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00
그 순간, 광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나가고 싶어! 진짜 나가고 싶어! 계속 나가고 싶었어! 진짜, 진짜, 진짜 옛날부터 나가고 싶었다고! 근데… 출구가 안 보이던데?”
“내가 데리고 나가줄 수 있어. 대신 네가 알고 있는 가장 강한 신통술을 알고 싶은데…”
“그건 선인의 구절도(九絶道)야. 우리 형님도 일곱 번째 절도까지밖에 모르시지.”
광인은 대답하다가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 이상은 얘기할 수 없어.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니 더 얘기했다가는 벌을 받게 될 거야.”
광인은 입을 막았던 손을 떼더니 한제의 눈치를 살폈다.
‘보아하니 전부 진실은 아닌 것 같군.’
한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더 추궁하지는 않았다. 상대의 신통술이 욕심나기는 했지만 물러나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이미 상대에게서 많은 것을 얻었는데 더 욕심을 내다가는 오히려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될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이미 손에 넣은 네 가지 신통술을 다 깨닫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좋아, 사흘 뒤에 데리고 나가주지!”
말을 마친 한제는 두 눈을 감고 좌선을 시작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반드시 최대한 많은 도과를 모아 자신의 머리 위에 매달린 검과 같은 저항력을 해결해야만 했다. 사흘 동안은 체내의 저항력을 억눌러 놓은 채로 몇 가지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럴 수는 없지. 난 이미 너를 스승으로 모셨다. 그런데도 내게 신통술 하나 알려주지 않겠다고? 안 돼! 얼른 내게 신통술을 가르쳐! 그러지 않으면 넌 내게 거짓말을 한 게 된다!”
광인은 얼른 한제 곁으로 달려오더니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허나 한제가 묵묵부답이자 아예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감히 나를 속이다니! 난 네게 벌써 네 개의 신통술을 알려줬다. 그러니 너도 내게 적어도 하나는 알려줘야 하지 않겠느냐! 소홍, 이건 나를 기만하는 행위가 아니냐? 나야 넓은 아량으로 참을 수 있다지만 소홍은 참지 못할 것이다!”
광인의 방해해 질린 한제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더니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금빛 바람이 일어 하늘로 올라가 아홉 마리의 금룡이 됐다. 이 금룡들은 포효했고 극도로 서늘한 보라색 바람을 일으켰다. 대지는 순식간에 쩌적 소리와 함께 얼어 붙어버렸다.
“호풍을 알려주지!”
한제의 말에 광인은 불만스런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툴툴댔다.
“뭐라? 난 바보가 아니다. 이런 허접한 술법 따위 배우지 않아!”
한제는 오른손을 재차 휘둘렀다. 그러자 아홉 마리의 용은 흩어져 사라졌고 뒤를 이어 비구름이 몰려들면서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금빛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져 내리면서 세상의 원력을 응집시켰다.
“비가 온다! 소홍, 봐라! 비다!”
광인은 신이 나는 것처럼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이내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했다.
“나를 놀리려는 거냐? 이게 무슨 신통술이야! 제대로 된 걸 가르쳐줘!”
한제는 호풍, 환우에 이어 살두성병과 산붕까지 차례차례 발휘했다. 하지만 광인은 그것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고개를 젓더니 결국 버럭 화를 냈다.
“이런 쩨쩨한 놈! 끝까지 이럴 거냐? 정말 너무하구나!”
광인을 한참이나 쳐다보던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더니 결심한 듯 남몽도존으로부터 전수받은 번천인, 광영순, 심지어는 도술 융합까지 발휘했다.
“이건 뭐야? 번천인? 싫어! 빛으로 온몸을 감싼다고? 이게 무슨 신통술이야! 이것도 싫어! 융합? 너무 약해! 내 피 한 모금으로도 모든 것을 녹일 수 있단 말이다. 필요 없어!”
결국 한제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대체 뭘 배우고 싶다는 거지?”
광인은 진짜로 화가 난 듯 소리쳤다.
“아까 그 커다란 짐승을 길들일 때 썼던 신통술을 배우고 싶다니까!”
한제는 이제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그는 결인을 그린 손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세상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무궁무진한 바다로 변했다. 바다 저 끄트머리에서는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햇살을 사방으로 뿌렸다. 햇빛은 어둠을 찢으며 확산됐다.
이 광경에 광인의 눈빛이 순간 밝아졌으나 이내 다시 어두워졌다. 그는 입을 비죽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귀향
“이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내게는 이것보다 더 강력한⋯⋯.”
한제는 이제 슬슬 짜증이 났다. 그는 다시 오른손을 휘둘렀고 그러자 어두운 하늘과 아침 해는 흩어져 사라지더니 거대한 돌문이 나타나 흐르는 세월의 힘을 발산했다.
콰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수천만 년이 한순간에 지나가듯 세월이 빠르게 흘렀다.
광인은 재미있다는 듯 돌문을 자세히 살피더니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저 돌문도 내 궁궐의 문보다는 못해. 싫어!”
평생 배워온 신통술을 하나하나 선보였건만 광인은 끝가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한제로서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스승, 네가 고작 이딴 신통술밖에 모를 리가 없잖아! 나한테 가르쳐주기 싫어서 꽁꽁 숨기고 있는 거지?”
“그만!”
한제는 짙은 분노와 짜증이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서늘하게 말했다.
“마지막 신통술이다. 배울지 말지 네가 정해라.”
동시에 한제는 결인조차 그리지 않고 간단한 신통술을 발휘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배운 신통술, 인력술이었다. 사실 그의 수준에 인력술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한제가 인력술을 발휘하자 대지가 진동했고 거대한 바위가 끌려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광인은 멍하니 그 바위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재미있구나! 하하! 정말 재미있어! 이거지! 역시 넌 고수야. 이런 대단한 신통술을 알고 있다니! 이거 가르쳐 줘!”
한제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지만 더 이상 이 광인과 얽히기 싫은 마음에 옥패를 꺼내 인력술을 기록하고는 휙 건네주고 다시 눈을 감았다.
옥패를 받아 든 광인은 정신을 집중해 인력술을 살피다가 웃으면서 폴짝폴짝 뛰었고 순식간에 그 술법을 익히더니 괴성을 지르며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대지가 진동하더니 바위 하나가 쑥 끌려 왔다.
“재미있어! 정말 재미있어!”
광인은 잔뜩 격앙돼 쉴 새 없이 손을 휘둘러 수십 개의 바위를 끌어다가 주위를 맴돌게 했다. 심지어 그 바위들과 함께 빙글빙글 도느라 어질어질했지만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이걸로는 부족했는지 광인은 이내 더 먼 곳으로 달려가 수천 개의 바위를 공깃돌처럼 허공으로 던졌다가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 ★ ★
사흘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눈을 뜬 한제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쓰게 웃었다.
저 멀리 광인이 수천 개의 바위를 마치 병사들처럼 배열하고 맞은편에 적으로 보이는 바위를 역시 수천 개나 배열해놓고 있었다. 그는 그 수많은 바위가 전투하는 것처럼 조종해 허공에서 충돌시켰다.
“칠채 낭자. 나를 따를 것이냐, 말 것이냐! 내게는 수만 명의 대군이 있다. 나를 따르지 않으면 내 단단히 화를 낼 것이야!”
호통을 치던 광인은 맞은편의 바위 사이로 달려가더니 애써 요염한 자세와 표정을 취하며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변태! 자신 있다면 덤벼보시지!”
한제는 재미있게 놀고 있는 광인을 보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그저 한숨을 푹 내쉴 수밖에…
“좋아, 이제 그만 가자!”
광인은 기다렸다는 듯 곧장 한제를 따라나섰지만 계속해서 수많은 바위를 힐끔거렸다. 그것들을 전부 가지고 가고 싶은 눈치였다.
“저런 건 밖에 더 많아.”
한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하고 나서야 광인은 미련을 버렸다.
“바깥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바깥세상의 여인들은 얼마나 예쁠까? 바깥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을까?”
연맹성역. 지하마수가 숨어든 곳으로부터 처량 맞은 감탄이 울려 퍼졌다. 까마득한 세월을 갇혀 있던 자의 흥분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 주인공은 더럽고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내달리며 소리를 질러대는 중이었다.
한제는 이미 광인의 이런 난리에는 익숙해진 상태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주위를 바라보았다. 무척 익숙한, 고향의 기운이 느껴지는 우주였다.
‘마침내 돌아왔다.’
한제의 눈빛은 복잡했다. 그의 집은 곤허성역 주작성에 있지만 가족들은 이미 모두 죽은 상태였다. 자신도 왜 집에 돌아가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청수나 사도환 등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수천 년을 방랑해온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의지에 의한 행동이었다. 마치 곤허성역에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어떤 기이한 힘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무렵 광인의 고함이 점차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의아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왔다. 한제에게서 이런 슬픈 표정을 본 것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왜 그래? 이 몸에게 말해봐. 누가 스승을 괴롭혔다면 내가 혼내줄게!”
광인은 두 손을 허리에 얹은 채 턱을 쳐들며 최대한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감았던 눈을 뜬 한제는 말없이 묵직한 발걸음을 옮겼다.
모든 것이 너무도 익숙했고 그 느낌이 또렷해질수록 그의 눈빛에는 슬픈 기운이 묻어났다. 나천성역에서 이곳으로 돌아왔던 당시보다 이번에 더 슬픔이 크게 느껴지는지 그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너무도 먼 곳까지 가서 너무도 많은 것을 겪고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러지 마라. 스승이 이러니 내 마음도 좋지 않잖아. 나 역시 집이 그립다. 소홍, 은도 이 두 망할 녀석은 대체 어디로 갔기에 나를 찾아오지 않는 거지? 나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한제를 따라오던 광인도 그 감정에 동화되어 우울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광인의 감정 변화는 매우 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흥분에 휩싸여 고함을 지르며 사방의 바위들로 주위를 맴돌게 하면서 즐거운 듯 껄껄 웃었다.
한제는 서서히 슬픔을 묻었다. 그에게는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감상에 젖거나 쉴 때가 아니었다.
한제는 아무런 걱정도 없는 것처럼 즐겁게 놀고 있는 광인을 보며 부럽기까지 했다. 광인은 무엇이든 눈 깜짝할 사이 잊었고 스스로를 즐겁게 할 방법만을 찾았다. 한제로서는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한 사람은 슬픈 눈으로 또 한 사람은 즐거운 얼굴로 이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수련성이 하나 나타났다. 크기는 천운성과 비슷했지만 그 주위를 맴도는 작은 수련성의 수는 훨씬 많았다. 또한 마치 죽은 존재처럼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고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보는 수련성이군.’
그 외부에는 어렴풋한 파문이 줄기줄기 떠올라 금제의 힘을 발하고 있었다.
광인 역시 그 수련성을 살피다가 돌연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여인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마침내 다른 사람들을 보는구나. 아주 재밌게 놀 수 있겠어!”
광인은 두 손을 비비면서 잔뜩 흥분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