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18
세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이들은 네 갈래의 빛을 그리며 대혼문을 떠났다.
이들의 속도는 매우 빨랐다. 특히 공겁기 중기 수준의 여문염은 마치 천둥번개처럼 어마어마했다. 염란과 허동덕 역시 만만치 않았다.
자연스레 그들보다 훨씬 뒤처지자 한제는 흡혈마수를 소환해 그 위에 가부좌를 틀었다.
흡혈마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세 사람은 즉시 이 마수의 비범함을 알아차리고는 놀랐다.
“이 장로 그 흉수는 공겁기 수련자와 비교해도 속도가 뒤지지 않는군. 어디에서 이런 흉수를 얻었나?”
여문염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염란과 허동덕도 귀를 기울였다.
“고향에서 얻었네.”
한제는 덤덤하고 간결하게 답했다.
“그래? 이 장로의 고향은 어디지?”
여문염이 흥미롭다는 듯 재차 물었다.
“여 장로.”
한제는 미간을 팩 찌푸리며 여문염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여문염은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했다.
“이런, 내가 실언을 했군. 미안하게 됐네.”
이후 네 사람은 말없이 전력을 다해 달렸다. 그리고 7일이 지났을 때, 여문염은 소매를 홱 휘둘러 옥패를 소환하더니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아래쪽을 가리켰다.
“여기로군. 이곳이 우리 대혼문의 1대 선조께서 엄청난 신통술로 마련한 전송진이 있는 곳이네. 이 전송진을 이용하면 천우 세 번째 혈 근처로 곧장 이동할 수 있지.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선조께서 이번 임무를 위해 특별히 허락해 주셨다네.”
말을 마침 여문염은 곧장 아래쪽으로 돌진했다. 그러더니 옥패에 표시된 대로 굽이굽이 이어진 산맥의 어느 산골짜기로 향했고 세 사람은 그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산골짜기에서 흘러넘칠 듯 짙은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콰쾅!
이어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눈부신 빛이 번쩍 터져 나오더니 반 시진 정도 후에야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다.
빛이 사라졌을 때, 산골짜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 ★ ★
극천 초원 가장자리 허공. 왜곡이 일어나 구름을 휘저었다. 뒤이어 눈부신 빛이 나타났고 그 안에서 한제를 포함한 네 사람이 나타났다.
빛이 사라지자 진지한 표정의 한제는 몸을 틀어 대혼문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전속력으로 몇 개월은 날아야 할 거리를 이동시키는 전송진이라니. 그 원리는 굉장히 오묘할 터! 한데 주와 주를 잇는 전송진도 있을까? 상식적으로는 그런 전송진이 있다 해도 활성화하기는 결코 쉽지 않겠지.’
여문염이 쥐고 있던 옥패는 가루로 부서져 흩어졌다. 한제는 그 옥패 안에 대체 어떤 힘이 담겨 있었기에 이렇게 먼 거리를 단숨에 이동하게 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대혼문에도 저런 옥패가 많지는 않을 것이었다. 중요한 시기에만 사용하는 옥패이리라.
사실 한제의 추측은 정확했다. 이 전송진을 한 번 활성화하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대가가 필요해, 대혼문의 그 깊은 역사에서 전송진을 활성화한 횟수는 백 년에 한 번도 채 되지 않았다.
네 사람이 나타났을 때는 해 질 무렵으로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노을빛에 뒤덮인 극천 초원은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이곳이 천우 세 번째 혈이 있는 곳이라네. 우리 대혼문에서는 이곳에 지하 궁전을 만들어두었지. 지금 그 안에는 부근의 다른 종파에서 보낸 수련자들과 원래 이곳에 있던 수련자들까지 모여 있을 게야.”
여문염은 말을 이으며 지면으로 향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 지하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염란과 허동덕이 뒤를 따랐고 잠시 고민하던 한제도 대지 안으로 녹아들었다.
땅속을 얼마나 파고들었을까? 네 사람 앞에 거대한 동굴이 나타났다. 동굴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궁전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합할 정도였다.
동굴은 층층의 금제로 둘러싸여 있었다. 만약 네 사람이 대혼문의 장로가 아니고 진입용 영패를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 안으로 발을 들이지는 못할 것이었다.
어마어마한 면적의 궁전에는 이미 만 명에 가까운 수련자가 모여 있었다. 근처 종파에서 파견됐거나 소속된 종파 없이 대혼문의 혼일령을 받아 다급히 모인 이들이었다.
네 사람이 도착하자 어디선가 호탕한 웃음소리에 이어 몇 갈래의 긴 빛이 날아들었다.
빛에서 나타난 세 노인이 포권을 했다.
“여 형, 1천 년 만이군!”
“주 형, 반갑네. 선조의 명을 받고 곧장 달려왔소. 다행히 녹마주 수련자들이 아직 여기까지는 나타나지 않은 모양이군.”
여문염과 주씨 노인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동안 다른 두 노인이 염란과 허동덕을 향해 포권을 했다. 서로 면식이 있는 듯했다.
그러나 모두 한제에게는 고개만 슬쩍 끄덕일 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아마도 수준이 낮기 때문일 터였다. 그러나 한제는 덤덤했다.
세 노인 중 둘은 공현기 중기였고 주씨 노인은 그보다 조금 더 수준이 높아 예닐곱 차례의 현겁을 통과한 듯했다. 두청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염 장로와 허 장로는 알고들 있겠지? 이쪽은 이 장로로 우리 대혼문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네. 이번에 우리와 함께 싸우러 왔지!”
사방의 수많은 수련자가 일행을 경외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여문염이 세 노인에게 한제를 소개했다. 그러자 세 노인은 의아하다는 듯 일제히 한제를 바라보았다. 여태까지 그가 일개 제자라 여겼건만 장로일 줄이야.
뒤이어 그들은 미소를 머금은 채 한제에게 포권을 했다. 허나 겉으로 보기에만 무척 친절해 보였을 뿐, 인사를 마친 뒤로는 한제를 거의 무시한 채 염란과 허동덕, 여문염과만 대화를 이어갔다.
수련계에서는 강자가 우선이었다. 한제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게 보이니 세 노인이 그에게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렇기에 한제 역시 개의치 않았다. 그저 주위를 슥 훑어보고는 말없이 몸을 훌쩍 날렸을 뿐이다. 아무도 없는 지하 동굴에서 좌선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 한제의 뒷모습을 보며 여문염은 속으로 냉소했다.
‘나는 단해에 머물면서 종파에 속하지 않은 수련자인 척 모습까지 바꾸고 녹마주의 시선을 끌었다. 그렇게 1천 년이 넘는 세월을 지내왔다. 녹마주의 의심을 피하기 위함이었지. 한데 선조께서는 그렇게 종파를 위해 목숨까지 건 내게도 주지 않았던 완전한 다중환술을 어찌 저자에게 주셨단 말인가!’
한데 그때, 한제가 돌연 몸을 홱 돌리더니 여문염을 똑바로 마주 봤다.
여문염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한제는 잠시 그런 여문염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몸을 날려 사라졌다.
이곳에 모인 인원 중 한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염란이었다. 한제의 무시무시함을 잘 아는 그녀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여문염과 한제 사이에 어렴풋한 갈등이 있는 것을 느꼈으나 모르는 척했다.
세 노인은 여문염과 염란, 허동덕을 대전으로 초빙했다. 한제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한제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여섯 사람이 떠나자 사방에서 모여든 여러 종파 수련자들도 흩어졌다.
한편, 대혼문 장로들이 도착하면서 극천 초원에 드리워져 있던 금제는 완전히 활성화됐다. 그러자 초원 전역에서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반경 1만 리를 뒤덮는 강력한 기운이 장벽을 이루었다. 동시에 천우주의 다른 여섯 개 천우혈에도 속속 수련자들이 모여들면서 나머지 천우혈들 또한 하나둘 활성화되었다.
천우칠혈이 모두 활성화된 순간, 나머지 여섯 개의 혈이 있는 곳에도 극천 초원과 같이 강력한 기운으로 이루어진 장벽이 세워졌다.
총 일곱 개의 장벽은 서로 맞닿아 하나로 연결되면서 천우주와 단해 사이의 방어막이 되었다. 천우칠혈이 완전히 활성화된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십만 명이 넘는 수련자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이 장벽은 두께가 1만 리에 달했기 때문에 청우 진인 같은 강자라도 쉽사리 뚫을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보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장벽에는 천우 혼의 힘까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천우주에는 칠혈만 있는 것이 아니라 72개의 지혈도 있는데 이곳에도 대혼문과 귀일종, 그리고 여러 작은 종파 사람들이 주둔 중이었다. 72지혈은 계속해서 대지를 자극하고 짙은 선력을 응집해 천우칠혈의 장벽들을 공고히 했다.
허나 이 모든 것은 방어의 수단일 뿐이었다. 그 오랜 세월 준비해온 대혼문이 방어책만 세워뒀을 리는 없었다. 살육을 담당하는 수련자들도 따로 준비해둔 상태였다.
살육을 앞두다
극천 초원 지하 궁전의 수많은 동굴에는 속속 모여든 수련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묵직해지는 압박감에 전쟁이 코앞에 닥쳐 있음을 실감했다.
천우칠혈에서 형성된 장벽을 파괴하려면 일곱 개의 장벽을 동시에 훼손시켜야 했다. 그러니 녹마주에서는 수련자 대군을 보내 천우칠혈을 에워싸려 할 것이다. 지금은 평화로워 보이는 극천 초원은 곧 새카맣게 몰려든 녹마주 수련자들로 뒤덮이게 될 것이 분명했다.
염란은 폐관수련을 하며 몸 상태를 끌어올렸다. 허동덕과 여문염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들이 폐관수련을 하고 있는 곳은 동굴이 아니라 궁전이었다. 그들은 신분이 높을 뿐만 아니라 이 혈을 지킬 주축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모인 1만여 명의 수련자 중 공겁기 초기에 달해 있는 수련자는 네 명이 더 있다. 이들은 작은 종파 출신이거나 소속 종파가 없는 떠돌이 수련자였지만 그럼에도 신분은 매우 높았기에 곳곳의 궁전에 초빙되었다. 승부를 결정짓는 데 기여할 핵심 세력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한제는 작은 동굴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 주위로는 수많은 동굴이 있었는데 그중 어느 동굴에서는 한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좌선을 하는 중이었다.
노인은 한제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한제는 그를 알아보았다. 바로 극천 초원에서 마주쳤던 백발노인이었다. 당시 한제는 육신의 모든 수분을 빼앗기고 목내이처럼 비쩍 말라 있던 상태였으니 노인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사실 한제의 신분이라면 궁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괜히 시비를 일으키느니 차라리 여기가 편했다.
한제는 신식을 사방으로 펼쳐둔 채 남색 우산과 혼환귀술을 연구했다. 단해에서 얻은 나침반을 꺼내 그 안의 금제를 극천 초원에 드리우기도 했다. 이 법보는 매우 현묘해 이곳에서 수준이 가장 높은 여문염조차 그 금제가 활성화된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한제가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순간, 앞에 놓인 나침반이 바르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침반에 펼쳐진 극천 초원의 지도 가장자리에 녹색 선이 하나 나타났다.
빽빽하게 모인 녹색 빛으로 이루어진 녹색 선은 점점 늘어났다.
“왔다!”
나침반을 응시하던 한제의 두 눈이 번득였다. 그는 청우 진인이 제시한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 뒤 천우주를 떠나 동림종과 도고 일맥으로 가야 했다. 이게 그 시작이 될 것이다.
그때, 여문염 역시 궁전에서 두 눈을 번쩍 떠 서늘한 빛을 번득였다.
“녹마주 수련자들이 왔다!”
여문염의 우렁찬 외침이 울려 퍼지자 극천 초원 곳곳의 수련자들은 모두 번쩍 눈을 떴다.
궁전 안에서는 염란과 허동덕, 그리고 몇몇의 공겁기 수련자들이 말없이 살기를 번득였다.
극천 초원 상공에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만 명이 넘는 녹마주 수련자들이 몰려들었다. 하늘을 빽빽이 뒤덮은 까닭에 한낮임에도 사방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중 가장 빠른 여섯 명의 수련자는 긴 빛을 그리며 다가왔다. 네 명의 사내와 두 명의 여인으로 의상은 꽤나 화려했다. 그 수준 역시 만만치 않아 보였다. 두 노인은 공겁기 중기 수준의 힘을 발산했고 나머지 네 명은 모두 공겁기 초기 수준이었다.
앞장선 여섯 명의 강자를 따라 극천 초원을 뒤덮듯 나타난 1만여 명의 수련자는 살기가 등등했다.
“장 형, 우리 같이 연합해 천우칠혈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해보는 것이 어떻겠나?”
최전방의 공겁기 중기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곁의 동료에게 물었다.
“조 형, 좋은 생각이오! 듣기로는 저 진에는 천우의 혼이 응집되어 있다지? 천우는 또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군!”
장씨 노인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무척 수준이 높은 이들에게 이번 침입은 그저 하나의 놀이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동시에 손을 들어 결인을 그리더니 극천 초원을 가리켰다.
콰쾅!
두 노인의 손짓에 따라 요란한 소리와 함께 층층의 구름이 나타나 응집하더니 키가 10만 척에 달하는 거인이 되었다.
이 거인은 성큼성큼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