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
다음 날 아침, 작은아버지는 일찍 집을 떠났다. 한제의 부모님과 한제는 마을 어귀까지 그를 배웅했다.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서로 알 정도로 좁은 마을이다 보니, 한제가 대산파에 제자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소문은 금세 퍼졌다.
“이 씨네 아들이 대산파 제자로 들어가게 됐다면서요?”
“어려서부터 똘똘하더니, 크게 출세할 것 같았어!”
“한제야, 앞으로 큰사람이 되어서도 꼭 마을을 잊지 말고 자주 찾아오너라.”
아직 결정된 것도 아니었건만 사람들은 이미 한제가 대산파의 제자라도 된 것처럼 그를 대했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그에 대해 한마디씩 했고 그때마다 한제의 부모님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보름 후에는 인근 마을들에까지 소문이 퍼져서 모두가 한제를 축하해주러 집으로 찾아왔다.
축하 행렬이 이어지자 한제의 아버지는 마을 광장에서 잔치를 열어 사람들을 대접했다.
소문은 곧 이 씨 가문 다른 사람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들 중 상당수는 한제의 가족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어쩐 일인지 한달음에 달려와 축하해주었다.
“한제야, 인사하거라. 이쪽은 네 셋째 조부님이시란다. 내가 집을 떠날 때 많은 도움을 주셨단다. 잊지 말고 꼭 큰 보답을 해드려야 한다!”
“둘째야, 시간 참 빠르구나. 그 작던 아이가 이제 너보다도 더 크게 출세했으니 말이다! 하하하!”
백발이 무성한 노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한제 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다시 잔치가 한창인 광장으로 돌아갔다.
노인이 자리를 떠나자 한제의 아버지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날 쫒아내려고 애쓸 때는 언제고 한제 네가 출세할 것 같으니 찾아와서 아부를 떠는구나. 친척은 무슨…”
“그건 그렇고 아버지. 오늘 넷째 작은아버지께서 돌아오시나요?”
한제의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넷째에게 편지가 왔단다. 아직 볼일이 남아 있어서 월말에나 올 수 있을 것 같다더구나.”
그때 대략 쉰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마을로 들어왔다. 그는 대뜸 한제의 아버지에게 다가오더니 기쁜 얼굴로 말을 걸었다.
“둘째야, 축하한다.”
한제의 아버지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 남자를 잠시 바라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딱히 한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운이 좋았던 것뿐입니다, 형님.”
“대산파는 아무나 제자로 받지는 않지요. 보통 도와 연이 있지 않은 이상 쉽게 받아주진 않는 걸로 압니다만. 한데 보아하니 맹하게 생긴 게 들어가 봐야 금방 퇴짜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겠군요.”
한제 또래의 거만해 보이는 청년이 마차에서 내리며 비꼬듯 말했다.
“이산! 어찌 이리 무례하단 말이냐? 여긴 계신 분은 네 둘째 작은아버지고 그 옆은 네 사촌 동생인 한제다! 어서 예를 갖추지 못하겠느냐!”
말을 마친 남자가 다시 고개를 돌려 한제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들놈이 아직 어려서 그러니 너무 불쾌해하진 말거라. 그나저나…”
남자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선인이 제자를 들이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 어떠한 연분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네만. 대산파의 도허상선께서 내 아들이 마음에 드셨던지, 이놈을 포함해 세 명을 우리 집안에서 추천해 달라 하셨지.”
한제의 아버지가 콧방귀를 뀌었다.
“형님 자식이 된다면 내 자식이 안 될 건 없겠지요.”
그러자 마차에서 내린 소년이 더욱 더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이 내 둘째 작은아버지란 말이죠? 미리 말씀드리겠는데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게다가 본좌는 선인이 직접 택한 사람입니다만 어찌 댁의 자제분과 같은 위치에서 비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옆에서 듣던 남자가 또 다시 자신의 아들을 꾸짖더니 한제의 아버지에게 포권을 취하며 사과하고는 아들을 데리고 잔치가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한제야, 너무 부담 갖지 말거라. 제자가 되지 못한들 어떻겠느냐? 내년에 과거 시험도 있으니 너무 부담갖지 말거라“
“아닙니다, 아버지. 반드시 붙도록 하겠습니다.”
한제의 아버지는 아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고는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 한가운데 선 한제의 아버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큰소리로 말했다.
“모두들 축하하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아들이 대산파의 제자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너무나도 기쁩니다. 자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모두들 잔을 들어주시오. 오늘 즐거운 시간 보내다 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한제의 아버지는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잔치는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 끝이 났다.
친척들은 하나둘씩 떠나갈 채비를 마치고 마을 광장을 떠나갔다. 허나 그 와중에도 이산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는 한제의 곁을 지나갈 때 그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깔보듯 속삭였다.
“네 몸에 맞지 않는 옷이야. 어차피 떨어질 거 너무 기대하진 마.”
그리곤 그는 비웃음을 지은 채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떠났다.
그날, 집으로 가는 한제는 굳게 다짐했다.
‘반드시 붙고 말겠어!’
★ ★ ★
어느덧 약속한 날짜가 되어 한제의 작은아버지가 한제를 데리러 왔다.
“형님, 형수님. 이번에는 한제를 데리고 바로 떠나야 할 것 같아요. 내일 아침 대산파에서 사람이 내려오기로 했거든요.”
“알겠다. 한제야, 네 작은아버지를 따라가거라. 붙는다면 최선을 다해 그곳에 적응하거라. 떨어진다 해도 부끄러울 것 없다.”
곁에서 어머니도 한마디 거들었다.
“한제야, 나가서 작은아버지 말씀 잘 듣고 절대 사고 쳐선 안 된다. 갈아입을 옷은 짐 보따리에 넣어두었다. 잘 다녀와라. 보고 싶을 게다.”
어머니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제는 어려서부터 단 한 번도 마을을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한제의 부모님은 바깥 세상에 대해 잘 모르는 아들이 많이 걱정되는 듯했다.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
한제가 인사를 올리자 말들이 말굽 소리를 내며 마차를 끌었다. 한제의 부모는 멀어져가는 마차를 바라보며 눈물을 훔쳤다.
시험
마차는 쉬지 않고 이동했다. 한제는 짐 보따리를 끌어안은 채 자신이 15년간 지냈던 마을이 멀어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한제야, 처음으로 마을을 떠나는 기분이 어떠냐?”
“약간은 두렵습니다. 선인들이 저를 받아주지 않을까 겁도 납니다.”
“하하, 너무 깊게 생각할 것 없다. 자 도착했구나. 여기가 내 집이란다. 오늘은 쉬고 내일 아침에 가자꾸나.”
방에 들어온 한제는 짐을 내려놓고 침상에 누웠다. 그러나 긴장 탓인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한제는 작은아버지를 따라 이 씨 가문의 대저택으로 갔다.
저택 앞에 선 작은아버지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제야, 절대 멍하게 있어선 안 된다. 알겠느냐?”
한제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저택 안으로 들어가고 한 남자가 마당 가운데에 서 있었다. 한제의 아버지가 형님이라고 불렀던 남자였다. 그는 한제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곧 선인들께서 오실 것이다. 절대로 겁먹거나 긴장해선 안 된다. 잘 모르겠으면 네 형님인 이산이 하는 대로 따라 하면 된다. 알겠느냐?”
한제는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이산 이외에 또 한 소년이 서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그 소년은 무언가를 가득 지닌 듯 옷이 빵빵했다.
한제를 발견한 소년이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네가 둘째 작은아버지 댁의 한제로구나? 난 이현이라고 해.”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구름이 일렁이더니 번쩍하고 빛이 쏟아져 내렸다. 그 가운데에는 흰옷을 걸친 한 청년이 서 있었다. 청년은 세 소년을 훑어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 씨 가문에서 추천할 세 사람이 이 아이들인가?”
이산의 아버지가 황급히 앞으로 나아가며 고개를 숙였다.
“선인이시여. 이 세 사람이 우리 이 씨 집안에서 추천할 자들이옵니다.”
청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었다.
“누가 이산이지?”
이산의 아버지가 재빨리 이산을 앞으로 끌어내며 말했다.
“이 아이가 제 부족한 자식인 이산이옵니다.”
청년은 이산을 위아래로 훑어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기운이 심상치 않구나. 도허상선께서 마음에 들어 하실 만하군.”
청년은 소매를 걷어 올리더니 세 사람을 데리고 연기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작은아버지는 하늘을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제야, 꼭 붙도록 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