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54
검을 휘두른 순간, 하늘과 땅은 어둠에 빠져들었다. 선위도 뇌수도 삽시간에 사라져버렸다. 세상에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선검뿐인 것처럼…
그 검은 마치 천지를 개벽시킨 것 같기도 세상을 혼돈으로부터 갈라낸 것 같기도 했다. 흘러나오는 검기도 휘몰아치는 선력도 없었지만 그 검을 본 모든 사람은 자신의 영혼이 뒤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장 먼저 그 검의 위력을 마주한 것은 환무정이었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사람처럼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건… 규칙!”
마치 세상이 찢겨나가는 듯한 소리가 그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환봉신도 찬 숨을 들이마셨다.
선검이 휘둘러진 순간, 하늘을 뒤덮을 듯한 살기가 미친 듯이 확산되면서 그의 두 눈을 갈기갈기 찢고 심신에 낙인을 찍었다.
환봉신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이게 무슨⋯⋯?”
환봉신의 심신이 와들와들 떨렸다. 한 자루 예리한 검이 미간을 뚫고 들어와 정수리를 통해 나간 것만 같은 충격이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물러났다. 문정기 후기인 그의 수준으로는 검의 규칙을 파악할 수가 없었지만 그 검이 휘둘러진 순간 검이 모종의 천도를 품고 있다는 것은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허나 그보다 더 크고 짙게 느껴지는 것은 하늘을 찢어놓을 듯한 날카로움이었다.
쿵쾅, 쿵쾅!
환봉신은 자신의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 하늘과 땅이 모두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 무렵, 모든 환가 사람들의 눈에 충격이 드리웠다. 단 한 번의 검식에 그들은 온 세상이 베어지는 느낌을 받았고 식은땀으로 옷이 흠뻑 적었다.
그들의 수준으로는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어떻게 상대가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이렇게 강력한 충격을 안기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죽음의 공포가 삽시간에 퍼져나가는 것만을 느꼈을 뿐이다.
한편, 먼 곳에서 신식으로 상황을 살피던 천규자 또한 천가의 밀실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규칙! 저 검 안에는 규칙이 있어! 수련의 두 번째 단계에서 추구하는 것이 바로 저 규칙이 아니던가! 첫 번째 단계에서 깨달은 천도를 두 번째 단계에서는 규칙의 힘으로 전환해야 하는 법! 저자가 뇌선전의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저런 검을 가지고 있을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허가에서도 한 백발노인이 신식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중이었다. 본래 환무정과 협의를 한 허가에서도 그들을 도우려 했지만 지금 이 순간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저자의 검식, 엄청나군. 내게 두려운 정도는 아니지만 감히 환가를 도발하고 나서는 것을 보면 과연 배경이 든든한 모양이야! 우리 가문은 이 일에서 발을 빼야겠군.”
한편, 그 순간, 환가의 진은 어떤 충돌도 없었는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검을 거둔 한제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그 눈빛만큼은 형형했다.
참라결은 체내의 원신과 밀접하게 결합된 원기를 필요로 했다. 문정기 수련자의 원기는 원신과 융합되어 있어 분리가 불가능했지만 참라결을 발휘할 때는 일부를 분리해낼 수 있었다. 문정기 수련자의 원기는 고정적이라 너무 많은 양을 잃으면 수준이 떨어지게 되지만 한제는 주일이 준 문정의 결정 덕분에 일반적인 문정기 수련자에 비해 원기가 훨씬 많았다.
환가에는 적막이 맴돌았다. 환무정은 전보다 더욱 어두워진 얼굴로 한제를 올려다보며 혀를 찼다.
“내가 너를 잘못 보았구나. 문정기 수준으로 규칙의 검식까지 가지고 있을 줄이야… 허나 수련의 1단계와 2단계의 차이는 엄청나다. 네가 두 번째 단계에 이르러 그 검식을 발휘한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소용없다! 넌 우리 환가에 검을 들었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 나와라, 조옥(祖玉)!”
환무정이 크게 외쳤다. 그러자 환가의 저택에서 한 줄기의 엄청난 힘이 흘러나와 선기를 품은 바람처럼 상서로운 기운을 풍기며 환가 전체를 뒤덮었다.
그러더니 저 멀리 환가의 사당에서 금색 옥패 하나가 천천히 솟아올랐다. 상서로운 힘은 그 옥패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옥패가 나타난 순간, 마치 천환성에서 환가만 다른 세상으로 떨어져 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환무정은 한제를 노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최대한 직접 나서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제의 검기에 깊은 두려움을 느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천규자를 먼저 나서게 한 것도 환가의 저택 위에 진을 배치한 것도 그 검기를 소모하게 만들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는 천규자가 한제와 싸우지도 않고 내빼리라고는, 한제가 검기를 이용하기도 전에 진을 무너뜨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이에 그는 하는 수 없이 가보인 복택(福澤) 옥패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이 옥패 안에는 뇌의 선계 사람이었던 환가의 조상이 남겨놓은 선법(仙法)이 들어있었다. 환가는 이 옥패와 조상이 남겨준 선보 덕분에 지금과 같은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조상이 남겨준 보물은 환무상과 함께 수천 년 전에 사라졌지. 그 선보만 남아 있었다면 복택 옥패를 사용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텐데…’
환무정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옥패에서 흘러나오는 엄청난 힘은 마치 봄바람처럼 살랑 불어왔지만 그 바람에는 짙은 광채가 번득이고 있었다. 순간, 옥패는 마치 녹아내리듯 흘러내리다가 인간의 형상으로 변해갔다. 비록 그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묵직한 위엄은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환가의 선인이 남긴 옥패, 과연 위력이 엄청나군. 소문에 따르면 환가의 조상인 그 선인의 수준은 정열기 수준에 상당했다지. 저 뇌선전의 사자가 저 옥패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한데 뭔가 이상한 걸? 환무정은 어째서 그 선보가 아니라 저 옥패를 사용하는 거지?”
천규자는 신식으로 끊임없이 환가의 상황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산마(散魔)의 등장
한편, 허가의 저택 안에 있는 노인은 비릿하게 웃었다.
“흐흐흐. 아무래도 선보는 실종된 환무상이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군. 환가의 조상은 그런 보물을 물려줄 때만 해도 그 보물 때문에 수련의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자신의 자손 하나가 죽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겠지.”
그 무렵, 환봉신은 복택 옥패가 나타난 순간 한제를 뚫어져라 주시했다. 허나 한제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옥패의 신통력을 발휘하려는 환무정을 보며 환봉신은 결심한 듯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선조 어르신, 이 일에 우리 환가가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환가의 가주로서 환가를 이끌고 이 일에서 물러나겠습니다. 환미를 보호하시겠다면 그것은 사적인 일이니 가문 전체를 끌어들이지는 마십시오!”
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돌려 한제를 바라보며 포권을 했다.
“도우, 나는 환가의 가주 환봉신이라 하네. 방금 말했던 것과 같이 이 일은 자네와 어르신, 그리고 환미… 아니, 류미 사이의 사적인 일이니 우리 환가는 끼어들지 않겠네. 도우가 잘 가려서 판단해주길 바라네!”
환가의 직계 자손들은 말없이 환봉신 곁으로 다가갔다.
음산하게 웃던 환무정은 냉랭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보며 느릿하게 말했다.
“버러지 같은 것들, 너희가 선조를 버리려 하느냐? 좋다, 지금부터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지켜보거라!”
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들어 한제를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외쳤다.
“복택 옥패, 저자를 죽여라!”
그러자 옥패에서 생겨난 인영은 한제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인영으로부터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선력이 폭발했다. 짙은 선력은 천환성의 영력을 압도하면서 천환성 곳곳에서 뭔가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위 꼭두각시와 뇌수가 몸을 훌쩍 날려 한제의 곁으로 다가왔다.
한제는 천천히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인영을 바라보았다. 그 인영은 이목구비가 점점 또렷해졌고 짙은 선력을 풍기는 것이 진정한 선인과 같은 느낌까지 나기 시작했다. 두 눈은 세상 모든 것들을 미물로 여기는 듯 고고했다. 온몸에서는 선력이 흘러넘쳤고 묵직한 위엄도 느껴졌다. 심지어 주변에서는 선력으로 이루어진 소리도 흘러나왔다.
“검기를 제외하고 내게 대적할 수 있는 재간이 또 뭐가 있나 보자!”
환무정이 냉소하며 말했다.
류미는 고개를 들어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복잡했고 저물대를 만지작거리던 손마저도 그냥 내려놓았다.
한편, 한제의 눈빛은 덤덤했다. 그가 홀로 환가를 멸족하겠다고 찾아온 것은 믿을 만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세상만사 원인과 결과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없다. 오늘 원인이 있다면 내일은 결과가 나오는 법. 이 인과의 굴레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먼지는 먼지로 흙은 흙으로 돌아가게 해 일체의 윤회를 평평하게 다듬는 것뿐.”
저물대 안의 원영에 생각이 미친 한제는 마음 한 구석이 찌르르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느릿하게 두 눈을 감았다.
“이 전쟁을 끝내고 자유를 되찾게 해주마!”
날카로운 목소리가 한제의 원신에서 터져 나왔다.
그 날카로운 외침에는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마기가 어려 있었다. 이 마기는 너무나 짙어 곳곳에 마염(魔焰)을 일으켰고 한제를 향해 다가오는 인영이 풍기는 선력에 얽혀들었다.
마염 속 한제의 정수리에서는 짙은 검은색 연기가 피어올라 뿔 달린 산마(散魔)가 되었고 산마는 다시 한 번 날카로운 소리를 내질렀다.
“캬오오!”
그 목소리는 마치 예리한 송곳처럼 세상 곳곳을 뚫고 들어갔다.
산마(散魔). 한제가 두 번째 원신으로 삼으려 한 존재. 허나 지난 1백 년의 제련을 통해 통제의 낙인을 찍었음에도 아직 진정한 제련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낙인이 찍힌 뒤 산마는 신식이 잠들어 힘도 대폭 떨어진 채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통제하기는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산마가 나타난 순간, 환무정의 얼굴은 처음으로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멍하니 산마를 바라보다가 쓰게 웃었다.
“저것이 저자의 필살기였구나!”
환봉신은 찬 숨을 들이마시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데 안도했다. 그의 뒤에 선 환가의 직계 자손들도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편, 천규자는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그토록 수준이 높은 천규자조차도 산마를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을 정도였다.
“정말 끔찍하군. 대체 저건 무슨 마혼이란 말인가! 뇌수, 꼭두각시, 규칙의 검식, 게다가 저 마혼까지! 저자는 분명 뇌선전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인물일 것이다!”
그 무렵, 허가의 노인 역시 신식이 약간 격동했다.
“산마! 고마(古魔) 좌하의 산마로군.”
그때, 산마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껄껄 웃더니 한제의 정수리로부터 튀어나가 허공에 떠올랐다.
“크하하! 이 애송이야, 약속대로 너를 도와주겠다! 허나 일을 마친 뒤에도 내 몸의 낙인을 풀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네놈을 사지로 몰아넣고 말겠다!”
말을 마친 산마는 거대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았다.
한제는 표정의 변화 없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만 잘 마치면 바로 놓아주겠다.”
“좋아!”
산마는 키득거리더니 몸을 훌쩍 날려 짙은 안개가 되더니 일곱 갈래로 나뉘어 한제의 얼굴에 있는 일곱 구멍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한제의 몸에서 짙은 마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제는 저물대에서 마갑을 꺼내 착용했다. 그의 표정은 고통으로 약간 일그러졌지만 눈빛만큼은 더욱 서늘해졌다. 그 눈에서는 검은 연기가 은은하게 비쳤다.
이것이 한제가 혼자서 여기까지 오기로 결심한 이유였다. 사실 선위 꼭두각시가 있다 해도 환무정이 보호하는 류미를 죽이는 것은 결코 불가능했다. 게다가 환가는 아주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가문이니 분명 특별한 수단이 있을 터였다. 그렇다고 류미를 살려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아직 제대로 제련하지 못한 산마를 포기하는 대가로 자신을 돕게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산마의 체내에 찍힌 낙인은 고요 배이라의 도움 아래 남긴 것이라 산마는 혼자서 이 낙인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낙인으로 봉인된 상태에서 산마가 방출할 수 있는 힘은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한제가 그를 완전히 깨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히 깨어난 이상 산마는 더 이상 한제의 통제에 따르지 않아도 되었지만 워낙 강력한 낙인 때문에 한제의 원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벗어난다 해도 한제의 원신에 그 뿌리를 남겨둬야만 했다. 한제가 풀어주지 않는 이상 산마는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산마는 지난 수백 년 동안 고요 배이라의 신통력을 제거해왔기 때문에 한제로부터의 자유만 되찾는다면 그는 완벽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한제의 육신에 대한 욕심은 접은 상태였다. 낙인이 찍혀 있는 이상 한제의 육신을 가져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산마가 정수리 안에 완전히 녹아든 순간, 한제의 눈에서 마염이 들끓었다. 그는 선인의 허상을 향해 달려들며 어떤 신통력도 발휘하지 않은 채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한 마리 흑룡이 선인의 허상을 향해 날아들었다.
현재 상태는 엄밀히 말하자면 산마가 한제의 몸을 통제하고 있는 상태였다. 온몸의 선력은 순간 마기로 전환되었는데 그 마기에는 심지어 산마의 마혼까지 녹아들었다. 때문에 가벼운 주먹질에도 산마의 힘이 녹아 있었고 여기에 마갑의 위력까지 더해지자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선인의 허상은 결인을 그린 오른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주위에 흘러넘치는 듯했던 선력이 곧장 응집되어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이 소용돌이는 한제의 주먹이 만들어낸 흑룡을 감쌌다.
이어서 선인의 허상은 두 팔을 펼쳐 두 손으로 각기 다른 결인을 그렸다.
우르릉!
순간, 천환성 전체가 진동하는 듯하더니 끝없는 영기가 천환성 사방에서 미친 듯이 몰려들어 삽시간에 선력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더니 선인이 만들어낸 소용돌이를 압박했다. 결국 온 천환성의 모든 영력은 선력으로 전환되어 선인 허상의 손바닥에서 유백색의 안개 덩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