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72
273. 나의 가장 소중한 (8)
***
왕실의 엔델리온들은 원격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위성이 광자포로 지상을 정밀타격한 현장을.
천공에서 붉은 선이 나타나 세상을 양갈래로 찢는가 싶더니, 이어진 것은 난폭하고도 거대한 폭발이었다.
쿠르르르!
그 순간 먼곳 지하로 대피한 엔델리온도, 다른 콜로니에 남아 패닉 상태에 빠져 있던 이들도 진동을 느꼈다.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파괴력이었다.
극도로 달아오른 공기는 화염과 뒤섞여 팽창했다. 지독한 열기 속에서 콜로니는 순식간에 증발되었다.
거친 충격파와 불길이 땅을 긁고 대기를 휩쓴 뒤에는 재와 분진이 버섯 모양으로 자라났다.
왕의 지시에 따라 골렘들이 투입되었다. 어마어마한 범위로 퍼진 분진을 걷어내자 나타난 광경은 참혹했다.
“맙소사!”
누군가 신음을 흘린다.
왕은 눈을 꿈틀거렸다.
‘어쩔 수 없었다.’
해당 콜로니의 엔델리온들이 함께 희생될 것은 각오했다.
아시프-1이 다른 콜로니까지 이동하며 다 날려버리기 전에 처리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적은 이쪽의 망설임을 노리고 그런 ‘폭탄 갑옷’을 입고 나타났을 터.
인공지능의 경고한 대로, 광자포는 드래곤 하트라는 화약에 불꽃을 튀긴 꼴이 되었다.
“아시프-1은?”
“현장의 생명 반응은 전무합니다!”
처리했는가?
아직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샅샅이 뒤지라고 지시한 뒤, 그녀는 다시 폭발 현장을 보며 분통이 터지는 걸 느꼈다.
인공지능의 예측에는 틀린 부분이 있었다.
“···이 별이 지나치게 많이 손상되었잖은가!”
드래곤 하트가 반응하며 생긴 폭발은 콜로니를 날려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그 아래에 펼쳐져 있던 평야까지 소멸시켰다. 그 결과 해저 협곡 깊이에 버금가는 구덩이가 생겼는데, 이 자리 누구도 생각지 못한 규모였다.
신하들 중 일부는 고대인들이 믿던 신을 떠올렸다.
‘저건 마치, ‘별을 휘감는 촉수’가 땅에 촉수를 꾹 누르고 간 자국 같군!’
충격파와 열기는 토양층을 다 깍은 뒤엔 그 밑의 암석층까지 날려먹고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원래 드러날 일 없는 깊은 속살을 상처입혔다.
보통의 행성이라면 심저의 지각판이 위치했을 그곳엔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을 리 없는 밀도 높은 금속층이 천천히 녹아 내리고 있었다.
엔델리온들이 그들의 행성을 우주선처럼 이동시킬 수 있는 이유가 그곳에 있었다. 밝고 조용하며 쾌적한 지표면에는 촉수들의 거주지역이 몰려 있지만, 어둡고 뜨거우며 시끄러운 지하에는 이 별의 엔진을 비롯한 기관이 수납되어 있다.
“기계부의 피해 상황은?!”
보고가 이어졌다. 핵심적인 기관의 피해는 없고 외피가 손상된 정도였다.
왕은 복구는 나중에 하더라도, 일단 아시프-1의 물리적, 영적 흔적을 샅샅이 뒤지라고 지시했다.
그때.
“···아!”
계기판을 보던 신하 한 명이 뭔가를 발견한 듯했다. 왕은 다급하게 물었다
“영혼을 발견했나?”
왕은 기대와 긴장이 번갈아 휘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초조함 속에 신하의 얼굴을 노려본다
제발, 환호해라.
몸을 잃은 영혼을 확인했다고, 혹은 영계로 성불한 흔적을 발견했다고 기뻐해라.
오늘 몇 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충격 속에 말을 더듬지 마라. 당황하면서 말을 고르지도 마라. 이제 그만. 말 좀 그만 더듬어!
“······.”
영원처럼 느껴지는 찰나가 지나고.
신하가 말했다.
“저··· 저··· 전하!”
왕은 살의를 느꼈다.
***
위성이 별을 향해 광자포를 쏘아내기 직전.
아시프-1은 미리 그것을 감지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엔델리온들은 모를 것이다. 그의 모습이 노출된 그 순간부터 아시프-1이 이미 주문을 준비한 것을.
그의 두뇌가 생명체의 한계를 넘은 경지로 가속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며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고도의 집중력.
여섯 개의 뇌를 지닌 용의 주문도 지금처럼 정교하고 효율적이지는 못할 것이다. 뇌내 뉴런을 대신한 마금속 섬유가 기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그는 고취감을 느꼈다. 다시 한번, 어머니에게 영광을.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아시프-1은 가속된 사고로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마침내 포구에 빛이 이글거리고. 임계점을 돌파하기 직전의 순간.
차차착!
아시프-1의 전신에서 기계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갑각류가 탈피를 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드래곤 하트를 금속으로 연결한 폭탄 갑옷이 그의 몸에서 아주 얕은 간격을 두고 분리되었다. 갑옷과 아시프-1의 살갗 사이에 공기층을 만들어 부풀린 듯이.
그 상태에서 아시프-1은 주문을 완성시켰다.
‘텔레포트!’
폭탄 갑옷을 허공에 벗어 놓은 채.
아시프-1은 몸을 비롯한 알맹이만 전이했다.
다음 순간, 그는 다시 산소라고는 한 줌도 없는 우주 공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저 아래의 푸른 행성에는 이미 거대한 폭발이 꽃을 피우는 중이었다. 이 멀리서도 식별 가능한 규모로. 그가 벗어 놓은 위험한 껍질에 광자포가 직격한 것이다.
‘아슬아슬했군.’
위성이 레이저를 쏘기 전, 갑옷을 너무 미리 탈착했으면 적에게 포착되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너무 늦었으면 폭탄과 함께 폭사했을 터다.
간발의 타이밍을 포착해 스펠을 완성시킨 것은, 생물의 한계를 극복한 신경계 덕분이었다.
‘어디 보자.’
시선을 저 너머로 던졌다.
부유하는 슬라임 떼가 만든 은하수가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별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밤을 관통하는 물길처럼 보였다.
아직, 그리 멀리 가지는 않았다. 방향을 전환하면 순식간에 닿을 거리다.
아시프-1은 검지를 까딱거렸다.
‘자, 이리 온.’
정신파가 슬라임 떼에 닿은 순간.
강에서 물기둥이 솟아오르듯, 슬라임들이 군집에서 융기하여 잔가지를 키우며 뻗어 나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저 별에 관심이 없어 보였던 짐승들은 놀랍도록 빠르게 다가왔다.
당연히 지상에서는 난리가 났다.
“저 미친 것들이 다시 접근하고 있다!”
기겁한 촉수들의 대응이 이어졌다. 위성들이 일제히 광자포를 발사하고, 허공에 붉은 빗줄기가 가로지른다. 하지만 슬라임은 피하지도 않고 계속 돌진했다.
굶주린 슬라임들은 광분하고 있었다.
행성의 왜곡장에 일시적으로 구멍이 뚫린 지금. 슬라임들은 온몸이 뒤틀리는 듯한 충동을 느꼈다.
그들 감각을 자극한 것은, 폭발로 토양과 암석층이 날아가면서 드러난 지하의 금속층이었다. 아시프-1이 방금 한 일은 슬라임들이 그걸 확인할 정도로 가까이 부른 것 뿐이었다.
딱 먹기 좋게 녹아가고 있는, 우주에서 가장 귀한 마금속만 모아 놓은 진수성찬.
아시프-1이 거들었다.
‘너희가 오랜 시간 굶주릴 동안, 저 별에 사는 촉수들은 광물을 저리도 가득 모아 놓았다. 먹지도 않을 것을 꽁꽁 숨겨 놓았어.’
아시프-1은 저 짐승들이 아직 겪어 보지 못한 감정을 일깨우려고 한다.
‘너희들은 이럴 때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지? 내가 가르쳐 주지.’
아시프-1은 어떤 감정을 떠올렸고.
그것에 공조한 슬라임들은 이번에도 원시적인 텔레파시로 그것을 무리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간 먹이 위치 같은 단순한 정보만 전달하던 소통법이, 이번에는 감정을 전염시키는 데 사용된다. 여태와 마찬가지로 매우 빠르게.
아시프-1은 그가 배양한 증오가 슬라임 떼 사이 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래. 가라!’
미움을 깨우친 짐승들은 전과 비교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타깃은 이미 변경되었다. 엔델리온의 모성으로.
촉수 측은 뒤늦게 모든 위성을 동원하여 그들을 전멸시키려 시도했다. 마정석 낭비를 각오하고라도.
하지만 멀리 관측하고 여유 있게 대응할 수 있었던 골든 타임은 지났다. 슬라임 무리는 별에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결국 그중 몇몇이 빈틈을 노리고 대기권 가까이 진입했다. 광자포 때문에 왜곡장에 구멍이 뚫린 그곳으로.
위성이 그것을 관망할 리 없었지만···.
—-!
갑자기 발생한 폭발이 위성과 슬라임떼 사이를 가로막았다. 아시프-1이 손을 쓴 것이었다.
그 틈을 타서 슬라임 떼는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중 소수가 간신히 대기권에 도달했다. 개체 수로 따지면 겨우 수만에 달하는 수였지만 행성 하나를 뒤집어 놓기에는 충분했다.
슬라임들은 먼저 대지가 금속 재질 속살을 드러낸 현장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땅의 환부를 빼곡히 덮고 바닥을 녹여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모든 슬라임이 그런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슬라임 일부는 시선을 아래 대신 위로 돌렸다. 어쩌면 지표면부터 녹이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하늘에서 먹을 것이 떨어질 것도 같았기에.
아직 붕괴하지 않은 콜로니에서, 대피 중이던 엔델리온이 경악했다.
“저건 뭐야?!”
이곳에 존재해서는 안 될 생물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하늘에서 광자포가 쏟아졌지만 슬라임들은 개의치 않고 전진을 계속했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었다. 결국은 콜로니의 외벽에 도착, 바짝 붙어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벽이 무너지고 슬라임들이 날뛴다. 굶주림과 증오에 잠식된 짐승들이 폭주했다.
놈들은 더 이상 눈앞의 것이 유기물인지 무기물인지 구분하지도 않았다. 슬라임은 엔델리온을 흉내낸 금속 골렘과 진짜 엔델리온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촉수들은 자신들의 표피에 달라붙어서 몸을 녹이는 슬라임을 보고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그들이 몸부림치고 촉수를 휘두를 때마다, 엔델리온 본연의 푸른 체액과 슬라임의 산성액, 녹아내린 살점이 섞여 사방에 튀었다.
그런 상황을 보고받은 왕은 깊은 두통을 느꼈다.
슬라임은 아시프-1에 비하면 큰 위험이 아니다. 그럼에도 골렘 부대는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현장에 소환되었다. 기겁한 그들이 구조 신호를 보내자 프로토콜에 따라 반응한 것이다.
“아시프-1! 아시프-1은 어디에 있나?! 어서 찾아내!”
저들을 조종하는 것이 누구겠는가?
그를 찾아내야 한다.
잠시 후.
“저, 전하!”
슬라임 떼가 점령하지 않은 지역에서, 콜로니 외벽이 폭발했다는 급한 전언이 이어졌다.
“어디냐?”
그 위치를 확인한 왕은.
“······뭐?!”
다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슬라임들로 적들 시선을 분산시킨 뒤 아시프-1은 다시 한번 대기권 내로 돌아왔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더 이상 날뛸 힘이 없어.’
위성을 막으며 대량으로 터뜨린 뒤 남은 폭탄도, 방금 이곳을 침입하면서 마저 써버렸다.
아시프-1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머니가 예상한 대로군.’
이번에 진입한 콜로니의 내부는 그전까지 본 장소와는 많이 달랐다.
아직 대피하지 못한 엔델리온들이 가득하다는 점도 그렇지만, 그 대부분이 심지어 의식을 유지하지도 못했다.
아시프-1은 액체가 가득한 관 속에서 눈을 감고 있는 촉수 생물들을 바라보았다.
크기와 생김새가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전부 그들 종족 기준으로는 성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몸갈이 용으로 키워진 엔델리온들.’
이곳이 바로 델이 말한 몸갈이 공장이다.
그녀가 과거에 본 장면과 달리 현재 아이들은 전부 의식을 잃은 상태다. 달란트 채굴이 중단된 시점부터 강제로 동면을 시킨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동안 몸갈이의 기회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저들이 적절한 출하 시점을 넘기고 노화가 진행되는 걸 막기 위해 잠시 몸의 시계를 멈춘 것.
그는 창조주의 당부를 떠올렸다.
‘힘이 부족하거나 상황이 안 좋으면 여긴 건너뛰어도 좋다고 하셨지만.’
여기까지 온 김에 창조주의 기대에 100% 부응하고 싶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머릿속 정보에 힘입어 공장을 헤집기 시작한다.
델이 바라는 것처럼 이곳에 남은 아이들을, 잠든 모두를 깨워 데려갈 수는 없었다.
시험 삼아 몇 명의 무의식을 살펴보았지만 이미 세뇌 방지는 물론이고 공격적 암시까지 심어 놓은 상태였다.
최근에 민준에게 168명을 빼앗긴 경험이 낳은 대책인 것 같다.
‘자, 어디냐?’
아시프-1의 이번 타깃은, 행성 도처에 설치된 공장들이 하나씩은 꼭 보유한 것이었다.
가장 깊숙한 곳의 방까지 진입한 그의 눈이 커진다.
‘찾았다!’
실린더 형태 구조물에서 빛이 일렁이는 유리관을 빼낸다. 그의 몸집보다 컸지만 가뿐하게 갈무리한다.
‘이 작은 관 안에 전부 들어있단 말이지.’
왕실은 이 도난 사건을 심각하게는 생각해도, 다른 콜로니가 입은 피해에 비해 심각한 위기라고는 생각지 않을 터다.
유사시를 대비해 다른 공장에도 완전히 똑같은 것들이 준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설사 적이 빼앗아 간다고 해도 단기간 내 무기화 할 수 없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아시프-1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런 것을 노렸는지 이해 못할 것이다.
파지직!
콰쾅! 콰콰쾅!
폭음과 함께, 경비 골렘들이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시프-1은 이미 차원 도약 주문을 외우는 중이었다.
스펠이 완성된 순간.
파앗!
오늘 할 일을 다 했다는 충족감 속에서, 아시프-1은 생각했다.
‘이 정도면 저 보신주의자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겠지. 역사상 처음으로 본토 타격을 허락한 왕의 입지도 흔들릴 터고.’
그 결과 이 행성을 지금까지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대신, 다른 고대 종족과 뭉쳐 방어선을 구축할 것이다.
‘연구 시설을 터뜨리고, 핵심 인력으로 보이는 놈들도 많이 죽였으니. 앞으로 뭘 하려 해도 일정 차질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시프-1은 여기서 확보한 그것을 생각했다.
‘아버지는 역시 그 약속에 진심이셨군.’
방금 챙긴 것은 이 공장의 근원이자 핵심이라고 볼 수 있었다.
현재 생존한 모든 엔델리온의 유전자를 복제한 배아들. 몸갈이 재료의 라이브러리.
빛이 번뜩인 찰나, 아시프-1은 중얼거린다.
이것은 아마도 창조주가 델을 위해 준비한 나름의 선물이리라.
‘하긴, 168명은 한 종을 존속시키기에는 너무 적은 수지.’
민준은 분명 그녀와 약속했다.
엔델리온은 멸종시키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