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31
“눈치챘다면 아마도 이천매의 도움 덕일 겁니다.”
당려해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러나 중년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저자⋯⋯입니까?”
오청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물었다.
“그렇다면 그럴 테고 아니라면 아니겠지.”
중년 사내는 시선을 거두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찌됐든 저자를 건드려서는 안 돼. 아주 위험한 기운이 느껴져. 마총도는 단약 제조법과 옥패에 관한 일에서 빠진다. 우리가 관여할 만한 일이 아니야.”
★ ★ ★
한제는 이천매에게 남은 며칠 동안 혼자서 구경을 좀 하겠다며 작별을 고했고 이천매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갈라졌다.
이천매와 떨어진 한제는 더 이상 거리낄 것 없이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성도를 파는 사람을 찾았다.
그는 마총도 사람들과 만난 자리에서 구석 탁자에 누군가가 숨어 있음을 어렴풋이 알아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황량한 대륙에 남긴 실마리를 들킨 모양인데⋯⋯.’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성도를 손에 넣어야 할 이유가 더 커졌다. 그러나 성도의 가치는 높았고 사흘 내내 시장을 돌아다니며 구한 몇 개의 성도에 대해서는 진위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다.
셋째 날 저녁, 머무는 객잔으로 돌아와 침상에 가부좌를 튼 한제는 여섯 개의 성도를 쥔 채 생각에 잠겼다.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내 왔군.’
한제는 미소를 띤 채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나무 문이 끼익 하고 열렸다.
문 앞에는 중년 사내가 한 명 서 있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용맹해 보이는 사내였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오는 대신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선배님, 구양륭 스승님께서 뵙기를 원하십니다.”
한제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사내는 공손히 길을 안내했다.
객잔에서 나온 두 사람은 긴 빛을 그리며 도시에서 빠져나갔다. 깊은 밤이었지만 시장은 더욱 활기에 차 왁자지껄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잠시 후, 수많은 바위의 중앙에 있는 바위에 이르렀다. 다른 바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이 바위 위에는 주위의 도시들보다 수십 배는 거대한 도시가 하나 있었다. 그 도시에서는 거대한 흉수의 그것과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한제는 중년 사내의 안내에 따라 곧장 동문으로 향했다. 그곳은 수많은 수련자가 지키고 있었으나 중년 사내가 옥패를 내밀자 모두 공손한 태도로 길을 비켜섰다.
심지어 한제의 옥패는 검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것만 보더라도 저 중년 사내의 위치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시 중앙의 아름다운 누각 앞에 이르렀을 때, 중년 사내는 멈춰서더니 한제에게 예의 바른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가시지요. 제 신분으로 이곳까지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신식으로 앞쪽을 훑었다. 이내 그가 누각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호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구양륭이 내려와 포권을 했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 요구 사항이 많아 준비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네.”
구양륭의 유쾌한 태도는 사흘 전과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는 그날 시장에서 한제의 강력한 모습을 봤기 때문이리라. 그 사건은 마총도를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구양륭 배후의 세력에게까지 충격을 선사한 것이다.
한제도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했다.
“괜찮네.”
“자 이쪽으로 오게. 장소를 좀 옮겨서 거래를 할 생각인데 아주 재미있는 곳일세. 도우도 돈을 걸어보게. 크게 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구양 도우에게 신세를 지게 됐군.”
겸손하게 대꾸한 한제는 구양륭을 따라 누각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신식을 통해 주위를 살피고 흠칫 놀랐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
이 누각의 지하는 텅 빈 채로 반경 10만 척의 거대한 무대와 이어져 있었다. 무대 주위를 빙 두른 돌계단에서 울려대는 수많은 수련자의 함성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 속에는 영수들의 분노에 찬 포효도 뒤섞여 있었다.
드넓은 무대 위에는 길이만 1천 척에 달하는 거대한 영수 두 마리가 혈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또한 그 위로는 팔뚝 굵기의 고리형 통로가 걸려 있었는데 그 사방에는 창문들이 달려 있었다.
한제와 구양륭이 자리한 곳은 그 통로 안쪽이었다.
“여기는 봉래 대륙의 투전판이네. 도우도 마음에 드는 영수가 있거든 한번 걸어보라고.”
구양륭이 씩 웃으며 말했지만 한제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두 사람은 통로를 따라 앞자리로 나아갔다. 그곳에는 두 명의 수준 높은 수련자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둘 사이에는 닫힌 돌문 하나가 있었다.
“오늘의 거래를 주관하시는 것은 나의 사숙으로 몇몇 도우들을 초청하셨네. 작은 규모의 사적인 경매랄까? 도우도 흥미 있는 물건이 있다면 참여하게. 우리 거래는 경매가 끝난 뒤에 사숙께서 직접 진행하실 테니까.”
쉼없이 말을 이어가던 구양륭이 우뚝 멈추어 서더니 한제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뭔가 고민하던 끝에 입을 열었다.
“도우, 내 줄곧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답을 좀 해주겠나?”
“얼마든지.”
한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우는 어찌 내 정체를 알아챘는가?”
분명 처음 보는 자인데도 상대는 먼저 접근해왔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많은 원정을 가지고 있음을 간파했다. 게다가 신식을 통해 자신의 정체를 알아챈 듯한 낌새를 보이기까지 했다. 구양륭으로서는 그 점이 너무도 궁금했다.
한제는 말없이 빙긋 웃기만 할 뿐 끝까지 대답을 피했다. 그럴수록 구양륭의 궁금증은 커졌고 일견 평범해 보이는 백의의 청년은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끝까지 답이 나오지 않자 구양륭은 쓰게 웃더니 포권을 하며 말했다.
“도우, 이 개인 경매에서는 외모를 가리는 것이 금지된다네.”
말을 마친 그는 통로 끄트머리의 돌문을 가볍게 몇 번 두드렸다. 그러자 잠시 후 돌문이 진동하더니 파문이 일어났고 반쯤 녹아내리듯 흐릿해졌다.
구양륭은 한제를 돌아보며 씩 웃더니 파문이 일고 있는 돌문 안으로 사라졌다.
한제는 잠시 고민했으나, 공연히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기에 외모를 숨기지 않기로 결심하고는 구양륭의 뒤를 따랐다.
어지러워졌던 눈앞이 다시 밝아졌을 때, 한제는 자신이 수백 척 정도 되는 방 안에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됐다.
방의 바닥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투명해 수십만 척 아래의 무대에서 두 마리 영수가 싸우는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방 가운데에는 의자 하나와 그 주위를 둘러 싼 여러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 앉아 있던 일곱 수련자 시선이 일제히 한제를 향했다. 피부마저 뚫고 들어올 듯 검처럼 날카롭고 매서운 시선 속에 그중 한 명은 한제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가 이내 원래의 표정을 되찾고는 웃음을 머금었다.
가운데 의자에는 노인이 앉아 있었다. 은색 머리에 도포를 입은 그는 두 눈을 살짝 감은 채 예리한 시선으로 한제를 훑었다.
쇄열기 중기에 달한 위엄과 수준이 자연스레 발산됐다. 구양륭이 허리를 굽혀 노인의 귓가에 대고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빈 의자에 앉았다. 그때, 아까 그를 보고 흠칫 놀랐던 사람이 미소를 지으며 살짝 포권을 해 보였다. 그 사람은 오청으로 여기서 서로가 만난 것은 둘 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한제는 다시 주위를 훑어보았다. 일곱 명의 수련자 중 구양륭의 사숙인 백발노인과 오청을 제외한 다섯은 모두 쇄열기 초기 수준이었다.
한제의 맞은편에 앉은 것은 문인 같은 외모의 청년이었다. 손에 쥔 부채를 가볍게 흔들고 있는 그의 하얀 얼굴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읽어낼 수 없었다.
그는 한제와 눈을 마주치자 흥미롭다는 듯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의 곁에는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 있었는데 앉은 자세에서 지루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한제를 힐끗 봤을 뿐, 별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한쪽에서는 얼굴 가득 흉터로 뒤덮인 한 노인이 오른손 검지에 끼운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음산한 눈으로 한제를 힐끗거렸다.
왼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는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있었다. 깡마르고 입술이 얇은 그는 독수리 발 같은 왼손으로 갓난아이 주먹만 한 구슬을 두 개 쥐고 있었다. 그가 왼손을 조물거릴 때마다 두 개의 구슬이 달그락거렸다.
마지막 한 사람은 눈처럼 하얀 백발에 피부는 주름이 가득한 노부인이었다. 그녀는 한제가 자신을 쳐다보자 잠시 냉랭하게 마주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쇄열기 수준 수련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격식 있는 자리인 것이 틀림없었다. 이곳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각자의 정체와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리라.
한제가 시장에서 마총도의 세 제자를 손쉽게 처리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구양륭에게 큰 거래를 제안하지 않았다면 이곳에 들어올 수도 없었을 터였다.
쇄열의 모임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 한제는 자신이 말단으로 취급받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구양륭은 백발노인에게 말을 마치고는 허리를 편 뒤 공손하게 한쪽에 섰다.
백발노인은 마른기침을 한 번 하더니 수련자들을 훑어보고는 거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자리는 이 창송자 개인의 모임으로 오랜 벗들과 더불어 새로운 벗도 두 명 더 초대했다네. 각설하고 오래된 규칙에 따라 일단 돈부터 걸어보세.”
노인이 말을 마치자 구양륭이 앞으로 나와 저물대에서 여섯 개의 옥패를 꺼내 한제와 여섯 명에게 하나하나 전달하고는 마지막으로 하나 더 꺼내 백발노인, 창송자에게 공손히 건넸다.
한제는 받은 옥패를 신식으로 확인한 결과 그 안에 총 1백 마리의 흉수에 대한 자료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검사자도 한 마리 있군! 난 녀석에게 걸겠네!”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노인이 웃으며 신식으로 옥패를 약간 조정한 뒤 구양륭에게 던졌다.
한제는 말없이 옥패 안의 흉수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대부분은 귀원종의 자료에는 없던 것들이었다.
잠시 후, 한제는 날개구름이라는 이름의 흉수에게 선옥 1백 개를 걸고는 옥패를 구양륭에게 건넸다.
창송자가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누구의 눈썰미가 가장 좋은지 궁금하군. 답은 잠시 후에 알게 되겠지. 지금 내게는 세 개의 보물이 있네. 관심 있다면 괘념치 말고 가격을 제시하게.”
노인이 오른손을 휘두르자 세 개의 빛이 나타나 공중에 둥실 떴다.
첫 번째 물건은 비검이었다. 수정으로 만들어진 검의 서늘한 기운은 놀라울 정도였는데 그 안에서는 붉은 선이 흐르면서 더욱 강렬한 살기를 풍겼다.
두 번째 물건은 부러진 갑주로 긴 세월의 흐름이 새겨져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