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42
잠시 후 다시 나온 한제의 손에는 손바닥만 한 뼛조각이 하나 들려 있었다.
“고신이 마주하는 삼손칠겁 중 이 고신은 두 번째 손을 지나는 와중에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어.”
두개골의 미간에 가부좌를 튼 한제는 손에 든 뼛조각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오래된 무덤… 이곳은 대체 어떤 곳일까? 누가 왜 만든 거지?’
한제는 오래된 무덤 안에 들어온 후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이 무덤은 매우 신비로워 한제 역시 아직 이곳을 완벽하게 파악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도령을 통해 나타난 광경을 살피던 와중에 심신을 진동시켰던 목소리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도단(道丹)으로 천도를 사육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빼앗아온 천도를 빠르게 성장시킬 다른 방법을⋯⋯.”
한제는 그 목소리를 들은 이후 내내 이 말에 대해 고민해왔다. 말만 놓고 본다면 천도는 일곱 빛깔로 빛나던 도인이 빼앗아온 것이다. 한데 그렇다면 그는 그것을 대체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빼앗아왔단 말인가?
물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그는 일곱 색깔 도인이 언급한 ‘다른 방법’에 집중했다.
‘다른 방법이라⋯⋯.’
한제는 손에 든 뼛조각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어떤 추측이 떠올랐다.
‘일곱 빛깔 도인이 원고 선황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는 당시 천역주를 얻기 전 천도를 하나 훔쳤고 어떠한 이유로 인해 그 천도를 먹이고 길러야 했어. 한데 도령으로는 천도를 기르기 힘들다고 생각한 그는 다른 방법을 떠올린 거야.’
한제의 눈이 점점 밝게 빛났다. 그의 머릿속에는 1대 주작이 했던 말도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고향에도 고신이 있었다고 했다. 온 세상의 지배자 같은 존재는 아니었지만 세상의 지배자에 대항할 만한 힘을 가진 존재라고도 했다. 게다가 1대 주작은 이름까지 언급했다. 도고 엽막!
‘어째서 고신도 고요도 고마도 아닌 도고 엽막일까? 그 이름을 통해 엽막이라는 존재는 고신도 고요도 고마도 아닌 고 자체라고 결론 내려도 되는 걸까? 그리고 요령의 땅에서 문정기로 돌파하게 됐을 당시 처음 만났던 고요 타지아로부터 고족은 최초로 하늘에 저항한 이들이라는 것과 천도와 싸우다 멸망하게 됐다는 것, 이후 세 종족으로 갈라져 두 번째로 하늘과 싸우는 이들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지.’
한제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또한 모완의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 나타난 천도의 사자는 분명 고신에 의해 봉인됐어. 그리고 섬뇌족에 있었을 때 다시 나타난 천도의 사자는 내게 팔 하나가 잘렸지. 떠나기 전 내가 고신임을 알아본 그는 내게 공멸도를 배반한 족속이라고 했어.’
한제의 숨이 가빠졌다. 어렴풋하게나마 가닥이 잡혔기 때문이다.
‘공멸도를 배반했다는 건 천도가 이미 죽었다는 뜻! 천도의 사자들은 나를 공멸도로 취급했지. 답은 명확해. 하지만 공은 대체 누구지? 설마 일곱 빛깔 도인이자 원고 성황이며 1대 주작의 주인인 선존인가? 만약 그게 진실이라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아. 천도의 사자는 어째서 고신인 걸까? 이미 죽었다지만 천도란 대체 뭘까? 그것은 이 우주와 어떤 관계일까? 혹시 수련자들이 수련하는 것은 정말 이미 죽은 천도인가?’
‘이 가설대로라면 엽막이 고라는 것은 확실해. 그렇다면 선황이 생각한 다른 방법 역시 고와 관련 있을 가능성이 커. 그 방법은 아마도 그가 있었던 세상에서 도고를 이쪽으로 끌어오는 거였겠지. 도고는 물론 심지어는 세 고족을 속이고 그들을 천도에게 먹이기 위해서 말이야! 선황 같은 인물이라면 확신이 있었으니 그런 선택을 했을 테고 결국 성공했겠지. 한데 어째서인지 결국 천도는 죽임을 당했어.’
한제는 점차 가닥을 잡아갔다.
‘연맹성역에 있었을 당시, 난 천벌을 견뎌내다가 무의식중에 한 줄기 공간의 균열을 열었지. 그 안으로 신식을 들였을 때 기이한 세상을 보게 됐어. 수많은 고신과 고마, 고요의 조각상이 존재하는 세상. 그곳은 어떤 곳일까. 이 오래된 무덤이나 일곱 빛깔 도인과 관련이 있는 곳일까? 그리고 역대 주작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봉인되어 있다시피 한데 아마도 그는 장존의 스승이겠지. 장존의 스승은 과연 누굴까?’
생각은 끝이 날 줄을 몰랐다.
‘은시는 일곱 빛깔 도인의 조각상을 보자마자 비명을 내지르며 겁에 질렸지. 더구나 문을 연 건 자신이 아니라고 계속해서 되뇌었어. 대체 어떤 문을 열었기에 일곱 빛깔 도인이 그렇게까지 분노하여 모두를 죽인 걸까? 혹시 천도를 양육하는 문일까? 아니면 그의 적을 봉인해둔 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 어쩌면 내 모든 추측이 틀린 걸도 모르지.’
한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까지의 단서만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지만 그 분석이 옳은지는 전혀 확신할 수가 없었다.
‘5급 암석 조각을 만들었을 때 도고 엽막을 칭한 자가 그랬지. 만약 같은 부족원이라면 윤회의 문에 들어와 유산을 얻을 수 있을 것이요, 아니라면 지부에 이르게 될 거라고⋯⋯. 지부는 또 뭘까?’
고민이 깊어지자 머리가 아파와 한제는 미간을 문질렀다.
‘어쨌든 이 오래된 무덤은 일곱 빛깔 도인과 큰 연관이 있을 터. 이곳은 천도를 양육하기 위한 곳인가? 아니면 도고 엽막이 유산을 남겨둔 곳일까? 이곳이 혹시 도고 엽막의 무덤일까?’
생각이 이어질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그럼에도 답은 내릴 수 없었기에 한제는 잠시 생각을 접기로 하고 고개를 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추측대로라면 이곳의 나무들은 누군가가 심어둔 거야. 조각상으로 고신의 머리를 봉인하고 나무들로 하여금 두개골에 남은 고신의 기운을 흡수하게 한 거지. 나무들이 전부 말라 죽은 건 세월이 흘러 고신의 기운이 바닥났기 때문일 거고. 탐랑이 이곳에 왔을 당시 한 그루만 남아 있었다고 했지.’
생각을 접으려 했지만 또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채워 왔다.
‘탐랑이 오지 않았더라면 그 한 그루도 금방 말라 죽어버렸겠지. 그렇다는 건,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탐랑 외의 누구도 이곳에 온 적이 없었다는 뜻. 이곳에 나무를 심은 자도 마찬가지야.’
한제는 두개골의 미간 위에 가부좌를 튼 채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결인을 그린 손으로 대량의 금제를 소환해 보호막을 형성했다.
그가 소환해낸 번개 문양은 모습을 숨겼고 하늘을 뒤덮었던 아홉 빛깔 화염과 붉은 검 역시 하늘에 숨어들었다.
모든 수단을 발휘해 강력한 살진(殺陣)을 형성한 것이다. 만약 누구라도 이곳에 억지로 들어서려 한다면 살진과 맞닥뜨리게 될 터였다.
한제는 온몸으로 고신의 힘을 발휘해 자신이 깔고 앉은 거대한 두개골에 녹여 넣었다. 두개골은 마치 바닥이 없는 구멍처럼 한제가 내보낸 고신의 힘을 받아들이면서도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지만 한제는 멈추지 않고 고신의 힘을 두개골에 흘려보냈다.
이내 그의 미간에서 고신의 반점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여섯 개의 반점은 빙글빙글 돌면서 더욱 강한 고신의 힘을 발휘했다.
다시 몇 시진이 지났다. 비록 고신의 두개골은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지만 사방의 말라 죽은 나무들은 조금씩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허나 이곳의 모든 나무를 되살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내게는 그럴 만한 고신의 힘도 없고…’
이에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신의 힘을 열아홉 그루의 나무에만 집중시켰다.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고신의 힘이 집중된 열아홉 그루의 나무는 점점 더 많은 생기를 되찾았다. 뿌리 부분부터 원래대로 색이 돌아오더니 점차 위쪽으로 생기가 퍼져 나갔다.
지난한 작업이었다. 한제는 고신의 힘을 두개골에 불어넣는 한편 오른손으로는 미간을 두드려 천황로를 띄웠다.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천황로는 지금 1백 척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혼탁한 내부에서 갖가지 비명이 어렴풋이 흘러나왔다. 한제는 고신의 힘을 계속해서 불어넣는 한편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천황로를 가리켰다.
순간 천황로 안의 혼탁함이 싹 흩어져 사라지더니 한제의 눈앞에 그 안에 들어 있던 검은 바다가 드러났다. 물결조차 일지 않는 고요하고 검은 바닷속에는 독으로 오염된 향불의 혼이 가득했다.
“제련!”
한제가 외치자 천황로 안에 있던 바닷물은 끓어오르는 듯한 소리를 냈다. 동시에 그 안에서 일어난 강한 파도가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했다.
천황로 안의 바닷물은 점점 더 요란하게 포효했고 그 안에서 향불의 혼이 구슬프게 울부짖는 소리가 천황로를 뚫고 흘러나왔다. 무언가 터져 나가는 듯한 소리도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생겨난 검은 안개가 점차 천황로를 뒤덮었다. 이 안개는 점점 많아지다가 어느 정도 축적되자 검은 구름 덩어리들이 됐는데 그 구름에서 쏟아진 검은 비는 다시 바다로 흘러들었다.
하나의 순환을 이룬 광경이었다. 하지만 바닷물이 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물이 소실됐고 반면 독은 점점 짙어져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황로 안의 검은 구름은 엄청나게 많아졌고 비는 억수같이 쏟아져 내리면서 강한 파도를 일으켰다. 한제의 끊임없는 제련 아래 바닷물은 점점 줄어들었고 사흘 뒤 수위는 절반 이하가 됐다.
이 무렵 바다는 이미 먹물처럼 변해 있었다. 심지어 신식으로도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바다의 독은 무서울 정도에 이르러 있었다.
순탁하게 제련되는 바닷물을 살피던 한제는 마음을 놓고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천황로 안의 오염된 바닷물은 전부 흩어져 사라졌고 또 다른 허상의 세상이 나타났다.
이 세상 역시 바다로 가득했다. 다만 색깔은 보라색이었고 그 안에는 매우 희귀한 향불의 혼이 잔뜩 있었다.
영동상인은 그 바닥에 가부좌를 튼 채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끊임없이 향불의 혼들을 제련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모두 자신의 향불로 바꾸려 하는 것이다.
네 번의 기쁨
영동상인의 뒤로는 거대한 조각상이 하나 있었다. 영동족의 마신상으로 두 팔을 휘두르며 밝은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빛에 뒤덮인 향불의 혼은 혼란을 느끼며 갈등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개중 몇몇은 이미 영동상인에게 흡수되어 있었고 영동상인은 감격한 듯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이 향불의 혼들은 묘음도존의 것이었다. 영동상인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터이니 한제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 오래된 무덤에서 영동상인이 최대한 빨리 향불의 혼을 흡수해 세 번째 단계에 완전히 들어선다면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한 줄기 원신을 천황로에 녹여냈다. 그러자 보라색 바다 상공에 한제의 모습이 허상으로 나타났다.
“나의 노예여.”
엄숙한 목소리가 천황로 안에 울려 퍼졌다. 해저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영동상인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공손하면서도 맹목적인 찬양의 눈빛으로 해수면 밖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더니 허공에 두 무릎을 꿇고 앉아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노예 영동이 주인님을 뵙습니다. 무슨 명을 내리시겠나이까?”
허상으로 나타난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영동상인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게 도술을 하나 알려주마. 너라면 금방 습득할 수 있을 터. 이 도술로 넌 빠르게 향불을 녹여내 진정한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영동상인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의 눈에는 한층 더 맹목적인 찬양의 빛이 드러냈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르고자 오랜 세월 수련을 해왔지만 안타깝게도 향불이 부족해 현재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세 번째 수준에 오를 수만 있다면 한제의 명이 무엇이든 기꺼이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도를 완성할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도 아깝지 않았다.
한제는 손을 휘둘러 한 줄기 낙인을 영동상인의 미간에 찍었다. 영동상인은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쾅!
짧지만 거대한 소리와 함께 영동상인의 미간에 찍힌 낙인은 이마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원신에 녹아들었다.
“도술, 융합! 이 술법을 최대한 빨리 깨닫도록!”
한제는 영동상인을 노예로 만든 것에 상당히 만족했다. 천황로와 여러 가지 수단이 있는 한 상대가 배신할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만약 공열기 초기에 이른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를 다시 한번 만난다면 영동과의 합공으로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터. 그렇게 되면 노예가 또 하나 생기는 것이지.’
한제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며 천황로를 떠나 다시 체내로 돌아왔다.
★ ★ ★
오래된 무덤 밖.
5급 암석 조각을 탄 봉천랑족 사내는 파죽지세로 무궁무진한 안개를 뚫으며 점차 목적지에 다가갔다.
‘앞으로 사흘 후면 그곳에 이를 수 있다! 만약 그 잎을 아홉 개만 손에 넣는다면 우리 부족의 신통력으로 그것을 영원히 내 곁에 묶어둘 수 있어. 그렇게 된다면 같은 공열기 초기 수련자 중 가장 강한 존재가 될 수 있겠지.’
사내의 눈은 흥분으로 번득였다.
영동상인은 한제에게서 도술을 받자마자 온몸을 바르르 떨더니 다시 해저로 가라앉았다. 본래 자질이 뛰어난 덕에 그는 몇 시진 만에 그 도술을 완벽히 깨달았다. 한제만큼 깊이 깨우치지는 못했지만 주인 없는 향불의 혼을 융합시키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천황로 안의 바다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했다. 그 회오리의 중심에 선 영동상인은 한제로부터 받은 도술을 발휘해 맹렬히 융합하기 시작했다.
한편, 한제는 가부좌를 튼 채 열아홉 그루의 나무에 고신의 힘을 끊임없이 주입했다. 덕분에 그 나무들은 이제 흘러넘칠 듯한 생기를 발산했고 새 잎을 피워낼 조짐까지 보였다.
한제는 시선을 거두고는 저물공간을 훑었다. 그러자 그 안에 금제로 구속되어 있던 봉멸족 소녀가 튀어나왔다.
절색이라 할 정도는 아니라도 매우 아름다운 소녀의 창백한 얼굴 위로 검은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채 잔뜩 겁먹은 듯한 모습의 소녀는 가련한 마음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름이 무엇이냐?”
한제가 봉인을 풀어 깨웠을 때도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제의 질문이 떨어진 순간 그녀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다가 서서히 눈을 떴다. 눈동자는 선명하고 흰자는 깨끗했으나 눈빛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문 채 감히 한제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녀를 바라보던 한제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 소녀와 마찬가지로 눈빛에는 혼란과 두려움이 차올랐지만 대신 오만함과 증오도 함께 어린 어떤 여인의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