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16
한데 바로 그때, 갑자기 그녀의 곁에 아홉 개의 빛이 나타나더니 곧장 하나로 연결되었다. 이어서 아홉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아홉 사람 중에는 세월의 경지를 깨달은 백운종의 노인도 있었다.
이들이 나타나자 흰옷의 여인도 안색이 변했다. 허나 그녀는 가볍게 코웃음을 친 뒤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녀의 손에는 일곱 개의 커다란 깃털로 만들어진 부채가 쥐어져 있었다.
그녀가 부채를 한 번 흔들자 순간 일곱 개의 깃털 중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그 깃털은 떨어지자마자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면서 한 줄기의 푸른 연기가 되었고 그 연기는 거대한 인영으로 바뀌어갔다.
여인은 가볍게 숨을 불어넣었다. 순간, 흰옷의 여인을 포위하고 있던 아홉 사람이 휘청거렸고 모두 한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하지만 그들은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동시에 이들은 서로 다른 경지의 아홉가지 공격으로 마치 성난 파도처럼 여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모습을 본 설역국의 화신기 수련자들은 안색이 변했다. 허나 그들은 4파 연맹국 화신기 수련자들에게 붙들려 있었다. 이는 4파 연맹국의 계획이었다.
흰옷의 여인 역시 표정이 변했다. 그녀는 손에 든 부채를 급격하게 흔들었고 하나하나의 깃털이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이 죽음의 진은 설역국의 그 여인을 상대하기 위해 4파 연맹국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녀만 처리할 수 있다면 이 전쟁은 큰 변화를 맞을 터였다. 물론 주작국의 분노를 살 수도 있지만 4파 연맹국 입장에서는 나라가 망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 아홉 명의 수련자가 공격을 한 순간, 4파 연맹국 안에서 이 진을 유지하고 있던 네 개 문파의 수련자들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서는 쓰러져 죽어버렸다. 흰옷의 여인이 부채로 일으킨 공격을 나누어 분담한 것이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여인은 스스로를 과신했다. 5성 수련국에서 만든 부채를 얻은 뒤부터 화신기 수련자 중 언제나 자신의 머리 위에 있던 사매를 제외한 그 누구도 그녀의 적수가 되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홉 명의 수련자 중 다섯 명은 화신기 후기 수련자였고 나머지 넷은 각각 특수한 경지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말하자면 이 죽음의 진은 영변기 수련자가 아닌 이상 누구도 피할 수 없었다.
성난 파도 아래, 흰옷의 여인은 저항도 하지 못하고 피 안개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두 개의 깃털이 남아 있는 부채는 어느 화신기 수련자의 손에 들어갔다. 잠시 후 아홉 명의 수련자는 다시 빛이 되어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들 아홉은 부채의 공격에 엄중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모두 경지가 적지 않게 떨어져 장시간 폐관수련을 해야만 원상태를 회복할 수 있었다.
설역국 수련자들은 분노했다. 하지만 그 분노 속에 슬픔은 없었다. 그들은 더욱 흉포하게 4파 연맹국의 수련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모든 것들을 살피던 한제의 미간이 천천히 구겨졌다. 설역국 수련자들의 표정을 관찰한 그는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방금 죽은 여인의 정체는 어쩌면 진정한 하늘의 딸이 아닐 것이다.
바로 그때, 땅에서 일곱 가지 빛깔을 번쩍이는 빛기둥들이 하나하나 피어올랐다. 총 108개였다.
네 개 문파의 구석에 분포해 있던 그것들은 갑자기 동시에 하늘로 솟아올랐다.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108개의 빛기둥이 네 개 문파를 핵심으로 하는 거대한 진을 이루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빛기둥 안에는 수많은 수련자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눈을 감은 그들은 모든 영력을 그 빛기둥에 쏟아부으며 진형의 변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온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4파 연맹국의 정중앙인 천운 산맥을 뒤덮은 얼음과 눈이 떨어져 내렸다. 몇몇 얼음 층은 그대로 찢겨 나가기까지 했다. 이제 천운 산맥은 빛기둥 108개의 격한 움직임 아래 길이가 10만 척에 이르는 창룡(蒼龍)이 되어 느릿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얼음과 눈이 떨어져 내린 순간, 창룡은 고개를 들고 거대한 눈을 뜬 채 하늘에 떠 있는 설역국 수련자들을 바라보았다.
그 창룡 위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바로 무태였다.
무태가 4파 연맹국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그가 4파 연맹국을 수호하는 창룡의 혈통이기 때문이었다. 오직 그만이 창룡의 진을 가동시키고 그 진 안에서 소환된 창룡을 조종하여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창룡은 고개를 들고 포효했다. 그 소리는 굽이굽이 파도처럼 넓게 퍼져 나갔다. 4파 연맹국 수련자들은 창룡이 포효한 순간 흥분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계획에 따르면 창룡의 표효는 결전의 시작을 의미했다. 수많은 수련자들이 네 개 문파에서 나와 전투에 가담했다.
한제는 설산 봉우리에 숨어 미간을 찌푸렸다. 이대로라면 이 전투는 4파 연맹국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한제는 뭔지 모를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한제의 눈빛이 갑자기 번득였다. 그는 신식으로 1만 리 밖, 흑혼파가 있는 쪽에서 오행의 령 중 흙의 령을 감지했다. 온몸에서 짙고 검은 기운을 발산하고 있는 흙의 령은 빠른 속도로 이쪽을 향해 질주했으며, 붓을 든 그 청년이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뒤쫓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붓은 때때로 한 번씩 휘둘러졌고 그럴 때마다 흙의 령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몸에서 발산되는 검은 기운도 더욱 짙어졌다.
순간, 한제의 마음이 흔들렸다. 잠시 후,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갑자기 뛰쳐나가 흙의 령 쪽으로 향했다.
둘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8천 리, 7천 리, 5천 리⋯⋯.
흙의 령과의 거리가 3천 리에 이르렀을 때, 한제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이미 2천 리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그는 이마를 두드려 입에서 검은색의 거대한 도장을 토해냈다. 그 도장은 나타나자마자 진한 살기(煞氣)를 발산했다. 수많은 영혼이 그 살기(煞氣)에 엉겨 있었다.
한제가 오른손으로 가리키자 이 검은 도장은 천천히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이내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와 동시에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두 손으로 빠르게 결인을 그렸다. 수많은 금제가 그의 손에서 사방으로 줄기줄기 튀어나갔다. 이어서 저물대에서 금번을 꺼내 한 번 휘둘러 진한 검은색 안개를 뿜어냈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안개 역시 기척 없이 사라졌다.
막 작업들을 마쳤을 때, 멀리서 흙의 령이 다가왔다. 흙의 령은 한제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화신기 후기의 절정에 달한 흙의 령으로서는 비록 부상을 입었다고는 해도 원영기 수련자 하나 정도는 눈에 차지도 않았다.
흙의 령은 손을 들어 휘둘렀다. 순간 진한 흙의 기운이 훅 끼쳐왔다. 한제는 그 기운에 닿자마자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체내의 원영이 통째로 뒤흔들리며 흩어져 버리려는 기색까지 보였다.
한제가 자신의 공격을 버텨내자 흙의 령은 미간을 살짝 구겼으나, 멈추지는 않았다. 한데 그때, 한제가 토해낸 피는 곧장 한 덩어리의 피 안개가 되어 하늘 끄트머리에서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갑자기 대량의 검은 안개가 솟아올랐다.
이어 그 검은 안개 속에서 수많은 금제가 포효하며 튀어나와 흙의 령 곁을 맴돌았고 검은색 빛 형태를 한 금제의 원 여덟 개가 나타났다. 금제는 금번과 함께 거대한 감옥이 되어 흙의 령을 가두었다.
한제는 곧장 몸을 뒤로 물렸다. 그는 자신의 경지로 흙의 령에 대적할 수는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차피 직접 나설 생각이 없었다. 손에 붓을 쥔 젊은이가 쫓아오면 그와 함께 공훈을 나눌 생각이었다.
흙의 령(靈)을 빼앗다
흙의 령은 한제의 의중을 꿰뚫어본 듯 분노에 찬 소리를 질렀다. 그 몸은 격렬하게 검은 안개 형태의 금제에 부딪히고 있었다.
주위에서 맴돌며 포효하는 검은 빛 형태의 금제에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사실 그 금제의 빛은 흙의 령을 꿰뚫고 들어가자마자 마치 삼켜진 듯 사라져 버렸다.
흙의 령이 몸으로 부딪히자 금번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안개는 반으로 줄어 버렸다. 한제는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금번에 상처가 났음을 알 수 있었다.
흙의 령은 잠시 쉬었다가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다시 달려들었다. 이내 검은 안개는 완전히 흩어져 버렸고 금번 역시 여기저기에 상흔이 생겨났다.
흙의 령이 세 번째로 부딪혀오려는 찰나, 손에 붓을 든 청년이 마침내 도착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감겨져 있었고 붓은 손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느린 듯했지만 사실 매우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중이었다.
순간, 흙의 령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다시 금번에 부딪히려 했다.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오른손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순간 검은색의 거대한 도장이 나타나 매섭게 떨어져 내렸다. 수많은 영혼들과 혼잡하게 섞인 살기(煞氣)는 더욱 짙어진 상태였다.
순간, 흙의 령은 갑자기 검은색의 진흙이 되어 검은 도장 쪽으로 향하더니 그것을 감싸버렸다.
그때, 그 청년의 눈이 번쩍 뜨이며 기이한 빛을 발했다. 그의 손에 들린 붓이 다시 움직이자 검은색 진흙으로 변한 흙의 령이 반으로 줄어버렸고 그 기세 역시 주춤하고 말았다.
검은 도장의 순간적인 압박에 흙의 령은 다시 비명을 질렀다. 검은색 진흙은 한데 응결되어 다시 사람의 모습을 갖추었다. 하지만 이제는 반투명한 상태에 불과해서 바람 한 번만 불면 흩날려 사라질 것 같았다. 그 눈에는 절망이 감돌았다.
붓을 든 청년이 팔을 들어 붓을 휘두른 그때, 한제의 몸이 튕기듯이 금번 안으로 진입했다. 그가 미간을 두드리자 순간 엄청난 흡인력이 그의 미간에서 발산되어 흙의 령을 빨아들였다.
석주를 회수한 한제는 검은 도장과 금번까지 거두어 저물대에 챙겼다. 이 모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크게 외쳤다.
“저는 백운종의 제자이며 청송을 제 사부님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저물대 안에서 푸른 옷을 입은 노인의 조각상을 빼냈다. 그리고 세월의 경지를 뿜어낸 뒤 곧장 돌아서 도망쳐버렸다.
붓을 쥐고 있던 청년은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손에 든 붓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한참 뒤, 그 역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한제는 1만 리 이상 움직인 뒤에야 자리에 멈추었다. 붓을 쥔 청년이 자리를 떠났음을 눈치챈 그는 한시름 놓았다.
부귀는 위험 속에서 거두는 것이라고는 해도 이번의 위험은 너무도 컸다. 그는 절대로 다른 오행의 령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방금도 자칫하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었다. 게다가 금번이 파손된 것 역시 상당히 마음 아픈 일이었다.
설산의 봉우리에 다시 숨어든 한제는 석주를 꺼내든 뒤 흙의 속성이 이미 가득 찼음을 확인했다. 이제 금속과 나무 두 가지 속성만을 채우면 석주가 가진 오행의 속성을 완비시킬 수 있었다.
바로 이때, 갑자기 땅이 크게 흔들리더니 사람 머리에 뱀의 몸을 한 얼음 조각상들이 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땅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에 한제가 지하 5만 척 깊이에서 확인했던 것들이었다.
이 수많은 얼음 조각상들이 배치된 모양은 모종의 형상을 이루었다. 그 형상은 그야말로 사람 머리에 뱀의 몸을 한 얼음 조각상과 똑같았다.
얼음 조각상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빛을 번득였고 그와 동시에 하나하나의 얼음 조각상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로 솟아올랐다. 동시에 공간의 균열 중 정중앙에 있던 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조용히 흩어져 사라졌다.
뒤이어 정중앙의 거대한 균열 안에서 짙은 푸른색의 기운이 풍겨 나왔다. 그 기운은 맹렬하게 확산되면서 반경 1만 리를 가둬 버렸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 푸른색 기운에 닿은 4파 연맹국의 수련자들은 곧장 얼음 조각상으로 변해 허공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심지어 체내의 원영 역시 그 짙은 푸른색의 기운에 침식되어 순식간에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기이한 광경에 4파 연맹국 수련자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뒤이어 허공에 떠 있는 얼음 조각상들이 순식간에 녹아 없어졌다. 그 조각상들이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녹아 사라진 순간, 거대한 균열에서 흘러나온 짙은 푸른 기운에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작은 언덕만 한, 뱀의 몸을 가진 존재가 균열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이 나타난 순간, 짙은 푸른색의 기운은 더욱 짙어져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어떤 물질이든 그 푸른 기운에 닿으면 얼음으로 변했다.
한제는 곧장 설산에서 튀어나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질주했다. 그가 설산을 떠남과 거의 동시에 설산 봉우리는 푸른색 기운에 뒤덮여 빙산이 되어버렸다.
이때, 그 뱀의 몸을 한 무언가는 이미 반 정도 내려온 상태였는데 그 허리 위쪽부터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사실 한제는 일찍이 그 괴물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마수가 얼음 조각상으로 만들어져 있던 그 마수임을 예상했다.
그는 이미 이 일에 대해 무태에게 알리긴 했지만 상대가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는 알 수 없었고 별 관심도 없었다.
한제는 짙은 푸른색의 기운 바깥에 이르러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그는 그늘진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룡 위에 서 있던 무태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창룡이 몸을 크게 흔들었고 우르릉 소리와 함께 10만 척에 달하는 창룡의 몸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커다란 입을 벌린 창룡은 그 사람 머리에 뱀의 몸을 한 마수를 삼키려 했다. 창룡은 푸른색의 기운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것처럼, 그 푸른색 기운을 곧장 파괴해 버렸다.
하지만 창룡이 그 마수를 삼키려던 순간, 얼음처럼 냉랭한 목소리가 공간의 균열 안에서 흘러나왔다.
“사자님, 주작국에서는 제게 손을 빌려준다고 약속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약속을 지킬 때입니다. 저 창룡을 죽여주십시오!”
그와 동시에 흰옷을 입은 흑발의 여인 하나가 그 공간의 균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여인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의 몸에서는 그리 큰 한기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두 눈에는 집착의 빛이 어려 있었다. 의지가 상당히 견고한 사람일 듯했다.
그 여인은 아까 피 안개가 되어 죽은 여인과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말하자면 밝은 달과 반딧불만큼이나 큰 차이였다.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두 손을 높이 들었다. 순간 4파 연맹국의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갑자기 네 개의 빛 덩어리가 나타났다. 각각 금속, 나무, 물, 불의 령이었다.
“하나가 없네?”
여인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의 사부가 당시에 말하길, 이 다섯 개의 령은 홍접이 출생하던 때 하늘에서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며 자연적으로 응집된 것으로 홍접의 일생을 수호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 령들은 홍접의 경지가 올라감에따라 저절로 강해져 어느덧 화신기 후기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 령들의 내력은 아무도 알지 못했기에 홍접의 사부는 자신의 경지를 대가로 약간의 예견을 해냈다. 홍접은 선천적으로 다섯 개 령의 몸으로 태어났으며, 생에 있을 단 한 번의 재난을 잘 이겨내어 진정한 오령체(五靈體)가 되면 그때부터는 일생이 평안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다만 그녀의 사부는 홍접이 마주할 재난이 무엇인지는 예견할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이 예견의 결과는 잊혀갔고 몇몇 사람만이 그 재난이 언제쯤, 어떻게 올 것인지 기다리게 됐다.
이 전쟁이 있기 전에 홍접의 사부는 붉은 노을에 몸을 가두었다. 홍접은 자신의 사부가 다시 점을 치려 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번에는 홍접이 마주할 재난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던 사부는 오행의 령을 홍접의 사저에게 넘기게 했다. 또한 그 사저에게 설역국 수련자들의 통솔을 맡겼다. 사부는 홍접을 대신해 그녀의 사저가 그 재난을 뚫게 한다면 홍접은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홍접의 사저가 죽었을 때, 그녀가 당할 재난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앞으로의 나날이 평안할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홍접이 이제야 공간의 균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섯 개의 령 중 하나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홍접은 부들부들 떨었고 그 눈빛 역시 어두워졌다.
그녀의 뒤로는 여덟 사람이 서 있었다. 남녀가 뒤섞인 그들은 한 사람을 빼고는 복장이 같았고 모두 나이가 제법 있었다. 이 일곱 명은 설역국의 대장로들로 홍접이 주작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그녀를 비호하는 역할을 맡았다.
마지막 한 사람은 검은 옷을 입은 중년 남자였다. 얼굴이 약간 누렇게 뜬 그는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그는 홍접의 말을 듣자마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축지법을 써서 한달음에 창룡과 반인반사(半人半蛇) 사이에 서서는 창룡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이 용을 죽일 권한은 내게 없지만 혈맥을 꺼낼 수는 있지!”
말을 마친 그가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창룡을 두드리자 무태는 온몸을 덜덜 떨기 시작하며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그의 몸은 마치 엄청난 힘에 밀린 듯 유성처럼 멀리 밀려났다.
중년 남자는 무태가 토해낸 피를 오른손으로 쥐고는 곧장 응결시켰다. 한 방울의 암적색 피 구슬이 된 무태의 피는 창룡의 미간으로 들어갔다.
분노한 듯 포효하는 창룡의 두 눈에 슬픔이 담겼다. 하지만 그 속에는 해탈의 빛도 섞여 있었다. 창룡은 대지를 한 번 둘러보더니 온몸을 크게 움직였다. 곧 용의 영혼이 머리에서 튀어나와 하늘 끄트머리로 사라져버렸다.
혼백을 잃은 창룡의 거대한 몸뚱이는 석화(石化)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것은 다시 거대한 산맥의 모양이 되어서는 허공에서 뚝 떨어졌다. 창룡이 산맥으로 변해 땅에 떨어지는 소리는 마치 4파 연맹국의 멸망을 알리는 종소리 같았다.
중년 남자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여인 곁으로 돌아갔다. 그의 모습에서는 다시 병색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