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48
한제에게는 평범한 것이었지만 종대홍에게는 보물과도 같았다. 그 비검 덕분에 종대홍은 화신기 중기 수련자라도 거뜬히 해치울 수 있었고 심지어 화신기 후기 수련자에게서도 목숨을 보중할 수는 있었다.
그는 허이국과 달리 신중했다. 데리고 다니는 수련자의 수도 적었지만 대신 그는 섬뇌족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어떤 물건이 뇌정으로 교환하기 좋은지도 잘 알았다. 뿐만 아니라 동굴들의 위치도 많이 파악하고 있었고 한제가 하사한 단약과 법보도 있었다.
‘이번 임무를 잘 완수하면 선배님이 더 뛰어난 단약과 법보를 주시겠지? 흐흐흐.’
종대홍은 상상만으로도 잔뜩 흥분했다. 허나 허이국에 생각이 미치자 절로 이가 갈렸다. 이미 그에게 허이국은 생애 최대의 적이었다.
‘빌어먹을! 선배님 곁에는 나 종대홍 하나뿐일 줄 알았건만. 허이국 그자는 후안무치한 삶을 오래도록 살아오면서 아첨술을 수련해온 자다! 나보다 수준도 높고 선배님과도 오랜 시간 함께해왔지. 허나 질 수는 없다. 나 또한 아첨술을 수백 년이나 연구해온 몸! 허이국에게 질 마음은 없다! 내 모든 힘을 발휘해 승부해주마!’
종대홍은 냉소하며 일행과 함께 여러 동굴을 휩쓸었다. 동시에 그는 언제라도 한제를 향해 아첨술을 발휘할 수 있도록 대비했다.
허이국과 종대홍이 서로를 잔뜩 경계하고 있던 그때, 한제는 천뇌종 안에서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취뇌인(聚雷印)이라는 섬뇌족 사람의 공법이 기록된 옥패가 놓여 있었다.
취뇌인을 발휘하면 체내의 천둥번개를 순간적으로 압축해 엄청난 폭발력으로 바꿀 수 있었다. 허나 이 공법에는 부족의 낙인이 필요했고 오랫동안 수련해 낙인을 활성화해야만 발휘할 수 있었다.
한제가 이 공법을 연구하는 이유는 섬뇌족의 부족 낙인을 완벽하게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야만 불멸의 번개를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직감이 있었다.
한제는 강력한 신식 덕분에 금세 취뇌인을 간파할 수 있었다.
취뇌인은 오직 천둥번개 유형의 수련자만이 발휘할 수 있는 신통술로 그 위력은 각자 지닌 천둥번개의 힘에 따라 달랐다. 예컨대 화신기 수준인 종대홍은 단시간에 체내의 천둥번개를 열 배 정도 압축시켰다가 순식간에 폭발시킬 수 있다. 그 정도면 섬뇌족 안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계내의 주작성에서는 충분히 강자에 들 터였다.
허나 취뇌인의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단계에 이르러야만 했다. 그래야 세상에 존재하는 강력한 천둥번개의 힘을 1천 배, 1만 배 이상 압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위력은 어마어마할 터.
취뇌인은 섬뇌족의 신통술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들은 수만 년간 끊임없이 천둥번개의 술법을 연구해온 덕분에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없음에도 태고 성신의 강력한 부족 중 하나에 들었다.
옥패에서 신식을 거둔 한제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섬뇌족의 최강자는 다섯 번째 천쇠를 겪은 선조다. 세 번째 단계까지는 딱 한 걸음 남았지. 비록 그 한 걸음은 하늘과 땅 사이만큼이나 아득하지만 그가 강력한 자임은 분명하다. 만약 그가 취뇌인을 발휘한다면 천둥번개의 힘을 수만 배는 압축할 수 있을 터. 그 정도면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라 해도 일정시간은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취뇌인을 머릿속에 새긴 한제는 손을 들어 결인을 그렸다. 순간 사방에서 천둥이 울리더니 수많은 번개가 허공에서 나타나 은빛 뱀처럼 한제의 오른손으로 몰려들었다. 이내 그의 손안에 주먹만 한 번개 공 하나가 응집됐다.
번개 공은 순식간에 압축되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 무려 3만 배로 압축됐다. 육안으로 살피기란 불가능해 신식을 펼쳐야만 그 압축된 힘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육신으로는 화신기 수준의 위력밖에는 내지 못한다. 허나 내 원신은 강력하니 그런 한계에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지. 또한 누구도 내 원신의 존재는 눈치 채지 못한다. 더구나 섬뇌족의 선조라 해도 지금의 나만큼 천둥번개를 통제하지는 못해!”
한제는 이제 거의 티끌처럼 압축된 번개의 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3만 배의 압축이 이 육신으로 견딜 수 있는 한계로군.”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그 압축된 힘은 조용히 흩어져 사라졌다. 이어서 한제는 눈을 감고는 섬뇌족의 낙인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섬뇌족의 낙인은 불멸의 번개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였다. 그러니 낙인을 연구하는 것은 곧 간접적으로 불멸의 번개를 연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제가 연구한 번개 낙인은 우비의 것이었다. 우비가 낙인을 뜯어내기는 했지만 육신의 낙인을 뜯어낸다고 해서 영혼에 새겨진 낙인까지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연구를 진행할수록 한제는 불멸의 번개가 얼마나 오래된 것이며 또 강력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낙인에서는 갖가지 번개의 변화가 느껴졌고 심지어 그 안에서 번개의 본원이 느껴지기도 했다.
허나 그 본원을 흡수할 수는 없었다. 그 안에는 잠든 듯 보이는 의지가 어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각각의 낙인은 섬뇌족 사람들이 수련한 힘을 계속해서 빨아들이고 흡수했다.
뇌정전(雷晶殿)
시간은 흘러 한제가 대전 안에 머문 지도 한 달이 지났다. 그 동안 계속해서 낙인을 연구하던 한제는 점차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한제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어려 있었지만 두 눈만큼은 기이하게 번득였다.
“섬뇌족 사람들의 낙인은 불멸의 번개에서 기인한 것.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부족의 낙인을 활성화했고 그럴수록 천둥번개의 힘을 더 강력하게 발휘할 수 있게 됐지. 낙인이 그들의 수준을 높일 때,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생명과 천둥번개의 힘을 바쳤고⋯⋯. 이 점은 향불과 같다!”
한제는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이를테면 불멸의 번개는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 섬뇌족 사람들은 그의 제자인 셈이다. 각 제자들은 낙인을 통해 끊임없이 수련하면서 가진 것을 바치지. 또한 많은 것을 바칠수록 더 많은 것들을 얻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섬뇌 순위표의 뇌정과 비슷하군!”
한제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태고 성신의 모든 부족은 낙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낙인들은 미간에만 고정된 것은 아니다. 남사족은 남색 머리카락이 낙인이지. 한데 만약 태고의 성신 모든 부족의 낙인이 섬뇌족과 같다면⋯⋯ 그렇다면 태고의 성신은 혹시⋯⋯?”
한제의 두 눈이 바짝 졸아들었다.
“이 태고의 성신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어떤 존재가 구축해둔 하나의 울타리일까? 수도자는 자신의 수많은 제자가 사는, 수많은 수련성으로 가득한 계를 열어 나를 공격했다. 그곳의 수련자들에게 수도자는 신과 다름없는 존재였어!”
추측이 이어질수록 심장이 쿵쾅댔다.
“모든 것은 추측일 뿐. 허나 추측이 옳다면 봉계의 진은 단순히 계내 사람들을 가둬두기 위한 용도만은 아니겠군. 게다가 은시는 향불을 가리켜 독이자 속임수라 했다. 남몽도존은 장존이 계내에서 누군가의 고함에 중상을 입고 다급히 도망쳤다고 했지. 이 모두가 혹시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대체 계내와 계외를 뒤덮은 비밀은 무엇인가! 또한 원고 선역의 존재는 또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인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제는 심신이 경련할 지경이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추측을 마음속 깊은 곳에 묻었다.
“진위 여부를 떠나 향불은 조심해야겠어.”
★ ★ ★
며칠 뒤, 허이국보다 앞서 도착한 종대홍은 한제가 폐관수련 중이라는 말을 듣고는 곧장 대전으로 향했다.
자신과 함께 임무를 수행한 이들을 모두 물리고 그는 홀로 대전을 등지고 선 채 주위를 경계했다. 주인을 지키는 충성스런 종과 같은 모습이었다.
잠시 후 한제로부터 들어오라는 허가가 떨어지자 종대홍은 벅찬 마음을 안은 채 얼른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들어갔다. 그는 허리를 굽힌 채 다소 비굴하게 웃으며 빠른 걸음으로 한제에게 다가갔다.
“소인 종대홍, 선배님의 요구대로 곳곳을 돌아다니며 모아온 물건들을 바칩니다.”
이어서 그는 미간을 두드려 지난 몇 달간 모아온 것들을 전부 꺼냈다. 대전 안은 각종 물건들로 높은 언덕이 형성됐다.
뒤이어 종대홍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몇 달 만에 선배님을 다시 뵈오니 온몸의 힘이 솟는 듯합니다. 듣기로 선배님께서는 이곳에서 좌선을 하며 호흡을 이어오셨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수준도 더 높아지신 것 같군요! 선배님의 곁을 늘 보필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한제는 종대홍을 힐긋 보더니 대전 안에 쌓인 물건들을 거두고는 검지를 튕겨 단약 한 알을 그에게 넘겼다.
“수고했다. 이건 네게 선물로 주마.”
얼른 단약을 받아 든 종대홍은 바르르 떨더니 한층 격앙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을 위해 일을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이런 상을 주시지 않아도 온 마음을 다해 선배님을 모시고 섬겼을 것입니다. 선배님, 이제 여러 물건들을 뇌정으로 바꿀 때입니다. 뇌정전(雷晶殿)이 곧 열릴 예정이니까요. 어떻게, 지금 당장 가시렵니까?”
한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대홍은 뛸 듯이 기뻤다. 허이국보다 먼저 돌아와 한제와 독대하는 것은 그의 계획이었다. 허이국이 없는 상황에서 아첨술을 발휘해 그를 따돌린 채 홀로 한제를 뇌정전으로 안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허이국!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선배님께 점수를 딸 수만 있다면 뇌정으로 바꿀 수 있는 물건 따위야 얼마든지 바칠 수 있지. 선배님 곁에 있으면 더 좋은 콩고물이 떨어질 테니까! 게다가 선배님은 섬뇌 순위표 상위권에 올라가시려는 모양인데 그렇게 된다면 나 역시 빛을 볼 수 있을 터! 어쩌면 섬뇌족에 내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될지도 모르지!’
종대홍의 야심은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그와 허이국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했다.
가진 물건을 언제나 뇌정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뇌정으로 교환할 수 있는 시간은 1년에 단 사흘뿐이었다.
열세 개 수련성에 있는 뇌정전은 이 사흘 동안만 문을 열었기에 수련자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또한 뇌정전에서는 반대로 섬뇌족의 법보나 공법 따위를 뇌정전으로 살 수도 있었다.
허나 뇌정을 사적으로 거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직 뇌정전에서만 거래해야 했다. 물론 암거래가 있긴 했으나 이는 위험해 수준이 아주 높은 자들이 아니면 시도하지 않았다. 심지어 뇌정을 임의로 양도하거나 전이할 수는 없다는 제한 때문에 사적인 거래는 절차도 매우 까다로웠다.
한제는 종대홍의 안내에 따라 뇌정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뇌정전은 수련성의 중앙, 구름을 뚫을 듯 높이 솟은 산봉우리 꼭대기에 있었다. 그 사방으로는 고리 형태의 분지가 있었는데 그 안은 언제나 푸른 안개가 가득해 누구도 쉽게 발을 들이지 못했다. 그 안개에 발을 들이면 천둥번개의 공격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그곳은 금지(禁地)였다.
그러나 뇌정전이 열리는 사흘 동안은 푸른 안개가 약간이나마 흩어져 통행할 수 있는 길이 생겨났다.
천뇌종에서 뇌정전까지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사실 천뇌종은 수련성 가장자리에 있는, 당시 주작성의 조나라 같은 위치였다. 그러니 애초부터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우비만 해도 평생 원래 살던 곳으로부터 반경 10만 리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우비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수준이 갑자기 높아진 것에 대해 의아해하겠지만 어차피 우비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음을 알았기에 한제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다.
한제와 종대홍은 보름을 이동한 끝에 수련성의 중심부에 도착했다.
그 보름 동안 종대홍은 전력을 다해 끊임없이 아첨술을 발휘했다. 게다가 그는 눈치까지 빨리 한제의 눈빛만 보고도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 극진히 모시고 또 보필했다.
확실히 이런 면에서 종대홍이 허이국보다 나았다. 한제는 그런 종대홍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단약을 아낌없이 나눠주었고 수준을 높이기 위해 보완해야 할 부분도 지도해주었다.
이에 더욱 충심이 불타오른 종대홍은 분부가 떨어지기도 전에 마주치는 이들을 처리하고는 그들로부터 대량의 물건을 거두어 한제에게 바쳤다.
“주인님, 조금만 더 가면 뇌정전입니다. 뇌정전 범위에서는 교전이 엄격히 금지되니 그때부터는 강탈이 불가합니다. 수련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도이기도 하지요.”
종대홍은 어느새 한제에 대한 호칭을 선배님에서 주인님으로 바꾸었다.
‘허이국 그놈이 주인님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질쏘냐!’
주인님이라 부르겠다는 종대홍의 말을 한제는 거절하지 않았다.
뇌정전의 범위로 들어서자 수련자가 점점 많아졌다.
종대홍은 무언가를 잔뜩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이곳에서는 교전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지만 이렇게 많은 수련자들 틈에 있으니 절로 긴장된 것이다.
몇몇 수련자는 연합을 결성하기도 했다. 열 명이 넘는 그들이 요란하게 휘젓고 다니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피해 빙 돌아가야 했다.
‘섬뇌족 수련자들의 수준이 계내 수련자들보다 훨씬 높군. 이곳만 해도 대부분은 화신기에 이르렀고 영변기 수련자도 적지 않아.’
한데 그때, 한제와 종대홍의 뒤쪽에서 강력한 기운이 나타났다. 동시에 콰르릉 하는 거대한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그러더니 흑의의 중년 사내가 나타났다. 도관을 쓴 그는 뒷짐을 진 채 한제의 곁을 스쳐 갔다.
사방의 수련자들은 분분히 공손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정기 수련자다!”
“무이산(武夷山)의 흑마법왕이야! 듣기로는 이미 문정기 초기 절정에 이르렀다는군. 언제라도 문정기 중기로 승급할 수 있다는 거야!”
“섬뇌 순위표에서 766등에 올라 있으니 이번에 몇 위나 올라갈지 궁금하군!”
종대홍이 얼른 작은 소리로 설명했다.
“주인님, 저자는 무이산의 흑마법왕입니다. 무이산에는 문정기 수준에 이른 사대법왕이 있는데 그중 하나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