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87
사실 곤극 채찍이 가격한 것은 육신이 아니라 원신이었다.
경악한 노인은 가까스로 원신을 다시 육신에 되돌려 놓았으나, 한제는 틈을 주지 않고 오른손 검지로 허공을 휙 그었다. 그러자 붉은빛이 번쩍이더니 노인의 원신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노인은 잔뜩 구겨진 얼굴로 한 움큼 안개를 뱉어낸 끝에야 겨우 그 빛을 피할 수 있었다.
그때, 곁에 있던 창백한 얼굴의 노인이 하얀빛을 쏘아 보내더니 저물대에서 보라색의 장검을 하나 꺼내 들었다. 칼끝을 한제에게 겨눈 그가 외쳤다.
“칠성쇄(七星碎)!”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보라색 비검은 한번 흔들리더니 쩌적 소리를 내며 일곱 조각으로 쪼개져 엄청난 힘과 함께 한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쐐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한제는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두 눈에서 붉은 빛을 번득였다. 살기가 가득한 눈빛에 광기가 언뜻 스쳐 갔다.
“저⋯⋯ 저 눈빛! 내가 대체 어떤 괴물을 건드린 것인가!”
노인은 한제의 눈에 번득이는 살기를 보고 덜덜 떨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한제가 저물대를 두드리자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선검이 튀어나왔다. 뒤를 이어 한제조차 두려워하는 굽은 칼이 모습을 드러냈다.
콰르릉!
천지가 깨져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일곱 조각으로 나뉜 비검은 선검에 닿기도 전에 그 기세에 튕겨나가 폭발했다. 이어 선검에서 광기 어린 허이국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노인은 두말 않고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는 자신의 비검이 폭발한 것은 그 선검 때문이 아니라 굽은 칼 때문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 굽은 칼은 눈 깜짝할 사이 일곱 번이나 허공을 갈랐고 한번에 하나씩 비검 조각을 완전히 부서뜨려 버렸다. 다만 너무나 빠른 속도로 움직인 탓에 일곱 조각의 비검이 동시에 폭파한 것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노인은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렸음을 후회했지만 항상 그렇듯 후회란 항상 늦은 법이었다.
한제는 달아나는 노인에게는 신경도 않고 곤극 채찍에 공격당한 노인을 향해 단숨에 거리를 좁혀 들어갔다. 한제가 쏘아 보낸 빛에 대항하고 있던 그의 원신은 한제가 다가오자 경악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치려 했다.
“어딜 가느냐!”
한제는 싸늘하게 외치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무수히 많은 금제가 거대한 그물을 이루며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노인의 원신은 꼼짝없이 그 그물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크윽!”
노인의 짧은 비명을 들으며 한제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노인의 원신은 강력한 힘에 의해 뒤로 당겨졌다.
이를 악문 노인은 맹렬히 고개를 돌리며 날카롭게 외쳤다.
“나는 집행장로다! 나를 죽인다면 시조 어르신의 제자라 해도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내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거지?”
한제가 냉소하며 오른손을 매섭게 움켜쥐었다. 노인의 원신은 비명을 지르며 그의 손에 이끌려왔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방울을 꺼냈다. 저물대 밖으로 나온 방울은 30척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한제는 손에 쥐고 있던 노인의 원신을 방울 쪽으로 집어던졌고 방울은 원신을 가둔 채 바닥으로 짓눌렀다.
“제련!”
한제는 냉랭하게 외친 뒤 몸을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1백 척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 선 다른 노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굽은 칼은 그의 앞에서 계속해서 번뜩였고 선검에서는 허이국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녀석아, 가만히 좀 있어라. 까딱 움직였다가는 목이 잘릴 테니까!”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그 노인을 바라보며 느릿하게 말했다.
“보아하니 이곳에서는 얌전한 이한제를 필요로 하지 않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횡포를 부려볼까 한다. 이전까지 자운각에 누가 머물렀는지 고하라!”
노인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는 폐허가 된 수련성에서 온 눈앞의 수련자가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집행장로인 자신들을 이토록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것은 영변기 중기에나 해당하는 수준의 신통력이었다.
‘제길, 조성살의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이런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을…’
노인은 이를 갈았다.
그때, 저 옆의 거대한 방울이 진동했다.
“끄아악!”
그 안에서는 산 채로 제련되고 있는 동료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노인은 긴 한숨을 내뱉은 뒤 일체의 저항을 포기하고 후회가 담긴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알고 싶은 것에 대해 모두 알려주지. 대신 저 친구를 풀어주게.”
한제는 말없이 노인을 냉랭하게 노려보았다.
노인은 씁쓸한 얼굴로 그의 앞에서 아직도 날선 빛을 번득이며 배회하고 있는 굽은 칼을 바라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시조 어르신께는 일곱 계열에 각각 한 명씩, 총 일곱 명의 직계제자인 사조(師祖)가 있다. 이들을 천운칠자라 부르지. 허나 이들 중 단 한 명만이 시조 어르신의 적통이 될 수 있지.”
한제는 말없이 그저 듣기만 했다.
“자계(紫系)에서는 1천 년 전 타고난 기질을 가진 제자가 나타났고 결국 천운칠자 중 하나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손운, 그가 머물던 곳이 바로 자운각이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한제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원래대로라면 아무런 상관이 없지. 한데 이 손운은 1백 년 전 알 수 없는 이유로 우리 천운종을 배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조 어르신은 추살 명령을 내리지 않으셨어. 직접 나가셨다가 한 달 뒤에 돌아와 자운각을 봉인하셨지. 그리고 다음에 자운각을 차지하는 사람을 새로운 천운칠자 중 하나로 삼겠다고 선포하셨다.”
여기까지 말한 노인은 잠시 입을 다문 채 복잡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계의 정식 제자는 너까지 총 일곱 명이다. 그중 여섯은 모두 천운성에서 자랐지만 오직 너만은 폐허가 된 수련성에서 왔지. 다른 제자들 입장에서도 너는 외부인이자 비천한 출신이다. 시조 어르신께서 그런 너를 자운각의 새로운 주인으로 삼으셨으니 다른 이들이 너를 어찌 배척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내막을 알게 된 한제는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
“게다가 네 수준 역시 그리 높지 않으니 너의 사형제들이 너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지. 시조 어르신이 계시니 감히 직접 손을 쓰지 못하겠지만 암암리에 수를 쓰는 것까지 어찌 막으랴! 이제 더는 해줄 말이 없다. 오늘 너를 건드린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앞으로 너희 사형제 간의 일에는 절대 끼어들지 않겠다. 그러니 저 친구를 풀어주어라.”
말을 마친 노인은 바로 눈앞에서 서늘한 빛을 번득이고 있는 굽은 칼을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힐끗 살폈다.
한편, 한제는 이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됐다.
그는 오른손을 휘둘러 선검을 물렸고 허이국의 명에 굽은 칼 또한 물러났다.
노인은 그제야 한시름 놓고는 거대한 방울을 살폈다. 그 안에 갇힌 원신의 비명은 옅어진 상태였다. 잠시 망설이던 노인이 말했다.
“저 친구는⋯⋯?”
딱!
한제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방울이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푸른 빛 한 줄기가 빠져나와 곧장 달아나려 했다. 허나 한제는 가볍게 그 빛을 움켜쥐었다.
“끄악!”
날카로운 비명이 그 푸른 빛에서 흘러나왔다.
“나… 나는 집행장로⋯⋯.”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제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겼고 그러자 푸른빛은 곧장 무너져 내리더니 그 안에서 아주 허약해진 원신이 드러났다.
한제는 그것을 단숨에 꿀꺽 삼켜버렸고 노인의 원신은 한제 체내의 엄청난 흡인력에 의해 한제의 원신이 가지고 있는 존혼번 안으로 흡수되었다.
원신을 삼킨 한제는 눈앞에 남은 노인을 바라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가기 싫은가?”
노인은 멍하니 한제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상대가 규칙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앞에서 원신을 삼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몸이 떨려왔다. 방금 그의 행위는 마도(魔道)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노인을 바라보던 한제의 표정아 싸늘하게 변하더니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까딱했다. 그러자 선검이 움직였지만 굽은 칼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쉿!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은 순간, 한제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굽은 칼이 어느새 붙들어 온 노인의 원신이 그의 손에 들렸다.
“사… 살려 주…”
노인은 목숨을 구걸했으나, 한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원신을 그대로 꿀꺽 삼켜 존혼번에 봉인했다.
일을 마친 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몸을 돌려 한달음에 자운각으로 향했다.
‘천운자가 나를 자운각에 배치했다면 이런 상황도 예상했을 터. 그렇다면 이제 모든 자종 사람들에게 이 이한제의 힘을 알려주겠다!’
한제는 금세 자운각 앞에 이르렀다. 일전의 그 보라색 옷을 입은 여인은 누각 안 벽에 걸린 산수화를 매만지며 추억을 더듬다가 한제가 온 것을 알아채고는 미간을 살짝 구겼다. 뒤이어 몸을 훌쩍 날린 그녀는 어느새 한제 앞에 나타나 냉랭하게 말했다.
“뭐하러 또 왔느냐? 썩 꺼져라!”
한제는 두말 않고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앞을 가리켰다. 순간 선검이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고 굽은 칼이 그 뒤를 바짝 따랐다.
“헛!”
여인은 안색이 변해 헛숨을 들이키며 순간이동으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는지 굽은 칼에의해 머리카락 몇 올이 바닥에 떨어졌다.
한제는 더욱 싸늘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응결!”
체내의 선력이 오른손에 응집되더니 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공이 형성되었다.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오른손을 움켜쥐었다가 아래쪽으로 꾹 누르며 외쳤다.
“가라!”
빛의 공은 마치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져 지면을 강타했다.
콰르릉!
하늘을 뒤흔들 듯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빛의 공이 지면을 뚫고 들어갔고 대지는 미친 듯이 진동했다. 이어서 1천 척 밖에서 한 줄기 하얀 빛이 지하로부터 솟구쳐 오르더니 허공에 떠올랐다. 그 빛에서 모습을 드러낸 보라색 옷을 입은 여인의 표정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한제는 냉랭한 눈빛으로 그녀를 주시하며 싸늘하게 말했다.
“오늘부터 이곳은 자운각이 아니라 자한각이다!”
한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줄기 푸른빛이 질주하듯 그에게서 쏘아져 나가 자운각 현판을 내리쳤다. 눈 깜짝할 사이 푸른빛이 번쩍하고 흩어지더니 현판의 글자가 바뀌었다.
‘운’이 지워지고 새로 생겨난 ‘한’ 자는 고고한 기운이 가득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듯했다.
여인은 멍한 눈으로 자한각의 현판을 바라보다가 눈물을 주룩 흘렸다. 맹렬히 고개를 돌려 한제를 바라보던 그녀는 앙칼지게 외쳤다.
“네놈을 죽여 버리겠다!”
그녀는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뒤이어 맑은 바람이 훅 끼쳐왔다. 한제는 망설임 없이 뒤로 물러났다. 엄청난 살기가 어린 바람이 방금까지 한제가 있던 곳에 떨어졌다.
한제가 뒤로 물러나던 그때 보라색 옷을 입은 여인의 모습이 바람 속에서 언뜻 드러났다. 붉어진 두 눈 가득 살기를 담은 그녀는 붉은 빛을 쏘아냈다. 그 빛은 허공에서 화염으로 이루어진 봉황이 되었다.
“쿠오오!”
봉황의 울부짖음에 사방으로 화염이 퍼져나갔다. 그 화염은 자한각을 피해 오직 한제에게로만 마치 용암처럼 쏟아져 내렸다.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