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96
지금 한제의 체내에는 두 갈래의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하나는 고신의 것, 나머지 하나는 선인의 것이었다. 두 갈래 의지의 충돌과 갈등은 한제에게 닥친 위기이자 기회였다.
조금 일찍 강림한 고신의 두 번째 손은 선체에 수많은 균열을 내고 무너뜨렸다. 선체가 붕괴하면서 일으킨 힘은 막 폭발한 두 번째 손과 충돌하면서 기이한 방식으로 서로를 파괴했다.
꽈르릉!
온 세상이 요란하게 요동쳤고 한제의 몸은 순식간에 대대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고신의 육신은 무너져 내려 수련성의 대지에 녹아들며 거친 파문을 일으켰다. 이 파문은 순식간에 퍼져 나가 모든 산봉우리를 무너뜨려 지면을 거울처럼 매끈하고 평평하게 만들었다.
선체 역시 무너져 내리면서 파괴된 원신과 함께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우렁찬 소리와 함께 지하마수의 체내 세계와 분리된 하늘은 또 다른 세계가 된 것처럼 모든 것을 대체했고 하늘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금색 하늘과 검은색 대지. 전설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었다.
이 무렵 정신을 차린 광인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 누워 이 모든 상황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눈을 비볐다.
“내 눈이 잘못됐나? 이건 금색 하늘과 검은색 대지라니. 형님이 말해준, 선족 선조가 강림할 때 나타날 첫 번째 징조인데…”
그때 돌연 하늘을 뒤흔드는 우렁찬 포효가 울려 퍼지면서 대지가 폭발하듯 바르르 진동했다. 광인은 거대하고 검은 그림자가 수련성의 진동하는 대지에서 쑥 빠져나와 하늘로 날아드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늘을 떠받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그 그림자는 다름 아닌 도고 고신으로 한제와 꼭 닮아 있었다. 미간의 일곱 개 반점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사이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며 하늘로 몸을 날린 그는 큼지막한 주먹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마치 금빛 바다처럼 번득이는 하늘에서는 금색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기로 가득 찬 채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발산하는 인영은 대지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도고 고신을 서늘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소매를 휘둘렀다. 이에 금빛 하늘에서는 무궁무진한 파문이 일어났다.
한데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회오리를 일으킨 그 사람 역시 한제와 똑같았다. 그는 미간에 새겨진 둥그런 문양으로 강한 금빛을 발산하며 도고 고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 한제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이내 눈 깜짝할 사이 충돌했다. 하지만 그들이 충돌을 통해 서로를 소멸시키려 한 순간, 두 사람 사이에서 한 줄기 어스름한 빛이 번득이며 나타났다. 그 빛 안에는 구슬이 하나 들어 있었다. 갓난아이 주먹만 한 구슬. 바로 천역주였다.
그 순간, 그때까지 바닥에 드러누워 멍하니 지켜보던 광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멍하니 그 구슬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건… 중요한 것 같아 보이는데? 형님도 저걸 찾고 있을 것 같아. 저건 마치⋯⋯ 아, 잊어버렸군. 저건 뭐지? 소홍, 저게 뭐냐?”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금색 하늘과 검은 대지의 힘은 갑작스레 나타난 천역주를 중심으로 충돌했다.
천역주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회전했을 때 한제의 인영을 포함한 금색 하늘의 모든 것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완벽하게 융합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천역주 밖으로는 금색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역주가 두 번째로 회전한 순간, 검은 대지와 그곳에서 나타난 도고 고신 역시 눈 깜짝할 사이 천역주 속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이내 금색 인영 옆에 키가 1만 척에 달하는 고신의 육체가 나타났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고신의 육체에서는 금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그는 바로 한제였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
얼마나 지났을까?
한제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왼쪽 눈에는 금빛 화염이, 오른쪽 눈에는 금빛 번개가 번득였고 미간에서는 둥근 문양이 흩어져 사라지고 고신의 반점 일곱 개가 회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일곱 개의 반점은 금색으로 바뀐 상태였다.
몸을 바르르 떤 한제는 한 움큼 피를 토하더니 저 아래에서 자신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는 광인을 훑어보다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그렇게 대지에 내려선 그는 두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더니 좌선을 시작했다.
한편 광인은 한제의 시선에 자신을 훑었을 때 심신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에 그는 딴청을 부리며 휘파람을 부는 척하면서 고개를 돌렸지만 곁눈질로 한제를 힐끔거렸다.
한참 뒤, 광인은 마른기침을 한 번 하고는 멀지 않은 곳에 가부좌를 튼 채 음흉하게 웃었다.
“이봐, 나랑 얘기 좀 할까? 잘하면 내가 상을 주지!”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한제의 안색을 살피던 광인은 상대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고개를 갸웃하더니 조심스레 다가오며 손을 비볐다.
“말해봐라. 이름이 무엇이냐? 답을 하면 내 상을 주마!”
하지만 이번에도 한제는 말없이 눈을 감고 호흡만을 이어갔다.
“말을 하지 않을 셈이냐? 감히 내 질문에? 당시 소홍도 내게 붙잡혀 온 이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그래서 난 그놈의 온몸에 난 털을 다 뽑았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느냐?”
광인은 한제에게 몇 걸음 더 다가가더니 아예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넌 생각도 못할 거다. 그때 나는 소홍 그 녀석에게⋯⋯ 하하, 아하하하!”
광인은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는 배가 아파 죽겠다는 듯 웃어댔다. 그러나 실컷 웃던 그는 겨우 웃음을 멈추더니 한제를 노려보았다.
“왜 안 웃는 게냐? 내 말이 재미없느냐? 내가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이가는 모두는 웃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감히 웃지 않다니!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내 형님을 불러올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소홍을 어떻게 했는지 말을 안 해줬군. 궁금하냐? 궁금하지? 뭐, 그렇다면 말해주지. 그때 말이다, 내가 소홍을 어떻게 했더라⋯⋯?”
광인은 미간을 팩 찌푸리더니 턱을 벅벅 긁고 머리를 세게 두드렸다. 두 눈은 혼란에 빠진 듯 흔들렸다.
“젠장, 또 까먹었군!”
광인은 한 번 나불대기 시작하면 며칠이 지나도록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토록 떠들어대기를 좋아하는 그에게 아쉬운 점이라면 한제가 아무 대꾸도 없이 그냥 듣기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어쨌든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만족한 듯 계속해서 나불거렸다.
물론 한제는 그의 말을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지금 그의 체내는 매우 혼란한 상태였다. 고신의 육신 안에는 원신을 대신해 원선이 자리해 있었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는 천역주가 회전하고 있었다. 일반인들의 시간 단위로 따지자면 이 천역주는 열두 시진, 그러니까 하루에 한 바퀴씩 회전했다.
체내 원력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 대신 그의 골수에서 새로 생성된 피는 짙은 선력으로 가득했다. 이 선력은 원력보다 훨씬 더 강력했지만 지금은 양이 너무 적었다. 본래 가졌던 원력이 큰 강이라면 지금의 선력은 개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적은 양임에도 불구하고 선력은 한제의 심신을 진동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한제는 그 선력에 깃든 무시무시한 기운을 느끼고는 가볍게 몸을 떨기도 했다.
고국의 세 부족
한편 원선을 둘러싸고 있는 고신의 육체는 일곱 개의 반점이 무너져 내리면서 두 번째 손을 앞당겨 맞게 된 상태였다.
다만 이 두 번째 손은 완전히 폭발하기 전 천역주에 의해 육신에 흡수된 덕에 이 고신의 육체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도고의 힘을 갖게 되었다.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그 강력한 힘이 소리 없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체내에서 증폭된 그 힘으로 인해 한제는 심지어 공열기 후기에 이른 수련자와도 맞붙을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의 그는 선인과 고신이 결합된, 전례를 찾기 힘들 만큼 특이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지금의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체내에서 끊임없이 격렬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육신과 원선이 결합한 상태에서도 서로 충돌이 일어나 발생하는 통증이었다.
천역주도 선인인 한제와 고신인 한제를 억지로 융합시켜 놓았을 뿐 그 안에 존재하는 고통의 근원까지 제거하지는 못했다.
선인과 고신의 서로를 향한 저항력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면 한제는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을 터였다. 선력이 가동될 때마다 극심한 통증과 함께 도고의 힘에 의해 저지되어 실제로 발휘할 수 있는 위력은 전체의 2할 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공열기 후기 수련자를 상대하기에 충분할 정도이긴 했다. 그러니 만약 모든 힘을 온전히 발휘한다면 얼마나 강해질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아마도 남조상인 같은 수련자는 상대도 되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마찬가지로 육신의 힘 역시 원선으로 인해 온전히 발휘될 수 없었다.
그뿐이라면 다행이겠지만 한제가 걱정하는 것은 둘 사이의 저항력이 갈수록 격해진다는 점이었다.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그 둘의 충돌은 한제의 육신을 파괴하고 원선을 소멸시키면서 영혼까지 없애버릴지도 모른다.
선인과 고신의 저항력은 머리 위에 매달린 칼처럼 언제든 떨어져 내려 그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제는 가부좌를 튼 채 그 저항력을 제거할 갖은 방법을 고민해보았지만 끝끝내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
미간에 새겨져 있던 선족 선조의 문양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한제는 그게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고신의 일곱 개의 반점에 녹아든 상태임을 알고 있었다. 고신의 반점이 금빛을 띠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며칠 뒤, 광인은 약간 피곤한 듯했지만 여전히 흥분된 기색으로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때, 한제가 두 눈을 떴다. 그 순간 그의 눈동자에서는 두 갈래 금빛이 뿜어져 나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광인의 두 눈에 꽂혔다.
“흠!”
흠칫 놀란 광인은 드디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멍하니 한제의 두 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바보처럼 물었다.
“네가 어찌 우리 종족의 금목(金目)을 가지고 있느냐? 한데 색이 아직 옅구나. 그걸로는 부족하지. 내 것을 봐라!”
광인은 숨을 참으며 뺨을 잔뜩 부풀렸다. 심지어 그의 몸도 부풀어 오르기 시작해 금방이라도 하늘로 둥실 떠오를 것만 같았다.
그러는 와중에 어둡고 흐릿했던 그의 두 눈에서 예리한 빛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뒤이어 그 빛은 짙은 금빛으로 변하며 뿜어져 나왔다.
금색 눈빛을 드러낸 광인은 마치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깊은 위엄을 드러냈다.
“어떠냐? 대단하지?”
그러나 광인이 입을 연 순간 그 위엄은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다.
“기다려라. 더 대단한 것을 보여주마!”
광인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숨을 거칠게 들이마셨다. 그러자 전보다 더 부풀어 오른 그의 몸에서는 쩌적 소리가 났다. 비쩍 말랐던 그의 몸은 어느새 든든한 체격으로 바뀐 상태였다. 덕분에 그에게서는 조금 전 사라졌던 위엄이 다시 느껴졌다.
한데 그때, 부욱 하는 바람 소리가 광인의 엉덩이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부풀었던 그의 몸은 바람 빠진 공처럼 푸시식 하고 원상태로 돌아갔다. 두 눈에서 번득이던 금빛도 곧 사라졌다.
당황한 듯 머리를 긁적이던 광인은 얼굴을 약간 붉히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음⋯⋯ 이, 이건 실수⋯⋯.”
한제는 복잡한 눈빛으로 광인을 바라보았다. 그가 빤히 바라보자 더욱 부끄러워진 광인은 오른손으로 엉덩이를 틀어막은 채 몇 걸음 물러났다.
“실수라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이상하군. 이런 실수를 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광인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무의식적으로 엉덩이를 틀어막았던 손을 코로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저 광인은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죽음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사실 그 선족 선조의 문양이 없었더라면 한제의 몸은 지금과 같이 엉망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선인의 힘과 고신의 힘 사이의 저항력도 지금처럼 격렬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됐다. 광인과 무슨 시비를 가리겠는가.’
한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 저항력에 대해 고민하기에도 바빴다.
한제는 저물공간에서 고마를 소환했다.
몸이 돌처럼 굳어 있었던 고마는 한제가 도고의 계승을 받았을 때 일어난 변화로 인해 원래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오른쪽 눈에서는 고마의 반점 여섯 개가 반짝이며 회전하고 있었으나 영혼이 없는 이 고마의 몸은 보통의 시체와 다르지 않았다.
한제는 6성급 고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원래는 마혼으로 제련해 분신으로 삼을 생각이었지만 강한 저항력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눈을 번득이던 한제는 오른손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그러자 고마는 바르르 경련하더니 급속도로 수축했다. 이내 금세 온몸의 피와 살을 비롯한 모든 것이 마기로 변해 오른쪽 눈의 반점에 녹아들었다.
한제는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 여섯 개의 반점으로 응집된 고마를 자신의 오른쪽 눈에 집어넣었다.
그 순간,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 미간에서는 일곱 개의 금빛 반점이 줄기줄기의 금빛으로 변해 번득이며 오른쪽 눈에 찍힌 고마의 반점에 섞여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광인은 또다시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고신의 육신을 본체로 삼고 고마를 분신으로 삼다니. 그들은 고국 부족들 아닌가? 고국 3대 부족 중 극고(極古)는 고요를 본체로 삼았고 시고(始古)는 고마를 본체로 삼았지. 한데 이상하군, 저자는 분명 우리 선족 사람으로 그중 황족인 나와 형님만이 가질 수 있는 불멸의 육체까지 가졌는데 어떻게 고국의 수련법을 따를 수 있는 거지? 정말 이상한 일이야. 대체 어떤 겁대가리 없는 자식이 고국의 수련자에게 불멸의 육체를 준 거야? 형님이 이 일을 알게 된다면 크게 분노할 텐데! 안 되겠군. 대체 어떤 머저리가 이런 짓을 했는지 내가 알아봐야겠어!”
광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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