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604)
604.
관광을 시작하고 반나절이 지났을 무렵.
“레오 오빠.”
“왜?”
“나 오늘 처음으로 칼이 존경스러워졌어.”
첼시의 말에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대체 걔는 어떻게 돈도 없으면서 척척 물건을 얻어오거나 아니면 숙소를 잡을 수 있는 거야?”
1학년 때는 같은 반으로서.
그리고 2학년에 올라와서는 기숙사는 달라졌지만 같은 학과로서.
첼시와 칼은 파티를 짜서 임무를 수행하거나 같이 영웅의 세계를 공략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특히 칼의 능력이 발휘되는 곳은 영웅의 세계를 공략할 때였다.
영웅의 세계는 여러 가지 상황을 겪게 된다.
명문가나 귀족가 출신들은 평소에 돈이 없어서 겪을 곤란함을 그럴 때 겪는다.
그때 파티에 칼이 있으면 편해진다.
특유의 넉살과 친화력으로 사람들과 빨리 친해진 칼은 간단한 잡무를 해주는 대가로 원하는 걸 손쉽게 얻어왔다.
칼과 같은 조가 된 대다수 학생은 그 모습을 보며 단순히 ‘편하네’ 정도라고 생각했을 뿐.
칼의 교섭력을 보고 감탄하는 이는 드물었다.
그건 칼과 절친인 첼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금.
칼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닫는 첼시였다.
“원래 옆에서 보면 다 쉬워 보이거든.”
“윽.”
첼시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첼시에게 레오가 말했다.
“일단 태생부터가 다르니까.”
어릴 때부터 부족한 것 없이 떠받들어져 온 영웅 명가 직계인 첼시가 평민 연금술 집안 출신으로 가게 일에 익숙해진 칼을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칼의 경우에는 익숙한 걸 떠나 타고나기를 그런 쪽으로 특화된 것 같지만.’
전생에 용병 일을 하며 온갖 경험을 다 한 레오도 칼의 수완에는 감탄이 나올 정도니 말다 한 셈이다.
‘내가 너무 쉽게 봤어.’
신분을 밝히거나 마법을 쓸 수 없다는 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큰 페널티였다.
게다가 흩어지기 전.
레오는 돈이 될 만한 액세서리도 모두 압수했다.
입고 있는 옷 역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재질의 옷으로 갈아입게 했다.
물론 아예 도와주려는 이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전부 꿍꿍이가 있는 이들이었다.
첼시는 음흉한 시선을 보내며 접근하는 이들은 모두 응징했다.
꼬르르륵-
배에서 소리가 났다.
이미 밥 먹을 시간은 한참 전에 지났다.
소리를 듣고 레오가 힐끗 바라보자 첼시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우선 첼시가 구하고자 한 것은 숙소였다.
하지만 잘되지 않았다.
레틴 자체가 관광도시인 만큼 기본적으로 어느 곳이든 숙박비가 비쌌다.
칼이 했던 것처럼 잡일을 해주는 대가로 재워달라고 했지만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노동력만으로는 부족해. 칼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첼시는 칼이 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어떻게 돈도 없이 가게에서 먹을 걸 받아 온 거야?’
‘불쌍한 척 연기를 했지.’
‘불쌍한 척?’
‘응. 돈이 없어서 여동생이 며칠째 굶고 있다고 했거든.’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잘도 거짓말하네.’
‘굶는 건 사실이니까.’
일전에 영웅의 세계에서 칼과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난 그런 거짓말 잘 못하는데.’
장난을 치거나 한다면 모를까.
불쌍한 연기를 하는 건 자신이 없다.
이런 건 분위기가 중요한데 첼시로서는 칼과 같은 분위기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첼시가 끙끙거리고 있을 때였다.
“저기로 여기로 가야 한다니까?!”
“웃기지 마라! 저곳으로 가야 한다!”
길 한복판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웅성-웅성-
갑작스럽게 일어난 소란에 주변에 인파가 모여들었다.
레오와 첼시가 다가가자, 그곳에서는 니엘과 마첼이 또 다투고 있었다.
“아이코, 또.”
첼시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
또 사소한 것으로 으르렁거리는 둘을 보며 첼시가 레오의 눈치를 살폈다.
싸우면 레오가 가만두지 않겠다고 분명 이야기했었다.
“저 정도야 의견 충돌이지.”
그 말에 첼시가 살짝 안도했다.
어릴 때부터 마첼은 아바드와 첼시를 돌봐주었다.
그런 만큼 첼시도 마첼이 험한 꼴을 당하는 건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서로 왁왁 거리는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던 첼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에효, 저러고 있는 걸 보니 우리 때문에 저런 것 같아서 마음에 걸리네.”
“왜? 제르딩거와 르왈린의 가신 가문이니까 사이가 나쁜 건 당연하잖아.”
“응. 그렇지. 그런데…… 아마 마첼 오빠 첫사랑이 니엘 선배일걸?”
“뭐?”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레오가 순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루메른에 입학하기 전에 둘이 사귀었어.”
그 말에 레오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니엘과 마첼을 바라보았다.
“저 둘이 연인사이었다고?”
“응.”
“어떻게?”
“마첼 오빠는 루메른에 입학하기 전에 로드렌 황실 아카데미를 다녔어.”
루메른이라는 최고의 아카데미가 있지만 인간 사회에는 루메른 외에도 여러 명문 아카데미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3대 클래스 명문 학원이라 불리는 기사 학원 이코트, 마법 학원 에메랄, 소환 학원 스카운이 있었다.
보통 루메른에서 퇴학을 당한 학생들이 각 학원들에 편입하거나 루메른 편입을 준비하는 신입생들이 거쳐 가는 곳이다.
당장에 로드렌 제국의 황태녀 샤샤도 스카운을 다니다가 루메른에 편입했다.
그리고 로드렌 황실 아카데미는 제국의 최고 인재들을 육성하는 만큼 이코트, 에메랄, 스카운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고 티어의 아카데미였다.
3대 클래스 명문 학원이 각 클래스에 특화되었다면 로드렌 황실 아카데미는 루메른처럼 모든 클래스의 학생들이 교류한다.
결정적으로 통학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에메랄 입학시험도 통과했지만 마첼은 오라버니와 나를 보필해야 한다며 수도에 있는 황실 아카데미에 갔어. 거기서 마법과 수석이었어.”
당시를 떠올리며 첼시가 고개를 저었다.
“그때 르왈린의 가신 가문이면 특혜를 받을 게 분명했기 때문에 마첼 오빠는 자기 신분을 숨겼어.”
마첼은 시골 출신 귀족의 신분으로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학년 수석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와서 그러는 거야. 같은 학년 기사과 수석이랑 결투했는데 졌다고.”
마첼은 정통형 마법사.
1:1 대결에서는 기사에게 열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첼이 또래에게 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당시의 아바드도 첼시도 깜짝 놀랐었다.
“그런데 기분 나쁜 눈치가 아니라 오히려 즐거워 보였어.”
‘아가씨, 도련님. 그녀 역시 시골 지방 귀족 출신으로 자기 힘으로 기사과 수석의 자리에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녀는 굉장히 우수하고 고결했으며 당찬 여성이었습니다. 제가 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물론 다음에는 지지 않을 테지만.’
“설마 그 기사과 수석이 니엘 선배였어?”
“응.”
니엘 역시 같은 이유로 로드렌 황실 아카데미에 입학했던 것이다.
“둘이 마음이 잘 맞았나 봐.”
둘 다 지방 귀족 출신 촌놈이라고 무시당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서로 자연스럽게 어울릴 일이 많아졌고 빠르게 가까워졌다.
게다가 대화를 나누어 보면 공통점도 많다고 했다.
“서로 모시는 높은 가문의 사람이 있었다며 이야기가 잘 통한다고 했어. 하루가 멀다하고 니엘 선배 이야기만 하더라.”
‘도련님! 아가씨! 그녀가 말입니다!’
‘두 분께도 꼭 그녀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도련님! 아가씨! 그녀와 사귀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이성에 눈을 뜰 시기였던 니엘과 마첼은 순식간에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그때 진지하게 미래까지 생각한다고 했던 게 기억이나. 이렇게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은 찾기 힘들 것 같다며.”
“하긴 죽어라 싸워서 그렇지 하는 짓이 똑같기는 했지.”
레오가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러다가 루메른 입학 시험을 치게 되었는데 그때 서야 서로의 신분을 알게 된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흥미진진한 얼굴로 묻는 레오를 보며 첼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되긴. 당연히 난리 났지.”
둘 다 입학 시험에는 통과했다.
하지만 둘의 신분을 알게 된 순간 두 사람은 충격을 받았다.
“결국 같은 학년에 입학하기 싫다고 대판 싸우더니 니엘 선배가 입학을 포기했어. 아예 루메른에 다닐 생각이 없었다나 봐. 그런데 제르딩거 가문에서 1년 동안 설득을 했고 결국 마첼 보다 한 학년 아래로 입학하게 된 거지.”
니엘과 마첼, 두 모두 절대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를 대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책임감이 강하고 제르딩거와 르왈린에 대한 마음이 깊었기에 갈라서게 된 것이다.
“넌 옛날부터 그랬어! 진짜!”
“그건 내가 할 말이다!”
본격적으로 옛날이야기까지 하기 시작한 둘을 보며 구경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부부싸움인가?”
“그런 것 같은데?”
“신혼 같은데. 좋을 때다.”
젊은 남녀가 거리에서 의견 충돌로 싸우고 있으니 부부싸움으로 보인 모양이다.
구경꾼들이 훈훈하다는 듯 두 사람을 볼 때였다.
“네가 솔직하게 이야기했으면 애초에 서로 엮이지도 않았을 거 아니야!”
“흥! 그래서 결국 갈라섰잖아!”
훈훈하던 분위기가 일순간 사라졌다.
점점 감정이 격해지는 둘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더 이상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군.”
“아! 좋은 생각이 났다!”
“응?”
레오가 의아한 눈으로 첼시를 바라보았다.
***
“그래서요…… 저 때문에 가족 여행이 엉망이 되고 말았어요.”
첼시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미안해, 오빠, 언니. 가족 여행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저런…… 딱하기도 하지.”
불쌍한 표정을 짓는 첼시를 보며 여관 주인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첼시가 연기한 설정은 간단했다.
엄청나게 싸우고 갈라서기 직전의 오빠 부부를 화해시키기 위해 여행 왔다가 여행 경비를 모두 잃어버린 여동생.
니엘과 마첼이 거리에서 대판 싸운 덕분에 주변 여관 주인들도 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 덕분에 이 설정은 굉장히 그럴듯하게 들렸고 그에 여관 주인은 깜빡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참가로 레오의 경우에는 니엘의 동생 역이었다.
“두 분. 동생분이 이렇게 사과하는데 그만 용서해 주시죠.”
그 말에 얼굴을 굳히고 있던 마첼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난…….”
부부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려던 마첼은 순간 눈을 부릅뜬 첼시와 눈이 마주쳤다.
“누님도 기분 푸시죠.”
니엘 역시 사실을 말하려다가 레오의 말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부인. 동생분 말이 맞습니다. 기분 푸시죠! 부부의 연은 각별합니다! 쉽게 끊어져서는 안 되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 하루. 우리 여관에서 묵으시죠. 마침 방 두 개가 비어있으니까요.”
여관 주인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하자 첼시가 말했다.
“그, 그래 주실 수 있나요?”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첼시를 보며 여관 주인이 기껍게 웃었다.
“당연하지! 오빠를 위한 기특한 꼬마 아가씨의 마음에 이 아저씨가 감동했어요!”
“와! 대신 최선을 다해 여관 일을 도와드릴게요!”
“하하! 이런 예쁜 아가씨가 일해주면 장사가 잘되겠는걸!”
“여기 이 오빠는 요리를 엄청 잘해요!”
첼시가 레오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손이 부족했는데 든든하군!”
여관방을 잡는 데 성공한 첼시가 방 열쇠를 받고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마첼이랑 니엘 선배 덕분에 좋은 숙소를 잡았어!”
“그런데 설정이 꽤 막장이던데?”
갈라서기 직전의 부부라니.
설정이 굉장히 파격적이다.
“응? 막장인가? 에이란 언니가 읽는 책에 이런 이야기 많아서 써 본 건데.”
첼시의 말에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에이란 녀석도 주의를 한 번 줘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레오는 뒤를 힐끔 바라보았다.
대놓고 싫어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둘을 보며 말했다.
“여기서는 싸워도 봐줄게요.”
“안 싸웁니다.”
“네! 안 싸워요.”
두 사람의 대답에 레오가 첼시를 바라보았다.
“안 싸울 것 같아?”
“싸울걸.”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에 관해서는 신뢰가 없는 니엘과 마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