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04
그 말에 천운자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한제를 자세히 몇 번 살피더니 크게 웃으며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그와 한제는 빠르게 중앙 산봉우리로 날아갔다.
“과연 대단하구나. 나의 환술을 알아차리다니… 다른 영변기 중기 수준의 제자들은 알아차리지 못했거늘…”
한제의 표정은 덤덤했으나 실은 매우 놀란 상태였다. 세 개의 산봉우리를 본 순간부터 머릿속에 고대 신 서사가 남긴 기억의 유산 속에서 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사가 살면서 아홉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만들어낸 보물이기도 했다. 그 작업을 통해 서사는 하나의 삼지창을 얻게 됐다. 이를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였는지는 서사 자신도 알지 못했다.
삼지창을 완성해낸 서사는 무척 만족했으나, 그 법보는 형태만 갖춰졌을 뿐 혼은 생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서사는 자신의 피를 그 법보에 뿌려 비교적 큰 수련성 안에 집어넣었고 삼지창은 세 개의 산봉우리가 되었다.
혼을 갖추게 하기 위한 작업들을 모두 마친 서사는 먼 곳으로 떠나갔다.
서사는 자신이 더 높은 수준을 갖춘 뒤 돌아올 때면 이 법보에 혼이 갖춰져 더욱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앞의 세 산봉우리는 그 삼지창으로 만들어놓은 것과 완전히 똑같았다.
하지만 곧 한제는 둘이 같은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눈앞의 세 산봉우리 중 두 개는 허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운자의 수준은 엄청나군. 그가 정말 숨기려고만 했다면 나로서는 절대 알 수 없었을 거야.’
한제는 생각을 접고 천운자를 따라 중앙의 하얀 산봉우리 아래에 이르렀다.
“위에서 기다리겠다. 빨리 올라올수록 네가 얻을 보상은 더욱 커질 것이다. 단, 순간이동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정상의 1백 보 아래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나 그 후부터는 네 실력을 여실히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 구간은 쇄선(碎仙)의 땅이라고 불리지!”
말을 마친 천운자는 한제를 힐긋 본 뒤 몸을 돌려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쇄선(碎仙)의 땅
한제는 고개를 들어 높이 솟아있는 산봉우리를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흰색 칼날 같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시선을 거둔 한제는 잠시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2각 동안 호흡을 한 후에야 두 눈을 번쩍 떴다. 침착하고 고요한 눈빛이었다.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씩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불어닥치는 찬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걸음을 옮길수록 한기는 점차 심해졌다. 요사스러운 기운을 품은 듯 휘휘 소리를 내는 찬바람이 끊임없이 몰아쳤다.
쌓여 있는 얼음과 눈을 밟아도 전혀 흔적이 남지 않았다. 마치 산봉우리 자체가 거대한 하얀색 수정인 것 같았다. 심지어 발 디딜 곳도 없어 일반인이라면 한기를 막아주는 법보를 가지고 있다 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터였다.
허나 한제는 일반인이 아니었다. 그의 두 다리는 단 한 번도 바닥을 딛지 않고 지면에서 3척 정도 둥둥 떠 있었다.
귓가에는 찬바람이 계속해서 불어닥쳤고 눈앞은 온통 하얀 빛이었으며, 끊임없는 한기로 몸 곳곳에는 서리가 어렸다. 또한 발아래는 까딱 잘못 디뎠다가는 그대로 산 아래까지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빙판이었다.
그러나 한제의 발을 묶어둘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 고대 신의 땅에서 이런 곳을 경험한 적도 있으니 더더욱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다. 산봉우리가 가까워질수록 한기는 더욱 거세져, 이에 대항하기 위해 한제의 몸을 둘러싼 빛은 점점 더 밝아졌다.
한데 정상까지 1백 보 정도 남겨둔 그때, 한제는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제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 숨은 순식간에 얼어붙어 떨어져 내렸다.
파삭!
매끄러운 빙판에 떨어진 얼음 부스러기가 바스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한기가 코와 입을 통해 순식간에 체내로 들어갔다. 이 한기는 체내에 선력을 돌린 후에야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다.
한제는 고개를 들었다. 1백 보 앞의 정상에는 눈보라에 뒤덮인 보탑이 하나 서 있었다. 일곱 빛깔 광채가 번득이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쇄선의 땅!”
한제는 잠시 말없이 보탑을 바라보다가 바닥에 착지했다. 산봉우리에 오른 이래 처음으로 두 발이 지면에 닿은 순간이었다.
그 순간, 미묘한 느낌이 두 다리로부터 전해져왔다. 한제는 작게 콧방귀를 뀐 뒤 오른발을 가볍게 앞으로 뻗었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한제의 오른발이 바닥을 딛었다.
한데 그때, 상상을 초월하는 한기가 지면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지금껏 겪어본 그 무엇보다도 차가운 이 한기는 한제의 오른발을 통해 체내로 파고들더니 경맥을 따라 복부로 돌진했다.
“흥!”
한제가 콧방귀를 뀌는 순간, 한제의 원신으로부터 한 줄기 신식이 나타나 체내를 한 번 훑었다. 그러자 무서울 것 없이 달려들던 한기는 움찔하며 멈추어 서더니 조금씩 뒤로 물러나 한제의 오른발을 타고 빙판 같은 지면으로 되돌아갔다.
“이 한기도 내 마음속의 차가움에는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군. 그 정도 한기가 어찌 나의 육신과 정신을 얼릴 수 있겠는가?”
말을 마친 한제는 이어서 천천히 왼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닥쳐오다가도 그로부터 3척 정도 떨어진 곳에서 흩어져 사라져 버리곤 했다.
한제는 한 걸음씩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고 그때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빙판 같은 지면에는 작은 구덩이가 남았다. 한제는 그렇게 산꼭대기를 향해 전진했다.
이곳의 한기를 이겨낸 것은 그의 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억눌렀던 마음속 한기 덕분이었다. 이 서늘함은 불굴의 의지를 품은 채 온몸을 맴돌았고 덕분에 세상 그 어떤 것도 한제를 얼려버릴 수는 없을 듯했다.
그의 눈은 냉랭했고 몸에서 발산되는 기운도 서늘했다. 마치 한제라는 인간 자체가 영겁의 세월에도 녹아내리지 않을 얼음처럼 보였다.
★ ★ ★
산꼭대기의 보탑 안, 천운자는 멀지 않은 곳에서 한 걸음씩 다가오는 한제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본래 그는 한제가 기껏해야 쇄신의 땅에서 열 걸음 정도 걷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가 영변기 중기 수준 수련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만 걷는다 해도 한제에게 금지된 술법을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한데 지금 한제는 벌써 스물한 번째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 정도라면 심지어 문정기 수준의 수련자라 해도 몸이 얼어붙어 부서질 지경이었다.
천운자는 놀라운 자제력에도 불구하고 놀란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었다.
“결백의 경지라⋯⋯. 과연 놀랍군. 수선(修仙)과 수진(修眞), 수도(修道), 저자는 이미 깨달음을 얻은 상태였던 것인가? 그 마음의 서늘함은 세상 어느 것으로도 얼릴 수 없을 정도로군. 이한제, 어쩌면 나도 네 녀석을 얕잡아본 모양이구나. 1만 년 넘게 수련을 이어간다면 쇄열삼경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 ★
스물한 번째 걸음을 내딛은 한제는 우뚝 멈췄다. 그의 온몸은 이미 얼음처럼 차가워진 상태였다.
“나의 경지는 생사윤회 아래 얻은 깨달음으로 얻어낸 무정의 도다.”
불현 듯 그의 뒤로 펼쳐진 하늘과 땅의 색이 변하더니 끝없이 내리던 눈발이 보이지 않은 힘에 의해 휘날리다가 미친 듯이 밀려났다. 그러더니 거대한 그림 족자 하나가 돌연 그의 뒤쪽 상공에 나타났다.
족자 위에 그려진 것은 산수화였지만 색채라고는 없는 흑백의 그림이었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발을 들어 스물두 번째 걸음을 내딛었다.
쾅!
그 걸음에 온 산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동시에 내딛어진 그의 발을 중심으로 얼음에는 수많은 균열이 일었다. 이를 통해 한제의 한 걸음에 얼마나 강한 힘이 실려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 ★ ★
천운자는 보탑 안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당시 손운은 영변기 후기의 수준으로 스물여섯 걸음을 걸었지. 이한제, 너는 대체 얼마나 걸을 셈이냐?”
★ ★ ★
한제는 고개를 들고 잠시 보탑을 바라보다가 다시 발을 들어 또 앞으로 나아갔다.
쾅! 쾅! 쾅! 쾅!
이번에는 한 걸음이 아니라 순식간에 네 걸음을 나아갔다.
그 첫 번째 걸음을 내딛었을 때 두 눈은 서늘한 눈빛을 번득였고 두 번째 걸음을 내딛었을 때에는 온몸이 서리처럼 서늘해졌다. 세 번째 걸음에는 뒤로 펼쳐진 생사윤회의 그림이 도르르 말려들었다가 줄어들어 한제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네 번째 걸음을 내딛었을 때 한제의 전신에서 풍기는 기운은 강력해졌고 그의 마음에 자리한 서늘함이 온몸을 가득 채워 경지와 융합됐다. 이를 통해 형성된 기이한 힘이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 그리고…
쾅!
다섯 번째 걸음을 내딛었다.
스물일곱 걸음!
이때 한제는 번개와 같은 눈빛으로 산꼭대기의 보탑을 주시했다.
주위의 얼음 층에는 무수히 많은 균열이 일어 있었으나 붕괴하기는커녕 눈 깜짝할 사이 감쪽같이 본래의 상태로 회복됐다.
한제의 머리 위에서 맴돌던 생사윤회의 축은 돌연 한 번 움직이더니 한제의 정수리를 통해 그의 원신에 녹아들었다. 그 순간, 한제의 체내에서 놀랄 만한 기운이 폭발되면서 그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휘날렸고 눈꽃들이 미친 듯이 회전하면서 밀려났다.
경지!
화신기의 깨달음은 초기, 중기, 후기 세 단계의 과정을 거친 뒤 마지막으로 실질화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때 수준을 갖춘 상태로 충분한 양의 선옥을 가지고 있다면 탈속화 과정을 거쳐 일반적인 육체를 버리고 선체(仙體)를 얻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영변기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경지는 영변기 수련자들이 얻은 깨달음을 실질화한 존재로 이는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법이었다.
한제가 얻은 생사윤회의 도는 매우 드문 종류의 깨달음으로 이런 도는 실질화시키기도 더욱 어려웠다. 영변기에 들어선 이후 한제는 경지의 실질화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됐지만 결국 완벽히 터득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문정기에 이르기란 불가능할 것이었다.
한데 지금 이 순간, 이 쇄신의 땅에서 한제는 스스로에게 조금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 결백의 도에 경지를 융합함으로써 이전까지 걸었던 스물두 번의 걸음에 다섯 걸음을 더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이 다섯 걸음은 도를 향한 걸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