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26
노운종이 여인을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람도 개구리나 물고기와 다르지 않지. 해서 하늘이 감옥이라는 것이네.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가려 하고 물고기가 물 밖으로 튀어 오르기를 욕망하듯 사람 역시 하늘을 뚫고 그 감옥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는가!”
이천매가 감탄한 듯 말했다.
“노 형의 답은 정말 독특하군요. 여태껏 수많은 이들에게 이 질문을 했지만 제 마음에 드는 답은 처음입니다.”
“칭찬이 과하시군.”
노운종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음 질문을 해보려 합니다.”
이천매은 일찍이 5급 성역의 노운종이 매우 똑똑하고 걸출한 인물이라는 소문을 들은 바 있었다.
“만약 내가 세 가지 질문에 만족스런 답을 준다면 내게는 뭘 해줄 텐가?”
노운종은 웃음을 머금은 채 물었다. 그러자 이천매 역시 가볍게 웃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노 형께 피리 연주를 들려드리지요.”
“이천매의 피리 연주를 들을 수 있다니, 좋군! 하하하!”
노운종은 유쾌하게 웃었으나 그로서는 이천매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하늘이란 무엇입니까?”
이천매는 노운종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노운종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첫 번째 질문 때보다 훨씬 긴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천매는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하늘이란⋯⋯ 길이다!”
2각 후, 노운종이 느릿하게 답했다.
“어째서입니까?”
이천매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노운종은 고개를 들고 우주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발아래에 길이 자리한 곳에는 하늘이 있지. 그러니 하늘이 길인 것이다. 길이 있기에 도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도는 길과 같으며 길은 곧 도다. 하늘은 길이자 방향이니 감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안내가 되어 주기도 하지.”
갈수록 밝아지던 이천매의 두 눈이 아까보다도 더욱 큰 감탄으로 빛났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헌데 노 형께서는 어딜 이리 급하게 가고 계셨습니까?”
노운종의 곁에 있던 노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이 도우, 세 번째 질문은 어찌 하지 않는 겁니까?”
이천매는 웃음을 머금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막라 대륙에 가는 길이었지. 어떤 일을 하나 파악하고 변명 거리를 하나 찾기 위해.”
노운종은 자신에게 세 번째 질문에 답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으나 아쉬움은 없었다.
“제가 동행해도 될까요?”
이천매가 묻자 노운종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준다면야 환영이지.”
비교할 수 없는
이제 일행이 된 노운종과 이천매는 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이동했다.
그들의 뒤를 따르던 노인은 기대가 어린 눈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종주님은 상처하신 뒤로 다시는 반려자를 맞지 않으셨다. 하지만 이천매는 종주님과 무척 잘 어울리는군. 만약 두 사람이 연을 맺는다면 종주는 앞으로 더 발전하실 것이 틀림없어. 우리 자도종의 이름도 운해 전역에 떨치게 되겠지!’
이천매는 파천종에서 나온 뒤 이렇게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 여태 마주친 사람 중 그녀와 이런 대화를 나눌 자격이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스승님이 칭찬하신 사람답군. 5급 성역 최고의 실력자인 이 사람에게 신종에서도 꽤나 관심을 두고 있다더니. 분명 보기 드문 사내고 나이에 비해 도에 대한 깨달음도 매우 깊어. 그 부분에 있어서는 수준이 더 높은 나조차도 이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지. 허나⋯⋯ 안타깝구나. 이런 사람도 두 번째 문제를 넘기지 못하다니.’
이천매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두 사람의 대화는 점차 옥패와 단약 제조법을 손에 넣은 신비의 수련자로 옮겨졌다.
‘이천매가 그자를 찾으려 한다면 일이 좀 골치 아파지겠군.’
그럼에도 노운종은 자신이 아는 모든 것과 의견을 그대로 전했다.
“그렇게 똑똑한 자라면 찾는 일이 쉽지는 않겠습니다.”
노운종의 이야기를 들은 이천매는 그 신비의 수련자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강한 결단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똑똑하고 강하기까지 하지. 내 평생 인정한 사람이 많지 않은데 그자는 그중 하나지.”
노운종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허나 그것은 그저 노 형의 분석일 뿐. 실제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지도 모르지요.”
이천매의 말에 노운종은 허탈한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예상이 맞았으면 좋겠군. 그런 자를 만난다면 삶에 그런 즐거움도 또 없을 테니까.”
그 무렵, 이들은 안개 너머로 막라 대륙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호랑이 영수가 천천히 멈춰 서더니 안개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도종은 귀원종과 공동의 주종에 속해 있으니 큰 난리를 일으킬 수는 없지. 나 혼자 다녀올 테니 이곳에 남아 기다리거라.”
노운종의 말에 노인이 그러겠노라 답했다.
“천매, 함께 가겠나?”
노운종이 미소를 지으며 권하자 이천매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두 사람이 긴 빛을 그리며 막라 대륙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노인은 작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종주와 저 여인이⋯⋯ 정말 반려자가 될지도 모르겠군.”
★ ★ ★
막라 대륙.
한제는 단약에 스며든 흉수의 혼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운해성역 단약의 정수를 조금씩 파악해나가고 있었다. 이는 흉수의 혼이 가진 천도에 대한 깨달음을 자신의 경지에 녹여 넣는 방식이었다.
그는 귀운종 제자들이 찾아와도 모두 물린 채 약초밭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8급 단약을 손에 쥔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허나 이 단약들에는 흠이 하나 있다. 흉수의 혼을 통해 경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방법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지. 그 가운데 필요한 경지를 뽑아내려면 끊임없이 단약을 복용해야만 해.”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그의 표정이 어느 순간 흠칫 변하더니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왔군.”
그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는 다시 손에 쥔 단약을 살폈다.
그때, 약초밭의 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한 쌍의 남녀가 들어왔다. 귀원종 제자들은 이들의 등장을 전혀 알아 채지 못한 상태였다.
중년에 이른 사내는 보라색 도포를 입고 있었는데 진지한 표정에서는 위엄이 절로 흘러넘쳤고 별과 같은 두 눈은 모든 진리를 깨우친 것만 같았다.
곁에 있는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고 손에는 옥피리가 들려 있었으며, 탈속적인 느낌이 들었다.
기척 없이 약초밭으로 들어온 순간, 중년 남자는 한제를 보고는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더니 서서히 다가왔다.
걸음은 빠르지 않았지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한제는 심장이 짓밟히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모종의 규칙을 품고 있는 듯 형용할 수 없는 위엄이었다.
더욱 기이한 것은 그가 수십 걸음을 걷는 동안 뒤로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새카만 구름으로 뒤덮였다는 것이다.
“앉게!”
한제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툭 던지듯 말했다. 단지 그뿐이었으나 다가오던 사내, 노운종은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고 그 순간 진실과 거짓을 분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마치 지금껏 쌓아 올린 모든 것이 그 한 마디에 와르르 무너지는 듯했다.
노운종의 표정이 무겁게 변했다. 저 백의의 사내에게 급습을 하려던 그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힘과 경지를 발산해둔 채 걸음마다 경지를 세상에 녹여내 하늘을 어둡게 만들었다. 기세를 절정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어지간한 사람이었다면 그 수십 걸음만으로 도념이 무너지고 원신이 손상돼 붕괴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상대방은 그저 한마디를 툭 내뱉은 것뿐이었다. 그것만으로 자신이 지금껏 쌓아 올렸던 모든 것은 무너지고 말았다.
“어찌 앉지 않는가?”
한제는 단약으로부터 시선을 떼 노운종을 바라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보이지 않는 천둥번개가 약초밭에 내리치는 듯했고 노운종은 심신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무의식적으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안색 역시 크게 변한 상태였다.
그가 뒷걸음질을 치자마자 어두워졌던 하늘이 조각나면서 눈 깜짝할 사이 사라져버렸고 본래의 맑은 모습을 되찾았다.
도에 대한 노운종의 이해가 아무리 높고 깊다 한들, 그의 도념이 아무리 견고하다 한들 한제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한제는 수련을 시작한 지 5백여 년 정도 지났을 무렵 생사윤회를 수련했고 9백여 년이 지나서는 생사윤회를 통달한 뒤 인과의 경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련의 길에 오른 지 1천여 년이 되었을 때부터는 진실과 거짓의 경지로 전환한 상태였다. 노운종이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줄곧 상황을 살피던 이천매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노운종과 함께 온 것은 도에 대한 그의 이해에 감탄과 상대에 대한 호감 때문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수련자 중에도 도에 대한 이해만큼은 노운종을 뛰어넘는 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노운종이 고급 성역의 종파로부터도 중시 받는 이유일 터였다.
한데 저 백의의 수련자는…?
노운종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한제를 응시하면서도 감히 나서지도 물러나지도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