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native American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사람의 목소리가 분명히 맞지만. 힘이 하나도 없었다.
마치 가래 끓는 것처럼 들려왔다.
-속지 마라.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 우리를 방심하게 하기 위한 행동일 수 있어.
-전사들을 부르겠다.
두 명의 친위대 전사들은 눈빛과 손짓을 주고받으며 주변에 있는 전사들을 다급히 불러왔다.
저벅저벅!
“사‥사 살려‥줘!”
다리를 끄는 듯한 발걸음 소리,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친위대 전사들은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화로에 타오르는 불빛 안으로 희미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
사람인지 아니면 괴물인지 그 괴기한 모습에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친위대 전사들도 많이 놀란 듯 몇 발짝 뒤로 물러났다.
“배‥배고‥파!”
사람을 형상한 괴물.
머리에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물집으로 가득 찬 얼굴은 탱탱 부어있었다.
아니,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 전체가 물집으로 뒤덮여 있었다.
가죽옷을 가린 곳만 빼고 팔다리 상관없이 물집이 터진 부위는 붉은 피와 진물로 뒤범벅이었다.
“정지!”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두 명의 친위대 전사들이 창끝을 내밀며 앞다퉈 괴물을 향해 경고를 날렸다.
하지만, 정신이 반쯤 나갔는지 사람을 형상한 괴물이 간절한 눈빛으로 두 손을 흐느적거리며 계속 다가왔다.
“배‥배고‥파!”
그때, 지원 요청을 받은 친위대 전사들이 순식간에 들이닥치자 괴물을 처음 발견한 친위대 전사들이 다급히 소리쳤다.
“우리를 공격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아. 일단, 죽이지는 마.”
“그래, 제압만 해.”
어느새 사람을 형상한 괴물을 에워싼 친위대 전사들이 곤봉으로 무자비하게 패기 시작했다.
퍽! 퍽! 퍼퍼퍼퍽!
바닥에 드러누운 채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던 괴물이 어느 순간부터 정신을 잃고 조용해졌다.
* * *
임시 막사에서 잠을 자고 있던 나는 ‘세찬 눈보라’의 보고를 받고 사건 현장으로 향했다.
횃불을 든 친위대 전사들이 나를 보자 경례하며 자리를 비켰다.
바닥에 보고를 받은 괴물 남자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있었다.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현장에 있던 ‘사나운 늑대’의 말을 들은 나는 괴물이라는 부르는 남자의 상태를 보고 인상을 팍 쓸 수밖에 없었다.
“젠장! 다들 물러나! 전염병이 걸린 남자다.”
그 외침에 괴물 남자 주위에 있던 친위대 전사들이 한순간 소란스러워지며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나도 괴물 남자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세찬 눈보라’와 친위대 전사들에게 신속하게 지시를 내렸다.
“이 남자를 제압하거나 접촉한 친위대 전사들은 따로 분리해. 그리고 지금 당장 친위대 전사들은 단 한 명도 없이 비상용 비누로 몸을 깨끗이 씻는다.”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챘는지 ‘세찬 눈보라’가 서둘러 움직였다.
잠시 후, 한바탕 소란은 끝이 났다.
제일 먼저 목욕을 끝낸 ‘우직한 곰’과 나를 호위하는 친위대 전사들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황‥제 폐하! 괜‥찮으십니까? 저‥희가 가까이서 황‥제 폐하를 호위하는데.”
나는 다시 한번 매몰차게 경고했다.
“그 선 안으로 내 명령이 있을 때까지 절대 들어오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
뒤에서 ‘우직한 곰’의 풀이 죽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여전히 깊은 고민에 빠지며 전염병에 걸린 남자를 계속 살피고 있었다.
이 자가 걸린 전염병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피부에 나타나는 증상만 봐도 지독한 전염병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물집이 아예 피부를 집어 삼켜버렸네.’
내가 아는 나병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렇다고 홍역이나 천연두, 흑사병도 절대 아니었다.
그야말로 처음 본 전염병이다.
난 고개를 들어 다시 한번 심안으로 괴물 남자의 상태 창을 확인했다.
[멀리 돌아오는 강] [소속: 멸족한 대초원의 태양 부족, 약초치료사] [성향: 차분함, 환자 치료에 열정이 있음, 위대한 약초치료사로 성장할 가능성이 큼.] [능력치]체력 : 11 근력 : 8
민첩 : 5 지혜 : 21
약초 치료술(14/20)
약초치료사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직업이었다.
게다가 게임시스템의 영향을 받아 나에게만 있는 스킬도 있었다.
그것도 중급 비전투 스킬인 약초 치료술.
‘약초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의미네.’
스킬 명만 봐도 그가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엄청난 잠재력.
위대한 약초치료사가 되려면 어느 정도 잠재력이 있어야 할까?
그만큼 괴물 남자는 내가 보기에도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뛰어난 인재였다.
‘음!’
그래서 이 괴물 남자를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자를 살리려고 하다가 친위대 전사들이 알 수 없는 전염병에 죽을 수도 있었다.
내 특수 능력인 「치료」는 하루에 한 번.
그 사이, 전염병이 속수무책으로 퍼져나가 친위대 전사들을 치료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도 있었다.
그만큼 전염병의 전파력은 무시무시하니까.
드디어 긴 오랜 고민에 결정이 내렸다.
‘살린다.’
난 시체처럼 죽은 듯 바닥에 누워있는 괴물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손을 갖다 대자 ‘우직한 곰’이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제 폐하!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설마, 저 괴‥물 남자를 살리는 겁니까?”
‘우직한 곰’이 나에 대한 충심과 걱정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그저 치료에만 전념했다.
‘치료!’
순간 내 손에서 흘러나온 신성하고 투명한 빛이 괴물 남자의 몸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괴물 남자의 변화가 시작됐다.
상처는 빠르게 아물고, 온몸에 나 있는 물집들은 마치 탈피를 하듯 딱딱하게 굳어지며 몸에서 때가 벗겨지듯 쉴 새 없이 떨어져 나갔다.
[띠링!] [모든 병을 치료했습니다.]드디어 괴물 남자의 모든 치료가 끝났다.
‘치료하고 나니까 제법 말끔하게 생겼군.’
민머리는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전체적인 생김새가 시원시원하게 생겼다.
그리고 나이도 예상했던 것보다 어려 보였고.
이십 대 초반 정도.
짧은 감상도 잠시 친위대 전사들을 불러 아직도 정신을 잃은 이 남자를 옮기려고 했지만, 그만뒀다.
혹시, 이 자의 몸에 전염병균이 남아있을 줄 모르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내가 직접 옮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난 두 손을 뻗어 이 남자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나한테 가까이 오지 마라. 혹시 전염병이 옮길 수도 있으니.”
“황제 폐하!”
‘우직한 곰’과 친위대 전사들이 안절부절못한 모습으로 뒤따라왔다.
* * *
다음날.
난 허름한 막사에서 괴물이라는 부르는 남자와 같이 잤다.
아니, 나 혼자 밤새며 이 남자를 간호했다.
“숨소리도 편안하고, 치료도 다 끝났는데 왜 안 일어난 걸까?”
날이 진즉에 밝았는데도, ‘멀리 돌아오는 강’은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때, 바깥에서 ‘세찬 눈보라’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황제 폐허! 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입구에 놔둬.”
만일을 대비해 난 친위대 전사들과 철저하게 격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후로는 무슨 일이 없었지?”
“네. 밤새 조용했습니다. 다만, 황제 폐하가 지시한 대로 괴물 남자와 접촉한 전사들을 중심으로 이 도시를 계속 조사하는 중입니다.”
“그래, 뭐라도 발견한 게 있어?”
막사 입구의 가림막을 두고 나와 ‘세찬 눈보라’는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네. 운 좋게 괴물 남자가 머문 거처를 발견했고, 또, 청동을 제련한 대장간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제와 달리 소득이 괜찮았다.
“좋아. 이따가 따로 내가 들려보지. 그리고 아무래도 불안해서 여기에 오래 머무를 수 없을 것 같아. 정오쯤에 바로 출발할 수 있게 준비하도록. 참고로 막사 안에 있는 남자와 접촉한 친위대 전사들은 내가 치료해줄 때까지 계속해서 격리하는 것도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
몇 가지 지시를 받은 ‘세찬 눈보라’가 물러나자 난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 입구 쪽에 있는 음식을 가져왔다.
음식은 정확하게 2인분.
자리에 앉아 내 몫으로 배당된 옥수수죽에 물에 불린 육포와 함께 입에 가져갔다.
그 순간 침대 위에 있던 남자가 이제 막 잠에 깨어났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막사 안을 둘러봤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난 숟가락을 그대로 그릇에 놔두고 그 남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제야 정신이 들었나 보군. 몸은 어때?”
‘멀리 돌아오는 강’은 나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습관적으로 자신의 몸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손에 잡혀야 할 커다란 물집이 없었다.
‘멀리 돌아오는 강’으로 놀란 눈으로 부릅뜨며 연신 자신의 몸을 매만지며 확인했다.
“물집이 없어. 물집이 하나도 없어. 어떻게 된 건지?”
내가 있는 것도 잠지 잊어버리고 ‘멀리 돌아오는 강’이 그 자리에서 여러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지 기쁨과 환희의 눈물을 흘리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드디어 내가 이 지독한 전염병을 치료했어.”
난 가만히 기다리고만 없었다.
“그 전염병 내가 고친 건데.”
“네?”
다시금 ‘멀리 돌아오는 강’이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어떻게?”
“그건 설명하기가 좀 길어. 그나저나 어젯밤, 기억이 전혀 안 나나 보네.”
‘멀리 돌아오는 강’이 그 자리에서 생각이 잠기더니 시시각각 얼굴이 변했다.
“일단, 밥 먹고, 좀 마음이 진정되면 그때 얘기하지.”
“…….”
난 그의 몫으로 가져온 음식을 ‘멀리 돌아오는 강’에게 건넸다.
“어서 먹어. 듣고 싶은 얘기가 많으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따뜻한 음식을 보는지 ‘멀리 돌아오는 강’이 허겁지겁 옥수수죽과 육포를 먹기 시작했다.
잠시 후,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한 ‘멀리 돌아오는 강’에게 이 도시와 그의 사연에 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고생이 많았겠어.”
“…네.”
“이젠 우리는 이 폐허가 된 도시를 떠날 거야. 잘 생각해서 여기에 있을지 우리를 따라올지 결정해. 그럼, 이따가 보지.”
급한 볼일이 있어 자리에서 일어나자 ‘멀리 돌아오는 강’이 바닥에 바짝 엎드려 감사를 표했다.
“저를 치료해주고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 은혜 어떻게 갚을지도 한 번 생각해봐.”
“네?”
피식 웃으며 난 막사 바깥으로 나갔다.
* * *
“황제 폐하! 시체 썩는 냄새가 지독합니다.”
“여기에는 두 번 왔는데도, 영 적응이 안 됩니다.”
‘멀리 돌아가는 강’과 접촉한 전사들은 나와 함께 그가 머문 흙집에 들렀다.
나도 잘 알지 못하는 약초들이 바짝 말린 채 벽면 곳곳에 걸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말한 대로 전염병에 걸린 다섯 구의 시체가 구석 쪽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음! 딱 전염병 옮기에 좋은 장소군.’
한때, 사람들로 번성했던 태양의 도시.
어느 날 알 수 없는 전염병에 몰아쳐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대사제들은 신의 벌이라며 수없이 인신 공양을 했지만, 전염병을 사그라지지 않았다.
전염병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이 도시의 인구 삼분의 이가 전염병에 죽어 나가자 남아있던 사람들은 도망치듯 이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다.
약초 치료사 ‘멀리 있는 강’은 스승과 함께 이 전염병의 치료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이 도시에 남아 백 명도 남지도 않은 사람들을 치료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
스승은 삼 년 전에 죽었고,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 살아남았던 여자아이도 한 달 전에 죽어 버렸다.
이제 도시에 혼자 남은 ‘멀리 돌아오는 강’은 전염병을 지연시키는 약초와 얼마 남지 않은 식량으로 죽은 날만 기다리다가 우리를 발견한 거였다.
난 ‘멀리 돌아오는 강’의 사연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이게 우리의 현실이 될 수도 있어.’
나름 유럽인 침략자를 대비해 전염병에 대해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현재 야생 들소와 칠면조를 가축화하는 과정에서 생전 처음 본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었다.
난 이 도시에 발생한 전염병에 다시 한번 큰 충격을 받으며 크게 깨달았다.
‘지금부터 대책을 세워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