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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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요군의 지성(地城).
이 성이 새롭게 건설된 후 동쪽 끝에는 아주 부귀하고 영화로워 보이는 관사가 세워졌다. 관사에 걸린 편액에는 다음과 같은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지부수부(地副帥府)
관사 안의 하인은 셀 수도 없이 많았고 군데군데 석가산이 세워져 있어 상당히 고아했다.
그 석가산에서 부수복을 입은 어느 사내 하나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로는 요장의 갑옷을 입은 세 사람이 꼼짝도 않고 공손하게 서 있었다.
“이 형, 대체 어디에 있는 거요⋯⋯?”
사내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승선과(升仙果)
별채 안에서 10년 동안 꼼짝도 않고 있던 한제는 마치 동상이 된 것만 같았다.
체내의 원신 고치에서 진행되던 배양이 느릿하게 끝을 맺으면서 놀라운 기운이 안에서 천천히 발산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치가 된 원신에 돌연 한 줄기 균열이 일더니 살짝 벌어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또 하나의 균열이 생겨났고 점점 많은 균열이 나타나 고치를 갈랐다. 결국 머지않아 고치는 완전히 부서졌다. 그 순간, 그 안에서 회색 빛이 줄기줄기 발산되었고 부서진 고치 안에서는 새롭게 태어난 원신이 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원신은 실체화되어 더 이상 투명하지 않아 육신과 큰 차이가 없었다. 문정의 결정이 원신 안에서 느릿하게 원기를 피워 올렸다.
문정기 수련자의 원신은 곧 경지였다.
이것이 진정으로 경지가 체내에 들어간 모습이었다.
순간 한제의 육신이 바르르 떨리더니 10년 만에 처음으로 두 눈을 떴다.
“문정!”
한제가 작게 외쳤다. 그의 두 눈에서 밝은 빛이 번득였다. 7백여 년의 수련을 거쳐 마침내 문정기에 이른 것이다. 문정기 수련자라면 여느 6성 수련국에서든 최강의 존재요, 7성 수련국에서도 상당한 강자의 대접을 받는다.
한편 한제는 지난 10년의 좌선을 통해 또 다른 수확을 얻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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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요군 원고 시대 전장 안, 검은 탑 최고층.
갑옷에서 두 갈래의 어스름한 빛이 번득였다.
“이제 막 문정에 올라 체내의 원기가 완전히 융합되지는 못했군. 49일 정도 후면 완전히 안정되겠지. 10년도 기다렸는데 그 정도를 못 기다릴까.”
투구 안에서 빛이 번득였고 그 순간 탑 밖의 하늘이 울리더니 거대한 검은색 회오리 하나가 하늘에서 나타났다. 이 회오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흡수할 듯 빠르게 회전하자 하늘의 기색이 변했고 이에 전장 안의 수많은 혼백들은 덜덜 떨기 시작했다.
탑 안의 갑옷은 전보다 더욱 밝아진 빛을 번득이며 사나운 신식을 내뿜어 전장을 뒤덮었다. 뒤이어 전장의 바닥에 깔린 모래와 진흙 중 몇몇 곳이 느슨해지면서 검은색 뼈들이 튀어나와 하늘로 솟아올랐다. 이 얇고 작은 뼈들은 허공에서 빠르게 합쳐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 검은색의 팔뼈가 되었다.
비쩍 마른 검은 팔은 천천히 탑 상공으로 올라가더니 회오리 아래에서 꼼짝도 않고 머물렀다.
“내가 축적한 힘은 많지 않으니 헛되이 낭비할 수는 없지. 게다가 저자가 있는 곳은 내가 가기를 꺼려하는 장소 중 하나.”
갑옷 안에서 어스름한 빛이 번득이자 갑옷의 팔 부분이 곧장 떨어져 나가며 마염(魔焰)을 발산하더니 탑 밖으로 날아가 비쩍 마른 팔뼈를 향해 돌진했다.
쾅!
팔뼈와 갑옷의 팔이 충돌한 순간, 둘은 서로 긴밀히 합쳐지면서 흘러넘칠 듯한 마력을 응집시켰다.
“가라! 가서 원기를 가져와!”
팔은 부르르 떨더니 곧장 하늘의 회오리 속으로 날아가 이내 사라졌다.
“원기는 문정기 수련자의 체내에만 존재하지. 부상 때문에 먼 거리에서는 원신에 융합된 수련자의 원기를 빼낼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군.”
팔 한쪽이 사라진 갑옷 안에서 번득이던 어스름한 빛은 점점 어두워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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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는 깊은 숨을 토해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10년 만에 움직이니 뼈가 삐걱거리는 듯했으나 잠시뿐이었다.
한데 이리저리 몸을 풀던 한제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저택 상공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검은 회오리 하나가 하늘에 나타나 있었다.
“저건⋯⋯?”
한제의 눈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택에 머무는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회오리였다. 게다가 저 기이한 기운을 풍기는 회오리가 나타난 시간도 너무 교묘했다.
한제는 그 회오리가 나타난 순간 곧장 저택의 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허나 그와 때를 같이해 회오리가 더욱 거대해지면서 속도를 높였다.
한제는 곧장 저물대에서 저택의 영패를 꺼내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그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그때, 저택 상공의 회오리에서 갑옷에 덮인 검은 팔 하나가 쑥 빠져나와 한제가 있는 곳을 움켜쥐었다. 이에 한제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순간이동에 성공했다.
시커먼 팔은 움찔하더니 회오리로 돌아갔고 이내 회오리가 하늘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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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군 안, 끝없이 이어진 거대한 평원의 상공이 돌연 일렁이더니 그 안에서 한제가 걸어 나왔다.
그는 문정기에 이르자마자 맞닥뜨린 상황에 표정이 좋지 않았다. 더구나 그 검은 팔 때문에 순간이동이 영향을 받은 것인지, 자신이 가려던 곳이 아닌 전혀 낯선 곳으로 이동이 돼버렸다.
그때, 하늘에 돌연 검은 점 하나가 나타났다. 그 점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회전하며 삽시간에 거대한 회오리가 되었다.
한제는 어두운 얼굴로 그 회오리를 주시했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을 작정이었다. 회오리 안에 있는 그 팔이 대체 어떤 신통력을 가진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회오리에서 갑옷을 두른 팔이 나타나 곧장 한제 쪽을 움켜쥐었다.
한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오른손을 들었다. 문정기에 이른 뒤 처음으로 적멸지를 사용한 그 순간, 이전보다 열 배는 더 강해진 검은 빛 한 줄기가 나타났다. 그 검은 빛 안에는 고리 형태의 파문도 나타나 있었다.
쉭!
검은 빛은 마치 번개처럼 날아가 팔뼈에 꽂혔다. 그 순간, 뼈를 두르고 있는 갑옷에서 놀랄 만한 마기가 발산되었다. 거의 실체화되었을 정도로 강력한 마기는 적멸지의 위력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하지만 이 마기는 한제의 적멸지를 얕잡아본 듯했다. 이전의 한제였다면 모를까, 문정기 수준의 한제가 발휘한 적멸지는 비록 그 기세가 마기에 가로막혔을지언정 그 안에 깃든 적멸의 기운은 살아남았다.
쿠오오!
적멸의 기운에 충돌한 순간, 마기는 그 기운에 흡수되듯 빠르게 흩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제는 적멸지를 발휘하자마자 형태 없는 힘이 전방에서 훅 끼쳐오는 것을 느꼈다. 미풍 같았지만 그것이 불어닥친 순간 한제의 안색은 크게 변했다. 자신이 방금 만들어낸 문정기의 원신이 그 바람에 실린 무형의 힘을 따라 가버릴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심지어 그의 심신은 그 느낌에 조금의 반항도 하지 못했다. 그의 몸에서 천천히 떠오른 원신은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았다.
한제의 눈빛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허나 그는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는 살기뿐이었다. 하늘을 거역했고 하늘을 죽이려 들었던 그가 이 정도 신통력에 겁을 먹을 리가 만무했다.
한제가 품은 살의와 살심이 한데 섞이면서 짙은 살기가 피어났다.
“하아!”
낮은 기합과 함께 하늘을 뒤덮을 듯한 살육의 기운이 한제의 눈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살기 아래, 반 정도 육신에서 빠져나왔던 원신이 몸으로 돌아왔다. 원신이 완벽하게 돌아온 순간,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팔을 노려보았다.
“네가 누구든 날 건드리지 마라.”
한제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는 셀 수 없이 많은 나이술을 발휘하여 빠르게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상대하기 꺼려지는 것은 팔이 아니라 그 팔을 두른 갑옷이었다. 방금의 충돌로 갑옷의 기이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제 막 문정기에 올라 원신도 완전히 결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는 않았다.
한제가 떠난 순간, 원고 시대의 전장에 자리한 탑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울렸다.
“허! 나의 천마풍(天魔風)에 살심으로 저항하다니, 과연 거역자답군. 허나 너의 원기는 결국 내가 가지게 될 것이다. 고요술을 수련한 사람은 원기를 형성할 수 없지. 지금껏 이 요령의 땅에서 문정기에 이르렀던 거의 모든 수련자는 문정기에 이른 순간 나에게 원기를 흡수당했다. 너 역시 예외는 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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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술을 통해 이동한 한제는 어느 황량한 땅에 모습을 드러냈다. 산도 없고 물도 없으며 곳곳에 마른 풀과 썩은 나무뿐인 땅이었지만 한제의 눈은 저 멀리서 금제의 존재를 찾아냈다.
“저 팔은 대체 뭐지?”
한제는 생각에 잠긴 채 그 금제 쪽으로 향했다.
허나 금제가 있는 곳도 쩍쩍 갈라진 황량한 땅이었을 뿐 별다른 구석은 없었다. 금제 또한 특이할 게 없었으나, 그 수는 매우 많았다. 1천 개는 족히 넘을 듯한 금제들은 서로 이어져 있어 하나를 건드리면 전부를 발동시키게 되어 있었다. 조악하지만 효과는 탁월한 배치 방법이었다. 심지어 요장이라 해도 이 금제 안으로 들어가려면 제법 곤욕을 겪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