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native American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찬란한 노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은행 직원 남자의 질문에 거짓 없이 사실대로 대답했다.
이름, 성별, 고향, 직업, 현재 사는 도시나 마을 등등.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찬란한 노을! 본인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여기에 서명 부탁드립니다.”
은행 직원이 건넨 신상 내용이 적힌 종이에 ‘찬란한 노을’이 직접 한글 이름을 적어 서명했다.
“끝난 겁니까?”
“죄송합니다. 아직 절차가 더 남아 있습니다.”
은행 직원 남자가 방금 서명한 종이에 또다시 빈칸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 본인 예명과 함께 비밀번호를 다섯 자리를 적어 주십시오. 단, 비밀번호는 숫자로만 적어야 합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과정이 무척 까다롭다고 느꼈는지 ‘찬란한 노을’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빈칸에 예명과 비밀번호를 빠르게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똑같은 내용으로 또 다른 종이에 서명하고 비밀번호를 썼다.
“앞으로 이 종이에 적힌 내용을 토대로 각 지역의 은행에서 고객의 신분을 조회할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잠시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은행 직원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방금 적은 두 개의 종이를 들고, 건물 중앙에 마련된 서류함 쪽으로 걸어갔다.
“…네.”
그사이 ‘찬란한 노을’이 다른 은행 창구에 있는 행정기구 수장들을 쳐다봤다.
‘다들 지루해야 하네.’
‘찬란한 노을’이 깊은 고민에 잠기며 무릎 위에 얹어 있는 손을 까딱거렸다.
‘좀 더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겠어.’
은행 직원이 아직 일이 익숙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절차가 너무 복잡했다.
‘찬란한 노을’은 은행에 대한 보완할 점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때마침, 은행 직원 남자가 돌아와 은행 계좌 개설에 앞서 몇 가지 주의사항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명의는 무조건 본인이어야 합니다. 만일, 은행 계좌 본인이 아닌 경우 추후에 불이익을 당할 것입니다. 동의하십니까?”
“네, 동의합니다.”
“본인이 아니면 은행에 예금을 찾을 수 없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은행에 보관된 돈을 찾으려면 최소 보름 전에 연락을 해 주셔합니다. 동의하십니까?”
“네, 동의합니다.”
‘찬란한 노을’이 은행 직원 남자의 질문에 계속해서 동의를 표했다.
잠시 후, ‘찬란한 노을’이 자신의 이름으로 된 개설된 통장을 유심히 내려다봤다.
이름, 고객 계좌번호, 은행에 예금된 금액.
통장에 그 내용이 차례대로 적혀 있었다.
“통장은 고객님이 보관하셔도 되고, 저희 은행에 맡기셔도 상관없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은행에 보관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저희 은행에 맡겼다는 것을 증명하는 고객님의 신분 패입니다. 잘 간직하고 있다고, 은행에 볼일 있으면 이 신분 패를 가지고 오시면 됩니다.”
드디어 길고 길었던 은행 계좌 개설이 끝이 났다.
‘찬란한 노을’이 은행 바깥으로 나와 행정기구 수장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은행 계좌 개설을 끝마친 행정기구 수장들이 하나둘 나오면서 은행 개선점에 관해 얘기했다.
“수석 보좌관님! 절차가 너무 까다롭네요.”
“보름이라…은행에 있는 돈을 찾을 수 있는 기간도 좀 줄일 필요가 있을 것 같고.”
모든 행정기구 수장들이 은행 업무를 끝마치자, 입구에서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은행 안으로 앞다퉈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라에 큰일 하는 사람들이 은행에 대놓고 맡겼으니 딱히 무슨 문제가 있겠어?”
“일단, 적은 돈이라도 은행에 한번 보관해 봐야겠어.”
“괜히 집에 보관해서 불안하긴 보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은행에 맡기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해.”
특히, 시장 상인들은 단번에 은행의 가치를 깨닫고 은행 계좌 개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 * *
‘하늘의 태양’ 남쪽, 개척지 성채.
성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집무실에서 ‘차가운 나무’가 여러 백인장들과 함께 회의하고 있었다.
“정착지 두 곳에서 이주민들이 빠르게 마을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체로키 부족 전사들이 저번 전투로 이후로는 우리 땅에 단 한 번도 침입하거나 넘어오지 않았습니다.”
“경계선을 위주로 순찰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딱히 큰 문제는 없습니다.”
백인장들의 계속되는 보고를 받으며 ‘차가운 나무’는 정기적으로 상부에 보낼 내용을 하나둘 정리해 나갔다.
“체로키 부족의 노예사냥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이번에는 ‘상처 입은 화살’이 일어나 보고했다.
“지난봄마다 노예사냥이 줄어들긴 했지만, 간간이 주변에 있는 소수 부족과 부딪치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우리 ‘하늘의 태양’과 이로쿼이 연맹 전쟁 소식을 들은 체로키 부족이 주변 부족들처럼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 이로쿼이 연맹뿐만 아니라 아브나키 연맹, 일리노이 연맹과 동시에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아주 놀라자빠지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천인장님!”
“신의 아들인 전사인 황제 폐하께서 직접 참전했는데, 지기야 하겠습니까?”
“조만간 승전보를 들려올 거라 확신합니다.”
‘차가운 나무’와 회의에 참석한 백인장들은 이번 전쟁의 승리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좋아. 지금이 딱 좋겠군. 상처 입은 화살! 계획대로 주변의 부족들한테 우리 ‘하늘의 태양’이 셋 연맹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을 퍼트려.”
“알겠습니다. 천인장님! 참고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아마도 이번 전쟁이 끝나면 ‘하늘의 태양’에 들어올 부족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차가운 나무’가 전쟁에 참전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황제 폐하의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후방이 안전해야 전쟁에 참전한 황제 폐하와 전사들이 마음 편히 싸울 수 있다. 그만큼 우리가 맡은 임무가 중요하니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네. 천인장님!”
회의에 참석한 백인장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 * *
오네이다 호수, 오네이다 부족 큰 마을.
모든 부족이 그렇듯 오네이다 부족도 삶의 터전을 주로 강이나 호수가 있는 곳에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울타리가 넓게 둘러싼 오네이다 부족 큰 마을은 서른 채가 넘는 긴집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어서 있었다.
긴집의 크기를 보면 대략 몇 명이 거주할 수 있는지 짐작이 갔다.
많게는 백 명, 적게는 오십 명.
이 마을은 최소 천 명 이상이 거주하는 아주 큰 마을이었다.
짧은 감상도 잠시, 오백 명이 넘는 이로쿼이 연맹 전사들을 데리고 ‘하늘의 태양’의 전사들과 함께 당당하게 오네이다 부족 마을에 들어섰다.
“황제 폐하께 경의를 담아! 충!”
울타리 입구부터 마을 곳곳에 배치된 우리 전사들이 나를 향해 절도 있는 동작으로 계속해서 경례를 해 왔다.
“수고하는군.”
나도 일일이 가슴에 손을 가져가며 그들에게 경례로 보답했다.
웅성웅성!
그리고 마을에 포로로 잡혀 있는 오네이다 부족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하면서 큰 충격에 휩싸인 듯 술렁거렸다.
“우리 이로쿼이 연맹이 전쟁에서 지다니…”
“대추장들도 사로잡혔군.”
“그래도 전쟁에서 살아남은 게 어디야? ‘하늘의 태양’ 전사들이 포로가 됐다고 해서 딱히 해코지나 핍박 같은 거는 하지 않고 있잖아.”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나는 이 마을에 주둔하고 있는 아군 전사들이 이로쿼이 연맹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대충 감이 왔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군.’
출정하기 전, 모든 전사한테 강간이나 이유 없는 폭력, 약탈 등을 철저하게 금지했다.
그래서일까?
오네이다 부족 사람들이 정복군인 ‘하늘의 태양’ 전사들을 그리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나를 안내하던 백인장 전사가 마을 중앙에 자리 잡은 긴집을 가리켰다.
“여기입니다. 황제 폐하!”
잠시 후, 내가 머물 긴집에서 쉴 틈도 없이 바로 회의가 열렸다.
“포로들을 어떻게 배치하기로 했지?”
“네.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열 채의 임시 포로수용소를 건설했습니다. 한 채에 최소 오십 명 정도 배치하면 될 것 같습니다.”
마을에 주둔하고 있는 전사들에게 이미 연락을 주고받은 ‘용감한 늑대’의 대답에 몇 가지 더 지시사항을 내렸다.
“같은 부족 출신끼리 한곳에 몰아넣지는 마. 그리고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 큰 요주의 인물들은 따로 선별해 철저하게 감시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네, 알겠습니다. 백인장들에게 지시해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세찬 눈보라’를 쳐다보며 물었다.
“우렁찬 천둥 부대는 언제쯤 도착하지?”
“그렇지 않아도 ‘우렁찬 천둥’ 부대에서 연락을 해 왔습니다. 빠르면 이틀, 늦어도 사흘 안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사흘이라… 우리 전사들이 충분히 쉴 시간이 되는군.”
“네, 그렇긴 합니다.”
“일단 오늘 하루는 우리 전사들이 교대로 휴식을 줬으면 해.”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로쿼이 연맹 대추장들을 따로 감시하고 있는 ‘우직한 곰’에게 물었다.
“어때? 이로쿼이 연맹 대추장들이 마음에 좀 변화가 있는 것 같아?”
“황‥제 폐하께서 지‥시한 대로 웬‥만하면 모든 편‥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위기가 나름 괜찮습니다.”
‘우직한 곰’의 말 더듬는 것은 역시나 버릇이었다.
보고받는 게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우직한 곰’과 그를 따르는 전사들만큼 호위와 감시에 특화된 전사들은 없었다.
난 잠시 고민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좋아. 내일 저녁, 이로쿼이 연맹 대추장들과 자리를 만들어 설득하는 거로.”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
* * *
다음날.
내가 머무는 긴집 안에 이로쿼이 대추장들이 편안한 자세로 나와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지내는데, 딱히 불편함은 없습니까?”
“네. 황제 폐하 덕분에 큰 불편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먼저 간단한 대화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든 뒤 바로 본론을 꺼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하늘의 태양’과 이로쿼이 연맹의 미래를 위해 이로쿼이 연맹이 ‘하늘의 태양’에 들어왔으면 합니다.”
드디어 올 게 왔다는 듯 ‘거친 숨’과 이로쿼이 연맹 대추장들이 잠시 정적에 휩싸이며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
그때, 이로쿼이 연맹 대추장들을 대표해 ‘거친 숨’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우리가 거부한다 해도 이로쿼이 연맹 부족 사람들이 ‘하늘의 태양’ 지배되는 건 변함이 없겠죠?”
나도 사실대로 얘기했다.
“네. 다만, 여기 계신 대추장님들의 결정에 따라 이로쿼이 연맹 부족 사람들이 노예로 사느냐? 아니면 자치권을 가진 ‘하늘의 태양’ 사람들이 사느냐로 나뉘겠죠.”
많은 의미가 함축된 내용에 긴집 안이 또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고민할 것도 없이 이미 우리의 선택이 정해져 있네요.”
“네.”
‘거친 숨’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이로쿼이 연맹 대추장들에게 다시 한번 눈빛으로 동의를 구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조건이 있을 것 같은데. 우리 부족들이 ‘하늘의 태양’에서 자치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난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들이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최대한 정중하게 조건을 얘기했다.
“잘 결정하셨습니다. 우선 우리 ‘하늘의 태양’에 가입한 모든 부족이 그렇듯 이로쿼이 연맹 부족들도 창조주와 법이 정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 의무에 대해선 여기 ‘하늘의 태양’의 국방부 수장인 ‘용감한 늑대’가 이따가 잘 얘기해 줄 겁니다. 다만, 적정 나이에 있는 이로쿼이 연맹의 부족 사람들은 나라에서 진행하는 모든 건설 작업에 이 년간 의무적으로 동원될 것입니다. 물론, 무료가 아닙니다. 노동의 대가에 대한 임금이 지급될 것입니다.”
“이년간의 봉사라… 잘 알겠습니다.”
그 후로도 ‘용감한 늑대’에게 나서기 전까지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며 자치권과 대의원을 선출하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 * *
‘하늘의 태양’, ‘발톱’ 마을.
해가 뜨기 전, 새벽이 점차 밝아 오고 있었다.
그때, ‘발톱’ 마을 후문을 지키고 있던 ‘날카로운 사슴뿔’이 임시 막사에서 급한 보고를 받고 호탕하게 웃었다.
“푸하하하하! 크게 한번 당했으면 제대로 알아먹어야 할 거 아니야. 좋아. 지금 당장 용감한 늑대에게 전해. 덫에 갇힌 일리노이 연맹 놈들이 움직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