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90
천둥번개가 서로 뒤얽혀 형성한 그물이 하늘에서부터 아래쪽으로 내리 떨어졌다.
뒤이어 하얀 인영 하나가 하늘에서부터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백발을 나부끼고 선 그의 주위에는 천둥번개가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
하늘과 땅을 채운 천둥번개는 오직 한 사람을 영접하기 위한 것이었다.
순간, 모든 수련자들은 심신이 경련하는 것을 느꼈다.
“그가 왔다!”
무극종을 뒤집다 (3)
노운종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궁무진한 천둥번개와 하얀 인영을 목격한 그의 심신이 요동쳤다.
이천매 또한 벌떡 일어나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천둥번개에 이어 나타난 인영을 발견한 그녀는 그 익숙한 모습을 응시하며 말없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심장에는 엄청난 천둥번개가 내리꽂힌 듯했다.
한편, 모은미의 표정은 복잡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깃든 얼굴로 묵묵히 그 익숙하고도 낯선 사내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앞에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알 수 없는 씁쓸함과 슬픔이 마음을 뒤덮은 가운데 따스함까지 느껴져 그녀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여연비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지금까지의 모든 긴장과 고생이 담긴 눈물이었다.
풍해와 붉은 머리의 노인, 중년 사내인 추 씨, 난수무계에서 한제를 봤던 노인과 한제의 허상을 보았던 노인도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심지어 무극종의 종주조차 눈빛을 번득였다. 그는 첫 번째 천쇠에 이른 자로 이곳의 모든 수련자 중 수준이 가장 높았다. 그런 만큼 다른 어떤 사람들은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의 눈은 한제의 미간에 닿아있었다.
노인은 상대의 텅 빈 미간에 한 줄기 규칙의 힘이 숨겨져 있음을 깨달았다. 더구나 그 규칙이 이 세상 너머의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마치 새롭게 만들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저자와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일 경우, 승리를 자신할 수 없다. 분명 부상을 입은 듯하나 기세가 대단해. 이렇게 늦게 온 것을 보면 뭔가 중요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
한편, 여영걸은 얼이 빠진 얼굴로 하얀 인영을 살피다가 두려움에 잠식되고 말았다.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귀원종과 관련한 자신의 경솔한 언행이 떠올라 머리가 저릿했다.
‘저, 저자⋯⋯ 노운종의 말대로 나 정도는 개미처럼 손쉽게 죽여 버릴 수 있을 거야!’
심만종 역시 쥐죽은 듯 조용한 가운데 조룡도 두 눈이 빠르게 졸아들었고 머릿속은 텅 비어 버렸다.
그의 곁에 있던 심만종 종주와 두 명의 대장로도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신 상태였다.
한제를 본 순간, 그들은 상대가 자신들로 하여금 온 힘을 다해 종파가 자리한 대륙을 옮기게 했던 그 사람임을 알아차렸다.
“이… 이럴 수가…”
6, 7급 성역 수련자들 중에는 한제가 나타난 순간 그를 알아보았고 곳곳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콰르릉!
웅성거림은 곧 우렁찬 천둥소리에 뒤덮였다. 천둥번개는 순식간에 모두 한제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한제는 백발을 날리며 대련장 위로 내려와 여연비 곁에 섰다.
“내가 늦었군.”
그는 초췌한 얼굴의 여연비를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여연비는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기쁜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늦지 않으셨습니다.”
“내려가라. 내가 있는 한 귀원종은 무사할 것이다. 내 이번 시합으로 귀원종을 1등 분종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5급 성역에서도 6급 성역에서도 7급 성역에서도!”
한제가 소매를 크게 휘두르자 부드러운 바람이 여연비를 감싸 무극종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이동시켰다.
한제는 무극종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포권을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흠칫 놀랐다. 이천매와 모은미를 보았기 때문이다.
한제는 눈을 돌려 복잡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대련장 위의 노운종을 바라보았다.
“여 형의 수준이⋯⋯ 1백 년 전과는 전혀 달라졌군. 이번 시합으로 5급 성역에서 자도종의 순위는 떨어질 수밖에 없겠어!”
노운종은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포권을 했다. 지금 그는 상대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진동했다.
심지어 도념이 무너져 내릴까 두려울 정도였다. 상대의 체내에 보이지 않는 회오리라도 깃들어 있는 것처럼 사방의 모든 경지와 도념을 빨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제는 빙긋 웃었지만 표정은 오히려 더 차가워 보였다. 그는 덤덤하게 물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네. 여연비가 부상을 입었더군. 누구 짓이지?”
노운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선음문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선음문의 여영걸!”
뒤이어 그는 심만종의 자리를 가리켰다.
“그리고 심만종의 조룡! 두 사람은 여 도우에게 탐욕을 품었고 결국 그녀를 다치게 했네!”
한제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새 선음문 앞에 나타났다.
“헛!”
여영걸은 표정이 급변해 재빨리 물러났다. 그의 스승과 선음문 장로들도 굳은 표정으로 재빨리 움직였다. 특히 여영걸의 스승은 한손으로 제자를 붙잡고는 긴 빛을 그리며 무극종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때, 선음문의 종주가 한제의 앞을 막아서더니 공손한 표정으로 포권을 했다. 대화로 상황을 풀어보려는 것이다.
허나 한제는 상대의 말을 듣지도 않고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순간 거친 바람이 불어닥쳤다.
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선음문 종주는 피를 토하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비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무너져 내린 육신에서 튀어나온 원신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여영걸을 추격했다. 그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사람들의 심신과 원신이 바르르 진동했다.
“종주님, 살려주십시오!”
여영걸의 스승은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 채로 무극종 사람들을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여 도우, 일단⋯⋯.”
망설이던 풍해가 포권을 하며 끼어들려던 순간, 벼락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귀원종을 욕보인 자를 구하려 한다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이어서 한제는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그는 압도적인 힘을 보여줌으로써 누구도 다시는 귀원종을 건드리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의 손짓 한 번에 하늘과 땅이 울었고 뒤이어 천운일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온 세상으로 파문을 퍼트리며 하강하는 거대한 손가락에서 숨 막힐 정도로 강력한 위압감이 발산되었다. 이에 모든 수련자는 찬 숨을 들이마셨다.
이 거대한 손가락의 끝은 순식간에 여영걸과 그 스승에게로 떨어졌다.
쾅!
짧지만 우렁찬 굉음과 함께 수련성 전체가 진동했다. 동시에 피 안개가 터져 나오면서 여영걸과 그의 스승은 그대로 육신이 무너져 내렸고 원신이 소멸했다.
훅 불어온 바람이 피 냄새를 싣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여 형은 분명 여영걸 정도는 개미처럼 쉽게 죽일 수 있습니다. 이 말이 거짓이라면 이 노운종은 조 선배님이 시키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지요.”
사람들은 며칠 전 노운종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뒤이어 몸을 돌린 한제는 심만종을 향해 다가갔다.
천운일지는 선력이 소모되지 않았다. 한제의 심신과 원신 속 천운자의 혼백이 융합하면서 그 혼의 힘을 빌려 발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소모되는 것은 천운자의 혼백의 힘과 한제의 원력이다.
한제의 수준이 대폭 상승한 덕에 이제는 쉽게 발휘할 수 있었다.
물론 그가 발휘한 천운일지의 위력은 천운자가 직접 발휘하는 천운일지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다.
두 사람은 수준도 다르고 발휘 방식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모인 모든 수련자들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풍해가 앞을 막아섰을 때, 한제는 ‘귀원종을 욕보인 자를 구하려 한다면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더구나 그 깔끔하고 매서운 공격에 모든 사람은 충격을 받았다.
한편, 한제의 등을 바라보며 여연비는 따뜻함을 느꼈다.
반면 모은미의 표정은 복잡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슬픔은 한층 더 깊어졌다.
그녀는 연맹성역을 파괴된 곤허경을 그리고 강대한 탁삼을 떠올렸다.
그녀의 상황은 여연비와 어딘가 비슷했다. 허나 여연비의 뒤에 한제가 버티고 있는 것과 달리 자신의 뒤에는 아무도 없다는 점이, 이 무기력한 상황에서 영원히 홀로 버텨내야만 한다는 점이 달랐다.
선음문 쪽으로 다가가는 한제에게서 짙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십만 명에 달하는 수련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렸음에도 한제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걸음은 빠르지 않았지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심만종 사람들은 심신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마치 수련자가 아니라 원고 시대의 흉수가 자신들을 찢어발기러 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심만종 종주는 쇄열기 수련자였으나 저자와 대적할 자신은 없었다.
‘장로 하나를 구하자고 저런 자에게 대적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그는 번득이는 눈으로 자신들의 대장로를 바라보았다. 대장로는 쇄열기 중기에 이른 자였다.
이 대장로 역시 넋이 나간 상태였다. 심지어 그는 일전에 한제가 발휘한 역령인까지 직접 목격한 터라 더욱 충격이 컸다.
문득 종주의 시선을 느낀 심만종 대장로는 그 눈빛의 의미를 곧장 알아차렸다. 하지만 종파의 장로를 내준다는 것이 내키지 않는 듯 망설였다.
그러나 망설임은 한제가 한 걸음 더 다가온 순간 사라졌다.
그 순간, 심만종의 종주가 옆으로 자리를 피했고 대장로 역시 거의 동시에 자리를 떴다.
그러자 심만종의 나머지 수련자들도 분분히 흩어졌다. 심지어 근처의 다른 종파 수련자들도 이동하기 흩어지면서 그곳에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조룡의 원신만이 남게 됐다.
조룡은 바들바들 떨면서도 한제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나와라.”
한제는 걸음을 멈추며 오른손 검지로 조룡의 원신을 가리켰다. 그 순간, 서늘한 기운이 조룡의 전신을 감쌌고 그는 세상에서 홀로 떨어져 나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세상에 오직 자신만이 남은 것 같았다.
“크아아! 네 맘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조룡은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며 돌진했다. 순간 그의 체내에서 보이지 않는 화염이 화르륵 일어났다.
막다른 길에 몰린 그는 원신을 태워 막대한 힘을 얻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