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89
남조상인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날카롭게 외치며 물러나는 사이 그의 두 다리는 핏물로 녹아내리면서 뼈까지 붉게 물든 상태였다. 끔찍한 고통에 찢어질 듯한 비명이 애원하는 소리로 바뀌었다.
“끄아아! 사, 살려줘!”
남조상인의 하반신은 이미 흩어져 사라진 상태였고 두 팔도 핏물을 뚝뚝 흘렸다. 이어서 상반신까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독의 파도가 다시 한번 덮쳐들었고 남조상인의 비명은 뚝 끊겨버렸다. 이어서 파도에 휩쓸려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로 한제의 천황로에 거두어졌다.
계외의 수련자들은 더욱 커진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특히 백륵족 노인은 우뚝 멈춰 섰고 한제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자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다급하게 뒤쪽으로 물러났다.
한제는 말없이 왼손을 휘둘러 남은 여섯 방울의 독까지 독의 바다에 녹여 넣었다. 귀한 법보라고 아낄 때가 아니었다.
더욱 짙어진 독해(毒海)가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한 순간, 한제는 낮은 기합을 내지르며 왼손으로 상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독해로 형성된 거대한 회오리는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동시에 한제가 왼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자 공간에 균열이 생겨나더니 수많은 흡혈마수가 거칠게 튀어나왔다.
독의 바다나 흡혈마수 모두 한제의 필살기로 지금까지는 아껴둘 수밖에 없었다. 적절한 순간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위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저지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이 꼭 최적의 시기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도 없었다. 더욱이 지하마수는 금빛 폭풍을 집어삼킨 뒤로 몇 번을 소환해도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으니 한제가 쓸 수 있는 패는 많지 않았다.
독해가 하늘을 뒤덮으며 휘몰아치고 흡혈마수들이 달려드는 아비규환과도 같은 상황. 한제가 맹렬히 돌진하다가 운락 대사와의 거리가 1천 척으로 줄어든 순간 개천부를 세차게 휘둘렀다.
개천부는 모든 것을 무너뜨릴 기세로 우렁찬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갈랐다. 동시에 수많은 계외 수련자들의 심신은 마구 진동했다. 마치 개천부의 힘 앞에 우주의 모든 존재가 지워져 버린 것만 같았다.
운락 대사 주위에는 아직 도망치지 않고 그녀를 지키고 있는 수련자가 적지 않았다. 허나 이 순간, 그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거대한 도끼를 넋이 나간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가장 앞에 있던 흑의의 중년 사내는 무의식적으로 두 팔을 들며 결인을 그리려 했지만 도끼의 예리한 빛은 이미 그를 스쳐 지나간 후였다.
사내의 미간에 한 줄기 붉은 선이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뻗어 나가 그의 전신을 갈랐다. 잠시 후, 사내는 피를 마구 뿜어내면서 둘로 갈라져 버렸다.
뒤를 이어 사내 주위의 수련자 수십 명이 마치 정신술에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바르르 떨면서 우뚝 멈춰 섰고 다음 순간 그대로 쪼개졌다.
도끼의 빛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날아갔다. 심지어 쉭 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운락 대사의 앞을 막아선 계외 수련자들은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채기도 전에 모두 무너져 내렸다.
그들의 뒤로 도열한 수천 명의 수련자도 다르지 않았다. 마치 조각상처럼 굳어 있다가 미간에서 피를 뿜으며 순식간에 숨을 거둔 것이다. 이 도끼의 빛을 저지할 수 있는 힘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을 보호하던 모든 수련자를 관통한 도끼가 곧장 달려들자 운락 대사는 바르르 떨었다. 이미 극도의 무력감을 느끼고 있던 그녀의 두 눈은 어마어마한 기세의 도끼로 가득 차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도끼가 코앞으로 달려든 순간, 운락 대사는 혀끝을 깨물어 피를 뿜어냄으로써 손바닥만 한 붉은 방패를 형성했다. 팔각형의 방패는 까마득히 많은 문양으로 이루어진 요철에 뒤덮인 채 번득였다.
개천부에서 번득이던 강한 빛이 붉은 방패 위로 떨어졌다.
꽝!
우주를 뒤흔드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사이 붉은 방패는 마치 두부처럼 뭉그러지려는 듯했다. 방패 위에 새겨진 문양들은 도끼의 빛을 막으며 촘촘한 그물로 변했다.
허나 이 그물은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그대로 찢겨나갔고 방패는 단숨에 파괴됐다. 이어서 방패를 관통한 도끼의 빛은 무엇이든 소멸시킬 법한 기세로 운락에게 달려들었다.
허나 도끼의 빛은 운락 대사를 그대로 관통하더니 그 너머 봉계의 진에 떨어졌다. 그 충격에 봉계의 진이 바르르 진동했다.
설명은 장황했지만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쿨럭!”
운락 대사는 피를 뿜어내더니 둘로 갈라져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조각의 천 덩어리가 되어 흩어졌다.
“분신이었군!”
한제는 살기 어린 눈을 번득이며 갈라진 천 덩어리를 노려보다가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화염이 일어나 그 천 덩어리들을 곧장 불태웠다.
“내가 네 본체를 못 찾아낼 것 같은가?”
한제가 차게 외친 순간, 무너져 내린 천 덩어리에서 두 갈래의 어스름한 실이 흘러나와 서로 뒤얽히더니 회오리를 형성했다.
“안내해라!”
한제의 짧은 호통에 회오리 너머로 어두운 구멍이 드러났다. 계속해서 회전하는 구멍 너머는 칠흑처럼 어두워 어디로 이어진 것인지 파악하기란 불가능했다.
어두운 구멍이 나타난 순간 한제는 오른쪽 눈에 깃든 번개 문양을 번득였다. 그러자 한제가 아홉 갈래의 천둥번개로 봉인해놓은 극의 경계가 붉은 번개 형태로 튀어나오더니 곧장 어두운 구멍으로 달려들었다. 동시에 화염의 본원이 녹아든 천둥번개도 나타나 극의 경계를 뒤따랐다.
★ ★ ★
태고 성신, 장존회의 3대 금지(禁地) 중 하나. 범상치 않은 이곳은 운락 대사의 선조가 대대로 물려준 성지였다.
맑은 호수에 뜬 섬 위로 누각이 하나 있었고 그 안에는 가부좌를 튼 운락 대사가 있었다. 백의 위로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그녀는 창백했고 분신이 소멸한 순간 몸을 바르르 떨며 한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이렇게 토해낸 피는 안개가 되어 퍼져 나갔고 몇 방울은 옷에 튀기도 했다.
꼭 감고 있다가 번쩍 뜬 두 눈에는 두려움이 가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급변한 얼굴로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저 멀리 하늘에서 시커먼 회오리와 어두운 구멍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콰르릉!
회오리와 함께 천둥소리가 울렸고 번개도 나타났다.
붉은색의 번개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더니 곧장 운락 대사가 가부좌를 틀고 있는 섬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 번개는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 굵기가 1천 척에 달하는 거대한 번개가 되었다. 분노한 하늘이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 쏘아 보낸 번개 같은 모습이었다.
꽈릉!
극의 경계의 강력한 위압감을 품은 번개가 호수 위의 섬에 떨어졌고 섬은 격렬하게 진동했다.
뒤를 이어 무궁무진한 화염이 이글이글 타오르며 섬을 집어삼켰다. 호수는 순식간에 수증기로 변해 증발해버렸다.
번개와 화염에 뒤얽힌 채 강하게 흔들리던 섬은 거대한 망치에 얻어맞은 듯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천성역과 소하성역의 움직임
“하늘에서는 천둥번개가 내리치고 불바다가 일어나며, 섬은 분리되고⋯⋯.”
섬의 중앙에 가부좌를 튼 운락 대사의 뒤. 누각은 부드러운 빛에 뒤덮여 있었다. 그 빛에 휩싸인 운락은 또 한 번 피를 토해내더니 잿빛으로 변한 얼굴로 씁쓸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선조들이 전해 내려준 아홉 개의 예언 중 벌써 다섯 개가 실현되었어!”
바로 그때, 불바다를 맴돌며 섬을 무너뜨린 극의 경계가 사방에서 운락 대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붉은 뱀들이 화염 속을 유영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붉은 번개는 빽빽하게 몰려들어 순식간에 운락 대사를 감싼 부드러운 빛과 충돌했다. 그러자 부드러운 빛은 마구 왜곡되면서 응축하더니 운락 대사로부터 수십 척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추었고 그 상태로 극의 경계에 저항하려는 듯 번득였다.
하지만 이 빛은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고 이에 붉은 번개는 곧장 운락 대사를 공격했다.
붉은 번개들이 달려든 순간 운락 대사는 씁쓸한 얼굴로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색의 아주 오래된 듯한 기운을 풍기는 해골 한 구가 앞에 나타났다. 그녀 스승의 유골이었다.
그 순간, 모든 붉은 번개가 해골을 향해 마치 빨려드는 듯이 돌진했다.
콰르릉!
해골은 단숨에 무너져 내렸다.
“선조의 뼈는 부서지고 영혼은 부족으로 돌아올 것이다. 추난(秋蘭)은 다시 살아날 것이고⋯⋯.”
운락 대사가 조용히 읊조리는 사이 모든 붉은 번개를 흡수하면서 무너져 내린 해골은 한 줄기 폭풍이 되어 그녀를 감쌌다.
콰쾅!
운락 대사의 육신은 순식간에 와해되었고 원신도 붕괴했다. 하지만 그녀의 혼만은 해골이 무너지면서 형성한 폭풍에 녹아든 채 한 줄기 어스름한 빛으로 번득이며 사라져 버렸다.
★ ★ ★
운해성역 전장. 도끼를 든 채 허공에 선 한제는 전광과 같은 눈빛을 번득이며 계외의 침입자들을 훑어보았다. 두 눈에서는 살기가 번득였다.
파도치는 독해(毒海)와 수많은 흡혈마수들이 사방에서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 저 멀리서 파문이 일더니 9백 개가 넘는 수련성이 나타났다.
나천성역의 지원군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멀리서 번개가 줄기줄기 모습을 드러냈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드는 번개는 그 수를 다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소하성역의 지원군이었다.
각 번개에는 소하성역 수련자들이 서 있었다. 번개 하나에 한 명만 올라타기도 했고 열 명, 심지어 백여 명이 올라 있기도 했다. 번개들은 어찌나 빠른지 육안으로는 따라잡을 수도 없었고 각 수련자들의 복장은 퍽 기이했다. 마치 군대처럼 옷은 같았으나 외모는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서로 달랐다.
허나 무엇보다 기이한 것은 그들 대부분이 여인이라는 점이었다. 수만 명 중 남자 수련자는 수천에 불과했는데 이는 다른 성역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소하성역 수련자들은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살기를 내뿜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문인처럼 보이는 수련자가 있었다. 용과 같은 번개를 밟고 선 채 머리를 휘날리는 그녀의 용모는 매우 빼어났다. 그리고 그녀 곁에는 중년 부인이 묵묵히 서 있었다.
한편, 나천성역 지원군들은 하나하나의 파문에서 나타난 수련성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각기 다른 가문 출신이었지만 지금은 하나로 뭉쳐 있었다.
이들을 이끄는 노부자의 얼굴은 어두웠지만 짙은 살기가 어린 눈빛으로 소매를 휘둘러 부러진 검을 소환했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소하의 수련자도 나천의 수련자도 아니었다. 모두 계내의 수련자일 뿐이었다.
지원군들이 나타나자 운해성역 수련자들은 격앙된 모습이었다. 이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잊은 상태였지만 지원군이 등장하니 절로 사기가 높아진 것이다.
반면 계외의 침입자들은 아직도 수적으로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심신이 떨리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게다가 독해(毒海)와 흡혈마수들의 공격에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나고 있었는데 꼭 패잔병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때 터져 나온 한제의 낮은 외침은 한 자루 예리한 검처럼 계외 수련자들의 저항 의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화작족 선조는 죽었다! 남조상인도 이미 죽었다! 장존회의 운락 대사도 죽었다! 다음은 네놈들이다!”
한제는 두 눈을 번득이며 몸을 날렸고 동시에 손에 든 개천부를 휘둘렀다. 순식간에 곳곳에서 계외 수련자들이 시체로 변했다.
그때, 소하성역에서 온 어느 남장 여자가 전광을 번득이며 남운자와 선비가 싸우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남운자 도우, 저자는 이 자몽에게 맡겨주게.”
문인 차림의 여인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을 휘둘러 싸움에 나섰다.
남운자는 피식 웃으며 물러나더니 영동상인과 주진을 이끌고 봉계의 진으로 향했다. 최대한 빨리 진을 고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