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33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함께 수많은 일을 겪었다. 비록 절친한 친구가 됐다고는 할 수 없더라도 우여곡절을 함께 겪으면서 정이 쌓인 것은 분명했다.
더구나 이원이 아니었다면 혈조의 손에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원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
공격
한제는 심호흡을 한 후 몸을 천천히 뒤로 물리며 심신을 펼쳤다. 그리고 세상에 녹아들었을 당시의 감각을 떠올렸다. 걸음마다 하나의 파문이 그의 발아래에서 나타났다.
허나 수십 보 뒤로 물러났는데도 세상에 녹아드는 듯한 느낌은 나타나지 않았다.
선계의 문은 이미 작아질 대로 작아져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귓가에서는 수련자들의 신음과 비명이 왕왕 울렸다.
한제는 조급함을 억누르며 평정심을 되찾으려 애썼다. 다른 모든 일에서 관심을 접고 오직 스스로를 침착하게 만드는 데에만 집중했다.
결국 한 걸음 한 걸음 물러남에 따라 한제의 눈빛은 점점 밝아졌고 그는 순간 사방의 공간과 하나로 녹아들면서 점점 밀접해져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당시에 느꼈던, 세상과 떼려야 뗄 수 없을 것처럼 밀접해진 느낌이 다시 찾아왔다. 마치 자신이 곧 이 세상이 된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한제는 이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그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수많은 파문이 그의 발아래에서 다시 나타나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한제의 몸은 점차 허공으로 녹아드는 듯했다. 그는 한손으로 이원을 잡아챘다.
한제의 손을 통해 전해지는 강력한 힘을 느낀 이원은 엄청난 바람에 휘말린 듯 순식간에 눈앞이 어지러워져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온몸이 이 세상과 세월에 녹아들어 끊임없이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제는 이원의 팔을 붙잡은 채 사라졌다. 이 허공에 완전히 녹아든 상태에 접어든 셈이었다.
이 무렵, 하얀 안개에 뒤덮인 양의의 수련자 다섯과 열 명이 넘는 음의의 수련자 그리고 더 많은 문정기 수준 수련자가 내뿜은 공격에도 불구하고 백발 괴인은 광기 어린 웃음을 흘렸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주문을 외웠고 그러자 그의 몸에서 한 층의 붉은 광막이 나타났다.
그 광막은 수련자들의 모든 신통술과 법보를 막아냈다.
땡강!
신공호의 비검은 그 광막과 충돌한 순간 진동하면서 마디마디 부러졌다.
“쿨럭!”
그 반동에 신공호는 피를 토해내며 미친 듯이 뒤로 밀려났다.
앞을 보니 전공열과 당언풍, 그리고 다른 양의의 수련자 둘도 같은 상황이었다.
음의의 수련자들은 원신이 바르르 진동했고 육신도 엄청난 힘에 떠밀렸다.
빛의 장막 안에서 백발의 괴인은 비릿한 웃음을 터뜨리며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것이야말로 전투라고 할 수 있지. 허나 네놈들은 선계 대군에 비하면 너무도 약하구나. 터무니없이 약하다! 극의 경계를 사용할 필요도 없는 녀석들이야!”
말을 마친 그가 두 팔을 쫙 펼치자 빛의 장막이 미친 듯이 확대되면서 눈 깜짝할 사이 하얀 안개를 밀어냈다.
수련자들은 빠르게 뒤로 물러났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이들은 빛의 장막에 닿은 순간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빠른 속도로 오그라들더니 목내이 (木乃伊, 미라)로 변해버렸다. 또한, 원신은 원력으로 변해 광막에 흡수됐다.
하얀 안개 속의 수련자들은 기겁해 도망치기에 바빴다.
“크하하하! 그래, 도망쳐보아라!”
백발의 괴인은 광소하며 몸을 훌쩍 날리더니 어느 음의의 수련자 뒤에 나타나 그의 육신을 부숴버렸다.
한데 그 수련자의 원신을 삼키려던 순간, 괴인의 눈빛이 급변하더니 맹렬히 몸을 돌렸다.
“세상과의 융합!”
백발 괴인은 원력이 된 수련자의 원신을 툭 입에 털어넣고는 몸을 훌쩍 날려 세상 속에 녹아들었다. 그의 발아래에서 파문이 일어 사방으로 퍼지는가 싶더니 이내 그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이 술법을 발휘할 수 있는 자는 당시 선계에도 얼마 되지 않았어! 허나 저 녀석은 아직 그 술법을 완전히 익히지는 못한 상태로군!’
괴인의 모습은 선계의 대문 1천 척 앞에 나타났다. 그는 눈을 광기로 번득거리며 허공을 꽉 움켜쥐었다.
“나와!”
순간, 다섯 갈래의 균열이 허공에 나타났다. 너무도 깊은 그 균열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온 세상을 갈가리 찢어놓을 듯했다.
선력이나 원력과는 전혀 다른 힘이 백발 괴인의 체내에서 폭발하듯 발산되면서 다섯 갈래의 균열을 따라 세상으로 돌진했다.
순간, 사방의 모든 수련자들은 하늘이 무너지고 온 세상이 격렬하게 진동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신공호와 그 곁에 있던 전공열의 안색은 창백했다. 당언풍은 주먹을 바르쥐고 있었다.
세 사람은 각자의 눈빛에 숨겨진 짙은 두려움과 충격을 읽어낼 수 있었다.
“큭!”
그때, 미약한 신음이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선계의 대문으로부터 5백 척 떨어진 곳에서 한제가 나타났다. 그는 한손으로 이원을 잡고 있었다.
이원은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고 두 눈동자는 빛을 잃은 상태였다.
“쿨럭!”
이원은 대량의 피를 토해냈다. 한제의 신통술 아래에서도 백발 괴인의 힘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한제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이원의 몸을 원력으로 감싼 뒤 세차게 내던졌다. 이에 이원은 곧장 주먹만큼 작아진 선계의 대문을 향해 날아들었다.
“흥! 얕은 수를 쓰다니!”
백발 괴인은 앞으로 한 발 내딛더니 순식간에 그곳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한제는 서늘한 눈빛으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온몸의 원력을 폭발시켰다.
“폭발!”
엄청난 원력은 소용돌이를 이루었고 한제의 원신은 천둥번개의 위엄을 발산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전광이 발산돼 원력의 소용돌이 안으로 곧장 녹아들었다.
콰르릉!
거대한 소리와 함께 허공에 폭발이 일었고 수련자들은 찬 숨을 들이켰다.
그때, 한제를 발견한 신공호는 감격에 겨워했다. 곁에 있던 전공열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허목, 그러니까 한제를 발견한 당언풍은 미간을 살짝 구겼다.
한편, 한제가 만들어낸 원력의 소용돌이가 무너져 내림과 동시에 백발 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광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숨을 크게 들이마셔 그 원력의 소용돌이를 삼켜버렸다.
그 순간, 한제는 몸을 날려 이원을 뒤따르며 크게 외쳤다.
“이 형, 뇌정을 가동하시오!”
천둥 같은 목소리에 아직 멍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원은 무의식적으로 뇌정을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주먹만큼 작아진 선계의 대문에 닿았다. 한 줄기 밝은 빛이 번득이면서 이원을 감쌌고 이내 그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한제 역시 뇌정을 들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백발 괴인이 두 눈을 번득이면서 작게 외쳤다.
“닫혀라!”
그 한 마디에 선계의 대문은 곧장 무너져 내려 사라졌다.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순간, 한제는 뇌정을 쥔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순간이동을 하여 재빨리 달아났다. 괴인은 껄껄 웃으면서 한제를 뒤쫓았다.
“생각났다. 그 신중한 연기사로구나!”
백발 괴인은 엄청난 속도로 단박에 한제를 따라잡더니 그의 등을 세차게 후려쳤다.
“난 신중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극의 경계도 죽이지 못한 네놈이 이제 어떻게 이 상황에서 벗어날지 지켜볼 것이다!”
백발 괴인은 눈을 핏빛으로 번득이며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 순간, 한제의 상하좌우의 모든 퇴로가 막혀버렸다.
그때, 신공호가 기대감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주인님, 공격하십시오!”
전공열 역시 한제와 백발 괴인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속으로 외쳤다.
‘저자는 너무나 강해. 선배님과 비교할 때 누가 더 강할지 알 수가 없군!’
반면 당언풍은 속으로 냉소했다.
‘저 괴인은 우리 모두가 합심한 공격에도 꿈쩍하지 않았어. 허목 저자는 절대 이기지 못한다! 어차피 언젠가 내 손으로 처리할 생각이었으니, 할 일이 하나 줄어든 셈이군.’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제에게로 쏠렸다. 이는 한제가 방금 선계의 대문으로부터 5백 척 떨어진 곳에 나타났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가 이원을 선계 밖으로 내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원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곳을 빠져나가는 데 성공한 수련자가 된 것이다.
이에 한제는 모든 수련자들에게 집중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제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는 모든곳이 봉쇄됐음을 알아차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봉쇄였지만 온몸을 예리한 칼날이 압박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도 그 칼날과 같은 압박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이동도 할 수 없다니… 꼼짝없이 갇힌 셈이군.’
그때, 백발 괴인이 비릿하게 웃으며 달려들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 예리한 손톱에서 다섯 갈래의 균열이 나타나 한제에게로 돌진했다.
한제는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끼며 그 위기의 순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오른손을 앞으로 뻗은 뒤 빠르게 외쳤다.
“풍(風)!”
그 순간, 새카만 바람 한 줄기가 한제의 오른손에서 나타나더니 거의 순식간에 거대하게 불어났다. 이 엄청난 기세의 바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처럼 사방으로 미친 듯이 퍼져나갔다.
검은 바람 속에서 한제의 눈빛이 음산하고 어스름하게 빛났다. 그의 머리카락은 바람에 날려 휘날렸는데 그 모습은 선인이 아니라 마왕 같았다.
그의 눈빛은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던 백발 괴인에게 마치 예리한 검처럼 떨어졌다. 동시에 검은 바람이 불어와 한제 곁에서 한 마리 흑룡이 됐다.
허상으로 이루어진 흑룡은 약간 불안정해 보였으나, 백발 괴인을 향해 입을 쩍 벌린 채 달려들며 강한 바람을 내뿜었다. 만물의 생명을 꺼버릴 듯 강력한 바람이었다.
백발 괴인은 멈칫하더니 기이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물었다.
“호풍이로군! 네놈은 선제 백범과 어떤 관계인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