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72
“우웩! 저… 정열기!”
노인은 몸을 휙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수령체(水靈體)
구름이 날리고 물이 흐르는 듯 한제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면서 음파를 폭발시켰고 이에 상상을 초월하는 검은 폭풍이 사방을 휩쓸었다. 세 사람의 신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용 중 한 마리가 한제의 주먹과 충돌했다.
쾅!
폭발음과 함께 그 신식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붕괴했다.
그 신식이 흩어져 사라진 순간, 귀안성의 화려한 건물 중 동쪽 두 번째 방 에서는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던 보라색 옷차림의 중년 사내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진 얼굴로 피를 토해냈다. 두 눈은 경악으로 물들었고 심장은 세차게 두방망이질 쳤다.
“설마… 정열기란 말인가!”
그 순간, 그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딛더니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편,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마지막 신식을 바라보았다. 그 신식의 주인은 바로 일진자였다.
일진자의 신식은 잠시 움찔하다가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한제가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쥔 순간, 일진자의 신식은 엄청난 힘에 제압당한 듯 상대의 손에 쥐어진 채 그대로 으스러졌다.
그와 동시에 귀안성 화려한 건물의 동쪽 끝 방에서 붓으로 종이에 뭔가를 그리고 있던 백발노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 순간, 손에 쥐어져 있던 붓은 쩍 하고 갈라졌고 노인은 목구멍으로부터 울컥 솟아오르는 피를 억지로 삼켰다.
“크윽! 이런!”
외마디를 내지른 백의의 노인은 소매를 휘둘러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갔다.
한편, 귀안성 곳곳에서는 환호성이 일고 있었다. 금제로 이루어진 진법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에 수많은 수련자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제의 표정은 덤덤했다. 만약 그 세 사람이 얌전히 자신의 신식을 풀어주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그때, 세 갈래 빛이 도시에서 번쩍 하고 튀어나오더니 곧장 한제 앞에 세 사람의 모습을 드러냈다. 진도삼자였다.
백발이 성성한 백의의 노인 일진자 뒤로는 청의의 노인과 보라색 옷을 입은 중년 사내가 붙어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매우 씁쓸했다. 신식만 봤을 때는 분명 규열기 초기에 불과했던 상대였건만 너무도 손쉽게 자신들의 신식을 격파한 것이다.
이토록 쉽게 자신들을 제압할 정도라면 상대가 정열기 수준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대가 정열기 수준이라면 신식으로 도시를 살피는 것을 실례라고 지적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신식으로 포악하게 도시를 헤집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정도였다.
“이 도우, 실례했네. 이 일은 우리의 잘못⋯⋯.”
일진자가 쓰게 웃으며 포권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세 사람 모두 난감해하고 있었다. 천운성에도 유명세를 떨칠 만큼 대단한 진도삼자가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려 고개를 숙이고 있다니, 씁쓸한 상황이었다.
‘천운성과 그 부근 수련성을 통틀어도 정열기 수준 수련자는 드물지. 그들은 걸음만으로 수련성 하나를 벌벌 떨게 할 자들이야. 이한제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설마 천운자의 옛 제자인가?’
진도삼자는 의아한 눈길로 서로를 살폈다.
“이 도우,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는 마시게. 우리에게도 직책이 있어 그리 한 것뿐이니 부디 양해해주시게!”
청의의 노인이 포권을 하며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곁에 있는 중년 사내 역시 쓰게 웃으며 포권을 하더니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진도삼자의 명성도 아예 죽지는 않은 모양이군. 어느 누가 감히 정열기 수준 수련자와 맞붙으려 하겠어?’
세 사람의 진심에 담긴 말과 포권 자세에 한제는 약간 누그러진 표정으로 덤덤하게 말했다.
“먼저 결례를 저지른 건 제 쪽이니 이 일은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지요.”
세 사람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만약 한제가 이쯤에서 마무리하지 않는다면 세 사람으로서는 도망치는 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도우가 우리 귀안성에 온 것 역시 그 자옥액(紫玉液) 때문이겠지요. 자옥액의 경매일은 아직 며칠 남았는데 그동안 어디에서 머물 계획입니까? 혹시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면 초대를 하고 싶군요.”
일진자가 겸손하게 말했다.
보라색 옷의 중년 사내와 청의의 노인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세 사람은 매우 고고하고 도도했지만 정열기 수련자 앞에서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오히려 상대에게 최대한 가까워지고 싶었다.
“자옥액?”
한제는 어딘가 익숙한 그 이름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세 도우에게 신세 좀 지도록 하지요.”
일진자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신세라니요, 이 도우와 이렇게 알게 된 것도 다 인연인데… 하하! 안내해드리리다!”
말을 마친 그는 오른손으로 앞을 가리키며 웃었다.
몸을 돌리자 저 멀리 성문 쪽에서는 백미와 검은 안개로 변한 허이국이 멍하니 이쪽을 보고 있었다.
한제는 그들에게 가볍게 손짓을 했다.
잠시 망설이던 백미가 몸을 훌쩍 날리자 넋을 놓은 채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허이국이 얼른 뒤를 따랐다.
일진자는 백미를 보고 흠칫 놀랐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앞장서서 도시의 동쪽에 자리한 4층짜리 화려한 건물로 안내했다.
앞에는 둥그렇게 정원이 있었고 내부 곳곳에는 석가산이 세워져 있었으며, 작은 개울도 흘러 맑은 영기(靈氣)가 물씬 느껴졌다.
“이곳은 우리 세 사람이 귀안성에서 잠시 머무는 곳입니다. 이 도우, 편안하게 쓰시지요.”
일진자가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했다.
그제야 일진자를 비롯한 삼형제는 완전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때, 보라색 옷을 입은 중년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이 형, 일단 쉬시지요. 저희는 먹을 것을 좀 준비하겠습니다. 싸우면서 정이 든 사이이니 뭘 좀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눠야지요.”
아우의 말에 청의의 노인 역시 웃으며 말했다.
“셋째 말이 맞습니다. 오늘 이 형과 알게 된 것은 아주 감사한 일입니다!”
한제도 환하게 웃었다. 진심을 담은 환영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자옥액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흥미가 생겼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부탁 좀 하겠습니다.”
“이 도우는 참 겸손하군요.”
일진자는 포권을 한 뒤 두 사람과 함께 물러갔다.
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백미는 아무래도 불편했다. 천운자의 제자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수준이 이곳에서 가장 낮았기 때문이다.
곧이어 종들이 찾아와 두 사람에게 머물 곳을 안내해 주었다.
누각에는 방이 매우 많았다.
백미가 떠나자 허이국은 무의식적으로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한제의 냉랭한 눈길에 곧장 얼어붙었다.
한제가 택한 곳은 2층의 우아한 방이었다. 보라색 나무 탁자와 암적색 나무 책장이 있었고 벽에는 마음이 침착해지는 그림도 몇 폭 걸려 있었다.
용이 조각된 등은 산과 강이 수놓인 옅은 노란색 덮개로 덮여 있었고 그 덮개 덕분에 등에서 발하는 빛은 부드럽게 방 구석구석을 비추었다.
크지는 않았으나 한제는 이 방이 썩 마음에 들었다.
허이국은 곁에서 눈알을 굴리며 사방을 살피다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 방이 좋기는 뭐가 좋아! 하여간 저 녀석은 좀처럼 즐길 줄을 모른다니까. 나라면 여인들이 가득한 곳을 골라 더욱 편하게 지냈을 텐데…’
한제는 조용히 방안에 앉아 두 눈을 반쯤 감았다. 두 눈은 보라색 꽃 모양으로 조각된 창문을 보고 있는 듯했지만 사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백미의 거동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백미가 내게 원하는 것은 대체 뭘까? 아무 이유도 없이 나를 이곳까지 데려왔을 리 없어. 그리고 그의 몸에 있던 그 기이한 표식은⋯⋯?’
한제는 백미가 자신에게 내내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던 것을 떠올렸다.
‘허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했던 말이라고는 잡설뿐이었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 잡스러운 이야기들에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섞여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직접적으로 말할 수 없을 만큼 비밀스러운 이야기라는 건데… 백미, 무엇이 두려운 것이냐? 나? 아니면 천운자?’
한제는 뭔가 실마리를 찾은 것도 같았으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금제가 걸려 있어서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저 암시만 하는 것일 수도 있어.’
한제는 침묵한 채 백미에게 무슨 공법을 수련했느냐 물었을 때의 반응을 떠올렸다.
그 순간, 한제는 백미의 체내에 존재한 채 흐르던 음기가 드러낸 이상한 표식에 생각이 미쳤다.
‘백미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건 대체 뭐지?’
그때,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가 반쯤 감겼던 눈을 번쩍 뜨더니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일진자의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형, 음식과 술이 다 준비됐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넷이서 이야기를 좀 나누는 게 어떻습니까?”
한제가 방문을 열자 일진자가 포권을 하며 웃었다.
“도우, 어서 가십시다.”
한제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의 북쪽에는 정자가 하나 있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무척 아름다웠다. 봉황이 조각되어 있었고 옥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근처에는 진도 배치되어 있어 사방에 선기가 끊임없이 순환했다.
정자 옆으로는 작은 개울이 졸졸 흐르고 있었는데 그 물소리가 세상 모든 먼지와 때를 씻어낼 것만 같았다. 개울에서는 푸른 물고기 몇 마리가 물 위로 튀어 올랐다가 다시 물속으로 돌아갔다. 물결이 잔잔하게 일며 널리 퍼져나갔다.
그 정자 안에는 진도삼자의 다른 둘이 백옥으로 된 윤이 나는 탁자 앞에 앉아 있었고 그 곁에는 아름다운 소녀 한 명이 서 있었다.
한제와 일진자가 정자에 이르자 중년 사내와 노인이 이들을 반겼다.
“이 형, 이쪽으로…”
중년 사내가 손으로 한제를 안내했다.
한제는 정자를 슥 둘러본 후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소녀 역시 수련자였지만 수준은 원영기에 불과했다.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고 무척 순진해 보였다. 이런 느낌은 수련계에서는 보기 드물었다. 오직 수준 높은 수련자의 총애를 받고 있는 사람만이 이 잔혹한 수련계에서 그런 순진함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