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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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우리는 그런 자들의 부를 평범한 사람들에게 돌려주려고 해요. 그 과정에서 하은성씨가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요?!=
솔직히 예상 못한 말이라고 하면 거짓이었지만 하은성은 기분이 급속히 고조되는 것을 느꼈다.
레드 스타라고? 내가?
죽고 나서야?!
그들은 빈민가의 우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허황된 히어로가 아니다. 당장의 굶주림과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게 손을 내미는 실용적인 영웅.
여자는 간결하게 설명했다. 시위 현장에서 하은성을 목격한 감응력자와 그녀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그러다가 ‘우연히도’ 처음으로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무척이나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는 퍼뜨리지 못하도록 목격자에게 ‘입단속’을 시킨 뒤에 자신을 찾아왔다는 내용이었다.
레드 스타는 하은성의 특별한 능력에 주목하고 있다. 그 이유는 쉽게 추측 가능했다.
‘그래, 나한테는 퇴마진이 안 통하니까 어디든 침입할 수 있지. 영체감응력자만 피하면 들키지도 않을 테고. 그런데···.’
기쁜 건 그렇다고 쳐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저기, 저는 도둑질 같은 거 못 하는데요?=
양심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은성은 펭귄 코스튬 속 팔을 들어 올렸다. 날개를 흉내 낸 손이 책상을 그대로 통과한다.
레드 스타의 주 활동영역이라고 하면 당연히 부자 재산을 훔치는 것인데 하은성에게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물질과 접촉할 수 없으므로.
유령이 지적한 부분에 대해 여자는 이렇게 답했다.
“요즘 세상에는 만질 수 있는 것보다 만질 수 없는 것이 더 비싸게 팔리는 일이 흔하니까요.”
=······정보 같은 거요?=
“맞습니다.”
돈에 연연하지 않는 특징 때문에 설득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고용주와 상호 합의만 된다면 유령은 훌륭한 스파이가 된다.
물론 창이 발전하면 방패도 발전하는 법이어서 유령을 쫓고 막는 방법도 꾸준히 연구되어 왔는데 지금 그런 방패를 일체 무효로 만드는 존재가 등장한 것이다.
“물론 도와주시면 합당한 성의를 표하겠습니다. 이야기를 좀 들어보니··· 살아있는 동생 분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돈을 보내신다고요?”
‘저건 또 어떻게 알았지?’
하은성은 대부분의 유령과 다르게 돈이 필요했고 이 점은 고용계약서를 상당히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유인이 될 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경계심을 느끼며 그는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그런데요?=
“실례지만 여쭙겠습니다. 동생들은 그게 하은성 씨가 보낸 돈이라는 걸 알고 있나요?”
동생들은 그가 죽은 것은 알아도 유령이 된 것은 모른다.
=아뇨, 전혀 모르죠. 자원봉사자가 대신 돈을 보내 주니까.=
여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저희도 매달 익명으로 송금해야겠네요.”
=네?=
그녀는 이어서 액수를 입에 올렸고 하은성은 기절초풍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많이요?!=
“네. 동생이 모두 미성년자인 걸 감안해서 한 번에 목돈을 송금하는 것 보다는 믿을 만한 재단을 통해 매월 일정 금액을 후원할 계획입니다. 물론 그 외에도 유무형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 시작점으로 일단은 이사부터 해야겠네요. 어린 여자 둘이 살 만한 동네는 아닌 것 같던데요.”
이미 주소까지 파악해 놓았다는 이야기였지만 하은성 머릿속은 온통 그녀가 말한 액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만한 돈이면 더 이상 동생들 생계가 걱정되지 않을 것 같았다.
가장인 그가 죽고 동생들의 생활난은 극심해졌다. 허울뿐인 국가 보조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셋을 낳은 생모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가 기억하는 한 모친은 일이라는 것을 한 적이 없었고 같이 살던 남자가 떠나서 생활이 궁핍해지면 바로 다른 남자를 만났다. 그런 일이 반복되며 하은성에게는 아버지가 각자 다른 두 명의 동생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셋은 많아도 너무 많다고 여겼는지 생모는 이쯤에서 한 번 리셋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모양이다.
그녀는 당시의 남편과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두절되었다. 막내 동생의 친부이자 하은성의 의붓아버지, 그 천사 같은 오크마저 새벽 네 시에 출근을 하다가 머리에 총탄이 박혀서 죽은 뒤 생계는 오롯이 하은성의 몫이었다.
‘막내가 이제 고등학교 들어갔는데··· 사실 내가 보내는 돈으로는 택도 없긴 해. 하지만 이렇게 쉽게 믿어도 되는 걸까?’
그 말을 믿고 따르고 싶은 동시에 두려웠다. 다 거짓말이면 어떡하지? 사기를 당해도 자신은 유령이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혹시 걱정하실까봐···.”
그녀는 타블렛 화면을 보여주었다. 하은성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들은 이미 동생 계좌로 한 달 치에 해당하는 지원금을 넘긴 후였다.
=아니, 제가 아직 오케이도 안 했는데···.=
“저희 진심을 보여 드린 겁니다.”
고민하는 그를 부추기듯 은근한 목소리로 여자가 말했다.
“반성하게 되네요. 앞으로 저희가 더 열심히 일해야 할 것 같아요.”
자신들 이름 값을 못 믿느냐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자 하은성은 정신이 번뜩 드는 것 같았다.
‘그래··· 의심을 할 상대가 따로 있지!’
상대는 레드 스타다.
“하지만, 충분히 고민이 될 법도 합니다. 그러니 저희 이야기를 마저 들어보고 결정하시겠어요?”
이미 마음이 반쯤 기운 유령에게 그녀는 그가 해 주었으면 하는 일을 설명했다.
“김광우 회장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하은성 같은 순혈 인간도 오크 커뮤니티 출신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그 돈 많은 오크요?=
하지만 이 이름이 갑자기 왜 나오는가?
“네. 7대 재벌까지는 아니지만 유력한 자산가 중 한 명이지요. 말씀하신 대로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오크로 알려져 있기도 하구요.”
김광우는 단순히 돈이 많은 것 말고도 다양한 이유로 이름을 날렸는데, 주로 그의 악독한 행태에 대한 소문 때문이었다.
“알려진 사실만 종합해도 끔찍하기 짝이 없는··· 짐승 같은 자에요. 겉으로는 정상적인 기업인으로 위장했지만 뒤에서는 온갖 더러운 짓을 하고 있죠. 오크 갱을 후원하는 건 기정사실이고 마약 유통에도 손을 댔다 해요. 불법 도박판에서 현금을 끌어 모으는 건 애교 수준이고 미성년자들에게 강제로 매춘을 시킨다는 소문도 있죠.”
특히 마지막 말 때문에 하은성은 잔뜩 얼굴을 터뜨렸다. 두 여동생을 둔 입장에서 공분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김광우 뒤를 캐 왔어요. 그 과정에서 한 고스트의 도움도 받았고요.”
그런데 그를 따라다니던 유령이 갑자기 실종되었다고 한다.
“저희 조력자가 사라진 당일 김광우 행적을 역추적해 본 결과 의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날 그는 공식 일정에도 이름이 올라와 있지 않은 거물과 회사 밖에서 만났다고 해요.”
=누군데요?=
그녀가 읊은 이름을 들은 유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 은행 이름 아닌가요?=
“맞아요.”
=······아!=
그 의미를 뒤늦게 알아챈 유령에게 여자는 부연 설명했다. 그날 오크가 만난 상대는 7대 재벌 수장 중 하나이며 한국의 금융, 화학, 의료 부문을 꽉 쥔 대부호였다.
“조력자는 그 재벌에게 붙잡힌 것으로 추정돼요. 몇 달 동안 김광우를 따라다녀도 멀쩡했는데 하필 그 둘이 만나는 날 실종되었다? 재벌 쪽 수행원 중 영체감응력자가 있었을 확률이 높죠. 그렇다면 퇴마진에 구속되어 있을 텐데···.”
그녀는 하은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그 불쌍한 유령을 구출하라는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지금 그가 어디에 갇혀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어요. 레어인지, 회사 본사인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어딘가인지···.”
=그렇군요.=
“그런데, 이제는 하은성님을 알게 되었죠. 죽은 자 답게 모든 물리적 방어막과 감시체계를 무효로 만들 뿐만 아니라 산 자처럼 퇴마진마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특별한 존재를요.”
=그럼 제게 원하는 건.···=
“네. 저희가 염두에 둔 후보지에 침입해서 그 유령이 갇힌 장소를 찾고 알려 주시면 됩니다. 거기에 맞춰서 구출 작전은 저희가 짜고 실행할 테니까요. 하은성 씨에게 위협이 될 요소는 없어요. 아무리 치밀한 퇴마진이라도 통과할 수 있다는 걸··· 이미 오늘 이 사무실에 들어오는 순간 검증했으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까 뭔가 스쳐 지나가는 것 같기는 했어요.=
그녀는 하은성의 능력을 실험하기 위해 이곳에도 비슷한 진을 설치해 놓았던 것이다. 만약 그가 평범한 유령이었다면 정신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끼며 절규했을 끔찍한 결계였다.
그 사실을 자세히 언급하는 대신 그녀는 말했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그 자체로 큰 무기가 되죠. 상대는 하은성 님 같은 존재를 상상도 못하고 퇴마진으로 모든 유령을 물리칠 수 있다고 확신하겠죠. 그러니 잠입한 후에는 감응력자만 조심하시면 됩니다.”
무당에게는 투시능력이 없지만 유령은 벽 속으로 다닐 수 있다. 그들 눈에만 띄지 않으면 성공은 확실할 것 같았다.
하은성이 여전히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여자는 못을 박듯 말했다.
“재벌에게 붙잡힌 불쌍한 유령을 구해내는 일입니다. 그의 위치만 파악해서 알려주세요. 저희는 약속을 지킬 테니까요.”
여자는 다시 타블렛을 들어올렸다.
그곳에는 동생 계좌로 송금된 이력과 그 아이들의 간단한 신상명세 및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녀가 초승달 같은 미소를 그리며 물었다.
“어떤가요? 저희의 제안, 받아들이시겠어요?”
***
오크가 비명을 지르는 일은 거의 없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전투함성은 싸움을 앞두고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는 동시에 아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한 의도적인 소음이며, 그것에 깃든 감정은 공포와 경악 보다는 분노에 가깝다. 사람들이 오크의 비명 소리를 들을 일이 없는 것은 원체 그들이 그런 감정을 잘 숨기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팔이 민준 앞에서 비명을 질렀을 때 그는 꽤나 놀랐다. 오랜만에 듣는 오크의 분노 외 감정표현은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끔찍한 공포에 젖어 있었다. 어지간한 호러 영화 음향효과도 못 따라갈 만큼 처절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언어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소음을 내지른 다음에 정팔은 항의를 하듯 다시 소리쳤다.
“뭐라구요?!”
네 음절로 구성된 문장의 의미를 처음에는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음량이 너무 커서 언어라기보다는 통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구르릉!
사무실 창문이 공명하며 흔들렸다. 민준은 귀를 막은 손가락을 떼며 치를 떨었다.
“야! 깜짝 놀랐잖아. 민원 들어오겠다!”
“민원 들어와 봤자 저나 저희 팀이 출동하겠죠!”
“아, 그런가?”
“아무튼, 그 멀쩡한 후라이팬을 왜 봉인하시는 거에요?”
캐시가 빌려 가서 사무실에 그 조리도구가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지금 대화를 당사자가 들었으면 정팔의 비명보다는 덜 시끄럽지만 훨씬 오랫동안 그치지 않고 이어져 사람 미치게 만들 공명음이 울렸을 것이다.
“야, 말은 바로 하자. 그게 어딜 봐서 ‘멀쩡한’ 후라이팬이냐?”
“기능은 멀쩡하잖아요!”
“아니, 기능도 이상해.”
민준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캐시의 제보를 받은 뒤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해도 조리도구에 넣기에는 과분한 기능이야.”
그는 수상한 건 위험한 거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내가 여러 경로를 통해서 뒷배경을 파고 있는데··· 확실하게 밝혀질 때까지는 일단 봉인할 거다. 오늘 캐시가 갖고 돌아오면 바로 결계를 짤 거니 그렇게 알아.”
“하, 하지만 다음에는 제 차롄데!”
이들이 순서까지 정해가면서 후라이팬을 돌려쓴다는 사실은 민준도 알고 있었다.
에고 후라이팬 중독 증상을 호소하는 친구들에겐 안 된 일이었지만 그는 더 이상 저 정체 불명의 마도구에게 지인들이 접촉하도록 놔 둘 수 없었다.
“아무튼, 번복 없으니까 그런 줄 알아.”
“형님! 제발요! 한 번만 더 쓰고···.”
똑똑.
그때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우성을 치는 오크를 뒤로 한 채 문을 여니 그 앞에는 동철이 서 있었다.
꾸벅! 배꼽 인사를 한 뒤 고블린은 민준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주인님··· 안녕하세요···!”
“어, 동철이 안녕? 아침도 아닌데 어쩐 일이야?”
그러자 동철은 문 안을 흘깃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장님이··· 올라가 보라고··· 하셔서··· 위층에··· 오크 산 채로 불에 태우는··· 소리 난다고···.”
레이크필드가 정팔의 비명을 듣고 보낸 모양이었다
늘그막에 지구 이민을 와서는 탁월한 능력 때문에 은퇴도 못하고, 냉전 시대 내내 부림 받으며 험한 꼴 당한 양반 다운 과격한 발상이었다.
“여기 오크 안 태운다. 별 거 아니야.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전해 드려.”
뒤에서 오크가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동철아 미안하다. 형님께도 죄송합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시끄럽게 굴어서.”
이미 상황이 정리된 것을 안 고블린은 표정을 풀며 말했다.
“네··· 그리고 이거···.”
그는 편지 봉투를 하나 내밀고 다시 꾸벅, 인사한 뒤 아래층으로 사라졌다. 아침에 이미 우편물을 전달받았는데 그 사이 또 한 통이 온 것이다.
‘누구지?’
발신인도 없고 우표도 안 붙어 있으며, 오직 수신인의 이름만 적혀 있는 고급스러운 봉투. 더군다나···.
‘마법!’
각종 복잡한 조건을 걸어 놓고 그걸 만족시키는 사람이 접촉해야 봉인이 풀리는··· 효과에 비해 손이 많이 가서 거의 쓰는 사람이 없는 마법이다.
요즘 젊은 마법사들은 구닥다리로 취급해서 배우지도 않는 주문.
팟!
봉투의 봉인이 저절로 풀렸고 그 내용물을 꺼내서 읽던 민준의 표정이 굳었다.
그 순간.
위잉!
누군가 그에게 마법 통신을 시도하는 것이 느껴졌다.
‘젠킨슨?’
그는 오크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정팔아, 나중에 이야기하자.”
“형님! 제발 재고를···.”
그를 사무실 밖으로 쫓아내듯 보낸 뒤 민준은 레드 드래곤이 요청한 통신을 수락했다. 마법사들만 볼 수 있는 영상이 펼쳐진다.
“뭐야?”
상대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민준, 나랑 같이 어디를 좀 같이 가야 할 것 같네.=
몹시도 복잡한 심정이 드러나는 어투였다. 방금 서신을 읽은 민준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여자가 갑자기 연락을 해 왔어.=
용의 입에서 어떤 이름이 튀어나왔다. 봉투에는 적혀 있지 않고 그 안의 편지 하단 서명에 한문으로 기필된 이름과 동일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시비를 털었는데?”
=그런 게 아니었어. 이민국에 비공식적으로 임무를 의뢰하고 싶다는 것이네.=
젠킨슨의 이야기는 이랬다.
그와는 원수만도 못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고룡이 갑자기 연락을 하더니 한 번 만나자고 제의를 했다는 거다.
외부에 알리지 않고 최대한 조용한 방식으로 진행해 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치며, 흔치 않게도 이 요원이 이 일을 맡아 줬으면 좋겠다고 콕 집어서 지명까지 했다.
그 대상은 당연히 민준이었다.
=개인적인 목적으로 이민국 계약 요원을 움직이고 싶다는 거야. 자네가 관외 의뢰 안 받는 걸 아니까 아예 이민국 관리자에게 직접 연락을 넣은 거지. 나와 상당히 껄끄러운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그 고룡이 혼자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위중하고 급한 일이라면 네게는 더더욱 숨길 것 같았는데. 의외군.”
=나도 처음에는 들은 척도 안 하려 했지. 날 골탕 먹이려는 속셈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막판에 이런 말을 덧붙이더라고.=
젠킨슨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랑 자네가 요즘 고블린에 관심이 많은 걸 알고 있다고. 그 주제에 대해서 양측이 발전적인 논의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어휴.
그 말을 듣자 마자 민준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새어나갔군.”
고룡은 더욱 의기소침해진 말투로 말했다.
=최대한 조심해서 움직이려고 했는데, 워낙 엮인 분야가 많고 내가 꽉 잡지 못한 곳까지 들쑤시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네.=
그 부분은 정상참작이 되긴 했다.
그나마 상대가 젠킨슨과는 악연으로 엮여 있지만 민준과는 별 감정이 없는 게 다행이랄까?
‘어디까지 파악하고 있는 거지?’
의뢰를 받아 주면 그 대가로 민준과 젠킨슨이 요즘 신경을 쓰고 있는 고블린과 관련된 일에 대해 도움을 주겠다는 뜻으로 여겨졌다.
젠킨슨이 못마땅한 기운을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
=솔직히 내 마음 같아서는 필요 없다고 그냥 거절하고 싶지만, 그쪽에서 도와준다면 일이 매우 쉬워지긴 할 걸세. 자네를 위해서라면 그 여자와 잠시라도 손을 잡는 것이 맞겠다 싶어서. 함께 진행하면 속도도 빨라질 거야. 알겠지만 이 나라 병원과 복지행정, 보험 쪽은 그 여자 계열사가 거의 다 장악했잖나?=
민준도 그 말에는 동의하는 바였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일단은 만나보지.”
상대는 본래 화학회사로 시작했다가 금산분리법 위헌판결 후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국내 1위 상업은행을 먹어 치운 승부사일 뿐만 아니라 국내 건강보험 및 연금보험업계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재력가이자, 징그럽게 오랜 시간을 살아온 덕분에 무력으로도 절대 밀리지 않는 젠킨슨의 앙숙이다.
통신을 종료한 뒤 민준은 테이블에 놓인 서신 하단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젠킨슨과 자신이 언급했던 용의 이름이 그곳에 적혀 있었다.
창천(蒼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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