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native American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하늘의 태양’ 수도, ‘아주 큰’ 도시.
건설부의 주도로 반년에 걸쳐 관청이 드디어 완공됐다.
관청에는 각 행정기구가 속속 자리를 잡으며 각자의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교육과 종교를 담당하고 있는 교육부.
보름 만에 교육부 수장인 ‘바람과 구름’의 주최로 회의가 열렸다.
“…각 행정구역 중심 마을마다 학교가 다 건설된 상황입니다.”
“…부족한 교재도 목판으로 인쇄해 계속 공급하고 있습니다. 다만, 인쇄할 종이가 많이 부족합니다. 재무부와 상공부에 협조를 부탁하긴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종이 공방을 확충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듯합니다.”
교육에 관한 보고를 받은 ‘바람과 구름’이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했다.
“종이 공방이 완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네.”
“그나저나 금속 활자는 어떻게 되고 있죠?”
회의장 구석에 앉아있던 교육부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금속 활자의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나무가 재료인 목판과 달리 신의 재료로 만든 금속 활자는 글자를 만들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글자 하나하나 형틀을 만들어야 해서 아무래도 올해 안으로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목판은 글자를 새기기가 쉽지만, 나중에 잉크가 스며들어 목판이 쫙쫙 갈라지는 단점이 있었다.
일단, 황제 폐하의 지시로 대장간에서 금속 활자를 만들고 있지만, 신의 문자가 워낙 많아 주조하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느새 복잡한 표정으로 생각을 정리한 ‘바람과 구름’이 바로 지시를 내렸다.
“일단, 황제 폐하께 지금의 애로사항에 대해서 보고는 해둘게요. 그래도 이왕이면 인원을 더 투입해서라도 올해까지 금속 활자를 완성했으면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여러 부서의 도움과 지원을 받아 올해 안으로 끝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자, 다음 안건인 고등교육 기관 건설 건에 대해 의견을 나눠보죠.”
“네.”
교육부 사람들이 하나둘 고등교육 기간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학교마다 천재가 최소 한두 명씩 나오고 있습니다. 현 교육 과정으로선 이들의 지식 욕구를 채울 수 없는 게 사실이긴 합니다.”
“…어차피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을 위해 중등학교를 만들 예정이었습니다. 미리 중등학교를 지어 시범적으로 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천재들을 위한 교육 기관도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황제 폐하께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만큼 이 안건에 대해 크게 반대하시지 않을 겁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고등교육 기관 건설에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바람과 구름’이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고등교육 기관 건설 건을 통과시켰다.
“…그럼, 재정부의 지원을 받아 중등학교를 건설하겠습니다.”
그 후로도 회의는 한동안 계속됐다.
잠시 후, ‘바람과 구름’이 마지막으로 종교 쪽을 담당하고 있는 대주술사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천일교의 교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각 부족 신들의 조사는 거의 끝나갑니다. 일단, 완성된 기본적인 교리를 대신전 중심으로 천일교를 전파할 계획입니다.”
부족마다 신들의 이름만 다를 뿐, 거의 비슷했다.
창조주 신, 태양의 신, 대지의 신, 어둠의 신, 천둥신, 정령들 등등.
‘바람과 구름’은 창조주 신의 뜻을 받아들여 천일교를 만드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앞으로도 계속 수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네, 수장님!”
* * *
백조의 강(포토맥 강, 현 미국 워싱턴) 중류.
야만 부족 마을 서쪽 숲.
덤불 속에 몸을 숨긴 채 ‘맑은 영혼’이 어디 있는지 계속 찾았다.
하지만, 없었다.
난 뒤로 물러나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다시 몸을 바짝 엎드려 전방을 주시했다.
이제부터 인내의 시간이다.
‘…재밌네.’
‘맑은 영혼’이 제안한 방식은 활로 과녁을 맞히며 대결하는 게 아니었다.
현대의 서바이벌 게임과 비슷하다고 할까?
나무로 우거진 숲 속에서 흩어져 상대방을 먼저 발견해 활로 맞히며 승리하는 방식이었다.
다만, 쇠 촉으로 만든 화살은 서로 다칠 수 있으니 오로지 나무 재질로 된 화살만 사용하기로 했다.
‘어디에 짱박혀 있을까?’
숲 속에서 그녀와 헤어진 지 한 시간째.
‘맑은 영혼’을 계속 찾아 헤맸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내 눈에 발각되지 않았다.
‘맵 창을 켤까?’
‘아니야.’
‘좀 더 기다려보자.’
사실 맵 창을 켠 채로 이 대련에 임했으면 ‘맑은 영혼’을 쉽게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재미도 반감되고, 무엇보다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냥 온전히 내 전투력으로 그녀와 대련하고 싶었다.
‘멀리 있지는 않을 것 같고.’
난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주변을 다시 한번 샅샅이 확인했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먼저 움직인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녀를 속이려고 일부러 신중하게 행동하는 척 재빨리 나무 뒤에 숨었다.
피식!
의외로 긴장감이 있었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입은 가죽 갑옷이 조금씩 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계속 유인한다.’
난 계속해서 나무 사이를 옮겨 다니며 ‘맑은 영혼’이 활을 쏠 때까지 기다렸다.
그 순간, 내 귓가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향은 서남쪽.
‘걸려들었군.’
몸을 한 바퀴 굴려 그 자리를 피하자 내 예상대로 화살이 날아왔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개.
팅! 팅!
나무에 튕겨 나간 두 개의 화살이 바닥으로 허무하게 떨어졌다.
어느새 활을 쏠 자세를 취하며 나에게 위치가 발각된 ‘맑은 영혼’을 찾았다.
‘맑은 영혼’이 새로운 엄폐물로 이동하기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가고 있었다.
‘빠르네.’
활줄을 강하게 당기던 난 나무 뒤로 숨어버린 그녀를 보고 다시금 활줄을 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위치를 알아낸 이상 승부는 거의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난 그녀가 숨어 있는 나무를 향해 뛰어가면서 위협사격을 했다.
슉! 슉!
위협사격의 효과가 있는지 ‘맑은 영혼’이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못 움직였다.
자신이 큰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아는지 그녀의 숨 가쁜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이대로 지고 싶지 않은지 ‘맑은 영혼’이 반격을 해왔다.
슉! 슉! 슉! 슉! 슉!
연사로 다섯 발.
하지만, 이미 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그녀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
그 순간 내가 쏜 화살이 그녀를 향해 맹렬하게 날아갔다.
퍼어어억!
등에 화살을 얻어맞은 ‘맑은 영혼’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젠장!”
힘을 조절한다고 했는데, ‘맑은 영혼’에게 충격이 꽤 컸나 보다.
난 기절한 그녀를 향해 뛰어갔다.
등뼈가 부러진 듯 그녀의 등에 재빨리 손을 갖다 댔다.
‘치료!’
[띠링!] [모든 병을 치료했습니다.]치료가 끝난 뒤 아직도 기절해 있는 ‘맑은 영혼’을 흔들어 깨웠다.
‘맑은 영혼’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연신 눈을 깜빡거렸다.
“혹시 내가 졌나요?”
“조금 전까지 기절해 있었어.”
“…그렇군요.”
실망도 잠시 ‘맑은 영혼’이 나를 보며 깨끗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많이 배웠네요. 졌습니다. 황제 폐하!”
피식!
“여기 꽤 오래 있었어. 사람들이 우리를 걱정할 수 있으니 서둘러 마을로 돌아가는 게 좋겠군.”
“네,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
‘맑은 영혼’이 환하게 웃으며 힘차게 대답했다.
잠시 후, 마을로 향해 나란히 걸어가는 동안 아까부터 ‘맑은 영혼’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설마? 아니겠지.’
* * *
‘하늘의 태양’, ‘아주 큰’ 도시.
훈련소.
‘우렁찬 천둥’이 단상 위에서 훈련장을 돌고 있는 수습 전사들을 매서운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었다.
‘체력이 나 못지않네.’
스무 바퀴 이후부터 체력이 떨어진 수습 전사들이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훈련장 중간중간에 훈련 교관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안 뛰어!”
“젖 먹던 힘까지 끄집어내란 말이야.”
“저녁밥을 굶기 싫으면 뛰어.”
수습 전사들이 교관들의 호통에 어쩔 수 없이 지친 몸을 이끌고 비틀거리며 뛰어갔다.
잠시 후, 서른 바퀴째가 되자 수습 전사들 사이에서 낙오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의 한계는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포기하겠습니다.”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극한의 체력 시험.
‘우렁찬 천둥’과 훈련 교관들이 그만할 때까지 수습 전사들은 훈련장을 계속 돌아야 한다.
그리고 어느새 훈련장에는 단 한 명의 수습 전자만 남아 있었다.
상처 입은 화살.
야만 부족의 대전사라는 걸 보여 주기라도 하듯 상반신이 땀으로 뒤범벅인데도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나보다 더 독한 놈이네.’
아까부터 그를 지켜보고 있던 ‘우렁찬 천둥’이 질려버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번에도 일 등인가?”
그를 옆에서 보좌하고 있는 백인장이 대답했다.
“…네. 전투력, 전략과 전술, 교전 등등. 지금까지 모든 훈련에서 일 등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사들을 이끄는 통솔 능력도 아주 뛰어납니다.”
“하긴, 대전사가 수습 전사로 훈련받는 게 말이 안 되지.”
“그렇긴 합니다.”
‘우렁찬 천둥’은 더 이상의 극한 체력 시험이 무의미하다는 듯 백인장에게 바로 지시를 내렸다.
“여기서 그만. 수습 전사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해.”
“알겠습니다. 천인장님!”
백인장이 물러나자 ‘우렁찬 천둥’이 경쟁심이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나중에 한 번 붙어봐야겠군.‘
잠시 후, 수습 전사들은 극한의 체력 시험이 끝나자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상처 입은 화살’도 수습 전사들 사이에서 휴식을 취하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내 체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었는데… 아쉽군.’
그것도 잠시 ‘상처 입은 화살’은 훈련소에 입소한 것에 대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사실 대전사로서 ‘하늘의 태양’에서 바로 백인장으로 진급할 수 있었지만, 그 제안을 거부하고 수습 전사부터 시작했다.
물론,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고 싶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훈련소에 배우는 지식이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무기를 다루는 법, 체력을 관리하는 법, 지형에 맞게 전략과 전술을 짜는 법, 전사들을 관리하는 법, 생존에 필요한 기술 등등.
‘이걸 다 황제 폐하가 만들었다니….’
새삼스럽지만, 계속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상처 입은 화살’은 과거 황제 폐하 앞에서 했던 무례함을 후회하며 속으로 또 한 번 다짐했다.
‘다음에 황제 폐하를 뵙게 되며 대전사로서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고 싶군.’
* * *
죽음의 강(로어노크 강) 상류, 투텔로 부족 마을.
며칠을 이동 끝에 드디어 투텔로 부족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를 안내했던 투텔로 전사들이 미리 얘기했는지 투텔로 사람들이 마을 바깥까지 나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우리 초대에 응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
투텔로 부족 대추장으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와 환영 인사를 하며 누군가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 순간, 화려한 문신과 완전무장한 투텔로 전사들이 오십 명 정도 되는 우리 일행들을 빠르게 에워쌌다.
나도 모르게 한쪽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환영 인사치곤 너무 거창한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