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01
* * *
헤라클레스는 가슴에 붕대를 감았다.
평소라면 그냥 내버려 둬도 나을 상처였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부식의 힘을 지닌 어둠 속성의 마력에 당한 상처는 쉽게 낫지 않았다. 웬만한 회복력으로는 상처가 점점 썩고 덧나기 마련이었고, 그게 설사 헤라클레스라 해도 회복이 지연되는 효과 정도는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판도라 때문이었다.
“됐어.”
그녀는 헤파이스토스의 공방에 있던 붕대와 약초를 가져와 헤라클레스의 상처를 돌봤다.
아무래도 누가 다치는 걸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붕대를 모두 감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고맙다.”
“휴식.”
“그렇게 많이 다친 것도 아니야.”
판도라가 유독 요란을 떠는 건 사실이었다. 상처가 덧나는 걸 염려해 약을 발랐을 뿐, 헤라클레스의 상처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헤파이스토스의 집으로 돌아온 헤라클레스는 마찬가지로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유원에게 다가갔다.
“넌 괜찮나?”
“보다시피.”
유원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안 괜찮다.”
묵직한 한 방을 위해 고통을 감수한 결과였다. 우라노스의 심장에서 뿜어진 타르타로스의 힘은 현재 유원의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너무 무리하진 마라. 그 힘은 다루기에 따라서 네게도 독이 될 수 있으니.”
“입에 쓴 게 몸에도 좋은 법이지.”
“해석이 그렇게 되냐?”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고서는 돌아오는 것도 없다. 그건 불변의 법칙 아닌가?”
유원은 붕대를 감은 손을 들어 자신의 눈앞으로 가져왔다.
“마음에 든다. 충분히.”
우라노스의 심장은 리스크를 감수하면 현재 자신이 낼 수 있는 힘보다 더 큰 힘을 뿜어 낼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당장에 큰 힘을 필요로하는 유원에게는 딱 어울리는 아이템이었다.
“그건 네 살 갉아먹기다.”
“나도 알아. 자제는 할 거야.”
“……그래?”
헤라클레스는 유원의 어깨 위에서 색색거리며 잠에 들어 있는 단풍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네게는 특이한 게 자꾸 꼬이는 것 같군.”
“그러게나 말이다.”
단풍도 그렇고 우라노스의 심장도 그렇고.
확실히 보기 드문 아이템이고 신수였다. 단풍은 신수라기엔 좀 더 특이한 구석이 있었지만 아마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신수의 일종으로 보일 것이다.
“기다리던 걸 받았으니, 이제 다시 올라갈 건가?”
“그래야지.”
유원은 우라노스의 심장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기다리던 게 완성되었으니 이제는 다시 위로 올라가야 할 때였다.
‘그 녀석도 계속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
우선 목표는 50층이었다.
손오공이 잠들어 있는 장소.
이미 손오공의 다른 분신들과 그곳에서 만나기로 약속까지 해 놓은 상태였다.
다만.
“44층에서 삼귀자가 널 찾는다던데.”
문제는 44층에 있는 삼귀자였다.
유원이 사라진 지 한 달이 넘는 지금.
아마테라스는 유원을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을 것이다.
“그런 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이미 44층에서는 파다한 소식이다. 큰아버지께 44층의 상황을 알려 달라 하니 바로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하데스가 제우스를 대신해 길드장을 맡고 있었다. 길드의 힘은 많이 약해졌지만, 부자는 망해도 삼대를 간다더니 올림포스는 역시 올림포스였다.
“아무튼 조심해라. 아마 지금쯤 아마테라스가 칼을 갈고 있을 테니.”
“칼을 가는 건 그 녀석만이 아니지.”
유원의 눈이 빛났다.
올림포스 때와는 달리 이 싸움은 자신이 먼저 건 싸움이었다. 그런 만큼 유원은 절대 질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유원의 반응에 헤라클레스는 지난날을 떠올렸다.
‘갑자기 그 녀석들이 불쌍해지는데.’
유원은 절대 확신 없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행동에는 반드시 계획이 있었고 그 계획은 실제로도 올림포스의 왕으로 군림하던 제우스를 끌어내리기까지 했다.
그것은 실력과는 별개의 능력이었다.
‘이제 곧…….’
헤라클레스는 손의 붕대를 풀며 상처에 다시 약을 바르고 있는 유원을 바라보았다.
‘삼귀자의 몰락이 탑을 흔들겠어.’
* * *
44층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평소에도 그리 평화로운 곳은 아니었지만 근래에는 그 평소가 차라리 평화롭다 느껴질 정도였다.
“그 새끼 하나 때문에 이게 다 무슨 고생이냐.”
“그러게. 벌써 한 달이 넘게 여기 죽치고 앉아가지고는…….”
“그래도 잡기만 하면 그게 얼마냐. 현상금이 좀 많아?”
“하긴. 그 포인트만 얻으면 앞으로 랭커가 될 때까지 굶을 걱정은 없지.”
“굶는 게 걱정이냐. 여기선 돈이 곧 힘인 거 몰라? 그 포인트면 랭커는 껌이지.”
시험장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
그들의 목표는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김유원 그거, 진짜 안 올라오려는 건가.”
“어디 잠적해 있나 보지. 그 새끼도 귀가 있는데, 삼귀자가 자길 쫓고 있다는 걸 알면 숨어야지.”
김유원이 사라진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사라진 김유원에게 붙은 현상금은 백만 포인트에 달했다.
그 돈에 눈이 돌아간 플레이어들은 각기 팀을 이루어 김유원을 쫓아 수상한 사람을 닥치는 대로 공격했다.
“야, 저기 저거.”
“새로 시험을 보러 오는 녀석인가?”
44층의 시험장 주위에 널려 있던 플레이어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공치는 거 아니야?”
“그럼 뭐 어때. 어차피 여기선 누굴 죽여도 합법인데.”
이미 몇몇은 한 달이 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김유원을 찾는 걸 포기한 상태였다.
오히려 그걸 핑계 삼아 플레이어들을 약탈하는 걸 즐겼다.
김유원을 찾을 수 있다면 좋고 아니면 아닌 대로 좋고.
덕분에 44층은 말 그대로 무법지대에 인간 사냥이 유행이 된 셈이었다.
스물에 달하는 플레이어 들이 슬금슬금 움직였다. 시험장을 향해 걸어가던 남자는 자신의 주위를 에워싼 흉흉한 분위기에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오, 눈치는 빠르네.”
“야, 몽타주 있지? 비교해 봐.”
빈틈없이 주위를 에워싼 플레이어 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플레이어 키트에 떠오른 김유원의 인상착의와 눈앞에 있는 남자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물론, 그들 중 큰 기대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몇 명이 목표로 점찍은 남자의 앞으로 걸어갔다.
“우리가 말이야,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거든.”
“남자답게 가진 거 다 내 놓으면 그래도 시험을 치를 수 있게…….”
이어지던 말이 끊어졌다.
묘하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라?’
설마, 하는 생각과 함께 물음표가 머릿속에 떠오르기를 잠시.
“마, 맞아.”
“뭐?”
“이 녀석이 맞다고!”
그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기를 잠시.
스캇-.
목에서 뜨끈함이 느껴지며, 시야가 핑 돌았다.
촤아악-!
가장 가까이 다가온 두 사람의 목이 날아갔다. 활발하게 돌던 핏물이 갈 길을 잃고 위로 솟아올랐다.
“왜들 그렇게 날 그렇게 애타게 찾았지?”
“너, 너너…….”
차앙, 창-!
방심하던 플레이어 들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공격할 것처럼 마력을 끌어올리며 스킬을 준비했지만 먼저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겨우 이 정도 인원으로 유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김유원이다!”
“김유원이 여기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 도시에 모여 있는 범죄자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유원의 현상금을 노리고 있었다.
지원이 있다면 이길 수 있다.
현상금이야 갈라먹으면 그만이었다.
또한.
‘삼귀자가 우리 뒤를 봐 주는 이상, 질 리가 없다.’
‘삼귀자가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러기만 하면…….’
‘현상금을 받을 수 있다.’
‘덩달아 삼귀자의 후광까지도.’
이 현상금을 건 쪽은 삼귀자였다.
50위권의 최상위 하이랭커, 아마테라스가 있는 곳.
당장 츠쿠요미만 하더라도 김유원 한 명을 잡는 데에는 충분할 것이다.
그들은 단지 현상금 하나만 보고 이 일을 하는 게 아니었다.
오갈 데 없는 범죄자들. 길드에 들 수도, 제대로 된 팀을 꾸려 탑을 올라갈 수도 없는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품어 주는 건 오직 삼귀자와 이 44층의 세상뿐이었다. 집단이 지니는 힘을 아는 만큼, 뒤를 봐 주는 후광을 얻고 싶은 건 당연했다.
‘많이도 오는군.’
유원은 우르르 몰려드는 인기척에 화안을 사용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건물 사이사이, 거미줄처럼 넓게 퍼져 있던 플레이어들이 촘촘히 망을 좁혀 온다. 생각보다 더 체계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래도 44층까지 올라온 녀석들이라 이건가.’
확실히 아래층의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르다.
움직임 자체가 이리 무리들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조직적이었다. 따로 집단을 형성하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였다.
얼핏, 오딘이 왜 그렇게 삼귀자들을 비롯해 44층의 범죄자들이 한데 뭉치는 걸 경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조직력이 강해질수록 집단의 힘은 함께 강해진다. 이 일이 그 시작인 셈이고.’
이미 그들은 유원을 잡는다는 목적 아래에서 하나로 뭉쳤다.
바퀴벌레처럼 퍼져 있는 이들의 청소는 굳이 먼 미래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유원은 허리춤에 차고 있는 쿠사나기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다 끝낸다.’
유원은 움직이지 않고 자리에서 기다렸다.
충분히 많은 인원이 모일 때까지.
저들이 먼저 움직일 때까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슬슬 자신감이 붙었나.’
숫자가 백 단위를 넘어, 천 단위에 가까워지자 머릿수를 믿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녀석들이 생겨났다.
자신의 뒤통수를 노리는 놈들.
그들의 기척을 알아챈 순간.
“난 지금부터 열심히 도망칠 생각이다.”
줄곧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유원은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퍼뜨렸다.
“그러니까 가서 삼귀자한테 전하던가 해. 내가 왔으니까, 잘 쫓아와 보라고.”
“지금 삼귀자를 도발하는 거냐?”
“그래.”
도망친다고 말은 했지만 실제로 그건 도망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유원의 의도를 모를 만큼 멍청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은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유원은 바보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유능한 플레이어였다.
그런 유원이 무식해 보일 만큼 무모한 싸움을 걸어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체 뭘 믿고?”
“그건 알 거 없고…….”
누군가의 물음에 유원은 등에 메고 있던 보따리를 풀었다.
스윽-.
“이거 가지고 싶으면, 잘들 따라와 보라고.”
“서, 설마…….”
“거울?”
“지, 진짜냐?”
유원이 꺼낸 거울을 발견한 주위의 플레이어들이 술렁거렸다.
심지어는 나름대로 모습을 꽁꽁 잘 숨겼던 녀석들까지도 놀라 소리를 지를 지경이었다.
‘다소 뻔한 도발이긴 하지만…….’
아마테라스는 바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 같은 쇼가 필요했다.
‘지금은 오히려 이편이 낫다.’
너무나도 뻔히 보이는 도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려 들 수밖에 없는 도발이었다.
유원이 삼신기 중 하나인 야타의 거울을 손에 넣었다는 걸 알게 된 수많은 플레이어 들.
그들의 눈과 귀를 통해 아마테라스는 소식을 듣게 될 것이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미끼는 내 손안에 들어왔다.’
이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는 유원이 선점했다.
‘이제…….’
유원은 몸을 돌렸다.
무대와 소품은 준비되었다.
‘몰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