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609
교랑의경 609화
“황후가 경왕은 천일지표가 없다고 했다는군.”
“천일지표가 뭔데?”
“쉽게 말하면 못생겼다는 뜻이지.”
“뭐? 못생겼으면 황제도 못 하나?”
“거 아둔한 사람 같으니라고. 경왕이 왜 못생겼겠나? 바보니까 못생겼지! 황후께서는 바보가 황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거요.”
“바보가 어떻게 황제를 해? 황후께서 맞는 말씀을 하셨군!”
“그래도 경왕은 폐하의 유일한 혈통인데, 친자를 내치고 양자를 들여 황위 계승을 하고 싶겠소?”
세간은 황위 계승과 관련된 이야기로 왁자지껄했다.
“조당은 어떠한가?”
진 노태야가 물었다.
“조당도 어지러워졌습니다.”
노복의 대답에 진 노태야가 미간을 찌푸렸다.
“조당도 어지러워졌다고? 그건 좀 의외구나. 정말로 종친을 태자로 책봉하고자 하는 이가 있단 말이냐?”
진 노태야가 손에 든 잔을 빙글 돌리면서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장강주가 황후의 제안에 동의할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요. 그가 앞장섰으니, 고민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도 당연지사입니다.”
노복이 대답했다.
하긴, 무슨 일이든 맨 처음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야. 누구든 먼저 앞장서기만 한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이해득실을 따지며 좀 더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지. 진소가 제일 먼저 나서서 경왕을 태자로 책봉하겠다고 말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 아닌가.
진 노태야가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그 뒤에는?”
노복이 쓴웃음을 지었다.
“태후께서 황후께 삿대질하며 욕을 하는 바람에 조당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어사대 관리들이 나서서 상황을 중재하고 조회를 중단했지요.”
조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애들 장난이 아니고, 집안 다툼이 아니다. 그런데 태후가 툭하면 휘장을 걷고 밖으로 나와 욕을 한다고?
이렇게 감정 기복이 심하고, 자신의 기분조차 조절하지 못하는 태후가 자신의 앞가림도 하지 못하는 천자를 손아귀에 움켜쥐고 수렴청정을 한다면, 훗날 조정이 얼마나 혼란스러워질지는 안 봐도 뻔하구나.
“태후가 그런 식으로 나오게 되면, 본디 아무 생각 없이 경왕을 태자로 세우려던 대신들도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하겠지. 태후가 또 점수를 잃었군.”
진 노태야가 갑자기 진소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노야께서는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조당이 혼란스럽다 보니, 모두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노복이 대답했다.
혼란스럽기야 하겠지. 원래는 섭정과 수렴청정, 이렇게 두 분파로 나뉘면 될 것을, 양자 입적 이야기까지 나왔으니. 이렇게 되면······.
“이렇게 되면 모든 게 뒤엎어지겠구나. 꽤 소란스러워지겠어.”
진 노태야가 중얼거리다가 미간을 찌푸리고 읊조렸다.
“황후는 왜 갑자기 양자 입적 이야기를 꺼냈을까?”
비록 황제의 친자가 바보라고는 하나, 황제의 대를 이을 유일한 혈통이다. 그런데 황후는 어째서 양자 입적을 생각했을까? 황후가 무슨 배짱으로?
황후, 배짱, 장순.
정교랑, 정교랑!
진 노태야가 눈을 번쩍 뜨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설마 그럴 리가. 이건 무려 황태자 자리를 좌지우지하는 것이고, 장차 천자가 될 사람을 좌지우지하는 일인데!
그 여인이 감히? 어찌 감히!
“공자님!”
진호가 다급하게 걸음을 옮기자, 깜짝 놀란 시녀들이 그를 불렀다. 하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시녀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황후와 접촉했던 사람은 정 낭자밖에 없어. 그리고 정 낭자가 출궁하자마자, 황후가 조당에 가서 양자 입적 이야기를 꺼냈고.
정 낭자가 장순과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지만, 그래도 서로 아는 사이긴 해. 서로 시녀를 한 명씩 맞교환했으니까. 장순이 결정적인 순간에 정교랑을 위해 나서서 입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장순은 항상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나서서 말 한마디로 모든 상황을 반전시켰어.
황태자, 장차 천자가 될 사람을 좌지우지하다니!
정 낭자가 그럴 리 없어!
더욱 빠른 걸음으로 걷던 진호는 대문을 나서고 나서부터 뛰기 시작했다.
종친 중에 양자로 입적할 만한 사람이 또 누가 있겠어? 황후가 고른 사람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궁에서 자라 황자들과 비슷한 위치인 사람이 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냐고!
정 낭자가 진안 군왕과 혼인하게 된다면!
황태자! 천자!
태후와 영영 풀지 못할 원한은······.
– 잘못도 없고, 잘못한 적도 없는데, 왜 항상 그 여인이 피하고 물러서야 하지?
– 그 여인이 피하지도, 물러서지도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피하지 않겠다면, 상대에게 맞서고, 상대를 넘어서는 방법밖에 없어.
이번엔 정말로 그 여인이야. 정말 그 여인이!
아니야!
진호가 갑자기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아니야, 그 여인일 리가 없잖아. 나는 왜 또 그 여인을 의심하고 있는 거지? 왜 자꾸 그 여인에 대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야.
거리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진호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그는 어느새 강가에 다다라 있었다. 진호는 발길을 따라 근처에 있던 노점상의 차일막 아래로 향했다.
이렇게 깔끔하고 준수한 청년이, 이런 길가에 있는 허름하고 작은 노점에 자리할 일은 없을 텐데.
노점 찻집의 주인장이 놀람과 불안이 섞인 표정으로 얼른 진호가 앉을 의자와 탁자를 꼼꼼히 닦았다.
“관인, 어떻게 준비해 드릴까요?”
진호가 손을 휘휘 젓고는 돈주머니 한 개를 주인장에게 던졌다.
“필요 없소. 잠깐 쉬다 갈 테니 방해하지 마시오.”
생긴 건 온화해 보였는데, 잔뜩 찌푸린 미간을 보니 괴팍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원래 부잣집 도련님들 성격이 이상하긴 하지.
주인장은 생각을 떨치고 돈을 세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리를 비켰다.
진호가 탁자에 손을 올린 채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
침착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한 번 정리해 보자.
분명 황후가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게 순조로웠어. 진소가 경왕의 태자 책봉을 청했고, 양견 일화를 말하면서 고씨 가문을 사지로 몰았지. 고능준이 사직을 청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태후가 수렴청정할 기회도 빼앗아버렸고.
태자의 자리가 보장되고, 황제의 혈통으로 대가 이어지면, 조당도 자연스럽게 여러 분파로 나뉘어 서로를 견제하며 한 사람의 권력 독식을 막을 수 있었을 거야. 이는 갑자기 평왕이 변을 당하고, 황제의 병세가 위독해진 상황에서 가장 완벽하지 않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국면이지.
하지만 황후가 갑자기 양자 입적을 언급하면서 모든 게 어지러워졌어.
양자 입적, 양자 입적이라니! 황후가 어찌 그런 생각을!
분을 이기지 못한 진호가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 옆에서 다른 손님에게 차를 우려 주던 주인장은 화들짝 놀라면서도,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쳐다보지 말라는 손짓을 했다.
진호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누추하고 낡은 탁자를 잡고 있던 진호의 손등에는 시퍼런 핏줄이 솟아 있었다.
황제의 친자가 있는데도 굳이 양자 입적을 하려는 속셈이 뭘까? 황후가 왜 그런 생각을 했지? 황후가 두려워하는 게 뭐길래? 황후가 두려워하는 게, 태후밖에 더 돼?
후궁의 싸움 때문에 황제의 대를 어지럽히다니!
종친이라······.
진호가 냉소를 지었다.
황후가 말한 종친은, 궁에서 황자들과 함께 자란, 총명하고 유능한 진안 군왕이겠지?
경왕에 비하면, 칠척장신에 오뚝한 콧날과 날카로운 턱선을 가진 진안 군왕이야말로 천일지표를 가진 자가 아닌가.
진안 군왕, 무슨 일이 있어도 황궁이 있는 경성에 눌러앉으려 했던 이유가, 바로 오늘을 위해서였구나.
거리의 떠들썩한 소리가 진호의 귓가에 스치고, 진호의 시선이 머무르는 강 위에는 배들이 쉼 없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 얘기 들었소? 조정에서 종친을 데려다가 황위를 계승하겠다는군.”
“황후께서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셨다던데?”
“정말? 황후께서 먼저? 남들에게 손가락질받는 게 두렵지도 않나?”
“그러게 말이오. 우리 셋째 숙부님의 처제의 둘째 큰할아버지는 아이를 못 낳아서, 그 댁 부인이 가산을 다 탕진해 가며 첩실을 들였다니까. 곧 죽어도 양자 하나 들이자는 말을 못 해서 말이오.”
“양자 입적이라. 평생을 쏟아 일군 강산을 그리 남의 손에 넘기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나. 세상에 그런 거저먹기가 어디 있소? 양자를 들이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건데, 누가 그러고 싶나?”
사람들이 웅성웅성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던 진호가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돌렸다.
맞아. 세상에 그런 거저먹기가 어디 있다고.
폐하의 대를 이을 친자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자들이 어찌 감히, 창피한 줄도 모르고 어찌 감히 그런 짓을 저지른단 말인가!
폐하께서 병중이라 말씀을 하지 못하신다고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벌이는 건가? 폐하께서 멀쩡하셨더라면,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대신들을 질책하셨을 텐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대역무도한 짓을 저지르다니, 제대로 된 신하들은 다 죽어 없어졌구나!
진호가 또 한 번 세게 탁자를 내리쳤다. 주인장이 깜짝 놀라서 저도 모르게 진호를 쳐다보았다.
“차.”
진호가 짧게 말했다. 주인장이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점에서 가장 깨끗한 찻잔을 골라 차를 따른 뒤,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은은한 차향이 퍼지자, 진호의 시선이 다시 강가로 옮겨졌다.
황후는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양자 입적을 주장한 거지? 자신에게 무슨 후환이 닥쳐올지 생각하지도 않는 건가?
집에서는 오로지 효도만을 생각하고, 조당에서는 군주를 위한 충의만 생각해야 하거늘(在家思孝, 事君思忠. – ). 황후는 어찌 공공연히 태후의 뜻을 거역하고, 황제에게 친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충불효의 오명을 짊어져 가며 양자 입적을 제안했을까?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장순이 지지해 준다는 자신감에?
장순이라······.
진호가 찻잔을 매만졌다.
장순은 황위 계승과 관련된 일에 관여할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 당연히 황후와 어떤 연관이 있지는 않을 터. 그런데 장순이 왜?
“사실 황후가 이런 결정을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이유?
진호가 대화가 들려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점에 앉아 있던 네다섯 명의 사람들이 조용히 이 주제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의 옆에 깃발 한 개가 놓여 있었고, 깃발 위에는 철구직단(鐵口直斷)이라는 네 글자가 쓰여 있었다.
진호와 나머지 사람들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점쟁이를 쳐다보았다.
“무슨 이유? 무슨 이유가 됐든 가업을 남에게 줄 수는 없지.”
“댁들이 뭘 안다고 그러시오? 황실의 가업과 자네가 말한 둘째 큰할아버지네 경우가 같을 수가 있나? 자고로 황실은 천명을 따라야 하는 법이거늘.”
천명?
“황후가 그 제안을 하기 전에 누굴 만났는지는 알고 있소? 정 낭자를 만났다고! 신선의 제자, 정 낭자 말이오! 태백성에 대해서는 알고들 있으신가? 태백성이 하늘을 지나가며 태자가 위태로워질 거라는 예고를 했다지. 이는 곧 황실의 가업을 이어받을 사람이 바뀔 거라는 뜻이오. 정 낭자는 신선의 제자이니, 당연히 하늘이 점지한 천자가 누구일지도 알고 있는 게요.”
쨍그랑 소리가 점쟁이의 말을 끊었다.
사람들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청년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노점 안에 정적이 흐르고, 점쟁이는 자신의 깃발을 슬쩍 챙겨 들고 잽싸게 도망쳤다.
이런 시기에 조정을 논하고 황제의 적통을 운운하는 것은 반역죄로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떤 종친은 천상학 책을 봤다는 이유만으로도 반역을 도모한다는 죄를 뒤집어쓴 전례가 있기도 했다.
하물며 이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누가 하늘이 점지한 천자인지를 논의하고 있었으니, 더는 숨 쉬며 살기가 귀찮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점쟁이가 냅다 도망치자, 나머지 사람들도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한꺼번에 자리를 피해 달아났다. 불쌍한 노점 주인장은 그들을 쫓아가서 돈을 받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젊은이를 쳐다보았다.
“아이고, 관인, 소인은 저들과 무관한 사람입니다. 소인은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주인장이 떨리는 두 손으로 포권의 예를 표했다.
진호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구나. 그 사람들이 이용하려던 게 바로 이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