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210
“우리도 이제 교단과의 교역을 텄으니, 진은을 수입해 오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죠.”
중진 의원의 질문에 여성 의원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반론은 금방 나왔다.
“아무리 교단과의 무드가 좋다지만, 그래도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닐 겁니다. 진은은 교단에 있어서도 중요한 전략 물자고, 쉽게 거래해올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드니까요.”
“그렇다면?”
여성 의원도 딱히 뾰쪽한 수가 있어서 발언한 건 아니었다. 그저 공격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서 진은 이야기를 꺼낸 거였고, 그 전술은 유효해 그녀가 되물을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반론한 의원도 젊은 축인 2선 의원으로, 힘들게 잡은 발언권을 잘 살리고자 미리 생각해 놨던 답을 털어놓았다.
“교단과 험악한 관계가 되었을 때 급히 진행했던 계획이 있잖습니까? 그걸 다시 가동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안 돼. 그 계획은 실패했어.”
고집스러운 표정의 중진 의원이 반말로 고개를 저었다. 처음 이진혁을 불러오자고 말했던 그 의원이었다. 자신이 처음 내민 의견이 반대당한 것이 불쾌한지, 미간에는 주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그럼에도 2선 의원은 불쾌한 기색도 없이 즉각 대답했다.
“이번에는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자신만만해하지?”
중진 의원은 2선 의원의 태도에 순수한 호기심을 보였다. 중진 의원은 성질이 더럽기로 유명하기도 했는데, 그런 자신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곧장 대답을 해오는 젊은이를 좋게 보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대답이 별 거 아니라면 이 호감까지도 전부 악감정으로 뒤바꾸어 젊은이에게 뒷감당을 시킬 생각이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교단과 적대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원님. 그 계획을 계속 실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연금 물자가 교단에 의해 틀어 막혀 있었지만, 이제는 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실패할 일이 없습니다.”
“이론적이라. 그렇군.”
중진 의원은 겉보기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난 것으로 보이나, 그러한 그의 태도가 2선 의원을 인정했음을 나타낸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드물었다.
논의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엄숙한 표정의 의원이 입을 열었다.
“둘 다 하면 되겠지.”
“둘 다요?”
“이진혁 님을 인류연맹으로 초대하는 계획과 그······, 슈퍼 솔저 양성계획을 말이오.”
이번에는 아무 반론도 나오지 않았다.
회의 결과는 그렇게 정해졌다. 물론 디테일한 계획의 조정에 필요한 의견 교환과 예산의 배치 등이 조율되었으나, 큰 마찰 없이 결론에 이르렀다.
***
크리스티나 쪽에서 먼저 연락을 한 건 오랜만의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기분 탓인가? 뭐, 딱히 집중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므로, 나는 [레벨 업 마스터]를 들어 화면을 켰다.
=국가영웅님! 국가영웅님!
꽤나 호들갑스럽게 부르는 모습에, 나는 이상하게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 크리스티나.”
그래도 대답은 해야지.
=만마전에서 세우신 공적에 대한 보상이 나왔어요!
음? 예감이 빗나갔나? 나는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그건 이미 할부로 받아 챙기고 있었지 않았나?”
=그건 일부였을 뿐이고요. 이제 제대로 된 보상이 나올 때도 되었죠.
“그게 그렇게 되나? 그래, 그럼 그게 뭔데?”
난 큰 기대 없이 물어보았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여러 의미로 내 예상을 엇나간 거였다.
=이제부터 국가영웅님이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영웅왕 폐하!!
“······뭐?”
나는 순간적으로 크리스티나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얘가 방금 뭐라고 했지?
=인류연맹은 모든 정파가 일치단결해서 이진혁 폐하를 영웅왕으로 옹립하기로 천명했습니다!! 영웅왕께서는 이제 모든 연맹의 위에 군림하는 왕이 되신 거예요!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크리스티나는 꽤나 과장된 목소리로 절을 하며 내게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뭐라? 너희 공화정 아니었어? 공화정에서 무슨 왕이야?”
=입헌군주정과 공화정은 양립 가능해요, 폐하!
아, 그런 건가. 나는 내 예감이 들어맞았음을 느꼈다. 내 짜게 식은 표정을 본 건지 못 본 척 하는 건지, 크리스티나는 밝은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 자, 얼른 인류연맹으로 오시죠! 폐하의 대관식이 기다리고 있어요!!
훗, 하고 난 짧게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했다.
“거절한다!”
=왜요? 왕이에요, 왕! 킹왕짱할 때 그 왕이라구요?
예를 들어도 꼭. 그러나 이 정도로 흔들릴 내가 아니다.
“입헌군주제면 별거 없는 직함뿐인 존재잖아. 그거 하나로 전공을 퉁치려고 들지 말라고. 제대로 된 보상을 내놔.”
내 날카로운 지적에도 크리스티나는 별로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후훗, 하고 짧게 웃더니 이렇게 이어 말했다.
=저를, 그리고 인류연맹 의회를 너무 얕보셨군요, 폐하! 물론 보상도 있어요, 따로!!
“그래?”
=네! 일단 폐하께서 소유 중이시던 저택을 궁전으로 대우하게 됐고요.
저택? 나는 기억 너머에서 대기 중이던 저택에 대한 정보를 가까스로 되살렸다.
누에보 베르사유라는 별명이 붙었다던, 베르사유 궁전과 매우 닮은 초호화 저택. 당시에 크리스티나에게 이거 궁전 아니냐며 물었을 때, 그녀는 필사적으로 궁전이 아니라며 부정했던 적이 있다. 그것도 세 번이나.
“궁전 아니래매.”
=이젠 궁전이에요!
실로 뻔뻔하게도, 크리스티나는 이번엔 궁전이라고 쉽게 인정해 버렸다.
=왜냐면 이제 폐하께선 왕이시기 때문이죠.
“그렇구나.”
그렇다는데 뭐 내가 어쩌겠는가.
=그리고 폐하의 궁전 주변 땅 5천 평을 폐하의 직할령으로 선포하여, 폐하께서는 독자적인 조세권과 병권, 법령선포 권한을 가지실 수 있어요.
크리스티나의 그 말에 나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럼 나는 내 땅에선 헌법 위에서 놀겠네? 그게 무슨 입헌군주야?”
=아, 물론 직할령 바깥에선 인류연맹의 법이 우선이지만요.
······농담 아니었어? 내 표정이 굳어가는 걸 본 건지 모르는 척 하는 건지, 크리스티나는 태연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속지주의에 따라 직할령에서 어떤 범법행위를 하셔도 인류연맹은 처벌할 수 없어요.
말하자면 직할령에선 절대군주, 직할령 밖에선 입헌군주인 셈이 된다.
“그럼 누가 내 땅에서 살겠어?”
=뭐, 사실 지금도 아무도 안 살지만요. 그 5천 평은 사실 이미 폐하께 불하됐던 땅이라서 이전에도 개인 사유지였어요.
그러고 보니 그랬다.
“아, 대신 내가 누굴 데려와서 세금을 걷든 뭘 하든 신경 안 쓰겠다는 거로군.”
=바로 그거죠! 아, 이것도 당연한 거지만 폐하의 직할령은 면세구역으로 지정되어서 어떤 수익을 내시든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답니다!
“오!”
순간적으로 놀라 감탄사를 터트리긴 했지만, 잘 생각해 보니 별로 매력적이진 않았다. 내가 장사에 뜻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뭐, 정말 은퇴하고 눌러앉게 되면 식당이나 하려나. 일단 요리를 올렸고, 요리 재료를 무상으로 얻고 있으니.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역시 식당 같은 건 나한테 안 어울린다. 성질이 좋은 것도 아니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음식 장사를 할 이유가 없잖아?
=그리고요!
내 표정 변화를 눈여겨 본 건지, 크리스티나가 빠르게 이어 말했다.
=직할령으로 바로 이어지는 차원문 3기가 개통 결정됐어요! 일전에 이미 약속드렸던 1기에 더해서 2기를 추가로 원하시는 좌표에 이어드릴 수 있어요! 그중에서 1기는 좌표만 말씀드리면 지금 당장 연결해 드릴 수 있고요!
이건 좋다. 우주선으로 다니다 보면 무슨무슨 효과 때문에 시간 흐름이 달라진다던데, 차원문을 통해 다니면 그런 일이 없을 테니까.
“그거 비싸다더니?”
=그만큼 인류연맹이 성의를 보인 거죠! 그러니 오시죠! 폐하!! 지금 당장 계신 곳으로 차원문을 열어드릴게요!!
수상하다.
나는 직감적으로 위화감을 느꼈다.
나를 왕으로 추대해? 그것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고? 아무리 입헌군주정의 왕이 명예직에 가깝다곤 해도, 사람은 자기 위에 누가 앉는 걸 본능적으로 꺼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영토까지 잘라줘?
잘 생각해 보니 웃어넘길 게 아니라 꽤 파격적인 대우다. 국가 내부에서 법으로 토지 거래를 인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영토를 떼어주는 거나 마찬가지인 수준이다.
예를 들어 과거 지구에서 한국이 독도를 다른 누구한테 주겠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대통령은 탄핵당하고 의회는 해산당하고 군대는 쿠데타를 꿈꿀지도 모르지. 인류연맹이 바로 그런 짓을 한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짓을 해치웠다? 퍼줘도 너무 퍼주는 거 아닌가?
교단과의 종전선언도 이뤄졌고 인류연맹을 위협했던 세력인 만마전도 소멸했다. 슬슬 토사구팽을 생각할 때도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연맹은 날 삶아먹는 대신 인류연맹의 영토 일부를 삶아서 내 앞에다 떡하니 갖다 줬다.
냄새가 난다. 너무너무 수상한 냄새가 풀풀 풍긴다.
어쨌든 인류연맹은 날 필요로 한다. 적어도 토사구팽은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중대한, 국가의 위기라 할 만한 어떤 사태가 터진 거겠지. 완전 넘겨짚기지만 말이다.
“말해.”
그래서 나는 일단 대답을 종용하고 보자는 식으로 질렀다. 그럼 뭐가 나오더라도 나오겠지. 아무 근거 없이 느낌만으로 밀어붙이는 거라 크리스티나가 모르는 척하면 나로서도 답이 없지만, 내가 뻥카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뭐.
=······죄송해요, 폐하! 저도 위에서 명령을 받아서 이러는 거예요!!
다행히 크리스티나는 곧바로 GG를 쳤다.
“알아.”
크리스티나와 팀이 된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나갔다. 비록 그녀는 인류연맹 소속이나, 내 파트너이기도 하다. 결국 그녀는 다소 과장스러운 태도를 취함으로써, 내 입에서 그녀를 압박하는 말이 나오도록 만들었다.
“그래, 무슨 일인지 듣도록 하지.”
짧은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았기에, 나는 크리스탈 책상 위에 레벨 업 마스터를 올리고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었다.
=······인류연맹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 크리스티나의 말을 들은 나는 곧장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꼈다.
인류연맹이 위기에 빠졌다? 그건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위기는 나한테 기회니까.
레벨 업 할 기회 말이다.
“무슨 위기 말이야?”
나는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한 기대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올라가려는 입 꼬리를 최대한 꽉 누르고 질문을 던졌다.
=그게······. 만신전과 천계에서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요.
“만신전? 신들? 걔네 잡으면 경험치 많이 주나? 아, 카르마 깎이나?”
=그러실 줄 알았어요.
그러나 나 또한 파트너인 크리스티나의 눈을 속일 순 없었나 보다. 내 내심이 이렇게 쉽게 들킨 걸 보니 말이다.
=선신을 죽이시면 카르마 손해 좀 보실 거고요. 악신은 이득이죠. 전면전에선 악신이 더 강하니까, 만약 만신전의 신들이 침략해 온다면 주로 악신들을 보내겠죠.
“침략군은 별로 사양할 거 없이 쳐부수시면 된단 소리군. 알기 쉬워서 좋네.”
=천계의 신선들도 비슷해요. 사람 잡아먹고 신선이 된 요선들은 좋은 카르마 벌이 수단이 되겠죠.
“그렇구나! 빨리 쳐들어왔으면 좋겠다!!”
흥분한 나머지 부적절한 표현을 써버리고 말았다. 크리스티나도 손을 내저었다.
=그, 그러시면 안 되고요.
“아무튼 알았어. 그런 상황이 오면 날 불러. 즉시 가지. 아니면······, 여기에서 할 일을 대충 처리하고 나면 그쪽으로 갈게.”
=알겠습니다, 폐하!
내 어중간한 대답을 듣고도 크리스티나는 날 닦달하거나 들러붙지 않고 깨끗하게 물러났다. 아마 상부, 인류연맹의 의회로부터 그런 지시사항은 들었던 거겠지. 뭐, 나로선 다행이다.
인류연맹 의원들의 행태가 별로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들로서도 자신들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것이리라. 이 정돈 감안해 줘야겠지.
그 대신 나도 당장 날아갈 의리는 못 느끼게 됐고 늦게 가도 되는 명분도 지켰으니 WIN-WIN이라 할 만하다. 아니, 내가 이겼나? 뭐 아무렴 어때.
난 의자에서 일어섰다.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변명도 거짓말도 아니다. 지금부터 그걸 하러 갈 생각이었다.
그게 뭐냐면, 당연하게도 식사였다.
더 정확하게는 식사를 통한 레벨 업이었다.
자, 먹으러 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