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32
“육신이 강하다 해도 법보로 방어한다 해도 네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여문염은 한달음에 한제로부터 5백 척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르렀다.
두 번째 걸음을 내딛어 한제와의 거리를 1백 척으로 줄인 여문염이 손을 들어 공격을 하려던 순간, 돌연 저 멀리서 천우 혼개가 눈부신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셀 수 없이 많은 검은색 실들로 변한 그 빛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드는가 싶더니 여문염의 곁을 지나 한제에게로 향했다.
어느새 그 검은 실에 둘둘 휘감긴 한제의 온몸에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세가 발산됐고 그 기세와 충돌한 여문염은 피를 왈칵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이때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짙은 불만이 어려 있었다.
“안 돼!”
여문염은 수많은 검은 실로 뒤덮인 한제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무서울 정도로 강력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증폭된 위력에 식은땀이 흘렀고 심신이 떨려왔다. 동시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질투심도 피어올랐다.
‘원래는 내 것이어야 해! 저놈이 가로챈 거야!’
한제가 두 팔로 막고 있던 톱니바퀴는 쩍 하고 균열이 일더니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동시에 한제의 몸이 요동치듯 꿈틀거렸고 그의 몸을 뒤덮은 검은 실들이 눈 깜짝할 사이 한 벌의 흑갑(黑甲)으로 변했다. 목과 얼굴까지 덮은 갑옷 덕분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감겨 있는 두 눈과 긴 백발뿐이었다.
동시에 거대한 천우의 허상이 한제의 뒤에 나타났다. 이 허상은 불굴의 의지가 어린 기세를 발산하면서도 한제와 마찬가지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한제의 수준은 놀랍도록 증폭하고 있었다. 천우 혼개에 힘입은 이 변화는 일시적이지만 이내 그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다.
한제의 수준은 찰나의 순간 공현기 초기에 다다랐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수준은 공현기 중기로 솟구쳐 올랐다. 뒤이어 엄청난 속도로 증폭돼 콰쾅 소리와 함께 공현기 후기에 이르렀다.
눈 깜짝할 사이 일어난 갑작스러운 상황에 지하 궁전의 모두가 큰 충격에 빠졌다. 특히 지면의 1천여 수련자는 거의 넋이 나간 상태로 천우 혼개의 기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대로 둘 수는 없지!”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두려움을 억누른 여문염은 다급하게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뒤이어 하나 남은 손으로 결인을 그린 그는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콰르릉! 쾅! 퍼펑!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신통술의 눈부신 빛이 떨어졌다. 한제는 여전히 두 눈을 감은 채 묵묵히 그 신통술들을 그대로 받아냈다.
사실 혼개는 한제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여문염이 자폭을 한다 해도 지금의 한제에게는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럴수록 큰 질투심을 느낀 여문염은 계속해서 신통술을 발휘했지만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내놔라! 그 혼개는 내 것이다! 내게서 그것을 앗아놓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내 너를 죽일 것이다!”
이때 여문염은 자신이 이미 이성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원래대로라면 그 정도 수준에 이른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일 리는 없었으나, 워낙 기다려온 기회가 단숨에 무너져 내려 절망감이 그만큼 컸다.
반면 한제는 일단 싸우기로 한 이상 전력을 다해 결과를 예측했다. 동시에 그는 여문염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귀범을 이용한 다중환술을 심어놓은 상태였다.
여문염의 심신에는 하얀 옷을 입은 한 여인이 흑흑 흐느껴 울고 있었으나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한제뿐이었다.
그렇게 여문염이 광기에 휩싸여 공격해오는 동안에도 한제의 기운은 강력해져 어느덧 공현기 절정을 넘어 공겁기의 코앞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변화는 보이지 않는 타격이 되어 여문염의 심신에 떨어졌고 그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이에 분노한 그는 더욱 강력한 신통술을 발휘했다.
“나도 단해에 있었건만 어째서 난 그곳에서 벗어나라는 명을 받고 너는 단해를 폭파시켜 공을 세웠단 말이냐! 그 임무가 내게 떨어졌어도 난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게다가 난 너보다 수준도 훨씬 높고 대혼문에 몸담은 기간도 훨씬 길거늘 대체 무슨 자격으로 네가 혼개를 차지한단 말이냐!”
한편 한제는 여전히 두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에게서 피어오르는 기운은 더 증폭해 순식간에 아홉 번째 현겁에 이르렀다. 실제로는 현겁의 문턱에도 이르지 않은 한제로서는 안전하게 아홉 번의 현겁을 뛰어넘어 공현기 절정을 지나 진정한 공겁기 수준에 이른 것이었다.
그 순간,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뜨자 그의 뒤에서 천우의 허상 역시 두 눈을 번쩍 뜨며 거칠고 포악한 광기를 드러냈다.
“크오오오!”
천우는 고개를 들며 우렁찬 포효를 내질렀다. 녀석의 포효는 지하 궁전을 울리고 극천 초원을 뛰어넘어 천우주 전체를 뒤흔들었다.
천우 세 번째 혈의 봉쇄진을 파괴하는 데 전력을 쏟던 녹마주 공겁기 수련자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천우의 포효다! 이전에 비슷한 포효를 들은 적이 있어. 녹마의 포효였지. 이 포효는 천우의 것이 분명해!”
이들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공겁기 수련자들이 그럴 정도니 나머지 2천여 명의 다른 수련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온몸을 떨었다. 땅속에서 들려온 천우의 포효는 거의 그들의 원신을 무너뜨릴 정도로 막강했다.
한편, 지하 궁전 안에서는 천우의 포효가 울려 퍼지는 사이 한제의 두 눈은 벌겋게 물들었다. 하지만 이는 광기 때문이 아니라 혼개에 담긴 천우의 저항심과 원한에서 기인한 것이다.
“나를 죽이려 하느냐?”
한제의 붉게 물든 눈에는 조금의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숙여 음산하면서도 서늘한 눈빛으로 이미 공격을 멈춘 채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다급하게 물러나고 있는 여문염을 바라보았다.
“나를 죽이려 하느냐!”
한제는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한 마리 천우가 된 한제의 오른손은 곧장 여문염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쾅!
천우와 충돌한 여문염은 비명을 내지르며 끈 떨어진 연처럼 튕겨나갔다.
얼굴까지 가린 검고 기이한 갑옷 너머로 살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던 한제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 여문염의 코앞에 이르더니 그를 걷어찼다. 신통술도 발휘하지 않았건만 그의 오른발은 순간 천우의 뿔이 됐다.
쾅!
“끄아악!”
곧이어 짧은 굉음과 함께 그 뿔에 받힌 여문염은 비참한 비명을 내질렀고 온몸은 그대로 무너져 내려 피 안개로 변했다. 파괴된 육신에서 빠져나온 원신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는데 이제 광기는 사라졌으나 대신 그의 원신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이제 질투심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나, 나는 대혼문의 장로다! 넌 나를 죽일 수 없어!”
한제는 말없이 여문염을 뒤쫓으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여문염의 원신이 폭발하면서 하반신이 날아갔다.
“크으윽! 나는 청우 선조의 제자다! 나를 죽인다면 스승님이 절대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여문염의 원신은 목소리마저 허약해진 상태로 겁에 질린 채 도망쳤다.
허나 한제는 여전히 대답조차 없이 한 걸음 더 나서며 손을 휘둘렀고 여문염의 원신은 또다시 무너져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언제든 흩어져 사라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머리 하나뿐이었다.
칠채의 세 변화
“대혼문에서의 내 지위는 그 누구보다 고귀하다. 너는⋯⋯.”
여문염의 원신은 계속해서 도망치면서도 날카롭게 소리쳤다. 공겁기 중기 수련자인 그는 불사불멸에 가까웠지만 이 순간만큼은 진정한 죽음의 위기에 시달렸다.
“사, 살려다오!”
그가 체면이고 뭐고 빌듯이 외친 순간, 한제는 냉혹한 살기가 담긴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거절한다.”
펑!
허무할 정도로 미약한 소리와 함께 여문염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나가 연기처럼 흩어졌다.
한제는 본래 이런 사람이었다. 죽이기로 마음먹었다면 상대의 신분이나 배경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더욱이 오늘 죽이지 않으면 여문염은 혼개가 사라지는 순간부터 한제를 죽이려 들 것이다.
‘내 목숨을 위협하는 자라면 청우의 제자가 아니라 선황의 자식이라 해도 살려둘 수 없지.’
한편, 지금 한제는 지금껏 가진 적 없던 힘을 느끼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본원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의 그는 이미 사라진 본원이 자신의 혈맥의 일부가 됐음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몸 자체를 본원이 응집된 결과였다. 그의 피는 물의 본원이었고 두 눈은 화염과 천둥번개의 본원이었으며 그 외의 다른 것들도 전부 본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물론 이 모든 변화는 천개와의 융합으로 인한 것이었다. 심지어 한제는 자신이 수련자가 아니라 드넓은 천외에서 아주 오랜 세월 살아온 천우가 된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고개를 든 한제는 서늘한 눈으로 지하 궁전의 상공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살기가 번득였다.
“장도종, 내가 간다!”
한제는 천우의 허상과 하나로 합쳐진 채 위쪽으로 솟구쳐 올랐다.
극천 초원 위의 장도종과 조씨 노인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지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 줄기 강력한 기운이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급격히 솟구쳐 올라오고 있음을 느꼈고 아주 멀리 있음에도 온 심신이 달달 떨릴 듯했다.
또한 네 명의 녹마사자 역시 신중한 눈으로 말없이 대지를 응시했다. 어렸을 때부터 녹마주의 세 선조에 의해 수많은 제자들 중 간택되어 길러진 이들은 모두 천부적인 자질이 뛰어났다. 이후 일정 수준까지 수련한 뒤 마갈의 사당으로 보내져 녹마를 신봉하고 모시는 사자가 됐다.
지난 오랜 세월, 사자가 된 이는 꽤 많았으나 그중 마갈 사당에서 진행된 여러 차례의 시험을 통과해 끝내 녹마의 인정을 받은 이는 단 아홉에 불과했다.
그들이 바로 아홉 녹마사자 녹마주 아래에 진압된 녹색 마갈의 의지를 이어받은 후계자들이었다.
네 명의 녹마사자는 땅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진 우렁찬 소리와 강력한 위압감이 천우 혼의 인정을 받은 천우사자로부터 발산되는 것임을 정확히 감지했다.
한편, 대지는 갈수록 격렬하게 진동했고 쿵, 쿵 하는 먹먹한 소리와 함께 수많은 풀은 모두 가루가 되어 흩어지면서 마치 안개처럼 사방을 뒤덮었다.
장도종은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는 것을 느끼고는 가장 먼저 지면을 벗어나 위쪽으로 떠올랐다. 그 뒤를 조씨 노인이 따랐다.
하지만 네 명의 녹마사자는 여전히 신중한 표정으로 제각기 흩어져 가부좌를 틀더니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낮은 기합을 내질렀다.
이들이 기합이 울려 퍼진 순간, 네 사람의 뒤로 대량의 녹색 안개가 피어오르며 꿈틀거리다가 네 마리의 녹색 전갈이 됐다. 이 전갈들은 매우 포악해 보이는 모습으로 날카로운 쉭, 쉭 소리를 내다가 대지를 향해 돌진했다.
뒤이어 네 명의 녹마사자는 혀끝을 깨물어 피를 토해내더니 두 손으로 대지를 꾹 누르고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러자 그들의 정수리 위로 팔뚝 굵기의 녹색 안개가 나타나 기둥처럼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른 뒤 상공에서 한데 응집해 거대한 녹색 거울을 형성했다.
이 허상의 거울에서는 음산한 마염(魔焰)이 발산됐다. 그러자 장도종과 조씨 노인은 짙은 숭배심이 어린 표정으로 읍을 했다.
거울 안에서 맴돌던 녹색 기운이 꿈틀대더니 어떤 대륙을 그려냈다. 산봉우리가 그리 많지 않은 대륙은 대부분이 연못으로 채워져 있었다. 심지어 몇몇 일반인들의 도시도 거의 그런 연못 위에 세워져 있어 퍽 기이해 보였다.
이 대륙의 크기는 천우주의 7할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 위에서 발산되는 연못의 기운으로 인해 몽환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이 대륙이 바로 녹마주였다.
이때 초원 위에 가부좌를 튼 네 명의 녹마사자가 낮게 기합을 내지르자 거울은 천천히 내려와 지면을 뒤덮었다. 마치 극천 초원 전역을 뒤덮고 진압하는 듯했다.
한편, 천우와 융합한 한제는 여전히 위로 솟구쳐 올라가고 있었다. 물론 그는 천우주의 영웅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청우 진인이 내건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나서는 것뿐이었다. 공겁기 중기 수준의 수련자 세 명을 한꺼번에 처리함으로써 청우 진인이 맡긴 두 번째 임무를 완수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장도종에게는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허나 한제는 이 혼개가 저 아래 1천여 수련자의 수준과 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을 내버려둔 채 홀로 이곳을 떠나갈 수는 없었다. 최소한 저들의 안전을 확보한 후에야 떠나갈 수 있을 터였다.
얼굴을 가린 검은 갑옷 사이로 두 눈을 서늘하게 번득이며 엄청난 속도로 몸을 날린 그는 눈 깜짝할 사이 지면에 가까워졌다.
한데 그때, 돌연 한제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네 갈래의 익숙하면서도 혐오스러운 기운을 똑똑히 느꼈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나타난 그 기운은 자신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한제는 사방에서 네 마리의 녹색 전갈이 거칠게 달려들고 있음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이 네 마리의 녹색 전갈에 대해 깊은 증오를 느꼈지만 이는 자신이 아니라 천우의 혼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천우와 전갈은 아주 오래 전, 선조에게 제압되기 전부터 알던 사이로 어쩌면 오랜 숙적인지도 몰랐다.
우뚝 멈춰 선 한제는 천우의 허상을 체내로 응집해 숨겼다. 그러자 대지 안에는 한제만 남게 됐고 그는 다시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방향을 틀어 서쪽으로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