음을 뚝 그치고 황후를 올려다보았다. 눈가에 눈물 자국 하나 없는 안비가 또 좌우를 열심히 살폈다.
“눈알을 굴리긴 왜 굴려? 할 말이 있으면 하여라. 본궁이 아직 말도 못 하고, 듣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으니.”
황후가 여전히 눈을 뜨지 않고 말했다. 안비가 헤헤 웃고는 무릎을 꿇은 채 황후 가까이 다가갔다.
“마마, 정 낭자가 뭐라고 하던가요?”
황후가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눈을 떴다. 입을 열려던 그녀는 안비의 얼굴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연기를 하려면 좀 제대로 해야지. 적어도 목에 붉은 밧줄 자국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나? 식음을 전폐한다면서 입가에 간식 부스러기까지 잔뜩 묻혀 놓고.”
안비가 민망한 듯 웃으면서 서둘러 소매로 입가를 슥슥 닦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마마를 뵈러 온 것이 아닙니까. 신첩이 두려울 게 뭐 있다고요.”
황후가 안비를 빤히 바라보았다.
“본궁은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때가 참 많아. 도대체가 배짱이 두둑한 건지, 아둔한 건지.”
안비가 천진난만한 소녀 같은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신첩은 당연히 아둔한 거죠. 신첩의 간덩이는 콩알만 해요. 사실 신첩은 지금 상황이 몹시 겁이 나요. 폐하와 마마께서 돌아가신다면, 신첩도 죽은 목숨일 테니까요.”
황후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그럼, 어쨌든 자네는 죽어도 본궁이 죽은 뒤에 죽겠다 이 말인가?”
안비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마마께서는 꼭 봉체를 보존하셔야 해요.”
어쩌면, 저런 아이이기 때문에 나와 함께 귀비를 상대로 연극을 펼칠 수 있었던 거겠지.
이것 참······.
황후는 이마를 손으로 꾹꾹 누르다가 한숨을 쉬고 몸을 일으켰다. 그런 황후의 얼굴에서는 조금 전 정교랑과 대화할 때의 분노나 불안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정 낭자야, 정 낭자가 해야 할 말을 했지. 그 여인은 똑똑한 사람이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본궁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뭔지 잘 알고 있어.”
황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안비가 미간을 찌푸렸다.
“똑똑한 사람이 말을 할 때는 상대가 듣고 싶은 말만 해 준다는 뜻이야.”
황후가 덧붙여 설명하자, 안비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마, 정 낭자는 마마께서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다는 걸 일찍이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마마가 원하는 대로 말한 거고요? 그래서 그 여인의 생각은 어떻대요? 마마의 환심을 사려고 빈말을 한 건 아니겠죠?”
“당연히 빈말은 아니겠지. 정 낭자나 본궁이나 피차일반인 상황이니.”
황후가 대꾸했다.
정 낭자가 내 생각과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면, 애초에 그 여인을 궁으로 부르지도 않았을 터. 정 낭자 또한 내 생각을 몰랐더라면 궁에 들어오지도 않았겠지.
죽을병은 본궁 혼자서 걸린 게 아니니까. 서로 죽을병 걸린 사람들끼리 한마음으로 협심할 수 있다면, 그 후의 일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야.
“마마, 이번에는 제발 운이 따랐으면 좋겠어요.”
안비가 무릎에 손을 얹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지난번에는 분명히 모든 게 다 계획대로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평왕이 갑자기 벼락에 맞아 죽고, 폐하까지 쓰러지시는 바람에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어. 거기에 고능준과 태후가 반격해 오니 더는 손 쓸 틈도 없었지.
“마마, 그런데 정 낭자가 말한 신하가 어느 신하일지 모르겠네요. 때가 됐는데도 아무도 나서지 않아서, 또 계획을 망치면 어떡하죠?”
안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조용히 물었다.
되든 안 되든, 일단 해봐야지.
황후가 몸을 일으켰다.
“본궁은 늘 운이 좋았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지금 와서 수포로 돌아간다면 너무 아깝지 않느냐.”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본궁은 죽은 목숨이다. 그러니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이번을 마지막 기회로 삼아 봐야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바보가 제위에 오르고, 태후가 수렴청정하면서 고씨 가문이 황실을 장악하는 꼴은 못 본다.
방법은 두 가지야. 바보가 제위에 오르게 됐을 때 태후를 해치우고 본궁이 수렴청정하는 방법, 그리고 태후를 처리하지 않고 바보도 제위에 올리지 않는 방법.
하지만 이제 와서 태후를 해치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제위에 올리는 태자를 바꿀 수밖에.
황후가 깊은 심호흡을 하고 두 손으로 세게 주먹을 쥐었다.
————
작가의 말:
양(楊) 황태후 이야기
진혜제의 황태후인 양지(楊芷)의 부친 양준(楊駿)은 권력을 남용하여 당시 황후였던 가남풍의 미움을 사게 됩니다. 가남풍은 여남왕(汝南王)과 초왕(楚王)을 설득하여 피비린내 나는 정변을 일으키고 양준을 죽이는 데 성공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대신들을 종용하여 황태후 양지가 반역에 동참하였다는 상소문을 쓰게 했습니다. 진혜제는 황후 가남풍이 원하는 대로 황태후 양지를 폐서인하고 금용성(金墉城)에 유폐했죠. 한때 황태후였던 양지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양견(楊堅)이 수나라를 세웠던 이야기
주선제(周宣帝)가 죽자, 당시 8살이었던 우문천(宇文闡)이 제위에 올라 주정제(周靜帝)가 됩니다. 주선제의 외조부였던 양견은 재상의 신분으로 주정제의 섭정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나자 양견은 주정제를 폐하여 개공(介公)으로 삼고, 자신이 황제가 되어 국호를 수(隨)로 바꿨죠. 이로써 북주(北周)가 망하고 수나라 왕조가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