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25
풍패산은 작게 읊조린 뒤 고개를 젓고는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해지자고. 이제 다른 대륙으로 가보도록 하지.”
세 사람은 긴 빛을 그리며 뒤쪽의 제자들과 함께 먼 곳으로 향했다.
‘노운종의 대력 또한 매우 신비롭지. 대장로의 눈에 든 자이니 절대 우습게 볼 수 없어.’
풍패산이 생각에 잠긴 채 일행들과 날아가고 있던 그 시각, 한제는 하늘로 향해 있던 시선을 거두었다.
사실 그는 공격에 앞서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 황량한 대륙에서 서낙형을 죽이고 귀한 보물을 가져간 범인을 오독문의 노파인 것처럼 꾸며놓기는 했지만 시간이 부족해 모든 단서를 지우지는 못했다. 게다가 자칫하면 단서를 지우려다가 더 많은 단서를 남기게 될지도 몰랐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최대한 빨리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만약 내가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풍(風)의 선계로 넘어가는 수밖에…’
오독문 노파의 기억을 통해 한제는 운해성역의 풍의 선계는 언제나 열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입구는 8급 성역 북부에 있으나 안개에 가려져 있어 누구도 감히 발을 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탁삼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군.’
그가 오독문 노파의 기억 속에서 찾은 연수술을 시도해보려 한 것도 풍의 선계 때문이다. 이 술법을 성공시키기만 한다면 풍의 선계에 진입할 가능성을 대폭 높일 수 있었다.
세 가지 문제
운해성역 5급 성역의 짙은 안개 속에는 호랑이를 닮은, 몸의 길이만 약 3천 척에 달하고 머리에는 1백 척 길이의 예리한 외뿔이 나있는 음산하고 서늘한 빛을 발하는 영수가 있다.
지금 이 호랑이 영수의 등에는 30여 명의 남녀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엄숙하고 진지한 모습이었다. 눈을 감은 채 좌선을 하고 있는 그들의 몸에서는 파동이 흘러나왔다.
그중 가장 앞, 호랑이 영수의 외뿔 옆에는 보라색 도포를 입은 중년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뒷짐을 지고는 안개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공손한 태도의 노인이 한 명 붙어 있었다.
“종주님, 호랑이 영수의 속도라면 하루 안에 막라 대륙에 도착할 겁니다.”
노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들은 자도종 수련자들이었다. 막라 대륙으로 출발하려 한 것은 오래 전이었으나 옥패와 단약 제조법 때문에 6급 성역의 수련자들이 침범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번잡한 일들을 모두 정리하고 6급 성역 수련자들의 탐색까지 받은 뒤에야 비로소 귀원종으로 향할 수 있었다.
시종일관 안개를 주시하고 있던 중년 사내는 한참 후에야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에 대한 답을 마침내 얻게 되겠군.”
그 말에 담긴 뜻을 파악하지 못한 노인은 흠칫 놀랐다. 귀원종이야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종파인데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답이 대관절 무엇이란 말인가.
“종주님⋯⋯.”
노인이 막 입을 열려 한 찰나, 중년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넌 모른다. 큰 난리가 일어나면 운해는 더 이상 평화롭지 못할 거야.”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약 제조법과 옥패를 위해 6급 성역 수련자들뿐만 아니라 7급, 심지어 8급 성역 수련자들까지 몰려들고 있지. 그 정도로 대단한 단약이란 말인가?”
중년 사내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걱정하는 기색이 어린 목소리였다.
“그야 물론 가치가 굉장하지요. 모두가 그렇게 애타게 찾을 법도 합니다.”
곁에 있던 노인이 말했다.
“그 단약 제조법과 옥패는 불길한 물건이야. 처음으로 나타났던 당시에도 운해에 엄청난 난리를 일으켰고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지. 누가 그 단약 제조법을 가져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혼란에 휩쓸리는 사람은 점점 많아질 거야.”
중년의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조사에 따르면 오독문 노파가 그것들을 손에 넣고 어딘가로 숨었다는군요.”
노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6급 성역 종파의 강력한 수련자들을 얕잡아봐서는 안 되지!”
중년 사내가 살짝 웃었다.
이에 노인은 깜짝 놀라더니 생각에 잠겼다가 의아한 듯 물었다.
“설마 다른 사람이 또 있다는 겁니까?”
“정말로 오독문의 노파가 그것들을 가져갔다면 오독문이 여태 남아 있을 것 같은가?”
중년 사내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독문 노파의 수준으로 어떻게 자폭한 서낙형의 힘을 견뎌내고 또 어떻게 그렇게 삼엄한 탐색 속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겠는가? 또한 그렇게 급박한 상황에서 도망치면서 어떻게 화청종의 전귀종까지 죽일 수 있었겠어? 전귀종은 쇄열기 수준 수련자다. 범인은 화청종의 후발대를 구성한 제자들이 오기 전까지 2각도 안 되는 시간에 그런 전귀종을 죽인 거야!”
충격을 받은 듯 노인은 찬 숨을 들이켰고 한참 후에야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화청종의 전귀종이 살해당했답니까?”
중년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독문 노파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지. 틀림없이 옥패와 단약 제조법을 손에 넣은 수련자의 짓일 게야. 그 황량한 대륙을 빠져나오다가 우연히 전귀종과 맞닥뜨리고는 의심을 사는 바람에 피치 못하게 손을 쓴 것이겠지.”
중년 사내의 눈에 감탄과 안타까움의 빛이 동시에 드러났다.
“매서운 수단도 무섭지만 결단력이 과감하기 이를 데 없는 자야. 급박한 상황에서도 6급 성역 수련자들이 오독문 노파에 집중하도록 꾸며놓기까지 했으니. 덕분에 6급 성역 수련자들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봉쇄망을 유유히 빠져나간 거지. 아주 똑똑한 자야. 그자가 오독문 노파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데에 더 깊은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간사하고 영리하다는 것은 분명하지.”
곁에서 듣고 있던 노인은 심장이 쿵쾅댔다. 허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중년 사내는 이를 눈치 챈 듯 말을 이었다.
“6급 성역에서 옥패와 단약 제조법을 손에 넣는다면 엄청난 기회겠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반대로 끔찍한 재앙이 될 거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변명이겠지. 7급, 8급, 심지어는 9급 성역에 댈 변명⋯⋯.”
노인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그들이 오독문은 내버려두고 그 노파의 짓이라고 단언하는 거군요. 그녀가 전귀정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중년 사내는 웃으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이 일이 어떻게 끝나든 변명 거리가 있는 이상 6급 성역 수련자들이 겪을 재난은 줄어들겠지. 믿는 구석이 있으니 이번 탐색에 쇄열기 수련자는 나서지도 않은 것일 테고. 만약 내가 6급 성역 종파의 종주였다면 모든 단서를 통해 알 수 없는 그 수련자의 존재를 지우면서 모든 것을 비밀에 부쳤을 거야. 그렇게 한다면 끔찍한 화를 당하는 건 오독문 하나로 끝날 테니까.”
곁에 있던 노인은 중년 사내에 대한 공경과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노인은 저 중년 사내, 노운종이 이름도 날리지 못하던 시절부터 절정에 이른 지금까지 오랫동안 모셨다.
3천 년 전의 보잘것없던 5급 성역의 작은 종파였던 자도종은 노운종의 손에서 강력해졌다. 5급 성역 종파 중 최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노운종의 이름만큼은 심지어 8급 성역까지 알려진 상태였다.
“그 신비의 수련자를 언젠가 한 번은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그 만남을 기대하듯 미소 짓는 노운종의 모습은 노인의 눈에 거대한 산처럼 보였다.
그 와중에도 호랑이 영수는 안개를 헤치며 점점 나아가 이제 막라 대륙까지는 한나절 정도 남은 상태였다. 한데 그때 갑자기 전방에서 파란 빛이 나타났다. 그리고 요사스러운 그 빛에 관통당한 안개는 전염된 듯 파랗게 물들었다.
호랑이 영수는 우뚝 멈춰 서서 두려운 듯한 눈으로 경계하며 낮게 포효할 뿐 앞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30여 명의 수련자들은 동시에 눈을 떴다. 허나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난 그들에게서 당황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은 자도종의 핵심 제자이자 노운종이 직접 키워낸 직계 제자이기 때문이다.
고고한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허둥대지 않고 눈앞에서 세상이 무너지더라도 눈 하나 깜짝 않을 존재들이었다.
노운종 곁에 있던 노인은 진중한 눈으로 파란 빛을 응시했다. 오직 노운종만이 침착한 눈으로 상황을 응시할 뿐이었다.
푸른 안개가 반경 1만 척을 뒤덮어가던 그때, 안개가 꾸물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낭창한 인영이 하나 걸어 나왔다.
파란 머리에 백의(白衣)를 입은 그녀의 얼굴은 정교하고도 세심했으나 표정만큼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그저 덤덤할 뿐이었고 한편으로는 우아했다. 섬섬옥수(纖纖玉手)에 옥피리를 든 그녀는 마치 인간계로 내려온 선녀 같았다.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난 순간, 반경 1만 척의 푸른 안개가 격렬하게 요동치면서 실체를 갖춰가더니 길이가 1만 척에 달하는 청룡(靑龍)이 되었다.
선녀 같은 여인은 청룡의 머리 위에 선 채로 노운종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은 티 없이 맑기만 했다.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던 노운종은 여인의 침착함과 기이한 아름다움에 놀란 상태였지만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9급 파천종, 이천매!”
노운종 곁에 있던 노인이 경악한 목소리로 외치며 몇 걸음 물러났다. 운해성역에서 머리카락이 파란 사람은 유일했던 것이다.
“노 형을 뵙습니다.”
여인은 미소를 띤 채 노운종을 향해 몸을 살짝 숙였다.
“예의 바르기도 하지.”
노운종은 포권을 한 채 웃으며 말했다.
“노 형, 제게 세 가지 문제가 있는데 노 형이 풀어주셨으면 합니다.”
여인이 부드럽게 웃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걸출하다고 소문난 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아직 마음에 드는 답을 듣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아직까지 두 번째 질문조차 던져볼 기회가 없었다.
“얼마든지.”
노운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문제입니다. 하늘이란 무엇입니까?”
그녀가 물었다.
노운종은 이천매를 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감옥이지.”
여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그마저도 아름다웠다. 잠시 후 그녀는 두 눈을 밝게 빛내며 미소를 드러냈다. 만개한 백합처럼 싱그럽고 예쁜 모습이었다.
“노 형의 답은 참 재미있습니다. 어찌 하늘이 감옥이라 하셨습니까?”
“그것이 두 번째 질문인가?”
노운종이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직 첫 번째 질문입니다. 답을 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여인은 파란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하늘은 우물의 입구고 물속 물고기에게 하늘은 수면이지. 또한 우물의 입구는 개구리의 감옥이고 수면은 물고기의 한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