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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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진 뒤, 한제가 떠난 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흉수들의 시체만 남게 됐다.
암석 조각이 멈춘 것은 한참이 더 지난 후였다.
전방에 더 이상 안개는 없었다. 그 대신 왜곡된 노란 빛만 존재할 뿐이었다.
한제는 전방의 왜곡을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그쪽으로 신식을 뻗었는데 신식은 왜곡에 닿자마자 강력한 힘에 의해 튕겨 나왔다.
한제는 번득이는 눈으로 좀 전보다 더 격렬하게 번득이는 왜곡의 노란 빛을 응시했다. 잠시 후 그 안에서는 허상의 나뭇잎이 움푹 파인 낙인처럼 나타났다. 고식엽과 똑같이 생긴 낙인이었다.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쥔 한제는 고식엽을 하나 소환해 내던졌다. 고식엽은 곧장 그 노란 빛의 왜곡으로 향하더니 움푹 파인 곳으로 들어갔다. 크기까지 딱 맞았다.
콰쾅!
고식엽이 낙인에 들어간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낙인의 사방으로 수없이 많은 균열이 나타났다. 균열은 눈 깜짝할 사이 퍼져 나갔고 순식간에 틈이 하나 생겨났다.
한제가 암석 조각을 거두고 들어서자마자 틈은 사라져버렸다.
그곳은 끝없이 펼쳐진 숲이었다. 하지만 이 숲의 나무들은 전부 노랗게 말라 있었고 죽음의 냄새가 담긴 노란 빛의 기운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여기로군.”
한제는 주위를 훑어보았다. 탐랑이 묘사한 대로였다.
이내 한제는 이 말라버린 숲의 중심으로 향했다.
워낙 드넓은 숲이라, 빠른 속도로 움직였는데도 한참 후에야 텅 비어 있는 공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공터에는 끝없이 회전하는 회오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중앙의 시커먼 구멍은 또 다른 세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한제는 회오리와 1천 척 떨어진 곳에서 주위를 자세히 살폈다. 회오리 아래의 지면이 움푹 파인 것으로 보아 이전에 이곳에 조각상 하나와 마르지 않은 나무 한 그루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고식엽은 굉장한 보물이야. 그게 여기 있는 거라면 좀 더 얻고 싶군.”
한제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바짝 말라버린 어느 나무 옆에 이르렀다. 그는 나무에 손을 대고 신식을 불어넣었다.
자세히 관찰해볼 생각이었지만 나무에 신식을 불어넣은 순간 한제는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자신의 신식이 나무의 뿌리에 닿자 대지에서 놀랄 만한 무언가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얼른 손을 거둔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허공에 떠오른 채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허공에서 보니 이 드넓은 숲은 하나의 두개골과 같은 형태였다.
“그렇군!”
한제는 이어서 땅속에 숨겨진 것을 살폈다. 그러더니 이내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던 그는 오른손을 휘둘러 붉은 검을 소환했다. 붉은 검은 곧장 한 줄기 붉은 빛이 되어 지면으로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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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네 번째 지도에 표시된 지역의 끄트머리에서는 봉천랑족 사내가 탄 암석 조각이 질주하고 있었다.
기억을 따라 나아가던 그는 네 번째 지도의 범위를 벗어나 다섯 번째 지도의 범위에 진입한 순간, 탐욕이 번득이는 눈으로 고식엽을 하나 소환했다.
‘힘들게 다른 자에게서 빼앗았건만 둘 중 하나는 영동상인이 가져가 버렸지. 만약 내가 추격하던 그자로부터 이 잎의 놀라운 힘을 확인하지 못했더라면 이런 평범하게 생긴 잎이 그리 강력할 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거야. 한데 다섯 번째 지도의 끄트머리에 이 잎이 그려져 있으니 어쩌면 그곳에서 이걸 좀 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내는 입술을 핥으며 암석 조각을 앞으로 몰아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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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제가 날린 붉은 검은 쉭 소리를 내며 천둥번개처럼 내달려 눈 깜짝할 사이 말라붙은 지면과 충돌했다. 그 순간.
“크아아!”
대지 아래에서 누군가의 포효가 먹먹하게 울려 퍼졌다. 뒤이어 대지에는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균열이 갈래갈래 퍼져 나가는 사이 보라색 빛이 균열에서 새어나왔다.
콰쾅!
이내 지면이 터져 나가며 돌이 사방으로 튀었다. 붉은 검의 기운에 부서지면서 움푹 파인 자국이 끊임없이 아래로 가라앉았고 보라색 빛은 갈수록 강하게 번득였다.
그때, 갈라진 균열에서 한 마리 뱀 같은, 길이가 수천 척에 달하는 보라색 흉수가 튀어나왔다. 머리가 없는 녀석은 긴 몸뚱이 끄트머리에 난 한 줄기 균열로 보라색 독을 분출하며 붉은 검에게 달려들었다.
콰쾅!
짧은 굉음이 울렸고 분출된 독을 관통한 붉은 검은 곧장 파죽지세로 흉수를 파고 들어가 반대쪽으로 뚫고 나왔다.
“캬아아악!”
날카로운 포효가 대지에서 울려 퍼졌다. 붉은 검이 번득였고 지하에서는 요란한 충돌음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한제는 허공에 떠오른 채 결인을 그린 두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손바닥이 나타나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면으로 달려들었다.
모든 것은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손바닥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무궁무진한 원력을 흡수하면서 하늘을 뒤흔들 법한 기세로 대지에 떨어졌다.
콰쾅!
땅은 진동했고 말라버린 나무들은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거대한 손바닥의 힘은 곧장 땅 밑으로 전달됐다.
“이래도 안 나올 테냐!”
한제가 두 눈을 서늘하게 번득였다.
지면은 또다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흙과 모래가 재처럼 사방에 날리고 층층이 와해되는 사이 지면에는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는데 그 아래로는 회백색 뼈가 일부 드러났다. 두개골의 오른쪽 눈 부분이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두개골은 이 숲 전체의 바닥을 이루고 있었다. 구멍을 통해 드러난 오른쪽 눈구멍에서는 한데 얽혀 있던 보라색 뱀 같은 흉수 네 마리가 포효하며 기어 나왔다.
한제는 허공에 뜬 채로 네 마리 흉수 사이로 두개골 너머에 숨겨진 거대한 혹을 확인할 수 있었다. 뱀 같은 네 마리 흉수는 그 혹에 달린 촉수인 듯했다.
‘망월과 비슷하지만 다르군.’
한제는 이 말라버린 숲 아래에 거대한 두개골이 하나 묻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숲은 그 두개골 위에 자라난 장소임을 알아챘다.
두개골 안에서 그는 포악하고 거친 한 줄기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신식이 두개골을 훑으면 공격이 시작되리라는 것도 직감했기에 허공으로 떠올라 붉은 검으로 선공에 나선 것이다.
한제의 현재 수준으로는 나천성역에서 마주쳤던 망월과도 맞붙어볼 만했다. 그러니 망월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힘은 훨씬 약한 흉수에게 주눅 들 이유가 없었다.
한제는 덤덤히 몸을 날려 서로 뒤얽혀 있는 네 갈래 촉수 곁에 이르렀다. 촉수들이 달려들자 그의 왼쪽 눈이 아홉 빛깔 화염으로 이글거렸고 오른손을 휘두르자 화염의 폭풍이 쏟아져 나와 촉수들을 뒤덮었다. 그러자 타닥, 타닥 하고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끄아아아!”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지는 사이 화염은 촉수를 타고 두개골 오른쪽 눈구멍으로 퍼져 나가 곧 본체를 태우기 시작했다. 이미 그 안으로 파고든 붉은 검 역시 계속해서 번득이며 끊임없이 휘젓는 중이었다.
보라색 빛이 격렬하게 번득이더니 두개골 안쪽의 혹이 점점 작아지다가 이내 한 줄기 보라색 빛이 되어 눈구멍 밖으로 튀어나왔다.
사방으로 수많은 촉수를 드리운 거대한 혹에서는 짙은 악취가 풍겼다. 망월과 매우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고신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것은 하늘로 치솟아 도망치려 했다.
‘어쩌면 변이된 망월일 수도 있겠군.’
한제의 오른쪽 눈에서 번개 문양이 번득이더니 눈 깜짝할 사이 숲의 상공에 나타났다. 그러자 상공에서 거대한 천둥번개의 회오리가 생겨났고 번개 문양은 곧장 혹을 향해 달려들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천둥번개가 혹에 떨어져 내렸다.
쾅!
번개 문양은 순식간에 혹을 뒤덮었고 이에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거대한 혹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기이한 혹을 제거한 한제의 번득이는 눈빛이 지면의 거대한 구멍 속 두개골에 닿았다. 그는 천천히 내려가 그 두개골 위에 서서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의 손짓에 따라 눈 깜짝할 사이 이 거대한 숲의 절반이 흩어져 버렸다.
언제부터 숲에 묻혀 있었을지 모를 거대한 두개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나 이 두개골은 어찌나 거대한지 아직도 일부만 들여다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두개골의 미간에는 아홉 개의 반점이 낙인처럼 남아 있었다. 그중 아홉 번째 반점은 약간 흐릿했다.
“9성급 고신!”
한제는 경악하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평생을 통틀어 9성급 고신의 시체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가설
두개골을 바라보던 한제는 이전에 일곱 빛깔 조각상이 놓여 있던 곳은 바로 이 두개골의 인중 부분이었고 그것이 이 두개골을 제약하고 있었던 것임을 알아차렸다. 어쩌면 그 조각상은 두개골을 봉인하는 용도였을지도 모른다.
9성급 고신의 두개골을 봉인하는 조각상!
한제의 눈빛에 슬픔이 차올랐다. 고신인 그로서는 오래된 무덤에 들어온 이후 심경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신의 시체에 이어 9성급 고신의 두개골을 보고 있노라니 슬퍼지기까지 했다.
“9성급 고신마저 다 죽은 것인가.”
두개골의 미간으로 다가간 한제는 쪼그려 앉아 오른손으로 낙인 같은 반점을 매만졌다. 이 두개골은 세월의 흐름 속에 이미 고신의 기운을 거의 다 잃은 상태였다.
반점을 매만지던 한제는 어렵지 않게 당시의 상황을 떠올릴 수 있었다. 거대한 몸으로 천하를 호령하던 고신이 일곱 빛깔로 번득이는 어느 수련자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잘린 머리마저 조각상으로 이곳에 봉인되는 광경이 눈앞에 선하게 펼쳐지는 것 같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곳을 뒤덮었던 부연 먼지는 대지가 됐고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이 대지에는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해 점차 숲을 이루게 됐을 것이다.
그때, 한제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9성급 고신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그 몸집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지. 머리가 고작 이 정도 크기일 리 없어. 억지로 몸집을 작게 하지 않고서야⋯⋯.”
한제는 눈빛을 번득이며 두개골의 오른쪽 눈구멍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