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63
* * *
유원은 속히 아스가르드로 향할 채비를 마쳤다.
딱히 많이 준비할 것도 없었다. 떠나기 전, 올림포스의 대표인 하데스에게 잠시 인사를 한 게 준비의 전부였다.
“아스가르드로 가는 거냐?”
막 하데스를 만나고 나온 유원에게 헤라클레스가 건넨 말이었다.
어디로 갈지, 말해 준 기억은 없었다.
유원은 헤라클레스의 시선이 저 멀리 복도 끝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토르에게로 향해 있는 걸 발견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눈치채지 못할 거라 생각했나?”
“언제부터지?”
“그 습한 동굴에서 기다리느라 고생했다. 생각보다 냄새도 나더군.”
미미르와 유원이 대화를 나누던 때부터, 헤라클레스는 이미 그의 환상을 깼다는 소리였다.
하긴.
하르간이라면 모를까 헤라클레스 정도라면 미미르의 환상을 깨는 게 불가능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려 반나절이었으니 말이다.
“누구냐? 그래서.”
물론.
환상의 존재는 알아차렸지만 토르로 변신한 미미르의 정체까지 알아차리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어쩐지 왕성으로 돌아오는 내내, 미미르를 바라보는 헤라클레스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 싶었다.
“미미르다.”
“미미르?”
잠시 그 이름을 곱씹던 헤라클레스가 물었다.
“오딘 왕의 친구?”
“그래.”
“그가 왜 여기에?”
미미르는 백 년에 한 번 깨어난다고 알려진 오딘의 친구였다.
활동이 극히 적어 세상에 이름이 잊혀지다시피 한 탓에 헤라클레스가 기억해 내는 데에 시간이 걸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랭킹은 둘째 치고 아스가르드 내에서 그의 위치는 결코 낮지 않았다.
오딘은 아스가르드의 모든 사람들에게 미미르를 자신과 똑같이 대하라 지시했던 것이다.
“이유를 알고 싶냐?”
“궁금하긴 하군.”
“크로노스 때문이다.”
“크로노스?”
잠깐의 멈칫거림.
이내, 고개를 끄덕인 헤라클레스가 입을 열었다.
“그렇군. 알았다. 잘 다녀와라.”
다른 때 같으면 크로노스가 누구인지, 왜 그 사람 때문에 아스가르드로 가는 것인지. 일일이 캐 물었을 그가, 별일 아니라는 듯 넘어갔다.
역시나.
‘혹시나 하긴 했지만.’
이럴 줄 알고 굳이 이야기를 안 꺼낸 것도 있었다.
어차피 말을 해 봤자, 헤라클레스는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그건 헤라클레스뿐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이번 일에는 함께 움직이지 못한다.’
유원은 잠시 발걸음을 멈춘 채 헤라클레스를 바라보았다.
조금 이른 감이 있긴 하지만.
“그때 그 녀석…….”
“그 녀석?”
“아틀라스 말이다.”
유원은 조금 서두르기로 했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헤라클레스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헤라클레스는 머릿속으로 아틀라스와의 싸움을 수도 없이 복기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훨씬 단단한 몸뚱이와 힘을 가지고 있던 녀석.
실실 웃으며 팔을 물어뜯던 아틀라스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눈에 훤했다.
“……뭐냐?”
“위로 올라가라.”
“위?”
무슨 소린가 하는 헤라클레스에게 유원은 제우스, 포세이돈에게 했던 말들을 그대로 해 주었다.
이미 하데스는 같은 이야기를 들은 상태.
하지만 그는 올림포스를 오래 비울 수 없어 포기한 상태였다.
“선택은 네 몫이다. 더 싸울 생각 없이 목수로 살든. 아니면 더 위로 올라가든.”
전쟁이 없을 때, 헤라클레스는 스스로를 일개 목수라 소개했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싸움보다는 평화를 사랑했으며 나른하고 따분한 하루를 좋아했다.
그렇기에 유원은 헤라클레스에게 이 싸움에 끼어들 걸 강요하지 않았다.
물론.
어차피 그 선택이 어느 쪽으로 흘러갈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중에 또 보자.”
유원은 그 길로 미미르와 함께 태양마차로 향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바로 승탑을 시작했어야 했지만.
‘그 녀석을 어떻게 찾는다.’
지금은 다른 일이 더 급했다.
* * *
아스가르드.
이 탑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아름다운 나라.
최강의 하이랭커 오딘이 다스리는 절대의 왕국.
라그나로크 이후, 아스가르드는 유래 없던 평화와 번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시각.
“좋지 않군. 좋지 않아…….”
왕국, 아스가르드의 왕.
오찬을 즐기던 그는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크…… 크르…… 크라…… 로?”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이름.
하지만 정작 생각나지 않는 이름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크로- 다.”
그 이름은 분명 미미르가 알려 주었음에도 바로 잊어버렸다. 시계태엽의 부작용으로 인한 것이라고 했는데, 몇 번이고 이름을 반복해서 들어도 금세 까먹어 버렸다.
아니.
단순히 까먹는 정도가 아니었다.
욱신-.
억지로 이름을 떠올리려 하자, 머릿속이 어지럽고 두통이 밀려왔다.
무언가가 그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걸 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절반 정도인가.’
그 이름을 기억해 낸 게.
오딘의 시야에 저 멀리, 창밖의 모습이 들어왔다.
평화로운 나라의 풍경.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 나라가.
아니, 이 탑이 어떤 늪에 빠져들고 있는 것인지.
“좋지 않구나.”
달각-.
손에 든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오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미르가 왕국을 떠난 지 보름째.
그가 다시 돌아왔다.
* * *
저벅-.
복작한 거리 한가운데.
사람들이 길을 좌우로 비켜서며 환호했다.
“토르! 토르!”
“토르!”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거리를 걷는 왕자.
온몸이 근육질로 이루어진, 이 시대의 진정한 전사.
‘그게 바로 나지.’
겉으로는 근엄한 얼굴을 하고서 속으로는 환호성을 즐겼다. 가슴을 쭉 편 채, 토르는 시민들의 악수를 받아주었다.
“혹시 어려운 일이 있거든 언제든 이야기하게.”
“농사는 잘되어 가는가?”
“아주 먹음직한 빵이군. 감사히 잘 먹겠…….”
격식을 차리지 않고,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것이야말로 토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왕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이렇듯 왕성을 빠져나와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사람들은 자연스레 자신을 보며 환호하곤 했다.
“토르! 토르!”
그리 멀지 않은 곳.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까지 내가 보이는 건가?’
자신이 온 건 또 어찌 알고 벌써부터 이름을 환호하고 있다니.
어서 빨리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레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런데.
“토르!”
“토르 왕자님 만세!”
그 환호성은 자신에게로 향한 게 아니었다.
‘뭐야?’
자신과 똑같이 생긴 얼굴의 남자.
사람들이 아무래도 저자를 자신으로 착각한 것 같았다.
아니.
“……나잖아?”
도대체가 어떻게 된 일인지.
그렇게 토르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토르 이 녀석,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닌 건지.”
“그러게 말하지 않았냐. 의심받지 않고 들어가려는 거면 사람을 잘못 정했다고.”
유원과 미미르는 아스가르드에 도착한 직후부터 줄곧 이런 상태였다.
환호하는 시민들. 악수를 청하는 사람들.
조용히 들어오고자 했던 미미르의 입장에서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않으냐. 내가 밖으로 나올 게 알려지면, 그놈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말이야.”
“그래서 토르를 택했다?”
“토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괜한 시비에 휘말리지도 않을 테고, 어디 가서 적당히 대접도 받을 수 있고.”
그리 대수롭지 않게 택한 대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미미르는 실로 오랜만에 자신의 선택에 후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말썽을 피우고 다닐 줄이야. 에잉.”
토르가 왕성 밖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한 지가 50여 년.
긴 잠에 빠져 있던 미미르로서는 토르가 이런 주목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토르에 대해 알아보는 데까지 눈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거기다.
“상황이 조금 곤란해졌군.”
유원은 자신들을 에워싼 인파 사이.
익숙한 얼굴이 그 인파를 헤치고 다가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
“네 이놈들-!”
우렁찬 성량.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가짜 주제에 진짜 행세를 하는 것이냐?”
토르가 유원과 미미르의 앞으로 나섰다. 잔뜩 성이 난 얼굴을 하고선, 여전히 떳떳한 듯 조금의 부끄러움 없이 고개를 빳빳이 세웠다.
모아지는 사람들의 시선.
어깨가 한 뼘은 올라가는 게 보였다.
‘저 녀석의 가장 큰 단점이지.’
그런 토르의 모습에 유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과한 정의감.
그리고 아스가르드를 아끼는 마음.
그런 것들은 다 좋지만, 토르에게는 딱 하나 심각한 단점이 있었다.
‘관심병.’
그는 자국민들을 아끼는 마음만큼이나 그들의 관심을 갈구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왕자라는 높은 위치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시선을 맞춰 왔고, 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결과적으로는 실보다는 득이 커서 다행이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조금 아쉬웠다.
“이, 이런 천인공노할 녀석이!”
“왕자님께 이게 무슨 무례냐!”
“어서 사과드리지 못할까!”
퍽, 퍼억-.
퍽-!
“어, 어어?”
토르가 당황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방금 전의 호통에 주위에 있던 시민들이 버럭 화를 내며 자신을 향해 들고 있던 과일이나 작은 물건 따위를 집어던졌던 것이다.
생각지 못한 상황.
유원이 힐끗, 미미르를 바라보았다.
‘네가 한 거냐?’
‘어쩔 수 없지 않으냐.’
사람들의 시선에는 아마 토르의 모습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고 있을 것이다.
미미르의 환상은 단지 미미르의 모습만을 바꿔 보이게 만든 게 아니었다. 아마 지금쯤 그들의 눈에 미미르는 토르처럼, 토르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고 있을 것이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그리고 그때.
“헉!”
다시금 눈앞에 있는 미미르를 발견한 토르의 눈에, 미미르의 본래 모습이 떠올랐다.
“어, 어, 어르…….”
“조용히 하거라.”
작은 속삭임.
미미르와 눈이 마주친 토르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 년에 한 번 깨어나는, 오딘의 유일한 친구.
또한.
어릴 적 토르 자신의 기저귀를 갈아주었던 아스가르드의 큰 어른이 바로 미미르였다.
저벅-.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미미르가 입을 열었다.
“돌아가면 혼날 줄 알아라.”
“예…….”
방금 전과는 달리 한껏 작아진 대답이었다.
토르와 유원의 눈이 마주쳤다. 미미르의 원래 모습이 보이는 것과 동시에 유원도 마찬가지로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오랜만의 재회였지만 따로 인사는 하지 않았다. 대신, 유원은 토르의 원망 섞인 눈총을 받아야 했다.
졸래졸래 따라오는 토르.
유원은 그를 힐끗거리고는 물었다.
“크로노스는 어떻게 찾을 생각이지?”
어차피 크로노스에 관한 이야기는 누가 들어도 알지 못한다.
무수히 많은 인파 가운데.
유원의 질문에 미미르가 답했다.
“찾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럼?”
“녀석을 상대할 사람이 문제지.”
저벅-.
왕성 밖.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가운데로,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존재감이 미미르를 향해 걸어왔다.
토르의 행차에 사람들이 환호했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였다.
토르를 향해 환호하던 사람들, 무슨 일 있냐는 듯 제 갈 길을 가던 사람들.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마저도.
“오딘 저 멍청한 녀석.”
저벅-.
그가 밖으로 나오자, 모두 조용히 입을 다물고 두 손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동안 기억은 좀 돌아왔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