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647
교랑의경 647화
태후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했고, 눈빛도 어딘가 정신이 나간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여인이, 폐하께서 깨어나실 수도 있다고 했는데. 정말로 액막이를, 액막이를 한 거였어.”
태후가 중얼거렸다. 고능준이 옆에 서 있던 내시를 향해 눈짓하자, 내시가 서둘러 탕약을 바쳤다.
“마마, 걱정하지 마십시오. 폐하께서 깨어나실 리가 없······.”
내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태후가 격노하며 내시의 따귀를 후려쳤다. 내시가 털썩 무릎을 꿇으면서 손에 들려 있던 탕약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져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났다.
“마마,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내시가 소리가 날 정도로 바닥에 이마를 쿵쿵 찧으면서 울먹였다. 하지만 태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가락질하면서 소리쳤다.
“당장 끌고 나가서 쳐 죽이거라!”
뒤에 서 있던 내시들이 황급하게 그 내시를 일으켜 밖으로 끌고 나갔다.
“애가는 황상이 깨어나길 바란다. 애가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황상이 깨어나기를 바란다고! 황상이 깨어나지 않는 것이 애가에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데, 더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롭구나.”
전각 안에 태후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능준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폐하께서 깨어나시기만 한다면, 모든 일이 해결될 텐데요.”
고능준은 태후보다도 더욱 간절하게 황제가 깨어나길 바랐다.
안 그래도 사리 분별을 못 하던 노파인데, 이번에는 정말 놀라서 그런지 더욱 정신이 오락가락하는군. 저런 노파를 보좌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야.
“하지만!”
태후가 별안간 소리치고는 몸을 떨면서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태후가 고능준을 향해 가까이 오라고 눈짓했다.
“그 여인, 사람의 생사를 쥐락펴락하잖나. 황상을 깨어나게 할 수 있다면, 필시 애가도 죽게 만들 수 있겠지? 맞아, 맞아. 그 여인은 분명히 그럴 능력이 있을 게야. 벌써 애가의 목숨을 어떻게 끊을지 궁리하고 있을지도 몰라.”
고능준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는 지금 상황에서 말해 봤자 태후가 귓등으로 흘려들을 것 같은 바른말 대신, 천자는 하늘이 점지한 군주며 태후의 목숨은 염라대왕이 어찌할 수는 없다는 등의 위로의 말들을 전했다.
태후의 상태가 조금 나아지자, 그는 내시에게 새로 탕약을 가져오라고 한 뒤 태후가 잠드는 것을 지켜보고 태후궁을 나왔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됐길래 태후마마께서는 저렇게 정신이 없을 정도로 놀라셨을까?
고능준이 마차 위로 몸을 싣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번에는 확실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으로 그 여인에게 당하다니.
태후마마께서 의장 행렬까지 대동하면서 황궁을 떠나 군왕부로 갔으니, 반나절이 채 되기도 전에 온 경성에 그 소식이 퍼졌을 거야.
진안 군왕이 혼사를 올리고 액막이를 한 덕에 몸이 나아졌다고. 그 여인이 또 한 번 새로운 신화를 쓴 거지.
고능준이 답답한 마음에 주먹으로 마차를 세게 쳤다.
이번 일은 분명히 그 여인이 벌인 짓이야. 하지만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진안 군왕을 처리하는 자들에게 내가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고, 재차 확인했는데. 절대로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고, 만일의 경우도 전혀 없었는데.
도대체 그 여인은 뭘 한 거야?
그게 뭐인지 꼭 밝혀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날카로운 칼을 손에 쥐고 있다 해도 헛짓거리하는 꼴이나 다름없으니.
“이상한 게 하나 있긴 한데.”
고 관인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러자 방 안의 사람들이 고 관인을 쳐다보았다.
“초야 말이오.”
고 관인이 말했다.
“초야에도 저희 사람들이 그 여인을 예의주시했습니다. 진안 군왕을 치료하지는 않았어요. 약도 달이지 않았고요.”
막료가 대답했다. 고 관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허, 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다들 너무 식견이 너무 좁은 거 아니오? 사람을 치료하는 데 꼭 약을 달이고, 침을 놔야 하는 줄로만 아나?”
그럼 또 뭐가 있지?
고 관인이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채음보양(采陰補陽: 음기를 취하여 양기를 북돋는다는 도가의 방중술 중 하나).”
“황당하구나!”
귀를 쫑긋 세우고 진지한 표정으로 고 관인의 말을 듣고 있던 고능준이 찻잔을 탁자 위로 내던지며 욕을 뱉었다.
“아버지, 황당하긴 하지만, 지금껏 황당한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믿기 어려우신 마음은 알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도 그대로고, 약도 그대로입니다. 다른 점이 딱 하나 있다면, 바로 신혼 초야에 동방화촉을 밝힌 것인데······.”
고 관인이 말하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게다가 듣기로는 아주 격렬한 초야였다고 합니다. 진안 군왕이 어찌나 몸을 혹사했는지 이튿날 혼수상태로 들것에 실려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채음보양을 했다는 뜻인데.”
막료 한 명이 고 관인의 말을 믿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 채음보양이 아닐 수도 있소. 먼저 양을 취한 다음, 음으로 다시 양을 보충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도가의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소? 도가에서는 그런 방중술이 흔하잖소.”
다른 막료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고능준은 차마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는지, 탁자를 손으로 세게 내리쳤다.
“황당하기가 이를 데가 없군. 제대로 조사나 하게! 아무런 근거 없이 그런 황당무계한 말만 지껄이지 말고!”
황당하든 말든, 효과만 있으면 됐지.
진안 군왕부 안,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정교랑의 거처 앞에 서 있던 고 선생이 속으로 생각했다.
지난번에 여기 앞에 서 있을 때가 불과 반나절 전의 일인데, 내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졌군.
이른 아침에 진안 군왕을 모시러 정교랑의 거처에 왔을 때, 고 선생은 안 그래도 반쪽짜리였던 진안 군왕의 목숨이 또 반 토막이 난 것을 보고는 부아가 치밀어 정교랑의 거처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분명히 죽었다고 믿었던 진안 군왕이 다시 반쪽짜리 목숨을 가지고 되살아나자, 고 선생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똑같은 반쪽짜리 목숨이어도, 고 선생은 지금이 더욱 기뻤다.
“선생, 이 태의가 조금 전에 이미 여쭤봤다고 합니다. 왕비께서 이 태의더러 원래 하던 대로 전하를 치료하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러니 우리는 방해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왕비의 노여움을 사서는 안 되지요.”
경 공공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고 선생이 미간을 찌푸리고 경 공공을 흘겨보았다.
“지금 나는 왕비께 전하를 치료해 달라고 온 게 아닐세. 이 태의가 어떻게 침을 놓고, 약을 달이든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나는 단지 전하를 거처로 모셔 온 것뿐일세. 이미 혼례를 올린 부부인데, 거처를 따로 하는 법이 어디 있나? 이제부터는 여기가 전하의 거처이니, 전하를 이리로 모시고 온 것일세.”
경 공공이 의아한 얼굴로 고 선생을 쳐다보았다.
“선생, 무슨 꿍꿍이십니까?”
경 공공이 저도 모르게 물었다.
고 선생이 찾아온 이유를 들은 정교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근은 서둘러 여종과 몸종들을 데리고 침상을 정리한 후, 진안 군왕을 침상으로 옮기는 것을 도왔다.
이번에는 정교랑이 고 선생에게 나가라고 말하기 전에, 경 공공이 공손하게 예를 표하고 사람들을 데리고 물러났다.
휘장 옆에 서서 잠자코 있던 고 선생이 경 공공을 따라 나가다가, 회랑 아래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휘장 너머에 있는 정교랑을 향해 예를 표했다.
“왕비 전하, 아무쪼록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정교랑이 네, 하고 대꾸했다.
고 선생은 정교랑의 대답을 듣고도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도, 입술만 달싹이고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주저했다.
고 선생이 드디어 결심한 듯이 이를 악물고 정교랑을 향해 또 한 번 허리 숙여 예를 표했다.
“다만, 전하께서 아직 몸이 허약하십니다. 부디 전하를 가엾이 여기시어, 살살 다뤄 주십시오.”
그때, 종일 여종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느라 말을 많이 했던 소심이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고 곁채에서 회랑을 통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소심은 고 선생의 말을 듣자마자 입에 머금고 있던 차를 풉 하고 뿜어냈다.
지, 지, 지금 무슨 뜻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거래?
우리 아씨를 대체 어떻게 보고! 정말 황당하네!
“부인의 음식은 어느 쪽으로 차려 놓을까요?”
“아씨, 입에 맞는지 한 번 드셔 보시겠어요?”
“아직도 아씨라고 하면 어떡해.”
“아차차, 깜빡했어.”
여인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진안 군왕의 귓가에 들려왔다.
내 방에서는 한 번도 저런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린 적이 없었는데.
나는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것도 싫고, 누가 가까이서 시중을 들겠다고 내 옆에 붙어있는 것도 싫었어. 혼자 있는 게 제일 편했지.
그런데 지금 저 소리를 듣고 있어도, 전혀 싫지가 않고 도리어 편안하다는 느낌이 드는군. 따스한 봄날에 창문을 열자 불어온 봄바람이 뺨을 어루만지는 것 같아.
진안 군왕이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눈을 뜨려고 했다.
“전하!”
귓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전하, 일어나셨습니까?”
진안 군왕이 눈을 뜨자, 경 공공이 그의 얼굴 앞에 바짝 다가오더니 흥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또 잠든 건가. 이번에는 또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거지?
“부인, 부인, 전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전하께서 깨어나셨어요!”
경 공공이 고개를 돌리고 목청을 높였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진안 군왕의 곁으로 다가왔다. 진안 군왕은 흐릿하기만 했던 시야가 갑자기 밝아지는 듯했다.
“깨어났네요. 물 마실래요?”
정교랑이 진안 군왕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진안 군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께 물을 드리게.”
정교랑이 말하고는 자리를 비켰다.
경 공공이 서둘러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두 시녀를 불러와 조심스럽게 진안 군왕을 침상에 앉혔다. 시녀 두 명이 한 모금씩 천천히 진안 군왕에게 물을 떠먹였다.
진안 군왕은 정교랑이 몸을 돌리고 대청으로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태의에게 전하께서 깨어나셨다고 알리게. 이제 약을 드실 수 있다고.”
정교랑이 말했다. 문가에서 대기하던 어린 내시가 알겠다고 말한 뒤, 급하게 이 태의를 찾으러 뛰어갔다.
정교랑이 대청에서 진안 군왕이 보이는 방향으로 앉자, 두 시녀가 정교랑에게 그릇과 젓가락을 쥐여주었다. 이어 두 시녀와 무슨 말을 나눈 건지, 정교랑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진안 군왕은 그 모든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별안간 누군가가 진안 군왕의 시야에 불쑥 들어와 정교랑의 모습을 가렸다.
“전하, 물 드셔야지요.”
경 공공이 진안 군왕의 코앞에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멍한 표정인 데다가, 어딘가 넋이 나가신 것처럼 보이는군.
연이어 두 번이나 맹독에 중독되었으니, 전하께서도 몸이 많이 상하셨겠지? 가만 보니 눈빛도 흐리멍덩해지신 것 같고.
진안 군왕이 눈을 감고 다시 침상 위로 누웠다.
“됐다.”
이제 겨우 두세 모금밖에 안 드셨는데!
진안 군왕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경 공공은 못내 아쉬워하는 얼굴로 더는 물을 권하지 않았다. 진안 군왕은 언제나 마음을 한 번 정하면, 절대로 그 결정을 번복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누가 그의 결정에 대해서 재차 확인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문밖에서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하게 방 안으로 들어온 이 태의가 식사를 하고 있던 정교랑을 향해 예를 표한 뒤, 진안 군왕의 맥을 짚으러 침상으로 다가왔다.
“정말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정말 많이요.”
진안 군왕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피던 이 태의가 흥분한 기색으로 말했다.
이 태의가 진안 군왕에게 약을 먹이고 침을 놓는 사이, 식사를 마친 정교랑이 그에게 다가왔다. 정교랑이 진안 군왕의 얼굴을 자세히 보기도 전에 이 태의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정교랑을 한쪽 옆으로 모시고 갔다.
“부인, 분명히 같은 독이었는데, 왜 이번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겁니까?”
“같은 독이지만, 중독된 사람이 예전과 달라졌으니까요.”
정교랑이 대답했다.
군왕 전하께서 달라지셨다는 뜻인가?
이 태의가 의아한 눈빛으로 침상 위에 누워있는 진안 군왕을 돌아보았다.
어디가 달라지셨다는 거지?
“부인, 그럼 전하를 어떻게 달라지게 하신 겁니까?”
이 태의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대화를 듣던 경 공공이 민망한 듯 큰 소리로 헛기침을 했다.
왜 저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