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24
오래된 무덤의 균열. 그 위는 무서울 정도의 힘을 품은 짙은 안개가 뒤덮고 있었다. 세 번째 단계 수련자조차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법한 힘이었다.
10만 리를 뒤덮은 안개 밖으로는 수많은 태고 성신 수련자들이 있었다.
그때, 안개 깊은 곳, 즉 오래된 무덤의 균열 안에서 급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났다. 아직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머지않아 태고 성신 전역을 뒤흔들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오래된 무덤의 균열 안에서 짙은 죽음의 기운을 품은 폭풍이 몰아쳤다. 고신과 고마, 고요들이 죽기 전 품었던 분노, 여기에 각 암석 조각 위에 놓인 머리들로부터 피어오른 원한이 합쳐진 결과였다.
한데 모인 그것들은 폭풍을 균열 밖으로 몰아내 주위를 뒤덮은 짙은 안개를 흩어버리려 했다.
폭풍에 휩쓸리자 10만 리를 뒤덮은 안개에서 기이한 소리가 울렸다. 이 소리는 처음에는 먹먹하고 미약했으나 점점 커지더니 곧 온 하늘을 진동시켰다. 그리고 이내 안개가 꾸물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안개의 영혼이 분노에 포효하며 우주를 휩쓸려 드는 듯했다.
격렬하게 꿈틀대던 안개가 곧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에 짙은 안개 너머에서 이곳을 관찰하고 있던 수련자들이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처음 오래된 무덤이 나타나자 태고 성신의 강력한 수련자들은 모든 일을 중단하고 다급히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곧 심신을 진동시키는 충격에 휩싸여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안개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지금 안개는 거대한 회오리 폭풍이 되어 우렁찬 소리와 함께 퍼져 나가고 있었다.
“크아악!”
“으헉!”
미처 피하지 못하고 안개 회오리에 휩쓸린 수련자들의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뼈만 겨우 남긴 채 녹아내렸고 원신조차 순식간에 소멸했다. 심지어 네 번째 천쇠에 이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안개 회오리가 퍼져 나가면서 안개가 뒤덮은 범위는 순식간에 1백만 리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멈출 생각을 않고 점점 넓은 범위를 뒤덮었고 잠시 후 수천만 리를 뒤덮기에 이르렀다.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데 기이하게도 안개에 휩쓸린 모든 수련자가 죽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수십 명 중 한 명 꼴로 안개에서 튕겨 나오고도 아무런 부상을 입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심지어 이들은 이전보다 훨씬 생기가 넘쳤고 1천 년 이상 젊어진 것만 같았다.
게다가 그들의 미간에는 본래의 낙인 옆에 기이한 낙인이 하나 더 생겨나 있었다. 어떤 숫자 같은 낙인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 자체로 하나의 숫자였다.
미간에 숫자가 새겨진 이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흡입력에 수천만 리를 뒤덮은 회오리 폭풍 중심의 오래된 무덤의 균열로 끌려 들어갔다.
잘생긴 소년의 모습을 한 묘음도존의 분신은 다급히 수천만 리를 물러나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비록 표정은 어두웠지만 그럼에도 이곳을 떠날 마음은 없는 듯했다.
‘이곳은 분명 오래된 무덤이다. 세상이 생겨난 이래 딱 한 번 열렸을 뿐인데 그 안에 들어간 이들은 엄청난 행운을 얻게 됐다고 했지! 법보뿐만 아니라 단약, 수많은 신통술, 심지어는 세 번째 단계 수련자들을 위한, 공겁의 경지에 진입하는 방법까지도 얻을 수 있다고 했어!’
그는 뒤로 물러나던 와중에 가볍게 두 손을 휘둘렀다. 향불의 세계가 열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내 그의 몸은 곧 충만한 향불의 힘으로 뒤덮였다. 이 힘은 곧 빽빽한 향불의 혼을 형성했다.
그를 에워싼 수많은 향불의 혼은 그 수가 1백억 이상이었는데 하나같이 잘생긴 사내들과 아름다운 여인들뿐이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묘음도존은 결심한 듯 이를 악물더니 순식간에 안개 속으로 돌진했다. 동시에 그를 에워싼 혼들에게서 비참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 안개 속에서는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힘도 발산되고 있었다. 그 힘에 묘음도존이 소환한 향불의 혼 4할이 그대로 소멸되고 말았다.
‘이제 막 세 걸음을 떼었을 뿐인데…’
묘음도존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갔다. 허나 그는 이를 악물더니 다시 한번 몸을 날렸고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도술을 발휘했다. 그러나 한 걸음을 더 디딘 순간, 안개가 몰려들어 그를 강타했다.
콰르릉!
굉음과 함께 남은 6할의 혼 역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묘음도존은 피를 뿜어내며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힘만으로는 안 되는 모양이군! 결국 최후의 수단을 사용해야 하나?’
쉬운 문제가 아니었으나 갈등은 짧았다.
‘분신을 하나쯤 잃는 한이 있더라도 시도는 해봐야지!’
이내 그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곧장 안개에 달려들었다. 어떤 법보도 신통술도 없었다.
“크으으…”
몸이 안개에 닿자마자 그는 격렬하게 떨었고 낮은 신음을 흘렸다.
공령기 중기에 달해 있던 분신은 안개에 닿자마자 수준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공령기 초기, 공열기 절정, 공열기 후기, 중기, 초기! 눈 깜짝할 사이 대폭 약해진 그는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해냈고 몸은 급속도로 쪼그라들었다. 잘생겼던 이전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데 그때, 그의 미간에 돌연 숫자가 하나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한 줄기 흡입력이 달려들어 그를 폭풍 중심의 균열로 끌어당겼다.
‘그렇군! 세 번째 단계의 수준은 이 안개의 힘에 깎여버리는 거야! 즉, 오래된 무덤에 들어갈 수 있는 최고 수준은 공열기 초기인 셈!’
거의 똑같은 광경이 반경 수천만 리 곳곳에서 일어났다.
한편, 안개 서쪽에는 거대한 수련성에 맞먹는 크기의 망월이 한 마리 있었다. 그 등에는 얼굴에 음양의 도안이 새겨진 노인이 올라타 있었는데 그는 안개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순식간에 파악하고는 눈을 번득였다.
두 손으로 빠르게 결인을 그려 미간을 두드리자 순간 그의 원신 중 세 갈래가 흘러나와 무동선, 극현천, 그리고 망월의 체내로 흘러들었다.
작업을 마친 노인은 창백한 얼굴로 다급히 물러나면서 낮게 호통치듯 외쳤다.
“무동선, 극현천, 망월! 너희 셋은 오래된 무덤에 들어가라!”
퍼져 나가던 안개가 이들을 뒤덮자 망월과 두 사람의 미간에도 숫자가 나타났다. 동시에 이들은 흡입력에 이끌려 안개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들을 보낸 노인은 곧 모습을 감추었다가 멀리 떨어진 곳의 어느 수련성에 나타나 가부좌를 틀었다.
한편, 2대 주작이 한제에게 대황상인이라 소개한, 짐승 가죽을 뒤집어쓴 노인도 번득이는 눈으로 안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그에게는 분신이 없었고 그렇다고 본체의 수준을 떨어뜨리면서까지 행운이 기다릴지 죽음이 기다릴지 알 수 없는 저 무덤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뒤로 물러났고 그 와중에 계속해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릴 때마다 안개를 피해 후퇴하고 있던 수련자가 한 명씩 그의 통제에 따라 안개 속으로 던져졌다.
“크아악!”
그들은 하나같이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해골로 변해갔다. 그렇게 죽은 자가 일곱이었다. 한데 여덟 번째 수련자는 달랐다. 마치 오랫동안 병을 앓아온 듯 얼굴이 누렇게 뜬 이 노인은 죽지 않고 몸을 바르르 떨더니 미간에 숫자 낙인이 새겨졌다.
대황상인의 두 눈이 번득이더니 곧장 원신 한 줄기를 그 노인의 미간으로 녹여 넣어 육신을 빼앗았다. 그러자 몸을 바르르 떨던 노인은 비명조차 지르는 못하고 안개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반면 얼굴이 약간 창백해진 대황상인은 몸을 돌려 멀리 떠나갔다.
이곳에서는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강력한 신통술을 발휘해도 소용없었다. 꿈틀거리는 안개는 멈추지 않고 퍼져 나갔다.
우주 한쪽에 왜곡이 일어나더니 곧 한제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는 얼마 이동하기도 전에 급격히 졸아든 눈으로 먼 곳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 우주에서 짙은 안개가 퍼져 나가는 모습을 본 것이다.
‘저게 뭐지?!’
한제의 심신이 바르르 진동했다. 봉천랑족 사내의 추격을 피해 도주하는 동안 신식 일부를 천운자의 혼백에 녹여 넣어 앞날을 점친 그는 이 방향으로 가면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예감을 받았다.
한데 그때, 그의 뒤로 균열이 일어나더니 시커먼 구멍 하나가 나타났다. 한데 그 거대한 구멍에서 모습을 드러낸 봉천랑족 사내의 어깨 위에는 어째서인지 소녀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사내의 어깨 위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든 회색 낙인 하나가 숨겨져 있을 뿐이었다.
사내 역시 멀리서 확산되고 있는 안개 폭풍에 흠칫 놀랐다. 그는 잠시 망설였으나 곧 한제에게 돌진하며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그의 주위에서는 늑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팔방극랑도(八方極狼道)!”
사내가 낮게 외치자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수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늑대의 허상 여덟 개가 나타나 한제의 팔방을 에워싼 채 성난 고함을 내질렀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빠르게 전진했다. 허나 그의 속도로도 쉬이 벗어나지 못해 순식간에 안개에 휩싸였다. 여덟 마리 늑대 또한 안개와 충돌했다.
콰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여덟 마리 늑대의 허상은 그대로 와해됐다.
안개는 멈추지 않았고 곧장 봉천랑족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사내는 이 안개가 얼마나 기이한 존재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 안에 깃든 강력한 힘만큼은 감지해 얼른 도망치려 했지만 결국 피하지 못했다. 본래 수준이 공열기 초기인 그의 미간에 숫자가 하나 떠올랐다.
하지만 그의 오른쪽 어깨에서는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꺄아악!”
허나 그 비명은 폭풍이 몰아치는 소리에 묻혀버렸다. 뒤이어 안개 속에 휘말린 봉천랑족 사내의 오른쪽 어깨에 숨어서 한제를 노리던 소녀가 그대로 튕겨져 나왔다.
오래된 무덤의 안개에 휘말린 이들은 수준을 막론하고 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도 봉멸족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봉멸족 소녀는 격렬하게 경련하며 쪼그라들더니 눈 깜짝할 완전히 녹아내려 해골이 되어버렸다. 안개 속에서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허나 그녀의 해골은 흩어져 사라지지 않고 회색빛을 발산했고 서서히 살과 근육을 생성해내기 시작했다. 다시 살아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두 눈은 두려움으로 떨렸다. 순식간에 세 개의 목숨 중 두 개나 잃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더욱 두렵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상태로 되살아난다면 또다시 곧바로 해골로 변해 사라지리라.
끔찍한 단서
소녀는 창백한 얼굴로 다급하게 물러났다. 하지만 안개가 그녀보다 훨씬 더 빨랐다. 그녀는 죽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다는 봉멸족이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에 드리워져 있었다.
소녀는 짙은 절망을 느끼고 자포자기한 듯 눈을 꼭 감았다.
“…”
한데 어째서인지 예상했던 죽음이 따르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체내에서 흘러넘칠 듯한 생기가 맴도는 것을 느꼈고 이 생기가 몰려들어 미간에 숫자 낙인을 새겼다.
짧은 순간 삶과 죽음을 동시에 경험한 그녀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강력한 흡입력에 빨려들어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안개 깊은 곳으로 끌려갔다.
봉천랑족 사내는 한 발 앞서 끌려간 상태였다.
한제는 싸늘한 눈으로 이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특히 소녀가 죽음에서 되살아나는 모습에 심신이 바르르 진동했다.
‘난 이미 그녀를 한 번 죽였다. 그리고 이 기이한 안개가 또 한 번 죽였지. 그런데도 그녀는 되살아났어. 봉멸족은 정말이지 대단하군. 허나 그녀의 마지막 표정은 절망에서 자포자기로 바뀌었다. 어쩌면 남은 목숨이 하나뿐일지도…’
한제는 명석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허나 그토록 명석한 그도 지금 자신의 상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자신 또한 안개에 뒤덮여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미간에 숫자가 생겨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안개는 고신의 힘이 되어 미간의 반점에 흡수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이 고신의 힘에는 너무도 짙은 죽음의 기운과 원한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제의 체내에서도 포악함이 생겨나 머릿속을 쾅쾅 울렸다. 만약 재빨리 그것을 억누르고 더 이상 고신의 기운이 흡수되지 않도록 막지 않았다면 그의 심신은 완전히 뒤집어지고도 남았을 터였다. 다행히 빨려들던 고신의 힘을 저지한 순간 그의 머릿속은 전에 없이 맑아졌다.
그의 미간에는 숫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다른 수련자들과 달리 강력한 흡인력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안개에 뒤덮인 채 차분히 상황을 파악했다.
‘그 숫자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분명 고신의 문자다. 설마… 여기가 탐랑이 오래된 무덤에서 빠져나온 뒤에 이르렀다는 곳인가? 내 미간에 고신의 문자가 나타나지 않은 것도 이 안개가 고신의 힘이 되어 내게 흡수된 것도 그 때문인가?’
한제는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고 봉천랑족 사내와 봉멸족 소녀가 빨려 들어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사내의 미간에 나타난 숫자는 14였고 소녀의 미간에 나타난 숫자는 29였다.’
한제는 입을 꾹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이곳은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오래된 무덤 안은 더욱 그렇겠지.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