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34
한제는 이리저리 이동하며 수많은 월노족을 삼켜 체내의 부상을 빠르게 회복했다. 부러진 뼈는 다시 붙었고 상처는 삽시간에 아물었다.
각 수련성에 가부좌를 튼 채 진을 구성하고 있던 월노족 노인들은 진이 무너져 내린 순간 피를 토해냈지만 곧장 정신을 차렸다.
그중 일부는 한제가 발휘한 검은 안개 속으로 달려들었고 다른 일부는 백발노인의 안내에 따라 탁삼에게 달려들었다.
백발노인이 오른손을 휘두른 순간 미간에서는 초승달 낙인이 회전하기 시작했고 노인은 눈 깜짝할 사이에 고신에 육박할 정도로 거대해졌다.
이는 월노족이 오랜 시간 연구한 끝에 파악한 고신의 신통술이었다. 고신의 힘을 끊임없이 흡수한 끝에 어느 정도 흉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고신과 비슷한 형태를 이룬 자는 노인을 포함해 총 아홉 명이었다. 그들은 그 상태로 탁삼과 맞붙었다.
하지만 그들은 탁삼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심지어 탁삼의 포효에도 뒤로 물러날 정도였다.
한편, 한제는 자신을 향해 달려든 노인이 가까워진 순간 몸을 휙 날려 세상에 녹아들더니 다른 쪽에서 나타나 계속해서 흡수를 이어나갔다.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지는 사이 순식간에 3만 명 이상의 월노족이 흡수당했다. 그 무렵, 한제는 부상을 절반 정도 회복한 상태였다.
같은 시각, 탁삼은 낮은 기합을 내질렀다.
“부서져라!”
쾅!
고신을 흉내 냈던 노인은 탁삼의 주먹에 폭발해버렸다. 그리고 무너져 내린 몸이 흩어지기도 전에 검은 안개가 달려들어 노인을 깔끔하게 흡수해버렸다. 물론 한제였다.
월노족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거나 도망쳤다. 얼굴은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고신의 강력함을 체험하기는커녕 살아 있는 고신을 본 적도 없었다.
한제와 탁삼은 처음으로 손발을 맞춰보는 것이었지만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짧은 동맹은 탁삼의 두 눈이 서늘하게 번득인 순간 끝났다. 그는 한제를 향해 오른손을 뻗더니 곧장 움켜쥐었다.
“네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넌 오늘 절대 도망치지 못한다!”
미리 이런 상황에 대비하고 있던 한제는 피식 웃더니 뒤로 물러나면서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의 얼굴에 푸른 핏줄이 돋아났다.
“고신술, 성신선(星神璇)!”
한제는 두 손으로 미간을 두드렸고 그러자 여섯 개의 반점이 회전하면서 튀어나와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했다. 탁삼이 반점으로 수련자를 흡수하려 할 때와 매우 비슷한 모습이었다.
사실 한제는 이 고신의 신통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충분한 고신의 힘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신통술이기 때문이다.
허나 한제는 모든 것을 미리 계획하고 있었다. 봉신진에서 탁삼으로부터 받은 고신의 힘을 이용해 술법 허를 발휘한 그는, 고신잔골이 달려들던 순간 온전치 못한 부적을 소환하면서 그 안에 담긴 고신의 힘 일부를 체내에 몰래 남겨두었다. 덕분에 성신선은 강력한 고신의 힘을 품고 있었다.
목숨을 건 첫 번째 전투 (4)
콰쾅!
탁삼의 주먹과 성신선이 충돌하면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한제는 피를 토해내며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는 한편 붉은 검을 소환해 매섭게 휘둘렀다.
탁삼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연이어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뜻밖에도 한제가 고신의 신통술을 발휘하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성신선에서 흘러나오는 무궁무진한 흡입력이 주먹에 닿은 순간 그의 체내에 존재하는 고신의 힘 일부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빨아들인 힘으로 탁삼을 공격했다.
탁삼은 오른팔이 저릿했고 일순 우뚝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의 붉은 검에서 발산된 힘이 그의 오른손에 떨어졌다.
쉿!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탁삼의 검지가 잘려나가면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크윽! 이한제! 가만두지 않겠다!”
탁삼의 눈에 진득한 살기가 담겼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제를 죽이겠다는 생각밖에 남지 않았다.
한편, 탁삼의 주먹에 중상을 입은 월노족 노인들 중 가장 신분이 높은 백발노인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탁삼을 노려보았다. 그는 한제가 탁삼을 이기지 못할 것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그러나 두 고신 사이의 승부가 끝나는 순간, 월노족 역시 멸망하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는 한제를 돕기로 했다. 월노족이 존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동족들이여, 월령을 붕괴시켜 우리 월노족을 위한 제사를 올려라!”
노인의 다급한 말에 곁에 있던 몇몇 이들의 얼굴에 슬픔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들은 결인을 그린 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순간 그들의 몸이 무너져 내리면서 미간에 박혀 있던 초승달 낙인이 튀어나와 일제히 백발노인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백발노인의 몸이 급격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는 그 상태에서 두 손으로 아래쪽을 가리키며 거칠게 외쳤다.
“고신잔골!”
그 순간, 노인의 온몸에서 강한 달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지면에 놓인 거대한 고신의 손가락뼈를 뒤덮었다.
손가락뼈는 그 빛에 자극을 받은 듯 휙 날아오르더니 엄청난 속도로 탁삼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손가락이 잘려나가면서 분노해 있던 탁삼은 포효를 내지르며 두 팔을 휘둘렀다. 그러더니 고신의 손가락뼈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온몸에서 핏줄이 돋아났고 엄청난 힘을 견뎌낼 수 없었는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뒤로 밀려났다.
“다 죽여주마!”
날카로운 외침이 울린 순간, 여섯 개 반점 중 하나에 봉인되어 있던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무너져 내리면서 무시무시한 힘이 탁삼의 전신으로 흘러들었다.
탁삼은 그 힘을 이용해 뒤로 밀려나는 속도를 늦췄고 그때 미간에서 여섯 개의 반점이 회전하더니 거대한 회오리를 이루었다.
“이건 진정한 9성급 고신의 손가락뼈가 아니었군! 9성급에 가까운 고신의 뼈일 뿐이야! 그렇다면 삼켜주지!”
그는 그 뼈를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처럼 반점에 봉인할 생각이었다. 지금 그의 반점 안에는 얼마 전 태고 성신에서 흡수한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를 제외한 다른 존재는 없었다.
한편, 한제는 이 광경에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특히 탁삼의 광기는 두려울 정도였다.
‘광기에 사로잡힌 자는 수도 없이 봐왔지만 탁삼보다 심각한 자는 없었다.’
고신의 손가락뼈 안의 기운은 고고한 태양과 같아 근본적으로 흡수할 수가 없었다. 같은 고신이라고 해도 그 기운 앞에서는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 한제의 눈에 빛이 번득였다.
“허나 탁삼이 흡수할 수 있다면 나 역시 할 수 있을 터!”
그는 결심한 듯 이를 악물었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 지금 고신의 뼈를 흡수하려 하는 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탁삼이 아닌가!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한제는 일단 결정을 내리자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려 한 줄기 빛이 되어 탁삼 근처에 이르렀다. 그리고 고신의 손가락뼈를 향해 붉은 검을 후려쳤다.
쾅!
굉음과 함께 격렬하게 흔들리던 손가락뼈는 이내 붉은 검의 위력 아래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반으로 뚝 잘라졌다. 붉은 검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손가락뼈가 갈라진 순간, 그 안에서 폭발적인 힘이 뿜어져 나와 사방을 휩쓸었다. 한데 그 대부분은 탁삼에게 향했다.
“크아악!”
탁삼은 괴로운 듯 비명을 내지르며 피를 한 움큼 토해내더니 다급히 저 멀리까지 물러났다.
허나 반으로 갈라진 손가락뼈 역시 충돌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탁삼의 회오리에 녹아들어 반점에 봉인됐다.
탁삼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로 끊임없이 피를 토하면서도 한제를 죽이겠다는 생각은 포기하지 않았다.
한데 그때, 세 번째 단계 수련자를 봉인한 반점이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헛!”
탁삼은 흠칫 놀라더니 한제를 죽이려던 것조차 포기한 듯 긴 빛이 되어 먼 곳으로 도망쳤다.
한편, 부러진 손가락뼈에서 뿜어져 나온 충격에 아직 멀리 도망치지 못했던 월노족 사람들 역시 피를 뿜으며 죽고 말았다.
백발노인 또한 육신이 무너져 내리며 피를 토해냈고 허약해진 원신만 가까스로 도주했다.
충격의 근원에 가까이 있던 한제 역시 큰 타격을 받고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애초에 그의 몸으로는 견뎌낼 수 없는 힘이었다.
하지만 그 힘이 날아든 순간, 온몸으로 남색 화염과 번개, 원인과 결과 삶과 죽음, 그리고 진실과 거짓까지 전부 발산했다.
다섯 갈래의 본원은 동시에 나타나 하나의 회오리를 형성하더니 밀려드는 충격에 대항했다. 동시에 두 눈으로 붉은 빛을 번득여 극의 경지까지 쏘아 보냈다.
펑! 펑!
요란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 와중에 뒤로 물러난 한제는 수련성의 절반 크기에 달하는 고신의 손가락뼈를 쥔 채 축지성촌을 발휘해 도주하려 했다.
하지만 떠나기 직전, 그의 두 눈이 서늘하게 번득이더니 채찍 하나가 나타났다.
곤극의 채찍.
채찍은 곧장 길게 늘어나더니 도망치고 있던 백발노인의 원신을 후려쳤다. 다음 순간, 한제와 거대한 고신의 손가락뼈, 노인의 원신은 월노족 성역 안에서 사라졌다.
‘나름 만족스런 수확이로군.’
탁삼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자신을 죽이는 것도 포기하고 다급하게 도망갔는지 한제는 알 수 없었다. 허나 탁삼의 미간에서 반점이 눈부신 빛을 발했던 것만은 기억이 났다.
자세한 사정이야 어쨌건, 한제는 고신의 손가락뼈 절반과 곤극채찍으로 봉인한 월노족 백발노인의 원신은 저물공간에 던져놓은 후 파문을 일으켜 어딘가로 이동했다. 그러고는 다급히 저물공간에서 이천매를 소환했다.
탁삼에게 쫓기던 중 원력으로 감싸 저물공간에 넣어둔 덕에 세월 신통력이 유지되면서 그녀는 아직 무사했다. 허나 생기는 상당히 옅어진 상태였다.
한제는 누군가가 심장을 콱 움켜쥐기라도 한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당시 하늘에 맞서서라도 이모완을 살려내겠노라 맹세했던 것처럼, 그는 이천매에게도 어떻게든 살려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럴 생각이었다.
이천매를 조심스레 안아 든 한제는 자신의 부상을 돌볼 틈도 없이 원력으로 그녀의 몸을 감싸 심신과 생기를 자양했다.
주위는 한없이 적막했다. 온 세상에 그들만 남은 듯한 고요함 속에서 한제는 묵묵히 이동했다. 지금 한제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이천매를 남몽도존에게 데려가는 것뿐이었다. 어쩌면 이천매를 위한 마지막 배웅일지도 모른다.
“배웅해줘서 고마워요.”
10년 전 이천매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우주의 아름다움은 반짝이는 별이나 수시로 우주를 가르는 운석이 아닌, 극치의 고요함에 있는 것이다. 그런 고요함 속에서는 고독을 세상에 오로지 혼자 남아 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남몽도존이 있는 남사족의 위치를 더듬으며 한제는 점점 속도를 높였다.
그러는 동안 이천매는 점점 약해져갔고 이에 따라 점점 많은 원력과 신통력을 주입해야 했다.
남사족은 태고 성신에서 학살하기 쉽지 않은 부락 중 하나로 그 이름처럼 부족원들은 모두 머리카락이 남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