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97
사흘이 흘렀다. 그동안 한제는 오른쪽 눈의 여섯 개 반점이 체내의 저항력을 분담하게 했다. 이에 따라 여섯 개의 반점은 전부 금빛을 띠게 되었지만 금빛 번개에 가려진 터라 잘 보이지는 않았다.
덕분에 한제는 점점 격렬해지던 저항력을 겨우 제압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그저 시간을 번 것일 뿐,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되지는 못했다. 선인의 힘과 고신의 힘 사이에 발생하는 저항력은 그늘처럼 내내 그의 심신에 드리워져 있었다.
두 눈을 번쩍 뜬 한제는 어두운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전장에서 이광의 활을 손에 넣었고 금빛 폭풍을 토해낸 지하마수가 명령에 따라 나를 삼켰지. 그러니까 여기는 지하마수 체내의 세계일 터. 나가는 방법은 간단하지.’
그때 고민에 잠겨 있던 한제에게 광인이 엄숙한 얼굴로 호통을 쳤다.
“말해라! 누가 네게 우리 선족만이 가질 수 있는 불멸의 육체를 주었느냐! 젠장, 어떤 망할 자식이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말하란 말이다!”
한제는 멍한 얼굴로 광인을 바라보았다. 상대를 몇 번이나 자세히 살피는 한편 조금 전 있었던 일들을 곱씹던 상대가 말 그대로 광인일 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형편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굉장한 내력을 가진 자였다. 스스로를 왕이라 칭했지. 그자는 대체 어떤 자일까?’
한제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광인은 무슨 말을 하던 중인지도 잊고 활짝 웃었다.
“드디어 나와 눈을 맞추는군! 그렇다면 약속대로 상을 줘야지!”
한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차가운 얼굴로 손을 휘둘러 활을 소환했다.
이미 그와 하나로 합쳐진 활은 육신이 무너지는 과정 속에서도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고 체내의 원선에 녹아 들어 있어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소환해낼 수 있었다. 다만 시위가 끊어져 있어 사용할 수는 없었다.
복잡한 눈으로 활을 바라보던 한제는 다시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활을 다시 거두었다.
‘이 저항력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한편 광인은 또다시 자신을 무시하는 한제의 모습에 콧방귀를 뀌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웃지 않으려거든 웃지 마라. 나도 상을 주지 않으면 그만이니! 내 피는 매우 귀중하다. 한 방울만 해도 가치가 엄청나지. 그런 피를 너는 한 방울도 가지지 못할 줄 알아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눈을 굴리던 광인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됐다, 됐어. 내가 워낙 아량이 넓은 사람이니. 그리도 부끄럽다면 나중에 웃으면 될 것 아니냐. 이렇게 하자 내게 네 이름을 알려주면 상을 주마! 왜? 이름도 알려주지 않을 작정이냐? 기어코 나를 화나게 만드는구나! 그럼 성이라도 알려줄 수는 있겠지? 뭐? 그것도 말하기 싫다? 좋다. 난 너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은 녀석을 좋아하지. 그럴수록 더욱 흥분된단 말이야. 크하하”
광인은 껄껄 웃으며 다시 혼자 나불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한제 곁으로 다가와 주위를 맴돌며 떠들어댔다.
슬슬 인내심이 바닥난 한제는 광인을 바라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끄럽군!”
광인은 흠칫 놀라더니 두 눈을 부릅뜨고는 우뚝 멈춰 섰고 갑자기 호통을 쳤다.
“어디 감히 이 왕에게 그런 말버릇을! 간도 크구나!”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가볍게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금빛 광풍이 일어나 수련성을 격렬하게 흔들더니 광인을 먼 곳으로 떠밀었다. 광인은 비명을 내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마침내 적막이 찾아왔고 한제는 들었던 손을 내려놓은 뒤 다시 고민에 잠겼다.
하지만 광인은 굴하지 않았다. 한제가 막 생각에 잠겼을 무렵, 저 멀리서 낮은 포효가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광인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그는 순식간에 한제 앞에 들이닥치더니 또 한 차례 말을 쏟아놓으려 했다.
“휴우, 정말⋯⋯.”
“끄아아!”
한제는 다시 광풍을 일으켰고 광인은 또 한 번 비명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여덟 번… 열다섯 번.
무려 열다섯 번이나 같은 일이 반복됐을 때, 한제의 눈빛이 더욱 싸늘하게 변했다. 광풍에 밀려나는 광인의 비명에 쾌감이 깃들어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다. 이에 한제는 결국 포기했다.
“정말 짜릿해!”
광인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외치더니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리기까지 했다. 이제 얼른 한제가 자신을 떠밀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광풍이 일지 않자 광인이 슬며시 두 눈을 떴다.
한제 역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은 더없이 서늘했다.
신통술
“날려줘! 어서 날 날려줘!”
광인은 눈을 깜박이고 펄쩍펄쩍 뛰면서 하늘을 나는 시늉을 했다. 그럼에도 한제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정말 화가 난 듯 한제를 노려보다가 간절한 얼굴로 외쳤다.
“아주 재미있단 말야! 어서 계속 해!”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짜증이 난 한제는 광인의 엉덩이를 힘껏 걷어찼다. 그 발에는 저항력을 건드리지 않고 낼 수 있는 육신의 힘 중 거의 7할에 달하는 힘이 실려 있었다. 공열기 중기 수련자를 기겁하게 할 만한 힘이었다.
그러나 광인은 놀랍게도 신이 난 듯 포효하며 두 팔을 쫙 펼쳐 먼 곳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열일곱 번째로 돌아온 그의 얼굴에는 지금까지보다 더 설레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그러더니 말없이 수십 척 떨어진 곳에서 돌아서더니 엉덩이를 쭉 빼고 눈을 감은 채 두 팔을 옆으로 펼치기까지 했다.
이제 인내심이 바닥까지 파고들어간 한제는 주먹을 움켜쥐며 악다문 입술 사이로 씹어뱉듯 말했다.
“그렇게 비명을 지르고 싶다면 좋다!”
한제는 허공을 움켜쥐며 저물공간을 열었다. 그 안에서 빠져나온 것은 거대하고 검은 원숭이였는데 이 원숭이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쿵 하고 대지에 떨어졌다. 운해성역 어느 대륙에서 찾은 이 원숭이는 그리 강하지는 않았지만 포효를 내지르는 것만큼은 매우 좋아하는 흉수였다.
“우호호호호! 캬우우!”
검은 원숭이는 저물공간 밖으로 나오자마자 포효하며 굵은 두 팔을 마구 휘둘러 가슴을 두드렸다. 쿵, 쿵 하는 묵직하고도 강력한 소리가 났다.
이에 흠칫 놀란 광인은 말없이 검은 원숭이를 살피다가 마치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흥분한 표정이 됐다. 그러더니 원숭이를 흉내 내듯 두 주먹으로 가슴팍을 마구 두드렸다.
그러자 정작 놀란 것은 검은 원숭이였다. 녀석은 의아하다는 눈으로 광인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게 도발의 뜻임을 읽어낸 녀석은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두려워하면서도 심신을 통해 전해진 한제의 명령에 따라 다시 포효했다.
이렇게 해서 광인과 원숭이는 서로를 마주한 채 계속해서 포효했다. 마치 포효로 상대를 압도하려는 듯 소리는 갈수록 격렬해졌다.
겨우 한시름을 놓게 된 한제는 다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의 생각 끝에 어느 정도 갈피를 잡았다.
‘내가 가진 다섯 개의 본원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삶과 죽음의 본원, 인과의 본원, 그리고 진실과 거짓의 본원이다. 만약 세 가지 본원을 완성해 대도로 삼는다면 체내의 저항력도 통제할 수 있을 터.’
그는 여기서 그칠 생각이 없었다.
‘나아가 삶과 죽음의 본원으로 생사를 간파하면 저항력을 삶과 죽음으로 분리할 수도 있겠지. 인과의 본원으로는 두 갈래로 분리한 저항력으로 하나의 순환을 이루게 할 수 있을 테고. 마지막으로 진실과 거짓의 본원으로는 저항력을 도로 속여 원선과 도고를 완벽하게 융합시킬 수 있을 거야!’
한제는 두 눈을 번득이며 이 방법을 더욱 깊게 검토했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하면 다섯 갈래의 본원을 모두 완성해 공의 문을 열고 진정한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될 수 있어!’
한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삶과 죽음, 원인과 결과 진실과 거짓. 이 세 가지 본원을 어떻게 완성할지는 이미 생각해뒀다. 이제 하나만 더 갖추면 성공할 수 있어! 내게 필요한 것은 도과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했을 무렵, 한제의 귀에 와 닿는 고함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검은 원숭이는 이미 목소리가 탁해져 있었고 광인을 향한 두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난 검은 원숭이는 더는 고함을 지를 엄두도 안 난다는 듯 애원하는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편 이 모습에 더욱 의기양양해진 광인은 비록 약간 피곤한 기색이 드러나고 목소리가 갈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연거푸 두드리며 웃었다.
“우하하! 난 어렸을 때부터 형님에게 고함을 지르며 커왔다. 소홍도 나의 고함에는 무서워 벌벌 떨지. 세상 그 무엇보다 나의 목소리는 크고 또 아름답지! 원숭이 따위가 어디 감히 고함으로 내게 대적하려 하느냐! 어서 덤벼라! 고함 대결을 끝낸 뒤에는 신통술로 겨뤄야지. 내 갖가지 신통술의 위력을 똑똑히 보여주마!”
광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한편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순간 수련성의 하늘이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빛 안에서는 거대한 손바닥이 응집되었다.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품은 손바닥은 그 위의 주름 하나하나가 마치 골짜기처럼 보일 만큼 거대해지더니 하늘에서부터 콰르릉 하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역령인!”
한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제야 자신이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저 광인이 발휘한 갖가지 신통술이 모두 정통이었음이 떠올랐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역령인을 바라보던 한제의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이는 저 광인이 그에게 주는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한제는 굳은 얼굴로 하늘에 나타난 거대한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나타난 허상의 손바닥 주위로 파문이 퍼져 나갔다. 손바닥의 장문(掌紋)은 매우 또렷해 마치 허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한제가 익힌 역령인과 상당히 미세하게 달랐다. 한제의 역령인은 장문이 이토록 또렷하지 않았고 일단 발휘되면 세상의 힘을 흡수해 더없이 거대해졌고 통제하기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역령인은 커지면 커질수록 더 많은 힘을 흡수해 결국은 통제를 벗어났다.
한제는 그 이유가 전승받지 않고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일 거라 짐작했다. 특히 수도자가 발휘한 역령인에는 그런 결함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수도자의 역령인도 지금 광인이 소환한 역령인처럼 장문이 또렷하지는 않았고 가장자리에서 기이한 파문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이 파문은 어째서인지 현무의 강한 술법으로 발휘되는 진동과 비슷했다.
한제가 신중하게 관찰하던 중 역령인은 느닷없이 지면으로 떨어졌다. 그 충격으로 대지가 진동하고 강한 기류가 사방으로 확산됐으며 이로 인해 일어난 먼지 때문에 주위는 부옇게 흐려졌다.
손바닥이 떨어진 범위에 있었던 한제는 그 힘을 느끼는 한편 그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술법의 변화와 운용을 관찰했다.
‘강한 역령인이다. 세상의 원력으로 손바닥을 형성하려 하고 있거나 세상의 힘으로 영혼을 생성하려 하고 있어. 그 영혼을 선력으로 뒤덮어 역령인을 만들려는 게지. 허나 여전히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을 파악하려면 역령인을 전승해야 할 터!’
부옇게 일었던 먼지가 가라앉자 광인은 의기양양하게 웃기 시작했다.
“어떠냐? 나의 신통술이 어떠하냔 말이다! 하하하!”
그는 검은 원숭이에게 뽐내듯 말했지만 두 눈은 한제를 힐끔거렸다.
광인을 살피던 한제는 피식 웃었다. 그러자 광인은 뭔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한제가 대체 왜 웃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훌륭한 신통술이야. 하지만 그 신통술은 나도 발휘할 수 있다. 위력도 떨어지지 않지.”
광인은 이 도발적인 말에 불쾌하다는 듯 한제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나보다 강한 신통술을 발휘할 수 있는 자는 없다! 형님은 빼고… 너 나에게 몰래 배우려는 게지? 허튼 수작! 형님은 누구에게도 이 술법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예전에도 누군가가 내게서 술법을 몰래 배우려다가 딱 걸렸지. 흥! 감히 나처럼 똑똑한 사람을 속이려 들다니!”
한제는 말없이 오른손을 하늘로 뻗었다.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흐릿한 손바닥이 나타났다. 이 손바닥은 곧장 사방의 힘을 빨아들이며 점점 또렷해지면서 빠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엄청난 위압감과 광풍이 발산됐고 대지는 쩍쩍 갈라졌다.
광풍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면서 광인은 멍한 눈으로 거대한 손바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손바닥이 대지에 떨어지기 직전, 한제가 두 눈을 번득이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응집!”
그의 명령에 손바닥은 빠른 속도로 수축하며 금방이라도 통제를 벗어날 기색을 보였다.
쾅!
손바닥이 대지를 가격하자 수련성이 진동했고 광인은 펄쩍 뛰어올랐다.
대지에 또렷한 낙인을 남기며 떨어진 거대한 손바닥은 길이가 수십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구멍처럼 보였다.
“만약 네가 이 술법으로 이렇게 깊은 구멍을 낼 수 있다면 그때는 네 신통술의 강력함을 인정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