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02
교랑의경 702화
매복 때도 폭발이 있는 무기를 썼다고 했어. 그 여인은 이미 모든 것을 예상하고 준비해 놓았던 것이 분명해.
고능준의 눈가에 불안이 스쳤다.
그렇게 일찍이 모든 것을 준비했다는 거야? 전전사 시위들을 동원하고, 조정 대신들까지 움직일 정도로?
조정 대신들은 죄다 여우같이 교활한 놈들뿐이라 황실에 무슨 일이 났다고 하면 다들 숨기 바쁠 텐데, 어쩌다가 다들 이렇게 궁문 앞까지 몰려온 거지?
고능준이 고개를 홱 돌리고 안쪽을 바라보았다.
“궁문이 닫혔으니, 그놈들이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할 게다. 천 명 가까이 되는 황성사의 금위군 병력이 문을 지키고 있으니, 금군 병사들이라 해도 궁 안으로 쳐들어오지는 못할 것이야. 금군 병사를 움직이는 게 그리 쉬운 일도 아닐 테고.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신경 쓸 것 없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고능준이 이를 부득 갈고 손으로 정교랑을 가리켰다.
“태자를 음해한 저 여인을 잡아라!”
줄곧 침묵을 지키던 진소가 천천히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황후와 대신들은 분명히 진 대인과 내가 태자 전하를 음해했다고 말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태자 전하를 음해했다는 것보다는, 명이 내리기도 전에 급작스레 경성으로 돌아온 진안 군왕비가 태자 전하를 음해했다는 말이 더 신빙성 있겠지요.”
고능준이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저 여인이 불순한 저의를 품었다는 의심을 받기엔 충분해. 그러니 저 여인이 아직 궁에 있는 틈을 타 당장 저 여인을 죽여버려야지. 그리고 모든 죄를 저 여인에게 전부 뒤집어씌워야 해.
“뭣들 하느냐, 죽여라.”
고능준이 전각 안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문가에 서 있던 금위군 병사들이 일제히 대답하며 안쪽으로 들이닥쳤다.
금위군 병사들이 안으로 들어간 후 얼마 되지 않아, 내시와 궁녀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러더니 곧 안쪽에서 병사들이 바깥으로 내던져졌다.
깜짝 놀란 고능준이 시위들의 호위를 받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유유히 걸어 나오는 정교랑의 모습이 보였다.
“고 대인, 당신의 아들 고십사가 죽었어요.”
정교랑이 말했다.
갑옷을 입은 금위군 병사들이 고능준을 엄호하며 정교랑을 향해 도끼를 쥐어 들었다. 병사들은 정교랑의 기세에 압도된 건지, 고능준의 대답을 기다리는 건지,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저 여인의 짓이었어.
고능준의 얼굴은 잿빛이 되었다.
“그건 정 낭자가 굳이 알려 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걸 알려 주려는 게 아니에요. 고십사를 죽인 건 나고, 나 혼자서 죽인 거라는 걸 알려 주려는 거죠.”
정교랑은 손가락 하나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나 혼자서, 고십사와 나머지 열일곱 명을 죽였어요. 한 놈당 하나씩, 총 열여덟 개의 무기로요. 고십사는 내 표창에 맞아 죽었죠. 표창이 목을 관통했거든요.”
정교랑이 말하자, 고능준은 눈앞에 아들이 죽는 모습이 생생하게 보이는 듯했다. 고능준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정 낭자, 이러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러면 안 됐어요.”
고능준이 말했다.
“네, 고 대인. 우리는 이러면 안 됐죠. 당신이 이러면 안 됐어요.”
정교랑이 말했다.
두 사람은 같은 말을 하는 듯했지만, 두 사람이 내포한 의미는 확연하게 달랐다.
“죽여라.”
고능준이 손짓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금위군 병사들이 정교랑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하지만 정교랑은 병사들을 피하기는커녕, 고능준을 향해 돌진했다.
“고 대인, 나 혼자서 고십사를 포함한 열여덟 명을 죽였다고 분명히 말했어요. 날 죽이는 게, 생각만큼 그리 쉽지는 않을 겁니다.”
정교랑이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정교랑은 맨손으로 금위 병사들의 도끼를 막아냈다. 그러고는 칠 척 장신의 사내 둘이서 힘을 실어 내리찍는 도끼를 한 손에 하나씩 붙잡고 고능준을 향해 돌진했다.
고능준의 안색이 급변했다.
저 여인은 지금 허풍을 떠는 게 아니야. 저 여인의 흉악무도함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증거가 있어.
고능준이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치자, 금위군 병사들도 그를 따라 뒤로 밀려났다. 문가 앞에 작은 빈틈이 생기자, 정교랑은 몸을 홱 돌리며 포위망을 뚫고 밖으로 도망쳤다.
도망쳐?
저 뻔뻔스러운 년이!
고능준이 격노했다.
“화살과 쇠뇌를 써서 죽여라.”
태후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삼 대대 금위군 병사들이 활과 쇠뇌를 겨누었다. 다만 깊은 밤인지라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정교랑을 정확히 조준하지 못한 채로 화살을 쏠 수밖에 없었다.
정교랑은 나는 듯이 몸을 날려 눈 깜짝할 사이에 구중궁궐 사이로 자취를 감췄다.
“궁 안에 있는 한, 독 안에 든 쥐다. 쫓아라!”
“비빈들과 공주들의 처소도 샅샅이 뒤지거라!”
죽여야 해. 죽여야 한다고. 저년을 죽여야만, 모든 걸 되돌릴 수 있어.
일찍이 죽였어야 했는데!
고능준이 몸을 떨며 주먹을 세게 쥐었다. 늘 평온하던 고능준의 표정은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일찍이 저년을 죽였어야 오늘 같은 화를 보지 않는 건데!
밤하늘에 불꽃이 터질 때, 진호는 성문 위에 서서 여전히 자리를 뜨지 않은 진안 군왕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하, 청원 역참으로 가서 쉬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내일 마마께 청을 올리고 정정당당하게 경성으로 들어오시지요.”
진호가 말했다. 진안 군왕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진호.”
주복이 말을 탄 채 제자리에서 한 바퀴 말을 돌렸다. 그러고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물었다.
“궁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진호가 고개를 숙이고 주복을 쳐다보면서 웃었다.
“언제든 성문을 열 수 있도록 네가 밤마다 성을 지키게 할 만한 일이지.”
주복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왜 그 여인을 홀로 경성으로 들여보낸 건데!”
“정 낭자는 무사할 테니까.”
진호는 담담한 표정으로 진안 군왕에게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다른 이도 같이 궁에 들어갔다가는, 무사하지 못할 수가 있거든.”
이를 악물고 또 무슨 말을 하려 고개를 들던 주복의 표정이 굳어졌다.
“관인, 보십시오!”
성문 위에 있던 위병이 밤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진호가 고개를 돌리고 위병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화려한 불꽃이 밤하늘 위에 수놓아지고 있었다.
“전하!”
고 선생도 깜짝 놀라서 하늘을 가리켰다. 진안 군왕이 두모를 살짝 올리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참 예쁜 불꽃이네.”
횃불에 비친 진안 군왕의 창백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육가아, 잘 봐라. 저건 특별히 너를 위해서 준비한 불꽃놀이다.”
불꽃놀이를 보고 미소를 짓는 사람은 또 있었다. 진호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내가 말했지? 걱정할 필요 없다고. 정 낭자는 무사해. 꼭 너만 정 낭자를 안 믿더라.”
진호가 성문 아래의 주복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불꽃이 하늘을 밝혔으니, 궁 안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사실이 곧 온 경성에 퍼지겠군. 일찍이 이상한 낌새를 감지했던 조정 대신들에게 드디어 입궁할 구실이 생겼겠어.
그러니, 더는 궁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간사한 자들이 무슨 짓을 꾸몄는지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고, 정 낭자는 무사하겠지.
그러게 왜 정 낭자를 안 믿느냔 말이야.
부아가 치밀어 오른 주복이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진호, 당장 문 열어! 교랑이 네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잊지 않았다면, 당장 이 문 열라고!”
주복이 활을 들고 진호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성문 위에 서 있던 위병들이 재빨리 진호를 보호하며 주복을 향해 활시위를 겨눴다.
“주복.”
진호가 웃음기를 거뒀다.
“나는 절대로 성문을 열 수 없어. 이건 정 낭자의 목숨을 위한 일이거든. 저들을 경성 안으로 들이는 순간, 정 낭자는 역모의 대죄를 일으킨 죄인이 되겠지.”
진호가 뒤에서 활을 꺼내더니 주복을 향해 화살을 조준했다.
“주복, 남들이 하는 거짓말에 현혹되지 마.”
“진호! 다리가 나으니까, 이제는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주복이 이를 부득 갈면서 활시위를 놓았다. 화살 하나가 매서운 기세로 성문을 향해 날아갔다.
“공자님!”
진호 옆에 있던 수하가 재빨리 진호를 밀어냈다. 성벽을 넘은 화살이 바닥에 쓸리면서 작은 불씨를 만들었다.
주복이 화살을 쏘자, 성문 위에 있던 위병들도 일제히 활시위를 놓았다.
“물러나시오!”
위병들이 소리쳤다.
일순간 바닥에 먼지가 일면서 진안 군왕 일행의 앞으로 화살들이 가지런히 박혔다. 바닥에 꽂힌 채 흔들리는 화살들은 흡사 밤에 피는 꽃처럼 보였다.
주복과 진안 군왕 등이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주복, 네가 이러는 게 다 정 낭자를 위한 마음이라는 거, 나도 알아. 난 아니까 굳이 따지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모른단 말이지.”
진호는 주복에게 말하는 듯했지만, 그의 시선은 진안 군왕에게 향해 있었다.
“괜히 오해할라. 진안 군왕 전하께서 반역을 일으켜 경성을 치려는 속셈인 줄 알면 어떡하려고.”
주복이 뭐라 대꾸하려던 찰나, 줄곧 조용했던 진안 군왕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오해라고 생각하게 둬서는 안 되지.”
진안 군왕이 허리춤의 향낭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가 경 공공을 향해 다른 손을 뻗자, 경 공공이 진안 군왕의 동작과 거의 동시에 심지에 불을 붙였다.
치직 소리가 들려오고, 진안 군왕의 손에서 폭죽 하나가 하늘로 쏘아지며 아름다운 꽃구름을 만들어냈다.
“육가아.”
진안 군왕이 하늘에 핀 꽃을 바라보면서 미소 지었다.
“이건, 이 형이 특별히 너를 위해 준비한 거야. 이걸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은 몰랐네.”
차라리, 평생 쓰지 않기를 바랐는데.
진안 군왕이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자, 커다란 두모가 그의 얼굴을 가렸다.
“시작하게.”
갑작스럽게 쏘아 올린 폭죽의 불꽃이 성문의 하늘 위로 펼쳐졌다. 성문 안팎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금 전 황궁 방향에서 보이던 오색찬란하고 화려한 불꽃놀이에 비하면, 지금의 불꽃놀이는 초라해 보일 정도로 소박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불꽃놀이가 더 예쁜지 비교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진호의 표정이 급변했다.
“화살을 쏴라!”
진호가 소리쳤다.
성문의 위병들이 망설였다. 그중 한 명이 진호에게 다가와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진 관인, 저분은 진안 군왕이십니다.”
“반역을 도모하는 놈이다. 네놈 눈에는 진안 군왕이 성문을 부수고 쳐들어오려는 게 보이지 않느냐!”
성문을 부숴? 어떻게 부순다는 거지?
위병의 뇌리에 이 생각이 스치던 찰나였다. 성안에서 질주하는 말굽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성벽 위에서도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사람이 이쪽을 향해 모여드는 소리였다.
“늑대 새끼는 거둬 키우는 게 아니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군. 저 늑대 새끼가 일찍이 황성 방위군에도 사람을 심어뒀었다니!”
진호가 냉소를 보였다. 그가 두려운 기색도 없이 호통쳤다.
“어서 전전사 송 대인께 알리거라. 경성의 수비가 얼마나 삼엄한지 저 역당들에게 똑똑히 알려줘야겠다. 네놈들이 성문을 부순다 한들, 성안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할 것이다!”
시종들이 알겠다고 대답한 뒤 재빨리 성문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성문의 위병들도 더는 주저하지 않고 아래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하지만 그들이 잠시 주저하는 사이에, 성문 앞까지 바짝 다가온 진안 군왕 일행은 쏟아지는 화살들을 모두 피했다.
진안 군왕 일행은 성문에 바짝 붙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전하께서······.”
주복이 먼저 정적을 깨트렸다. 고 선생과 경 공공이 그를 쳐다보았다.
“전하께서 이 성문을 부술 수 있으시다면, 제가 황궁까지 가는 길을 호송해 드리겠습니다.”
주복이 말했다.
호송해 주겠다고?
고 선생 등이 놀란 눈으로 주복을 쳐다보았다.
성문 앞으로 몸을 바짝 붙이던 순간, 진안 군왕 일행은 재빨리 손에 든 횃불을 껐다. 시야가 어둑해지긴 했지만, 경 공공과 고 선생은 주복 뒤에 서 있던 병사들의 경악한 표정을 똑똑히 보였다.
저 병사들은 아무것도 모르나 보군. 아마 알고 싶지도 않을 거야. 재수 옴 붙었다며 속으로 얼마나 욕하고 있을지 안 봐도 뻔해. 저놈들은 성문이 부서지자마자, 전하를 호송하기는커녕 가장 먼저 도망칠 놈들이야. 아니면,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이 상황을 역적을 체포했다는 공으로 바꾸려 들지도 몰라.
고 선생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주복은 갑옷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고, 사람들은 주복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피슝 소리가 들리고, 하늘에서 또 한 번의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또 불꽃놀이가 보입니다!”
성문 위에 있던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소리쳤다.
“오늘 도대체 무슨 날이야?”
정월 대보름도 아니고, 중추절 꽃등 놀이도 아닌데, 왜 이리 불꽃놀이가 끊이질 않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