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8
옛 사람 (2)
정원에 서 있던 주림은 한제가 나오자 오른손을 휘저어 옥패 하나를 내던졌다.
“난 폐관 수련을 할 것이다. 물 속성의 단약을 소화하려면 적게는 몇 달에서 많게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어. 그 동안은 너를 살피기 어렵겠지. 그 옥패에는 내가 지난 수십 년간 연구해온 단약 제조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일단 그것들을 공부하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거든 남쪽의 세 번째 건물로 네 스승을 찾아가라. 네 사정에 대해서는 이미 노부인께 말씀드렸다.”
옥패를 이마에 얹고 신식으로 훑던 한제는 깜짝 놀랐다. 주림이 자신에게 이런 옥패를 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옥패에는 정말로 수십 년간 연구했을 단약 제조 방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단약 제조에 실패했을 때나 품질이 저하됐을 때의 대응 방법도 상세했다. 결코 가치가 적지 않은 옥패였다.
불과 몇 시진 전에 안면을 튼 사이에 불과한데도 이런 옥패를 선뜻 주다니, 언제든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하고 있던 한제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주림은 그런 한제의 낌새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스승이 될 그 노부인은 성격이 온화하여 네게 단약 제조에 관한 각종 주의사항들을 잘 일러주실 것이다. 또한 내 약초밭에 있는 약초는 마음껏 써도 된다.
허나 결코 뿌리를 꺾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단약 제조에 대해 일정한 조예가 갖춰지지 않은 이상 저 단정은 사용할 수 없으니 주의하거라.”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림은 잠시 침묵하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실 네게 연단술을 어느 정도 알려준 다음에 폐관 수련을 해야 하는데 물 속성의 단약은 곧장 사용하지 않으면 효과가 떨어진단다. 폐관 수련을 마치고 나면 네게 훌륭한 단약으로 보상하마.”
잠시 말을 멈춘 그는 한제를 살펴보다가 말을 이었다.
“내가 폐관 수련을 할 곳은 운천종의 뒷산이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너 혼자 머물게 되겠지. 내 방은 금제로 보호되고 있으니 들어갈 생각은 말아라.”
주림은 말을 마친 뒤 저물대에서 옷 한 벌과 영패 하나, 그리고 저물대 하나를 꺼내 한쪽에 내려놓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백옥병 하나도 꺼내놓았다.
“이건 네가 입을 10대 제자의 의복이다. 이 백옥병 안에는 반품짜리 영단(靈丹)이 세 개 들어 있는데 두 개는 복용하고 마지막 한 알은 옥패에 기록된 방법에 따라 효과를 분석하는 데 쓰거라.”
말을 마친 주림은 폐관 수련을 하러 떠나갔다.
한제는 그 자리에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옷과 단약 등을 챙겨 방으로 돌아갔다.
주림의 태도는 한제에게는 낯설었다. 그런 느낌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잠시 후 한제는 백옥병을 열었다. 마음속까지 깊게 스며드는 듯한 향이 흘러나왔다. 그 안에는 수정처럼 투명하고 반짝거리는 노란색 단약 세 개가 들어 있었다.
한제는 한 알을 집어 한참 동안 살피다가 곧장 복용하지 않고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손바닥만 한 마수가 그 안에서 빠져나와 날개를 퍼덕이며 쉭쉭 소리를 냈다.
한제는 손가락을 튕겨 그 단약을 마수의 입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신중한 눈빛으로 마수를 주시하며 그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
한참이 지나도록 그 마수에게서는 어떤 나쁜 약효도 살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마수는 혈기왕성해져 날갯짓에도 힘이 붙었으며 머리도 느릿하게 부풀기 시작했다.
한제는 그 마수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흔들어 마수를 다시 저물대에 집어넣었다. 며칠 동안 관찰해보고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지 않으면 자신도 그 단약을 복용할 생각이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한제는 호흡을 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체내의 영력이 상당히 많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운천종 안에는 영기가 충만해 수련을 하는 데도 상당히 유리했다.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운천종의 제자 의복을 입었다. 하얀색 옷의 소매에는 붉은색 단정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신분을 증명하는 영패와 백옥병을 챙긴 한제가 저물대를 두드리자 그의 오른손에 뭔가가 더 나타났다. 흔한 백옥병이었지만 그 안에 든 액체는 보통의 단약보다 훨씬 가치가 높았다.
그 안에 든 영기 액체를 한 모금 마신 한제는 한참 동안 호흡을 하다가 빠르게 손을 놀려 잔영의 원을 만들어냈다. 체내의 영기 액체가 영력으로 전환되면서 빠르게 양손의 경맥으로 흘러들었고 곧이어 느릿하게 배어나왔다.
한제의 손이 움직이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으며 그의 이마에서도 땀이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한제가 외쳤다.
“가라!”
순간 두 손 사이에서 만들어진 잔영의 원들이 손을 떠나 서로 교차하며 하나의 완벽한 원형을 이루어 바닥에 찍혔다. 원형의 빛 고리가 바닥에 나타나 빛을 번득였다.
한제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냈다. 분신의 수준으로 흩어진 금제를 만드는 것 정도는 가능한 일이었지만 완벽한 잔영의 원을 만들어내는 것은 영기 액체의 도움이 있어도 부담이 컸다.
바닥에 금제가 찍히더니 서늘한 기운이 느릿하게 발산됐다. 그와 동시에 한제의 본체가 천천히 그 금제의 원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 금제의 작용을 시험해본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고 본체는 다시 금제 안으로 가라앉았다.
이는 한제의 수명 보존 수단이었다. 당시 폐관 수련을 하며 신도술을 연구하던 한제는 만약 분신이 독자적으로 밖에서 활동한다면 위험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그는 고대 신의 기억에 따라 두 개의 묵간석으로 금제의 문을 하나 만들었다.
본체와 분신이 각각 하나의 묵간석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통해 서로 연결될 수 있었다. 다만 그의 수준이 충분히 높지 않을 때에는 금제의 원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두 달이 훌쩍 지났지만 주림은 돌아오지 않았다. 처소에 머물고 있는 한제는 거의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한제는 주림이 준 옥패를 이미 자세히 살핀 후였다. 그 안에 기록된 내용은 너무나 상세해서 한제는 이 옥패의 내용 중 주림이 손댄 부분이 없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단약을 먹은 마수 역시 지난 두 달 동안 훨씬 건장해졌고 신식도 증가했다. 그를 통해 그 단약에는 아무런 위험성이 없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한제의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는 주림이 자신을 분명한 제자로 받아들였음을 확신했다. 이는 아무런 꿍꿍이도 없는 상황에서 성립된 관계였다.
이익을 나눠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을 때에도 이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한제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이렇게 제자로서 대접을 받는 것이 난생 처음이라는 사실뿐이었다.
지난 두 달 동안 한제의 수준은 응기 3단계에서 응기 8단계로 성장했다. 이렇게 빠른 성장 속도는 영기 액체의 도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제의 단약 제조 때문이기도 했다.
그가 운천종에 온 것은 수련에 필요한 단약을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가 주림으로부터 받은 옥패에는 단약 제조 방법이 너무나 상세하게 적혀 있었고 정원에는 수많은 약초가 가득했다. 때문에 한제는 짬을 내어 단약을 만들어보곤 했다.
단약 제조는 굉장히 심오한 작업으로 선천적인 재능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근면함이 더 필요했다. 사실 각종 법술을 수련하고 익히는 것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기도 했다.
처음 시작한 사람의 실패율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한제도 지난 두 달 동안 옥패에 기록된 것들을 완벽하게 파악했으나 수차례의 시도 끝에 단약 제조에 성공한 것은 한 번뿐이었다.
그렇게 대량의 약초를 들여 만들어낸 일곱 개의 단약과 영기 액체, 석주 공간을 활용한 시간의 이점을 통해 단숨에 성장한 것이다.
★ ★ ★
한제의 방에서 펑 소리가 들리더니 가옥 전체에 한 층의 물결 같은 빛의 장막이 나타났다. 이 빛의 장막이 한참 흔들린 후에야 가옥은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곧이어 한제가 흙빛이 된 얼굴로 방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쓰게 웃었다. 또 단약 제조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불의 강도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한 탓에 너무 과열되면서 단로가 파손되기까지 했다.
다행히 운천종에는 단로가 매우 풍족했다. 지난 두 달 동안 한제가 망가뜨린 단로만 해도 네 개였다. 이 건물에는 일곱 개의 방이 딸려 있었고 각 방에 하나씩 총 일곱 개의 단로가 있었지만 이제는 세 개만 남은 상태였다.
한제는 방에서 나와 잠시 고민했다. 영력을 통해 난로의 화기를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었으나, 이는 영력의 강약과 무관하게 옥패에 기록된 ‘미세 조절’의 수법을 사용해야만 했다.
영력을 매개로 난로와 단로를 연결한 상태에서 영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했으며, 난로의 파동과 단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 등을 토대로 미세한 조절과 변화가 필요했다. 그중 하나의 요소라도 차이가 나면 단약 제조는 실패였고 차이가 너무 크면 단로까지 부서졌다.
이 조절이 초심자에게는 가장 어려운 관문이었다. 물론 수준이 원영기에 이른다면 원영의 불로 제조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렇게 미세한 조절에 따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난로의 화기 조절 외에도 약초의 배합과 운용 역시 중요한 요소였다. 그저 단약 제조 방법만 가지고는 단약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단약 제조는 모든 사람이 배운 대로 곧장 만들 수 있는 제식적인 신통술이 아니었다. 하나의 단약 제조 방법을 가지고 1백 명이 똑같은 1백 개의 단약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단약 제조 방법이 아무리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지침에 불과했다. 실제 단약 제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문제들이 있다. 예를 들어 주위에 함유된 영력과 외부 환경도 저마다 달랐다.
약초에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와 약초들 간의 배합까지 따져야 했기에 단약 제조 방법을 안다고 해서 단약 제조에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그래서 연단사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운천종 소속이 된 지난 두 달 동안 한제는 옥패의 내용을 통해 연단사는 단약처럼 총 아홉 개의 품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3품의 연단사는 3품의 연단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운천종에는 세 명의 5품 연단사가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주림의 사부이자 한제의 분신을 담당하게 된 스승이었다.
운천종에서 수련 생활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선무국에서 운천종으로 온 그녀는 외부인 취급을 받다가 수년 후 장로 중 한 명으로 우뚝 서게 됐다.
장문인이 9대 제자인 주림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고 그가 제자 모집 행사를 주관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제는 가옥 안을 돌아다니면서 방금 실패한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화기가 강력해진 것이 원인이었다.
“매번 단약을 제작할 때마다 성공을 앞둔 상황에서 난로의 화기가 갑자기 강력해지는 건가?”
한제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는 곧 지난 두 달 동안 딱 한 번 성공했던 그 때에는 그런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한참 고민하던 그는 약초를 몇 개 뜯어 새 단로가 있는 방으로 들어간 뒤 다시 단약 제조를 시작했다. 허나 이번에도 성공을 앞둔 순간, 난로의 화기가 갑자기 맹렬해지고 파동도 커졌다. 어떻게 통제를 하려 해도 불어나는 화기를 막을 수 없었고 순간 펑 소리와 함께 단로가 또 폭발하고 말았다.
단로 안에 들어 있던 진흙과 같은 형태의 약초 혼합물이 여기저기 튄 것을 보며 한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옛 사람 (3)
이후로도 두 차례나 시도해보았지만 결국 남아 있던 두 개의 단로 역시 폭발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한제는 총 일곱 개의 단로를 모두 조각내버린 셈이었다.
한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단약 제조에 실패한 것은 상관이 없었지만 단로가 다 폭발해버려 더는 어떤 시도도 할 수가 없었다. 또한 이 단로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알고 있었기에 단로가 망가질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더구나 이토록 많은 단로를 망가뜨린 제자는 처음이라며 자신을 쫓아내기라도 할까봐 걱정스러웠다. 그와 동시에 한제는 신선계를 통틀어 연단사가 적지는 않지만 수준 높은 연단사는 드문 이유를 깨닫게 됐다.
일류 연단사는 엄청난 가치의 단로와 재료들을 대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보통의 종파에서 연단사를 길러내지 못하는 것도 연단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운천종이 이렇게 거대한 문파가 된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한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망가진 단로를 정리한 뒤 망설이다가 문 밖을 나섰다. 쓸 수 있는 단로가 없으니 계속해서 단약 제조를 하려면 새 단로가 필요했다. 하지만 주림은 폐관 수련을 하는 중이었으니 그가 말한 스승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또한 왜 최근에 단약을 만들려 할 때마다 단로가 폭발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도 물어볼 생각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평생이 가도록 단약 제조는 힘들 터였다.
운천종 내종은 다시 동서남북으로 나뉘는데 각 지역이 교차하며 원형을 이루었고 그 중앙에 대전이 있었다.
한제는 제자의 의복을 갖추고 허리에는 영패를 단 채 목적지로 향했다. 이동하는 동안 적지 않은 동문을 마주쳤지만 어느 누구도 한제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 눈인사와 가벼운 목례가 전부였다.
스승을 찾아가던 중 멀리서 학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학들이 한제 위를 스쳐지나가던 때, 가벼운 웃음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너였구나.”
고개를 든 한제는 그 짜증나는 소녀를 볼 수 있었다. 학 위에 올라탄 채 고개를 빼꼼 내밀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한제를 바라보던 그녀가 막 무슨 말을 하려던 때, 그녀 곁에서 누군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승님께서 기다리신다. 늦으면 단정을 씻는 벌을 내리실 거야.”
계집은 입을 비죽이며 몇 마디 중얼거리더니 다시 한제를 힐끗 보다가 학을 타고 멀리 날아갔다.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가던 길을 재촉하려던 한제는 돌연 서늘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곳의 커다란 나무 위에 도둑놈 상판을 한 소년이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다. 멍한 눈빛으로 멀리 날아가고 있는 학 무리를 바라보던 그가 중얼거렸다.
“계집년들, 갈수록 탐스러워지는군. 특히 신입으로 들어온 그 계집⋯⋯.”
시선을 느낀 그는 한제를 보며 헤헤 웃어보였다. 그리고 몸을 훌쩍 날려 곁으로 다가와서는 한제의 어깨를 툭 쳤다. 한제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상대의 손을 피했다.
그는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곧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속삭이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