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73
* * *
세상이 흔들렸다.
쉬지 않고 울리는 땅. 뜨겁게 타오르는 공기와 함께 수많은 기척들이 느껴졌다.
‘온다.’
궁-.
유원은 진동하는 땅을 통해 이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무스펠의 아들들이.’
무스펠하임의 지배자, 수르트.
그가 라그나로크를 위해 준비하고 있던 삼백에 달하는 수르트의 핏줄과 수많은 거인들.
수르트의 외침에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어이 움직였나.”
외침을 들은 거인들은 곧장 아스가르드로 진격할 것이다.
‘궁니르 한 발로는 부족했나.’
확률은 반반.
불을 잃어버린 수르트가 과연 궁니르를 견뎌 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다른 방법이 없었다.
콰앙-!
오딘과 수르트가 충돌했다.
헤라클레스 한 명이라면 모를까, 오딘이 나타난 이상 수르트는 더 이상 유원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쿠구구구-.
지이익-.
둘의 충돌로 인해 유원의 발이 뒤로 밀려났다.
힘으로 버티고 서 있기에는 둘의 충돌로 인한 여파도 상당한 데다, 유원의 몸 상태 역시 썩 좋지 않았던 것이다.
“……난장판이군.”
결국 무스펠의 아들들이 움직였다.
아스가르드를 향해 움직인 거인들은 이제 곧, 여러 세계를 난장판으로 만들 것이다.
“결국 막지 못했군.”
헤라클레스의 입에서 허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순간을 막기 위해 애를 썼다. 예정되어 있던 재앙, 그걸 막으려면 수르트를 잡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수르트는 잡지 못했고, 오딘과 수르트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둘의 싸움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며칠이 될 수도, 몇 달이 될 수도 있었다.
혹은 그 옛날 아스가르드에서 벌어졌던 둘의 싸움처럼 끝끝내 결판이 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콰앙-!
오딘과 수르트가 부딪친다.
수르트는 피를 철철 흘리고 있음에도 전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
그가 땅 위에 떨어질 때마다 하늘이 금방 무너지기라도 할 듯 세상이 흔들린다.
오딘은 손을 움직여 그런 수르트의 몸을 마법으로 속박하고, 그 힘을 정면에서 받아 냈다.
“이게 라그나로크인가.”
그 싸움을 지켜보는 헤라클레스는 그저 놀랄 따름이었다.
그 역시 거인 학살자라 불리며 숱한 하이랭커들을 만나 왔다. 올림포스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제우스와의 싸움까지도 겪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10위권 안쪽에 들어가는 최상위 하이랭커들의 싸움은 역시 격이 달랐다.
더군다나 오딘과 수르트는 그런 하이랭커들 사이에서도 최상위 랭킹의 존재들.
저 싸움이 바로 라그나로크의 본체였다.
“아직 속단하긴 좀 일러.”
라그나로크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탑에 가장 큰 피해를 끼쳤던 무스펠의 아들들 역시, 정신적인 지주인 수르트를 믿고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막 명령이 떨어진 이때.
유원이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서둘러 수르트만 처리하면 된다. 그럼 나머지는 멈출 거다.”
“방법이 있나?”
쩌어엉-!
쩍-.
하늘이 갈라졌다.
단순히 구름이 갈라진 것과는 다른 느낌의 광경이었다. 공간과 공간이 벌어져, 서로 다른 방향으로 멀어져 갔다.
오딘의 마법이었다.
수르트는 그 속으로 휘말리지 않기 위해 불을 뿜어 댔다.
실로 말도 안 되는 싸움이었다.
“저런 싸움에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겠지.”
헤라클레스라면 모를까, 저 싸움에 유원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멀쩡한 몸 상태도 아니거니와 수르트의 불뿐만 아니라, 오딘의 마법까지 더해진 전장에 휘말린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터였다.
저 싸움에서 오딘을 돕기 위해선 최소한 오딘의 마법을 몸으로 견뎌 낼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그래?”
귀가 솔깃해진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경험으로 유원이 빈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건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정말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거였다.
“그럼 부탁하지.”
척-.
다시금 손에 쥔 곤봉에 힘을 주며, 헤라클레스가 오딘과 싸우고 있는 수르트를 바라보았다.
“난 나대로 싸우고 있을 테니.”
한시라도 빨리 수르트를 쓰러뜨려야 한다.
그 생각에 서둘러 움직이려던 때.
“어딜 가려고?”
유원이 헤라클레스를 붙잡았다.
“따라와. 네가 할 일이 있다.”
* * *
파즈즈즈즈-!
오딘이 아래로 떨어지며 땅이 뒤집어졌다. 발에 마력을 실어 충격을 줄인 오딘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새빨간 피부뿐.
부우웅-.
콰앙-!
수르트가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오딘을 짓밟았다.
아니.
밟았다고 생각했다.
기이이잉-.
오딘의 마법진이 펼쳐졌다. 둥근 원형의 푸른 마법진은 수르트를 반대 방향으로 밀어내며 오딘의 몸을 보호했다.
“많이 약해졌구나, 오딘.”
“내가 약해진 게 아니라 네가 강해진 거다.”
꾸우욱-.
손안에 힘을 주며 오딘은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그 말은, 네가 지쳤다는 뜻이고.”
쩌저, 쩌저저저-.
우득, 우드드-.
마법진을 타고 전해진 마력이 수르트의 몸을 비틀었다.
뼈가 갈라지고 뒤틀렸다. 다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발을 떨어뜨린 수르트가 불꽃의 검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거기에 호응하듯 오딘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부우웅-.
쩌어어엉-!
두 검이 부딪쳤다.
“으하하하! 좋다, 좋아!”
쾅, 쾅쾅-!
거대한 불꽃의 검을 휘두르며 수르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오딘! 나는, 나는!”
화르르르륵-!
치솟는 불꽃.
이번에는 오딘도 위험하다 판단했는지, 맞서 검을 휘두르는 대신 몸을 웅크리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콰앙-!
화르르륵-.
“네놈과 아스가르드가 미치도록 싫단 말이다-!”
치이이이-.
수르트가 휘두른 검을 따라 바닥에 선명한 불꽃 자국이 생겨났다.
황금빛의 방패를 들어 올렸던 오딘은 그것을 치워 내며 수르트를 올려다보았다.
“시작은 너였다.”
오래 전.
수르트가 오딘에게 도전하겠다며, 요툰하임의 거인들을 데리고 들고 있어났을 때.
“넌 나에게만 도전했어야 했다.”
오딘은 그런 수르트의 행동에 분노했다.
단지 그가 자신을 배신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반역.
오래된 나라에서는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오딘은 단지, 그 일이 벌어졌을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
“아스가르드의 국민들까지 휘말리게 할 게 아니라 말이야.”
더 지쳐 보이는 건 수르트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수르트는 지금이 가장 최고조로 강했다.
지치고 상처 입을수록 강해지는 특성.
그게 바로 수르트의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
“그 고지식한 말버릇은 여전하군.”
수르트는 여전히 오딘을 무시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과는 맞지 않았다.
“어차피 이걸로 아스가르드는 멸망한다. 너의 시대는 끝이란 말이다!”
“그래.”
오딘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시대는 끝났다. 이제 다음 시대의 시작이지.”
쏴아아아-.
오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결코 웃을 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웃음이 났다.
“시대는 어차피 변한다. 아스가르드와 이 탑은 너무 긴 시간 동안 흐르지 않고 고이고 썩고 있었지.”
단단한 댐에 막혀 흐르지 않던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막혀 있던 만큼 급물살을 타고서.
“이젠 물러날 때다, 수르트.”
“무슨 헛소…….”
쏴아아아-.
익숙한 마력의 흐름.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에 수르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휙 돌렸다.
“설마.”
* * *
“이거 정말…… 가능한 거냐?”
묵직-.
헤라클레스는 손안에 들어온 은색빛의 창대를 움켜쥐었다.
금방이라도 손에서 떨어뜨릴 것 같은 무게였다.
[들 수 없습니다.] [들 수 없습니다.] [들 수…….]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는 메시지.
그 메시지 때문에 헤라클레스는 창을 들어 올리는 게 버거웠다.
궁니르.
오딘이 던진, 이 탑에서 유일한 최강의 창.
헤라클레스가 그 창을 힘겹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가능할 거다.”
서서히 들어 올려지는 궁니르를 보며 유원은 손으로 혀를 내둘렀다.
한번 해 보겠다고 해서 설마 하긴 했는데 진짜 저걸 들어 올리다니.
‘시스템에 의해 사용이 제한된 아이템. 들어 올리는 게 불가능한 아이템을 들어올렸다.’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기적이나 다름없는 힘.
새삼 헤라클레스의 힘이 얼마나 무식한지 실감이 됐다.
‘내게 그 정도의 힘은 없다.’
그리고 그건 누구라도 마찬가지였다.
헤라클레스만 하더라도 간신히 들어 올릴 수준이지, 저걸 휘두르거나 던질 수는 없었다.
시스템을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해야 하는 건, 시스템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너무 그렇게 고생할 필요 없다. 이건 내가 쓸 거니까.”
“어려울 거다.”
말로만 어렵다고 했지, 헤라클레스는 유원이 궁니르를 들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들 수 없다는 메시지가 뜨고 있다. 이건 나도 쓸 수 없는 아이템이야.”
제아무리 헤라클레스의 힘이 대단해도 결국은 시스템을 거스를 수 없는 법이다.
시스템은 절대적인 법칙.
애초에 이렇게 반쯤 들어 올린 것만 하더라도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들 수 없다고 했지,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은 없잖아?”
유원은 헤라클레스가 두 팔로 힘겹게 들어 올리고 있는 궁니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직 이건 시동되지 않았다.”
궁니르는 오딘의 마력에 반응한다.
애초에 오딘에게 귀속된 아이템이고, 그렇기에 오딘만이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궁니르를 시동시킬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유원은 한 손으로는 궁니르를 향해 손을 뻗으며 다른 한 손은 인벤토리 속에 집어넣었다.
잘그락-
익숙한 느낌이 손안에 감겼다.
밖으로 꺼내 보자, 전보다 훨씬 더 망가진 것처럼 보이는 시계가 보였다.
[망가진 시계태엽]# 힘을 잃고 용도가 불분명해진 시계다. 대부분의 힘을 잃고 약간의 힘만 남아 있다.
# ???
# ???
이젠 정말 쓰레기나 다름없는 아이템.
다시 한번 시계태엽을 사용한다는 건 불가능하고, 이제는 오래된 소품 정도로밖에 쓸 데가 없어 보였던 물건이었다.
하지만 설명대로라면 한 가지.
이걸 쓸 방법이 있었다.
‘시계태엽은 오딘과 미미르, 크로노스가 함께 만든 아이템이다.’
약간의 힘이라도 상관없다.
애초에 궁니르의 시동 조건을 충족하는 게 목적이니.
기이잉-.
째깍-. 째깍-.
손안에 들어온 시계태엽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소량의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시계태엽이 작동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마력이었다.
하지만.
기이잉-.
턱-.
그 정도면 궁니르가 반응하기에 충분했다.
“……?”
헤라클레스는 가볍게 궁니르를 들어 올리는 유원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경악했다.
“들…… 었어?”
유원이 궁니르를 들어 올렸다.
그것도 자신보다도 훨씬 더 쉽게.
그러거나 말거나 유원은 손안에서 떨려 오는 궁니르를 바라보았다.
‘마력을 잡아먹는다.’
궁니르는 시동된 직후부터 줄곧 자신의 마력을 잡아먹으며 힘을 키우고 있었다. 창에 집약된 마력은 점점 증폭되어 커지고, 손에 들고 있기가 점점 부담스러워질 지경이 되어 갔다.
‘기다린다.’
궁니르는 시동 직후, 오랫동안 힘을 모아야 비로소 제힘을 발휘하는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궁니르가 잡아먹을 마력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화륵, 화르륵-.
불의 심장.
그 속에서 궁니르가 보랏빛의 불꽃을 잡아먹고 힘을 키웠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힐끗-.
수르트가 이쪽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