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90
* * *
콰웅-!
황금색의 빛이 어둠을 밀어낸다.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이빨이 헤라클레스의 어깨를 물어뜯어 왔다.
부우웅-.
곤봉이 움직인 건 그때였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곤봉은 정확하게 이빨을 부숴 냈다.
쩌정-!
산산히 부서진 이빨의 잔해들.
사악-.
그것들을 손바닥으로 쳐 내고는 앞으로 돌진한다.
그림자 더 깊숙한 곳.
‘어리석은 혼돈’을 향해서.
번쩍-!
주먹에 벼락을 휘감아 뻗는다. 그러자 그림자가 걷히며 그 속에서 어리석은 혼돈이 모습을 드러냈다.
“잡았다.”
콰웅-!
어리석은 혼돈의 몸에 꽂히는 주먹.
하나 잡았다는 생각도 잠시. 어리석은 혼돈의 몸이 흩어지며 다시 그림자로 변해 헤라클레스를 덮쳤다.
당황할 틈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아니.
벼락이 반응했다.
츠츠츠츠-!
그렇게 잠시 벼락이 시간을 버는 사이.
부우웅-.
헤라클레스의 곤봉이 바닥을 내리쳤다.
쩌쩌저저정-!
투화악-!
곤봉을 내리찍은 땅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벼락이 번졌다. 사방에서 헤라클레스를 노리고 있던 이빨이 전격에 소멸되고,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어리석은 혼돈이 모습을 드러냈다.
츠츠, 츠-.
몸에 벼락을 휘감은 헤라클레스가 그런 어리석은 혼돈을 노려보았다.
황금색의 눈동자에 어리석은 혼돈의 모습이 비춰졌다. 분명 위협적인 힘임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어딘가 제대로 싸우려는 것 같지가 않았다.
“계속 도망만 다닐 셈이냐?”
“넌 제천대성이 아니다. 헤라클레스지.”
엉뚱한 대답.
하지만 그 대답에 헤라클레스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거인 학살자. 탑 최강의 육체를 가진 괴력사. 그리고 제우스의 핏줄.”
몇 가지 안 되는 정보였지만 가장 핵심적인 요약이었다.
어리석은 혼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거였다.
나는 너를 잘 안다.
그러니 이 싸움은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다고.
“네가 그 힘을 다루기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지. 매번 그 육체 하나만 믿고 싸우다가.”
번쩍-!
어리석은 혼돈의 옆으로 빛 한 줄기가 지나쳐갔다.
“슬슬 급한가 보군.”
“말이 많다.”
“그래. 급할 수밖에. 넌 제천대성처럼 마력이 넘쳐 나지 않으니까.”
콰웅-!
더 말을 들어 줄 생각이 없다는 듯, 어리석은 혼돈의 몸을 황금빛의 전격이 덮쳤다.
휩쓸려 날아가는 그림자. 어리석은 혼돈의 모습이 몇 갈래로 갈라져 헤라클레스의 앞뒤에 나타났다.
“화가 많이 난 모양이구나. 이리 화가 나서 앞뒤 재지 않고 날뛰는 걸 보면.”
“분명히 말했다. 화나지 않았다고.”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를 잘 안다. 제천대성도, 김유원도.”
이어진 어리석은 혼돈의 말이 결정타였다.
“그리고 제우스도 말이지.”
츠팟-.
헤라클레스와 어리석은 혼돈의 거리가 좁혀졌다.
부웅, 곤봉이 거리를 좁히며 머리 위로 떨어진다.
콰아아앙-!
쩌저저저-!
주위의 그림자들이 찢겨져 나가며 땅이 뒤집혔다. 거인화가 성난 포효를 내지르며 헤라클레스가 짐승처럼 날뛰었다.
그 위협적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혼돈은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녀석을 쉽게 죽였지. 그놈이 그리 어리석은 선택을 할 줄 알았으니까.”
쉽게 죽였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제우스는 애초에 어리석은 혼돈이 기간토마키아를 일으켜 거인족을 말살하기 위한 패였다.
그런데 그런 패가, 도리어 강력한 적이 되어 자신의 심장에 창을 꽂아 넣었다.
‘수십 개의 이름을 잃고, 또 손상되었다.’
그 전투의 여파로 인해 지금, 어리석은 혼돈은 평소처럼 싸울 수도 없는 상황.
헤라클레스와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여기서 헤라클레스까지 제거한다.’
헤라클레스는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가 지닌 힘과 체력, 그리고 기동성은 심상치 않은 수준이었다.
한 가지 결점이 있다면 제우스와는 달리 벼락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
하지만 그 문제도 시간이 해결해 줄 게 분명했다.
“그 입…….”
번쩍-
헤라클레스가 주먹을 휘둘렀다.
“닥치라고-!”
콰우웅-!
점점 끊어져 가는 이성의 끈.
헤라클레스는 확실히 도발에 약했다. 어리석은 혼돈은 계속해서 헤라클레스로부터 거리를 벌리며 그의 마력을 갉아먹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헤라클레스의 몸에서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강철 같은 체력이라 해도 이렇게 쉬지 않고 벼락을 사용해서야 몸과 마력이 버틸 재간이 없었다.
‘녀석의 목을 거둘 수 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그렇게 잠시간 시간을 끄는 사이.
[‘어리석은 혼돈’이 더 큰 혼돈을 마주합니다.]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이 ‘어리석은 혼돈’을 마주합니다.]멈칫-.
잠시간 그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설마-.’
그리고 그 잠시.
부우웅-.
헤라클레스의 주먹이 어리석은 혼돈의 얼굴을 덮었다.
쩌억-!
* * *
싸움이 한창이던 니벨룽겐의 랭커들이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그에 맞서 싸우던 아우터들 역시 정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마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늘을 뒤덮었던 거대한 고래, 우보 사틀라가 온통 검은 그림자에 뒤덮였다.
“저게…… 다 뭐야?”
“하데스라도 온 건가?”
“그런 게 아닌…… 어어, 야! 정신 차려!”
풀썩-.
그 광경을 지켜보던 랭커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손오공의 분신들 중 숫자가 낮은 자들은 일부 마력을 잃고 소멸되었고, 아우터의 촉수들 역시 꿈틀거리다 바닥에 축 늘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싸움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기사들은 저마다 무기를 내려놓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체, 뭔 일이 벌어지는 거야?”
그렇게 땅 위에서 혼란이 벌어질 무렵.
“…….”
꽈드득-.
손오공은 그림자의 이빨에 씹어 먹히고 있는 우보 사틀라의 위에 서 있었다.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여의봉에는 물론, 궁니르에도 꿰뚫리지 않던 우보 사틀라의 단단한 피부를 꿰뚫는 이빨이라니.
더욱 소름 끼치는 건, 눈앞에 나타난 광경이 낯설지 않다는 점이었다.
‘김유원 그 자식…….’
이 그림자.
그리고 이 익숙하고도 불길한 기운.
“이거 좀 치워 봐라.”
그것은 슈브 니구라스가 처음 탑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싸움이 끝난 직후, 유원이 지니고 있던 보라색의 알을 손오공이 먹으려 했을 때 나타났던 것과 같았다.
“그 전에 네가 알부터 손에서 놔.”
“아, 맞다.”
손오공은 당시엔, 저것이 그리 위험하다 여기지 않았다.
분명 슈브 니구라스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지만 단지 그뿐.
손오공은 저 이빨이 단지 조금 날카로운 송곳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그만 해라, 이제.”
“재밌지 않냐?”
장난을 친 건 그래서였다.
그리 위험해 보이지 않아서.
만약 저 이빨이 자신에게로 향한다 해도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지금은.
콰득-.
그때의 장난감이, 우보 사틀라의 몸을 짓이기고 있었다.
꿀꺽-.
긴장감에 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지금은 저 이빨이 자신에게로 향해 있는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아니.
이건 공포였다.
‘죽을 수도…… 있나?’
머릿속에 떠오른 물음표.
손오공은 어지간한 일에는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그건 단지 그의 천성이 용감하고 겁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천계의 반도를 몽땅 먹어치우고 불사의 몸이 된 후.
손오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최고의 무기를 가지고 싸울 수 있었다.
그런 손오공이 죽을 위기를 느낀 건 지금까지 한 번뿐.
그런데 오늘.
그 한 번이 두 번으로 늘어났다.
저벅-.
소리 없는 가운데 떨어진 발소리.
손오공의 귀가 쫑긋거리며 고개가 돌아갔다.
그림자로 뒤덮인 우보 사틀라의 등 위로.
언제 왔는지 유원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일은, 끝난 거…….’
손을 흔들어 보이며 유원을 부르려던 손오공이 입을 멈췄다.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분명 말은 했는데도 말이다.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니, 딱히 기운 같은 게 아니었다.
이건 한기였다.
쩌적, 쩌-.
발밑이 얼어붙었다.
마치 우주의 한가운데 있는 기분이었다. 저 멀리 유원이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게 보였지만,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분명 겉으로는 자신이 아는 김유원이 맞을 것인데.
‘꼭…… 다른 사람 같군.’
치고 박고 싸우며 든 정이라지만, 함께해 온 시간이 적지 않았다.
유원과는 동료이며 동시에 친구였다. 더군다나 그는 빵 점인 눈치와 달리, 눈썰미는 탑에서 최고라고 자부했다.
그런 손오공의 눈에 지금의 유원은 평소와는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사틀라…….”
오싹-.
꽈아악-.
목소리를 듣는 순간, 손오공은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는 여의봉을 겨눌 뻔했다.
목소리는 분명 유원이 맞았다.
저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할 리 없다.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그는 유원의 껍데기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김유원 저 새끼…….’
손오공은 분명히 확신했다.
화륵-.
‘몸에 뭐가 깃든 거야?’
화안금정에 비친 유원의 뒤로, 검은 옷을 걸친 백발의 남자가 비춰져 보인다.
저건 대체 누구일까.
유원의 입이 움직였다.
“난 그런 이름을 준 기억이 없는데.”
무언가 곰곰이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이름을 준 적이 없다. 손오공은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 머리를 싸맸다.
‘이름? 무슨 이름?’
콰드득-.
그 사이에도 이빨은 계속해서 우보 사틀라의 가죽을 꿰뚫고 있었다.
몸을 꿈틀거리며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는 우보 사틀라.
서서히 우보 사틀라의 몸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게 느껴졌다.
“이런 미친…….”
욕설을 중얼거리며 손오공이 서둘러 근두운을 불렀다.
추락하는 우보 사틀라보다 먼저 아래로 내려가, 분신들과 함께 여의봉을 위로 겨눈다.
““커져라, 여의-.””
투콰과광-!
남아 있는 분신들과 함께 여의봉을 뻗어 떨어져 내리는 우보 사틀라를 들어 올린다.
만약 여기서 우보 사틀라가 추락한다면 그 아래에 있는 니벨룽겐의 랭커들은 아마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기긱, 기기긱-.
그렇게 손오공과, 손오공의 분신들이 우보 사틀라를 들어 올리는 와중.
“그 녀석이 이름까지 만들기 시작한 건가.”
그 위에 올라서 있는 유원은 결국 조소를 지었다.
거리가 멀었지만 손오공의 눈에는 유원의 표정이 똑똑히 보였다.
다만.
그 표정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즐거운 건지, 아니면 화가 난 건지.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저건 김유원이 아니야.’
“내 기록을 이딴 더러운 것에 맡기다…… 야, 이 녀석아.”
그때였다.
알아먹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던 유원의 말투가 변하며 문맥에 맞지 않는 말이 튀어나온 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얼른 끝내. 사람들 피곤하게 하지 말고.”
분명 얼굴이나 목소리는 똑같았다.
하지만 어조나 분위기, 그리고 표정 같은 것들이 순식간에 전혀 다른 사람처럼 바뀌었다.
“엥?”
방금 전까지 온몸을 옭죄어 오던 긴장감과 공포 같은 것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화안금정을 통해 저 멀리, 유원의 모습을 보고 있던 손오공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건 또 처음이었다.
한 사람의 모습 위로, 두 명이 보인 건.
“김유원인……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