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23
“아우우우!”
검은 구멍에서는 포효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더니 잠시 후 멀지 않은 곳에 왜곡과 함께 검은 구멍이 다시 나타났다.
구멍에서 빠져나온 봉천랑족의 사내는 어두운 얼굴로 고식엽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이 닿은 순간 고식엽은 빛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젠장, 저건 대체 뭐지?! 사묵자는 저자와 싸웠으면서 왜 저런 것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던 거야? 운락 대사도 곧장 폐관수련에 들어가 버리고 말이야!”
“저자를 우습게봐서는 안 돼. 중상을 입은 상태가 아니었다면 네 수준으로는 절대 저자를 쉽게 붙잡지 못할 거야. 호호호!”
소녀는 킬킬대며 고개를 숙여 나침반을 들여다보았다.
“서북쪽, 37만 8496리!”
거구의 사내는 불쾌한 듯 어깨 위의 소녀를 힐끔 노려보았다. 허나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인 그로서도 이 소녀에게는 밉보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갑자기 찾아와 이한제를 잡는 것을 돕겠다던 이 소녀는 태고 5존의 하나인 묘음도존의 시녀이기 때문이다.
“네 주인은 오래된 무덤에 갔을 텐데 갑자기 날 찾아온 이유가 뭐지? 그것부터 말해.”
거구의 사내는 한제를 뒤쫓는 대신 위압감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오래된 무덤인지는 아직 확신할 수가 없어. 다만 오래된 서적들을 토대로 그 가능성만 확인했을 뿐이지. 주인님뿐만 아니라 태고 성신의 강력한 수련자 대부분이 그곳으로 갔어. 어쨌든 그 이야기는 그만. 저자는 벌써 1백만 리나 도망쳤다고! 지금 당장 뒤쫓지 않으면 더 멀리 도망쳐버리고 말 거야!”
그렇게 말을 돌리고는 생긋 웃는 소녀를 거구의 사내는 말없이 노려보았다.
“그렇게 노려보니까 너무 무섭잖아. 저자를 잡으면 저물공간에서 하나만 가져가게 해줘. 그럼 도존께서는 네게 답례로 6품 도령(道靈)을 주실 거야.”
소녀는 이번에도 눈을 깜빡이며 맑게 웃었다. 그 모습에 조용히 한숨을 내쉰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북쪽, 279만 8461리! 아, 너희 봉천랑족의 분종이 있는 곳인데.”
소녀의 말에 봉천랑족 사내는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더니 전방에 나타난 균열로 몸을 던져 모습을 감추었다.
이 무렵 한제의 전방에는 여섯 개의 수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둥그렇게 모여 있는 수련성 바깥쪽으로 진의 빛이 발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태고 성신 부족 중 하나인 듯했다. 이 진에서는 마치 자신들이 어느 부족인지 알리고 싶은 것처럼 허상의 늑대 머리가 포악하게 번득였다.
“늑대?”
한제는 좀 전에 자신을 공격한 균열에서 울려 퍼졌던 울음소리를 떠올렸다.
“그렇단 말이지? 훗!”
차게 코웃음을 친 한제는 곧장 여섯 개의 수련성으로 돌진했다. 몸에서는 피 안개가 분출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전신을 뒤덮었다. 피 안개가 육신과 원신, 혼백 등 모든 것을 삼킨 것만 같았다.
이 피 안개는 눈 깜짝할 사이 수십만 척을 뒤덮고 점점 넓게 퍼져 나가다가 봉천랑족 분종이 자리한 곳에 이르렀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련성 위의 진이 격렬하게 번득였다. 허나 피 안개가 침투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고 한제는 순식간에 그중 하나의 수련성에 들어섰다.
“크아아악!”
“끄악!”
한제가 들어선 순간 수련성 곳곳에서는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지다가 뚝 끊기더니 이내 죽음과 같은 적막이 흘렀다. 일정 수준 이상의 수련자는 모두 안개에 휩싸인 순간 핏물이 되어 그 안개에 삼켜져 버린 상태였다.
피 안개는 휘몰아치며 다른 수련성으로 향했다. 그때마다 수많은 수련자의 끔찍한 비명이 우주에 울려 퍼졌다.
여섯 개의 수련성은 봉천랑족이 새로 세운 분종의 주거지로 일반인은 없이 오직 봉천랑족 수련자들만 머물렀다. 그리고 지금 그 수련자의 절반 이상이 피 안개에 휘말려 죽어버렸다.
그때, 우주에 왜곡이 일더니 검은 구멍이 나타났고 한제를 쫓던 봉천랑족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는 모습을 드러낸 순간 들려오는 끔찍하고 날카로운 비명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눈에서는 질식할 듯한 살기가 번득였다.
“용서할 수 없다!”
그는 빠드득 이를 갈며 질주했다. 그 맹렬한 속도에 우주가 기우뚱 일그러졌다. 그의 뒤로는 몸길이가 10만 척에 달하는 푸른 늑대의 허상이 포악하게 이를 드러냈다.
봉천랑족 분종의 여섯 수련성 중 마지막 수련성을 뒤덮은 붉은 안개가 빠른 속도로 수축하더니 이내 한제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의 두 눈에서는 붉은 빛이 번득였다.
원신을 약간 회복한 그는 차가운 눈으로 허상의 늑대를 바라보며 뒤로 몸을 물렸고 동시에 두 손으로 여섯 개의 수련성을 떠밀었다.
펑! 퍼펑!
그 손짓에 여섯 개의 수련성에 드리운 금제가 동시에 폭발하며 격렬하게 진동했고 이내 붕괴하면서 사방으로 강력한 파동이 퍼져 나갔다.
폐허가 된 수련성과 달리 영기로 충만한 수련성들의 붕괴로 인한 위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심지어 짙은 영기까지 무너져 내리면서 산산조각 난 바위 조각들이 폭풍에 휩쓸려 확산됐다.
이는 자신을 쫓는 거구의 사내를 노리고 심어둔 함정이었다. 한제는 봉천랑족 수련성의 수련자들을 삼켜 원신을 회복함과 동시에 각 수련성에 폭발을 일으킬 금제를 심어두었다. 그리고 추격자가 가까이 다가온 순간 붕괴시킨 것이다.
여섯 개의 수련성이 거의 동시에 터져나가면서 생겨난 폭풍은 거대한 아가리처럼 추격자를 집어삼켰다.
콰콰쾅!
격렬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데 바로 그때…
“아우우우!”
늑대 울음소리가 우주를 채울 듯 퍼져 나가더니 수련성들의 폭발로 이루어진 폭풍 속에서 몸길이가 10만 척에 달하는 푸른 늑대가 튀어나왔다. 허나 늑대의 허상은 크기는 그대로인 데 반해 훨씬 흐릿해진 상태였다.
성난 포효를 내지른 늑대는 곧장 입을 쩍 벌리고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허나 한제는 가볍게 뒤로 물러나 피하며 냉소를 짓더니 가볍게 손을 휘둘러 거북이 등껍질을 소환했다.
고오오.
바람 새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사방에서는 날카로운 검 같은 어스름한 빛이 몰려들었다. 이 빛들이 관통하자 거북이 등껍질은 순식간에 불어나 거대한 거북이가 되었다. 대제성 시합장을 지키던 고혼금이었다.
거북이는 고개를 번쩍 쳐들며 한제를 보호했고 달려들던 늑대와 충돌했다.
콰쾅!
충돌음은 짧았으나 수없이 많은 파문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파도처럼 거친 파문에 거북이 등껍질은 빠르게 수축하다가 한제의 손으로 돌아갔다.
한편 이미 수련성의 폭풍에 한 차례 부상을 입은 푸른 늑대의 허상은 고혼금과의 충돌로 인해 또다시 절반으로 줄어들더니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때 봉천랑족 사내가 수련성들의 붕괴로 인한 폭풍 속에서 걸어 나오더니 나가떨어지던 늑대를 가벼운 손짓으로 불러들였다.
그 무렵 한제는 연이은 충돌의 여파로 피를 토해내며 물러났고 축지성촌을 발휘하기 위해 발아래 파문을 일으켰다. 허나 그의 눈은 거대한 사내의 어깨에 앉아 있는 소녀에게 닿아 있었다. 눈동자는 살짝 졸아든 상태였다. 허나 소녀는 한제의 눈빛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때, 짙은 살기를 풍기며 한제를 뒤쫓으려던 봉천랑족 사내의 안색이 급변했다. 체내에서 허상의 화염이 피어오른 것이다.
활활 타오르며 눈 깜짝할 사이 그를 완전히 뒤덮은 허상의 화염은 심지어 곁에 있던 푸른 늑대의 허상에게까지 퍼졌다.
“캬아아아!”
늑대의 고통에 찬 포효가 울려 퍼졌다.
“이, 이럴 수가! 허상의 화염!”
사내는 창백해진 얼굴로 한 사발이나 피를 토해냈고 두 눈은 충격으로 흔들렸다.
어깨 위의 소녀도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저 멀리 도망치는 한제를 응시하다가 고운 손을 들어 가볍게 미간을 두드렸다.
“봉멸족 후예의 이름으로 소환한다. 봉인⋯⋯.”
한데 그녀가 주문을 끝맺기도 전에 돌연 한제가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번득였다. 그 순간, 수련성들이 붕괴하며 멀리까지 퍼져 나가던 폭풍 속에서 짙은 붉은색 빛이 터져 나왔다. 한제가 일찍이 수련성에 숨겨두었던 붉은 검이었다.
수련성이 붕괴하는 와중에도 숨겨져 있던 붉은 검은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붉은 빛을 번득이며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쉬익!
붉은 검이 눈 깜짝할 사이에 달려들더니 순식간에 미간을 관통하고 뒤통수로 빠져나오는 동안에도 소녀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의 역할을 마친 붉은 검은 곧장 주인에게 돌아갔고 한제는 축지성촌을 통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야말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치고 빠지기였다.
정신이 번쩍 든 듯 봉천랑족 사내의 눈동자에서는 흔들림이 사라졌다. 대신 두려움에 바짝 졸아든 눈으로 사내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저자는 허상의 화염을 곧장 사용하지 않고 내 감정이 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또한 내가 그 허상의 화염에 저항하는 동안 생각지도 못한 곳에 숨겨두었던 법보로 단박에 묘음도존의 시녀를 제거했지. 수준과 심계, 결단력… 모두 두려울 정도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지만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저 붉은 검은 보통 물건이 아니야! 그 엄청난 속도 하며 믿을 수 없는 예리함까지. 저런 보검을 가지고도 나를 놔두고 묘음도존의 시녀를 노린 이유는 내가 세 번째 단계 수련자임을 눈치채고는 어쩌면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터. 생각할수록 두려운 자다.’
그의 생각은 대체로 옳았으나 단 한 가지, 한제가 소녀를 먼저 제거하려 든 진짜 이유만큼은 파악하지 못했다. 사실 그녀 미간의 낙인이 얼마나 위험하고 강대한 것인지를 한제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먼저 희생양이 된 것이었다.
봉멸족. 그들은 수가 매우 적었으나 한제는 그들의 힘이 막강하여 자신의 모든 신통술을 봉인해버릴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소녀는 그리 수준 높은 수련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단계인 공열기 초기에 이른 봉천랑족 사내보다도 어떤 면에서는 더욱 위험한 존재였던 것이다.
사내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자비를 모르는 자로군.”
한숨 섞인 목소리가 사내의 어깨 위에서 흘러나왔다. 봉멸족 소녀가 관통당한 미간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소름 끼치는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미간의 상처는 꿈틀거리더니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아물었다. 심지어 뒤통수의 상처도 곧 회복됐다. 다만 미간에는 한 줄기 흉터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처럼 남아 있었다.
소녀는 상처 부위의 피를 손가락으로 슥 훔쳐내더니 혀로 핥았다.
그녀 역시 머릿속으로 한제의 책략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그 치밀함과 대담함, 과감한 실행력에 두려움을 느끼고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하지만 한 가지, 결론만은 봉천랑족 사내와 달랐다.
‘저자… 내가 봉멸족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은 나를 죽이기 위한 책략이었겠지. 만약 우리 부족의 삼혼명(三魂命)이 아니었다면 난 지금쯤 진짜로 죽었을 테고. 나뿐만 아니라 주인님도 저자를 과소평가한 모양이군.’
소녀는 이를 악물었다. 방금 한 번 죽음을 맞봐서 그런지 한제를 경시하는 마음이 싹 가셨고 두려움으로 인해 한층 신중해진 모습이었다. 이런 두려움은 그녀 평생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었다.
오래된 무덤이 열리다
“다시 쫓아가지. 세상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저자를 죽여야만 해! 동북쪽, 173만 4532리! 심계가 깊은 놈이니 아마도 대비하고 있을 거야. 그가 향한 곳은⋯⋯.”
신중한 목소리로 말을 잇던 소녀는 나침반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이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번쩍 쳐들더니 동북쪽을 바라보았다.
“오래된 무덤이 있는 곳이야! 어째서 그곳으로 향한 거지?”
봉천랑족의 사내는 말없이 성큼 움직였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균열이 일었고 사내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
거구의 사내와 아름다운 소녀가 사라진 공간에서 균열은 곧 맞물려 사라졌고 끝없는 적막 위로 아직 사라지지 않은 폭풍만이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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