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540)
540.
베르키아는 그날도 카일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루나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휘오오오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눈을 감았던 베르키아가 눈을 뜬 순간.
“……?”
눈앞에 서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발견한 베르키아가 입을 멍하니 벌렸다.
“리시나스님?”
“안녕, 베르키아.”
리시나스는 빙그레 웃으며 베르키아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 리시나스를 보며 베르키아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지혜의 왕 리시나스.
지금 이 세계의 희망이라 불리는 위대한 드래곤.
그녀의 동료들인 카일, 루나, 아르온의 제자가 된 베르키아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리시나스의 존재는 부담스러웠다.
그런 베르키아를 보며 리시나스가 말했다.
“카일의 집에서 오는 길이니?”
“네. 근데 제가 카일 스승님의 집에 다녀온 건 어떻게 아셨어요?”
“최근 네가 카일의 집에 자주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베르키아는 커다란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이며 리시나스를 올려다보았다.
“베르키아, 네게 카일의 집은 어떤 곳이니?”
그 물음에 베르키아가 고민에 빠졌다.
아주 진지하게 고민하는 베르키아를 보며 리시나스는 살짝 놀랐다.
어린아이답지 않은 진중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역시 재앙의 시대에 태어나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생각이 깊은 모양이네.’
리시나스는 씁쓸함을 느꼈다.
태어날 때부터 불행을 안고 태어난 세대.
그걸 알기에 입안이 썼다.
잠시 후 베르키아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식당이요.”
“…….”
“아닌가. 맛집?”
“그렇구나.”
‘……역시 루나랑 카일의 제자라고 해야 하나.’
예상을 뒤엎는 엉뚱한 대답에 리시나스가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아르온의 제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리시나스는 아르온을 그 둘과 동일 선상에 놓고 싶지 않았다.
아르온은 착하고 순수하잖아. 게다가 지극히 정상인이고.’
성격 지저분한 녀석과 괴짜, 그리고 변태 사이에 있는 유일한 정상인.
소심하고 겁이 조금 많긴 하지만 그게 무슨 흠일까?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안다면 아르온은 손사래를 치며 동료들을 두둔할 착한 수인이었다.
다른 것들?
‘사기꾼 도마뱀이 뭐라는 거야.’
‘속이 새까만 드래곤!’
‘외모만큼 음험한 친구가 못 하는 소리가 없군.’
야유를 쏟아내는 친구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속으로 한숨을 쉰 리시나스가 무릎을 살짝 굽혀 베르키아와 눈을 마주쳤다.
“베르키아.”
“네.”
“언제까지 카일의 집에서 식사할 거니?”
“계속요.”
“루나의 요리 솜씨가 좋아져도?”
“음.”
그 말에 베르키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물었다.
“얼마만큼이요?”
“맛있어질 정도로.”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베르키아의 눈에 불신이 살짝 떠올랐다.
“카일 스승님이 리시나스님과 루나님의 요리는 저주받은 수준이라고 했거든요.”
‘그 자식이 진짜!’
눈가를 파르르 떨던 리시나스가 말했다.
“그래도 루나의 음식솜씨가 카일 만큼 좋아지면 어떻게 할 거니?”
“루나님이랑 같이 밥 먹을래요.”
베르키아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루나는 베르키아를 늘 챙겨준다.
베르키아로서는 당연히 루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다고 카일 스승님이 아쉬워할 것 같지도 않고요.”
베르키아가 살짝 볼멘 목소리로 툴툴거렸다.
현재 카일은 매일 자신의 집을 들락거리는 베르키아를 반쯤 식충이 취급하고 있었다.
“그 망할 녀석이 어떻게 할지는 안 봐도 알겠지만.”
리시나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만약 루나의 요리가 카일의 요리만큼 맛있어진다고 해도 계속 카일의 집에서 식사해주지 않을래?”
“왜요?”
“……그래야 카일이 조금은 덜 외로울 테니까.”
“전혀 외로워 보이지 않던데요.”
베르키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베르키아를 보며 리시나스가 쓰게 웃었다.
“그래, 카일은 외롭지 않을 거야. 미련이 없는 사람은 그런 법이거든.”
리시나스가 무릎을 펴고 카일의 집 쪽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혼자보다는 네가 있어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
그 말에 베르키아가 고민하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결혼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뭐?”
“그러면 덜 외로우실 것 같은데.”
그 말에 리시나스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그게 좋긴 하지. 그런데 그건 모든 일이 마무리 된 다음에…….”
“루나 스승님이랑 카일 스승님이 결혼하면 딱이겠네요.”
“그게 무슨 소리니.”
리시나스가 정색했다.
하지만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베르키아는 무구한 눈으로 말했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울려서요.”
“…….”
이 애, 왜인지 모르게 위험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리시나스가 말했다.
“그러기에는 루나가 아깝지 않니?”
“확실히 그러네요. 역시 지혜의 왕이세요.”
베르키아가 감탄하더니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모습을 보며 리시나스가 부드럽게 웃었다.
‘괜한 짓을 한 게 아닐까?’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이다.
***
그날 이후에도 베르키아는 꾸준히 카일의 집을 방문했다.
루나는 음식솜씨를 키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애초에 괴짜라서 그렇지 웬만한 건 다 잘했던 루나인 만큼 노력하는 순간 음식솜씨는 수직으로 상승했다.
리시나스도 같이 연습을 했지만, 저주라도 받은 듯 그녀의 요리 실력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루나의 요리 실력이 좋아진다 해도 베르키아는 꾸준히 카일의 집을 방문했다.
그런 베르키아를 보며 루나가 실망했지만.
베르키아는 리시나스의 부탁에 따라 카일의 집에서 식사를 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월이 더 지나고.
베르키아가 카일의 제자가 된 지 반년이 지났을 무렵.
대영웅들이 다시 한번 타르타로스의 전장으로 나갔다.
***
“루나 스승님과 아르온 스승님은 언제 돌아오시지?”
베르키아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대영웅들이 원정을 떠난 후.
베르키아는 드디어 카일이 내린 과제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이제 다시 루나와 아르온에게 마법과 검술을 배울 수 있다.
그 사실이 베르키아를 즐겁게 만들었다.
‘이제 카일 스승님에게는 당분간 배울 일이 없겠지.’
지긋지긋했던 수련이었다.
그런 수련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베르키아는 왜인지 모를 아쉬운 감정을 느꼈다.
카일을 떠올리던 베르키아가 붕붕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해도 루나와 아르온에게 다시 배울 수 있다는 즐거움이 더 컸다.
‘어서 빨리 강해져서 스승님들과 같이 전장에 서고 싶어.’
베르키아는 알고 있다.
전장에 선다는 것은 목숨을 건다는 것.
그랬기에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스승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베르키아에게 있어 스승이기 이전에 은인이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루나 스승님과 아르온 스승님은 안 좋아하시지만.’
베르키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루나가 남겨두고 간 마도서를 품에 꼭 쥐고 가드스론의 중앙성 복도를 걸었다.
‘어서 빨리 돌아오셨으면 좋겠다.’
그때 성의 복도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돌아오셨다!’
베르키아는 황급히 소리가 들린 쪽으로 달려갔다.
워프 게이트가 있는 공간 복도를 달리는 베르키아의 귀에 모퉁이 너머에서 커다란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스승님들! 돌아 오셨……!”
환하게 웃으며 모퉁이를 돈 순간.
“힐러! 빨리 힐러를!”
“드웨노님이 크게 다치셨어!”
“나는 됐으니 급박한 아르온과 부상자부터 치료하게!”
“넵!”
“루나! 카일의 부상이 심각해! 어서 힐 마법을……!”
“잠깐! 리시나스! 이 녀석이 지금 제일 급해! 아르온 정신 차려!”
“리시나스, 난 괜찮으니까 아르온부터 치료해.”
“하지만…….”
“저 등신 새끼한테 가! 난 혼자서 병동으로 갈 수 있으니까!”
“아, 알았어. 무리하지 마!”
“이 멍청한 것! 그건 용기가 아니라 만용일세!”
사람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원정에서 돌아온 영웅들의 치료에 전념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이들에게 무수히 많은 힐러가 달라붙었다.
특히나 아르온이 입은 상처는 참혹했다.
베르키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쥐고 있는 마도서에 힘을 준 베르키아가 복도 모퉁이로 몸을 감추었다.
복도에서 힐러들이 미친 듯이 달려왔다.
“카일님! 어서 치료를……!”
“난 괜찮으니까 다른 녀석들부터 봐. 병동에 가서 알아서 치료 할 테니까.”
덤덤하게 말한 카일이 워프 게이트를 빠져 나왔다.
확실히 목숨이 위험한 상처는 아니었다.
카일은 승기를 잡기 위해 느닷없이 최전방으로 달려간 아르온을 구하기 위해 나섰을 뿐이다.
아르온이나 다른 영웅들보다는 그나마 상황이 괜찮았다.
처벅- 처벅-
피에 젖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털썩-!
“끄윽-! 빌어먹을.”
무릎을 굽힌 카일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결코 가벼운 부상은 아니었다.
카일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러다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카, 카일 스승님…….”
“베르키아냐…….”
카일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베르키아가 꼭 안고 있는 커다란 마도서를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과제는 다 끝냈냐?”
“네…….”
“……빠르네. 잘했어.”
베르키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단백한 칭찬이었지만 카일이 칭찬을 한 건 처음이었다.
카일이 몸을 일으키려다 이내 휘청였다.
“스, 스승님! 제가 부축해드릴게요!”
베르키아가 마도서를 내팽개치고 카일을 부축했다.
카일은 거부하지 않았다.
그만큼 상태가 안 좋았기 때문이다.
“히, 힐러! 힐러 빨리 여기로! 카일 스승님의 상태가……!”
“베르키아.”
하얗게 질린 얼굴로 힐러를 찾는 베르키아를 카일이 나직이 불렀다.
베르키아가 고개를 들어 카일의 회색 눈을 보았다.
그 눈동자는 삭막했던 평소와 달랐다.
어딘지 모르게 안타까움이 깃들어있었고 슬퍼 보였다, 그리고…….
“어서 강해져라. 강해져서…… 같이 전장에 서 줘.”
전장에 서서 스승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 하는 베르키아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혐오감이 깃들어있었다.
아직 어린 제자에게 전장에 서달라고 말하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
루나와 아르온.
그리고 카일은 달랐다.
루나와 아르온은 어떻게든 제자가 평화로운 세상을 살기를 바랐다.
베르키아를 가르치는 건 자신을 지킬 능력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가르치는 것이지 함께 전장에 설 동료를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카일은 달랐다.
지금 이 시대에서…… 베르키아는 어쩔 수 없이 전장에 설 것이다.
평화롭지 않은 시대에 태어난 제자의 숙명이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스승들의 뒤를 쫓아 전장에 서려는 마음도 이해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니까.
그렇다면…….
‘타인에게 기대는 나약함을 가져서는 안 돼.’
카일이 베르키아에게 냉혹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자신들이 사라진다면 투쟁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제자가 좀 더 일찍 자립할 수 있도록.
이제야 이해했다.
자신의 어리광을 조금도 받아주지 않는 카일의 엄격함을.
베르키아가 겁에 질린 눈으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카일이 사라질 것 같아 겁이 덜컥 난 것이다.
“병동으로 좀 부축 해줘.”
어느새 무감정한 눈으로 돌아온 카일을 보며 베르키아가 이를 악물었다.
“……네.”
베르키아는 묵묵히 카일을 부축한 채 병동으로 향했다.
큰 부상을 입고 부축을 받는 와중에도 카일에게서는 힘이 느껴졌다.
기대고 싶어질 만큼의 힘이.
하지만 베르키아는 그 마음을 접었다.
‘……아빠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베르키아는 걸음을 옮겼다.
***
고오오오오오-!
레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베르키아를 바라보았다.
그 시절, 어린 소녀는 없다.
이제는 무수히 많은 전장을 이겨내고.
세상을 구하고. 이끌고…… 그리고 실망해 버린 제자만이 남아 있었다.
스윽-
베르키아가 똑바로 섰다.
그 움직임에는 산 자를 향해 증오를 불태우는 망자의 본능만이 남아 있다.
‘나는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너에게 혼자서 버티는 법만을 가르쳐 줄 수밖에 없었어.’
저벅- 저벅-
레오가 베르키아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모든 것을 짊어지고 버틸 필요는 없다.
‘그런 시대는 우리가 끝냈어. 그러니 네가 우리가 살아야 할 방식으로 살 필요는 없어.’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도 가르쳤어야 했지만 가르치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는 기대는 법을 가르쳐 주마.”
그리고…….
레오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잘 보고 배워.”
나직이 말을 전한 레오가 정면을 응시했다.
“이게…….”
레오가 무릎을 굽혔다.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자들의 싸움이니까.”
콰앙-!
레오가 땅을 박차고 베르키아를 향해 돌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