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76
76. 불신지옥 (4) >
***
민준은 캐시가 보낸 장문의 메시지를 모두 읽은 뒤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제법 자세한 정보잖아? 이런 걸 누구한테 들었지?’
캐시는 100% 정확한 정보는 아니라며 참고만 하라는 식으로 말미에 언급했지만 민준은 그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굳이 그녀 앞에서 이런 자질구레한 정보까지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이민국 데이터베이스에도 없는 지식을 자신이 아는 게 어색해 보일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외계인 정보원이라도 포섭했나? 누군지 물어봐야겠군.’
아마도 실수겠지만 상관인 자신에게 보고하면서 정보의 출처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캐시 답지 않은 일이다. 신경이 쓰였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민준은 시선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다. 요하임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용건이냐는 질문을 눈빛으로 보내자 그가 은은한 미소로 답했다.
“요원님께서는 종교가 있으십니까?”
이 상황에 포교인가? 종교쟁이들은 어쩔 수가 없다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잠시 시간을 할애하여 진리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보실 생각이 있으신지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장 종교를 가질 생각도 없습니다. 그리고 설사 신을 모시게 되더라도 종말론적 세계관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
“어째서죠?”
그는 교단 고위 사제임에도 불구하고 예배 금지라는 약속을 며칠째 준수할 뿐만 아니라 레어에서 봤던 모습과 상반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광란의 파티를 목격하지 않았다면 ‘꽤 괜찮은 사람’으로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민준은 사소한 잡담 정도에는 응해주었다. 전혀 관심 없는 주제라도 시간 죽이기에 딱이니까.
“결국 다 망해버릴 거라면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기를 쓰는 노력이 다 헛수고로 느껴지잖습니까?”
“맞습니다. 끝이 정해진 걸 알면 모든 것이 덧없어질 수도 있지요. 다만 저희 교리는 종말 앞의 허무함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종말 후를 대비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지요.”
민준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세상은 누군가 꾸는 꿈이라면서요? 그들이 깨면 전부 사라지는 환상이라고요? 그럼 뭣하러 아둥바둥 살아야 합니까? 모든 게 거짓에 불과하다는 전제 자체가 실존과 생(生)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현실과 거짓은 관점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꿈을 꾸는 신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거짓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서로를 거짓으로 취급하며 가볍고 허망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이 세계는 진짜이니까요. 현실이 가상에 개입하지 않는 한 가상은 곧 현실입니다. 신들이 잠에서 깨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사제는 덧붙였다.
그들이 교인에게 집단자살이나 사회질서 파괴를 종용하는 대신 일상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전하는 것도 꿈 속의 가치를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예배 중에는 마약을 사용하지만 끝나고 나서는 신성마법으로 깨끗하게 중독증상까지 날려버리는 것도 그런 가르침의 일환이었다.
‘뭐야, 생각보다 생산적인 교리잖아?’
한 가지만 빼면 말이다.
“그럼 그 기괴한 의식들은 대체 뭡니까?”
기괴하다는 단어도 민준이 몇 번이나 양보해서 고른 온건한 단어였다.
“잘 살아야 한다면서 왜 마약까지 동원하며 그런 짓을···.”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황홀경에 들지 않으면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지요. 그리고, 황홀경에 들지 않고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맨정신으로는요.”
“?”
그들 역시 좋아서 그런 끔찍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 부분을 지적하자 요하임은 순순히 인정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이곳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신이 잠에서 깬다면요?”
그 시점은 당장 내일이 될 수도, 혹은 수만 년이 흐른 뒤가 될 수도 있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모든 게 붕괴하여 사라질 겁니다. 예민준 요원님, 당신은 잠든 사이 꾼 모든 꿈을 다음날까지 기억하십니까?”
“···아니요, 대부분 잊어버리죠.”
“깨어난 신 역시 꿈에서 봤던 것을 완전히 잊어버린다면요? 우리는 그의 머릿속에서 피어난 가상의 존재입니다. 현실로 돌아간 그에게 망각되면 완전히 소멸될 터이지요. 하지만, 그가 우리를 기억한다면?”
“죽어도 기억해주는 이가 있다면 죽은 게 아니라는 감성적인 접근인가요?”
“비유가 아닙니다. 신의 사고와 무의식적 상상에 의해 우리가 태어났다면 그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 실존은 유지될 겁니다. 육의 형태든, 영의 형태든 간에. 그리고 이런 깨달음은 한 가지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어떻게 해야 신이 잠에서 깨고 나서도 우리를 기억할 것인가?”
“엄청나게 인상적인 꿈이어야 하겠군요.”
예를 들면 온 몸이 땀에 젖어서 비명을 지르며 깨게 되는 악몽 같은.
눈을 뜨고 나서도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지는 끔찍한 꿈.
“신이 꾸는 꿈은 세계적, 차원적인 규모입니다. 매우 정교하며 광범위하지요. 이런 광활한 꿈 속에서 그분의 기억에 남기 위해서는 그만큼 인상적인 사건을 벌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매번 대학살이나 전쟁 같은 짓을 저지르면 꿈 속 세계가 황폐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뱀과 쥐, 양을 죽이는 정도로는 괜찮다는 겁니까?”
“우리는 항상 최적의 형식을 찾아왔습니다. 그 세계 주민과 공존하는 동시에 신의 ‘눈길’을 끌 수 있는 방법이 오랜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정착되었고 현재의 정례적 예배 순서와 형식으로 굳어졌지요.”
“그런데 그 꿈이 너무 끔찍해서 신이 잠에서 깨 버리면 어떡합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 그런 일에 성공한 교인은 없는 것 같군요.”
“글쎄요. 제게는 너무 위험한 교리처럼 들리는데요. 당신들은 신의 기억 속에 남고 싶은 동시에 꿈속 세계 주민들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게 노력한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교인이 나오면 어떡합니까? 가장 확실하게 기억에 남는 방법은 잠을 깨워버릴 악몽을 선사하는 것 같은데요. 당장 신의 잠을 깨우고 싶은 자가 나타난다면?”
“그건···.”
“그 교인이 계획을 실행으로 옮길 힘까지 갖고 있다면 그때는 제가 레어에서 목격한 장면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재앙이 몰아 닥칠 것 같군요. 준비하십시오. 1분 안에 여기에 도착할 겁니다.”
마지막 문장은 직전까지 했던 말과 비교해서 어조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요하임의 반응은 조금 늦었다.
총대주교가 가까이 온 것을 민준이 알아차린 것이다.
사제가 물었다.
“······부탁한 대로 가능하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위험 부담은 사제님이 지는 거니까요.”
요원은 그와 대화를 나누던 호텔방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것은 요하임이 사전에 부탁한 일이기도 했다. 민준이 곁에 있으면 상대가 경계하여 습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
그리고 민준이 총대주교를 죽이기 전 잠깐이라도 그를 보고 완전히 미쳤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실낱 같은 기대를 버리지 못한 눈치였다.
방에 홀로 남은 사제는 문 쪽을 경계하며 노려보았다. 자신을 살해하기 위해 오고 있는 교단의 지도자를 기다리며.
그런 그의 머릿속에 텔레파시가 날카롭게 박혔다. 경고였다.
=그쪽이 아닙니다! 반대!=
급히 몸을 돌린 순간.
요하임은 창문 밖에 달라붙은 검은 형체를 보았다. 트롤에 비견되는 거대한 몸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유리창을 반 이상 덮고 있었다. 형형한 안광이 투명한 유리를 뚫고 빛났다.
쨍그랑!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유리가 산산조각 났다.
잘게 깨진 파편을 밟으며 거인이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예상과 달리 상대는 대뜸 요하임을 죽이려고 달려들지 않았다. 대신, 앞에 서서 조용히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요하임.”
“총대주교님.”
사제는 그를 쏘아보았다.
총대주교는 차원 #77-102 원주민 중에서도 덩치가 큰 축에 속했다. 그러니 트롤을 제압하여 산 채로 가죽을 벗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신성력 뿐만 아니라 엄청난 체력도 요하는 행위였기에.
침입자가 두건을 벗었다. 창백한 피부가 드러난다. 일렁이는 광기를 담은 두 눈과 달리 이마 중앙에 달린 세번째 눈은 감겨 있다.
요하임이 쏘아붙였다.
“제발 이 미친 짓거리 그만 두세요!”
“요하임.”
“뮐러 대주교와 슈미트 대주교, 라가나탄 주교까지 참혹하게 살해해 놓고 이제는 접니까? 이 다음은요? 성이 안 풀리면 몇십 명이고 몇백 명이고, 조금이라도 신성력에 눈 뜬 사제라면 전부 죽여 없앨 작정입니까?”
“······나는 돌아가야 한다, 요하임.”
“그 정신나간 소리 좀 집어 치워요! 설령 사제를 죽여서 제사를 지내 봤자 신이 당신을 고향차원으로 보내줄 것 같습니까? 우리에게 응답하는 건 잠든 신의 무의식입니다. 신성력은 사제의 능력 내에서만 기적을 행사한다고요! 그리고 아직까지 도약선 없이 차원이동을 했다는 성직자는 목격된 바 없습니다!”
“이미 많이 늦었어. 더 늦어지기 전에 나는 가야 해. 이번 사이클을 놓치면 안돼.”
“이제 와서 왜 그렇게 고향에 집착하는 겁니까? 그게 당신이··· 직접 거두어들여서 자식처럼 키운 주교들을 직접 죽일 만큼 중요한 일인가요? 우린 대체 당신에게 뭐였습니까?!”
“요하임, 미안하다.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
총대주교는 말하다 말고 두 눈을 뒤집는다. 온 몸에 옅은 경련이 일어나더니 지금까지 꾹 감고 뜨지 않았던 이마의 세번째 눈꺼풀이 열렸다.
그 안에는 흰자도 검은자도 없었다. 대신에 붉게 부푼 살덩어리가 꿈틀거린다. 돌돌 말아서 쑤셔 넣은 혀와 비슷한 돌기가 그 안에 있었다.
저것이 저 종족이 황홀경에 빠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걸 숨어있는 민준은 알았다. 스스로 트랜스 상태로 몰입하여 신성력을 끌어내려는 것이다.
‘더 볼 필요도 없다!’
피슝!
외계인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공기를 찢는 찰나 궤도 끝에 있던 요하임은 저항할 생각도 못하고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민준의 제지 때문에 환각상태에 빠지지도 못한 그는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외계인의 거대한 손이 그의 머리를 어깨에서 분리할 것 같던 순간.
캬아아아아악!
그림자 괴물을 등 뒤에 붙인 채 민준이 허공에서 날아들었다.
검은 증기에 감싸인 그의 팔과 외계인의 손톱이 부딪힌다.
이미 어둠 속에서 견제타처럼 저주를 날려 봤지만 통하지 않는 걸 확인하고 원초적인 방법을 쓰기로 한 것이다.
쾅!
몸과 몸이 부딪쳤지만 금속끼리 충돌하는 소리가 울렸다.
한편, 민준이 일으킨 돌풍에 밀려난 요하임은 엉덩방아를 찍었다.
그가 눈을 한 번 깜박이는 순간 요원은 이미 몇 번의 공격을 총대주교에게 쏟아 부은 뒤였다.
검은 궤적이 공기를 가르며 채찍처럼 몰아친다. 민준의 머리 위에서 성난 괴물이 울부짖을 때마다 그림자의 기세가 거세졌다. 사제가 끌어낸 성스러운 힘도 소환된 암귀(暗鬼)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멍하니 주저 앉은 채 요하임은 보았다. 어렸을 때 길거리를 떠돌던 자신을 향해 뻗어 왔던 두 팔이 뜯겨 나가고, 많은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기 위해 함께 하루 수 만보를 걸었던 두 다리가 망치로 두들긴 듯 저며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몸통만 남은 외계인이 바닥에 쓰러졌다.
교단에서는 대단한 성직자로 추앙받는다지만 민준의 상대는 못 되었다. 스스로 뇌내 마약을 통제한다고 한들 이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스스로 그어 놓은 기준일 뿐.
싸움의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아아··· 아아!”
민준은 하늘을 보고 누운 총대주교의 세번째 눈에서 피거품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지금 이 순간 극도의 흥분 상태에 도달했다는 증거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일부러 유도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의지와 상관없이 엔도르핀 같은 물질이 폭주하는 중일 수도 있다.
쓰러진 광인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인간의 언어 대신 외계의 말을.
그걸 알아들은 민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드디어···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개를 돌려 요하임을 바라본다. 사제는 굳은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아래로 내렸던 턱을 다시 끌어올리기도 전에 민준은 검은 섬광을 바닥을 향해 뿌렸다.
호텔 카펫에 그어진 사선과 함께 외계인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민준은 총대주교의 죽음을 확인했다.
요하임이 다시 입을 연 것은 민준이 이민국에 뒷정리를 요청하는 통화까지 마친 뒤의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제 요청을 들어주셨군요.”
계약서에 서명할 때 민준은 예배 금지라는 조건을 걸었는데, 그러자 요하임 역시 한 줄을 추가했다. 가능한 시신의 ‘머리’가 손상되지 않도록 노력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가 평소 타겟의 두개골을 까부수는 걸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한 듯.
그러지 않을 경우의 페널티 같은 것은 없었기에 민준 입장에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었지만 결국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요원이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시신은 그쪽에서 회수해 갈 겁니까?”
“네. 그러겠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총대주교님은 지구 교인들에게 큰 존경을 받고 있으니까요. 정식으로 성인(聖人) 추대 절차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저희에게는 그 어떤 성인보다 위대한 존재로 추앙될 겁니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말로가 좋지 않았지만 이곳 교인에게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지도자다.
따라서 죽음의 진상을 교인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요하임은 그의 머리라도 가지고 가서 방부처리를 할 생각인 것 같다.
‘그건 마음대로 하라지. 어차피 목이 잘린 상태에서 부활할 수 있는 종족도 아니니까.’
민준은 그의 곁에 선 채 이민국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종교적 지주이자 양부(養父)나 마찬가지였던 외계인의 잘린 목을 영정 사진처럼 끌어안은 사제는 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렇게 주저앉아 있었다.
***
일주일의 기한을 두고 시작한 임무는 생각보다 빨리 끝나버렸다.
거액의 의뢰비를 전액 선금으로 받고 착수했기에 뒤처리할 것도 없었다. 요하임은 총대주교의 머리를 수습하여 바로 독일로 돌아갔고 민준은 다시 사적인 용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젠킨슨 휘하 대기업 연구원들에게 하청을 맡긴 마법진의 파편들, 일종의 ‘부품’이 하나씩 완성되어 배달되기 시작했다.
배송지는 젠킨슨이 사들인 창천의 레어였다.
그런 거대한 레어에 눈독을 들일 드래곤도 달리 없었기에 매입 절차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이왕이면 기존 마법진이 설치되었던 장소를 재활용하는 게 좋으니까. 이렇게 공간이 넉넉하면서 마법적으로 안정이 된 장소도 드물고.’
민준은 빠르게 조립을 끝마친 다음 달란트 추출을 위한 시운전을 돌려 보았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고 조금씩 손볼 부분은 보였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성공적이었다.
‘이대로 몇 번만 테스트를 더 해 본 다음 바로 달란트를 추출해도 되겠어.’
생각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빠르면 내일, 늦어도 모레 정도면 용에 빙의된 하은성을 이곳으로 데려오면 될 것 같았다.
그가 흐뭇하게 웃으며 오늘 일과를 마치려는 순간.
띠링!
익숙한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뭐지?”
바로 확인한다. 눈 앞에 외계 문자가 떠올랐다.
세무조사 통지서 같은 중요한 내용도 ‘늦게 보거나 못 봐도 어쩔 수 없지’라는 식으로 메일 형태로 보내 버리는 위원회가 머릿속에 직접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는 보통 두 가지다.
달란트와 관련된 변화가 발생했거나, 임무와 직결된 변경사항이 있을 경우.
이번에는 후자였다.
– 기관이 의뢰한 특수 임무 목록이 갱신되었습니다. 수형자들은 확인하여 업무에 참조 바랍니다.
밑의 리스트를 훑어본다. 그랬더니 과연,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444개였던 임무가 443개로 줄어 있었다.
‘뭐가 없어진 거지? 설마··· 나 말고 어떤 수형자가 성공해서 달란트를 받은 건가?!’
혹시라도 그가 눈독들인 임무가 클리어 된 것이 아닐까 마음이 급해졌다.
보상으로 책정된 달란트 금액이 클수록 성공 확률이 낮기에 민준은 1번 임무부터 스크롤을 내리며 확인했다.
1. 차원 #31-490의 고질적인 식량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제시: 40,000 달란트
2. 수배자 페치노그가 이끄는 차원해적단의 비밀기지 위치 파악 및 제보: 45,500달란트
3. 260년 마다 창궐하는 전차원적 전염병 ‘세게르 파피노 바이러스’의 백신 및 치료법 개발: 47,700달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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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그가 노리는 임무는 아직 클리어 되지 않은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준은 두 눈을 부릅떴다.
‘···뭐야, 이게 왜 없어졌어?’
444개의 임무 목록은 이미 외워서 착각할 리가 없었다.
분명했다. 48번 임무가 리스트에서 사라지고 예전에 49번 임무였던 것이 48번으로 내려와 있었다.
민준은 사라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똑똑히 기억한다.
48. 자체 격리에 들어간 차원 #77-102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접 목격하여 보고: 61만 달란트
민준은 설마 하면서 사무실로 돌아와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그리고 몇 초 후 같은 현상을 목격한 수형자들이 보낸 산더미 같은 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각 차원에 퍼진 수형자들은 결국 빠르게도 해답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스스로 락다운 체제에 돌입했던 차원 #77-102의 주민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격리를 풀고 단 한 개의 터미널을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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