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81
산봉우리의 길 위로는 몇몇 소년이 힘들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장면에 한제는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대산파에 대한 정은 깊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곳은 그가 신선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곳이었다.
한제는 복잡한 심경을 안고 흡혈 마수의 등에 올라 천천히 그 문파 쪽으로 향했다. 그 문파로부터 1백 리 정도의 거리에 이르렀을 때, 한 줄기 빛의 장막이 나타나 부드러운 빛을 발하며 한제의 진입을 저지했다.
한제가 손을 쓰기도 전에 흡혈 마수가 포효하더니 긴 주둥이로 빛의 장막을 매섭게 찌른 뒤 힘차게 빨아들였다. 순간 빛의 장막은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이에 그 문파 안에서 폐관 수련을 하고 있던 결단기 수련자들은 안색이 크게 변한 채 밖으로 나와 멍하니 한제와 흡혈 마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급하게 제자들을 모이게 한 뒤, 나란히 서서 공손히 한제를 맞이했다.
한제가 다가온 순간, 이 문파의 결단기 수련자 세 사람은 곧장 날아올라 공손하게 말했다.
“선배님을 뵈옵니다.”
그 세 사람은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그들의 눈에 한제는 온몸에서 영력을 발산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뭐라 말로 형용하지 못할 위압감을 풍기고 있어 저도 모르게 몸이 덜덜 떨렸다.
특히 상대가 올라타고 있는 흉악한 마수에 세 사람은 더욱 경악했다. 상대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거슬렀다가는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로 이루어진 세 결단기 수련자 중 머리가 하얗게 센 남자를 제외한 둘은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여자 수련자는 매우 아름다웠고 몸매도 여리여리했다.
하지만 수련자는 겉모습으로 그 나이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한제 역시 겉으로는 청년 같아 보였지만 실제적으로는 벌써 4백 살이 넘지 않았던가.
한제는 덤덤한 눈빛으로 세 사람을 훑어보며 느릿하게 말했다.
“여기는 무슨 문파인가?”
세 사람 중 노인이 얼른 공손하게 답했다.
“선배님, 이 문파의 이름은 자운(紫雲)입니다. 선배님께서 명하시면 자운종에서는 무엇이든 전력을 다해 따를 것입니다.”
한제는 그 사람을 한 번 훑어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이곳에 오래된 전송진이 하나 있었을 텐데 지금도 있나?”
노인은 흠칫 놀라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선배님, 이곳에는 오래된 전송진이 없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신에 흐르는 서늘한 한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한제에게서 풍기던 느낌이 순간 바뀌었다. 이내 그는 서늘한 눈빛으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확실한가?”
노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그가 막 입을 열려던 때, 곁에 있던 여자 수련자가 앞으로 나서며 공손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전송진이라면 산꼭대기에 있었던 오래된 전송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한제의 눈빛이 그 여인에게 닿았다. 여인은 모완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아름답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여인의 얼굴은 백옥 같았고 두 눈은 기민함으로 반짝거렸다.
한제의 눈빛에 여인의 뺨이 살짝 붉게 물드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그 전송진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제가 알고 있습니다.”
“길을 안내하도록!”
한제가 몸을 움직여 산꼭대기 쪽으로 향하자 여인이 얼른 그 뒤를 따랐다. 나머지 두 수련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그 뒤를 함께 따랐다.
여인의 안내에 따라 그들은 산꼭대기의 모처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우아한 누각이 하나 있었는데 네 모서리에는 방울이 달려 있어 바람이 불 때마다 맑고 고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자 수련자는 그곳에 도착한 뒤 살짝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선배님, 이곳은 제 규방입니다. 이 산맥은 저희 자운종의 소유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형들께서는 그 전송진에 대해 모를 겁니다. 저 역시 우연히 방 안에 비밀스러운 길이 있는 것을 보고 탐색한 후에야 알게 되었지요.”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운종에 도착해서 탐색을 했을 때 그 역시 그곳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지금 근방을 신식으로 탐색해보니 누각 아래쪽에서부터 옅은 영력의 파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신통술로 그 진을 막아놓은 모양이었다.
한제는 꽤 놀랐다. 겨우 2성 수련국에 불과한 곳에서 누가 그의 신식을 피할 수 있는 신통술을 부린단 말인가?
여자 수련자의 안내에 따라 누각 안으로 들어간 한제는 순간 훅 끼쳐오는 향을 느꼈다. 누각은 우아하고 아름다워 여인의 규방임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사방을 훑던 한제의 시선이 한쪽의 병풍에서 멈췄다. 하지만 그는 곧 시선을 거두었다.
여인은 새빨개진 얼굴로 얼른 앞으로 나아가더니 병풍에 걸려 있던 반투명한 천으로 만들어진 속옷을 거두었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감히 한제를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한제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여인의 안내에 따라 비밀 통로를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러면서도 신중하게 사방을 살폈다. 뭔가 이상한 낌새라도 보이면 곧장 손을 쓸 작성이었다.
누각 아래에는 과연 오래된 전송진이 있었다. 상당히 완벽한 상태였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하급 영수의 내단 두 개를 꺼내 안내를 해준 여인에게 건넸다.
“이것으로 단약을 만들면 네 경지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인은 내단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희색을 드러냈다. 그녀로서는 평생을 노력한다 해도 얻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만약 이 내단으로 단약을 만들어 복용한다면 그녀는 곧장 결단기 후기에 이르게 될지도 몰랐다.
조심스럽게 내단을 받아 든 그녀가 그것을 저물대에 넣었다. 곁에 있던 두 수련자는 부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두 사람을 힐긋 보며 전송진 쪽으로 다가가 오른손을 한 번 휘둘렀다. 순간 그의 사방에 검은 안개가 피어올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막았다. 그는 최고급 영석 하나를 꺼낸 뒤 그것을 홈에 놓고 진을 가동시켰다.
빛으로 이루어진 원이 하나둘 피어오르더니 한제는 순간 진 안에서 사라졌다.
조나라는 이 공맹 대륙의 가장 끝에 있었다. 큰 나라라고 할 수 없는 이 나라는 화분국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또한 영력의 맥이 미약해 진귀한 약초도 거의 볼 수 없었다. 총체적으로 작고 약한 변방 국가인 셈이었다.
현재 조나라 안의 최고 문파는 현도종(玄道宗)으로 그 시조 흑천은 4백 년 전 원영기 후기에 이르렀다. 그 후 폐관 수련 끝에 다른 원영기 후기 수련자들은 그에게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화신기를 눈앞에 둔 상태였다.
현도종 외의 조나라 소속 문파인 표묘종(飄渺宗)과 적멸종(寂滅宗), 원규파(元奎派) 등은 이제 이류로 분류되고 있었다. 발전이 있기는 했지만 흑천의 존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류 종파로 분류되는 실정이었다.
마도 종파 중에는 천도문(天道門)과 합환종(合歡宗), 무봉골 등이 진보했다. 비록 흑천에게 저항할 수는 없었지만 표묘종 등에 비하면 나았다.
하지만 흑천의 강력함 하에 조나라의 정도 및 마도 문파는 마찰이 적었다. 작은 갈등이나 분쟁은 있었지만 큰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현재의 조나라는 기본적으로 흑천에 의해 장악된 채 4성 수련국으로 승급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흑천이 화신기에 이르기만 한다면 4성 수련국으로의 승급은 순조롭게 이루어질 터였다.
이런 문파들 외에도 지난 4백 년간 조나라에는 적지 않은 인물이 나타났다. 현도종의 이산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단 2백 년 만에 결단기에 이르렀고 이후 2백 년간의 수련으로 결단기 후기에 이르렀다. 조나라에서는 매우 빠른 속도였다. 이 외에도 각 문파에서 천재들이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들은 등 씨 가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조나라는 지난 4백 년 동안 흑천에게 장악되기도 했지만 등 씨 가문의 손아귀에 틀어쥐어 지기도 했다.
등 씨 가문의 가주(家主)인 등화원은 4백 년 전 이미 원영기 초기였고 이후 4백 년 동안의 수련과 흑천의 도움 아래 원영기 후기에 이른 상태였다. 조나라의 가장 강력한 수련자 중 한 명이었다.
조나라에서는 원영기 후기만 되어도 최고 수준의 지위와 권세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사전에 흑천의 명령을 들어야만 했다.
흑천은 조나라의 모든 사람이 따를 법칙을 만들기 위해 자원을 쏟아부었다. 원영기 후기 수련자들 중 화신기 수련자 한 명만 나오면 조나라의 등급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등화원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조나라 안에서 등 씨 가문의 명망도 덩달아 높아졌으며, 가문이 흥할수록 자손도 많아져 이제 등 씨 가문은 명실상부한 조나라 내의 일등 가문이 되었다.
등 씨 가문의 수련자들은 거의 모든 문파에 소속되어 각 문파 내에서 꽤 높은 위치를 차지했다. 동시에 등화원은 제멋대로 인척 관계를 맺어 등 씨 가문의 여자들을 뛰어난 수련자들과 결혼시킴으로써 등 씨 가문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했다. 이산 역시 그런 수련자 중 하나였다.
말하자면 등 씨 가문은 이미 조나라와 거의 하나로 연결된 상태로 가문의 사소한 일 하나가 나라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난 4백 년간 등 씨 가문을 제거하려던 사람이 없지는 않았으나, 결국 등화원이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어느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리곤 했다.
등화원의 이런 행실에 대해 흑천은 아무런 제제도 하지 않았다. 화신기에 진입하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는 그에게 세상 돌아가는 일은 관심 밖이었다.
등가성(藤家城)은 총 여섯 차례 확장을 거쳐 이제 거대한 성이 되어 있었다. 등 씨 가문이 조나라에서 갖는 명망에 대한 증거나 마찬가지였다.
등가성 아래로 1천 척 깊이에 달하는 곳에는 밀실이 하나 있었다. 이 밀실 은 외부의 열 배 이상 영기로 충만했다. 그것은 이 밀실 아래로 영력의 맥, 즉 영맥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영맥은 크지는 않았지만 수련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등화원이 등가성을 여러 번 확장한 것 역시 이 영맥을 발견하고 그 위에 비밀리에 밀실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대해서는 흑천도 알지 못했고 등 씨 가문 사람들 중에서도 아는 사람이 몇 되지 않았다. 이곳은 등 씨 가문의 사람들이 경지를 높이고 싶을 때에만 허락을 받고 들어가 수련할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 그 지하 밀실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한 명이 앉아 있었다. 그 노인은 별안간 두 눈을 번쩍 뜨고 음침한 눈빛을 드러냈다. 그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폐관 수련을 하던 중 돌연 피 냄새가 훅 끼쳐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강력한 느낌에 체내의 영력이 혼란스러워질 정도였다.
등화원 (2)
노인은 오른손으로 결인을 해 앞으로 쏘아 보냈다. 곧 하얀색 빛이 그의 앞에 떠올랐다.
노인은 입을 벌려 빠른 속도로 복잡한 주문을 몇 개 외웠다. 그러자 하얀 빛이 빠르게 번쩍거렸다. 노인의 표정은 갈수록 진중해졌다.
한데 바로 그때, 하얀 빛이 돌연 바르르 떨리더니 저절로 흩어져 버렸다. 이에 노인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가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흑천이 전수해준 예령술(豫靈術)로도 그 피 냄새의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니⋯⋯.”
노인은 한제의 복수 대상이자 등 씨 가문의 가주인 등화원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경지는 한참 높아졌으나 많이 노쇠하여 한제를 갈가리 찢었던 당시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 기세 역시 직접 전투에 뛰어들어 싸움을 벌이던 장군에서 술수를 꾸미는 모사로 바뀐 듯했다.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몸을 훌쩍 날려 밀실에서 사라졌고 잠시 후 등가성 내에 있는 자신의 방에 나타났다. 그의 집은 3층짜리 누각으로 그 위에는 용이 조각되어 있어 위엄이 넘쳐 보였다.
등화원의 방에는 수많은 위패가 놓여 있었다. 각각에는 등 씨 가문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들은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사망한 자들이었다.
여러 위패를 훑던 노인의 눈빛이 그 중 가장 끝에 있는 한 위패에 머물렀다. 그 위에는 ‘등력’이라는 이름이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지난 4백 년간 그는 불안하거나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면 이곳으로 와 위패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습관이 된 행동이었다.
한참 뒤, 그는 손을 뻗어 등력의 이름이 적힌 위패를 가볍게 쓸었다.
“력아, 너무나 빨리 떠났구나. 네 천부적인 자질로는 벌써 원영기에 이르렀을 텐데⋯⋯.”
그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위패를 원래 자리에 되돌려 놓고 자리를 떠났다.
그때, 등가성 밖에서는 두 개의 검광이 긴 무지개를 그리며 이쪽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등가성의 성문에서 1천 척 정도의 거리에 착지한 검광에서 일남일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중년에 이른 남자는 외모가 준수해 젊었을 때는 여자들에게 상당히 인기를 누렸을 법했다. 게다가 하얀 옷을 입고 있어 신선 같은 풍모가 강했다. 그의 곁에 있는 여인은 절색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상당히 부귀해 보였으며, 똑같은 흰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여인의 미간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중년 남자는 복잡한 눈으로 등가성을 바라보았다.
“이산, 이미 한참도 더 지난 일을 왜 아직도 떨쳐버리질 못하는 거야?”
여자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떨쳐버려?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이고 온 가족을 죽인 원수를 그리 쉽게 떨쳐버릴 수 있다면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중년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자 여인은 한참 후에 조용히 말했다.
“난 여동생을 보러 왔을 뿐이고 사흘 뒤 떠날 거야. 그 동안에는 아무 짓도 하지 마. 알았어?”
“안심해. 내가 그 늙다리를 죽일 수 있는 수준에 오르기 전까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을 테니까.”
중년 남자가 덤덤하게 대답한 뒤 앞으로 나아갔다.
여인은 한숨을 내쉬며 그 뒤를 따라 이산과 함께 등가성 쪽으로 향했다.
“이산, 사실 당시의 일의 원흉은 나의 조상인 등화원이 아니라 이한제야. 그는 이미 죽었지만 이 일을 시작한 것은 그였다고!”
여자가 걸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