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95
95. 부부싸움은 칼로 목베기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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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팔 경위는 앞으로 5년만 채우면 은퇴할 계획이다. 중년과 노년 사이에 해당하는 나이지만, 그는 여태 또래 인간들이 말하는 중년의 위기라는 걸 겪어 본 적 없다. 오크로 태어난 그의 삶 자체가 위기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직장 생활이라고 순탄할 리 없었다. 수갑을 차는 그림이 익숙한 종족이 수갑 채우는 직종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쏟아졌던 멸시와 차별은 이제와 곱씹을 거리도 못 된다.
진저리가 나서 생각하기 싫다거나, 트라우마 때문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렸기 때문은 아니다. 어느 사건 하나를 콕 집어낼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그의 사회 생활 전반에 그런 일들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전부 기피하는 일을 맡은 현재 상황도 지난 삶의 연장에 불과하다.
“에이 니미, 저 새끼는 이 밤중에 또 어딜 간다고 지랄이래요?”
고급 주택가 골목에 세워 놓은 잠복수사 차량에서 자경단원이 투덜거렸다. 정팔은 수사 프로토콜에 따르면 이런 임무에 동원될 일이 없어야 할 비정규직 청년의 한탄에 대꾸하는 대신 조용히 시동을 걸었다.
타운하우스 주차장 문이 열리고 외제차가 조용히 빠져나온다. 정팔은 차를 출발시키며 뒤를 따라붙었다.
연기파 배우 곽도출과 인기 아이돌 간의 스캔들은 연예계에 관심 없는 정팔의 귀에도 들릴 정도로 한때 뜨거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정팔은 그 사건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매일 저 불륜남을 따라다니며 신변보호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될 것이라고는 말이다.
“경위님, 저희 대체 언제까지 쟤 따라다녀야 되는 거에요?”
“일주일만 더 참아. 서장님이랑 친분이 있다더라. 설사 협박을 받았더라도, 공권력을 무제한으로 자기 호위로 쓸 수는 없지 않겠냐? 신변보호 위원회에서 재심사를 하겠지.”
“그 협박도 부인이 전화해서 죽여버리겠다고 난리 친 거라면서요. 그게 무슨 대단한 협박이라고··· 자기 남편이 열살이나 어린 하프 엘프랑 떡치고 다니는 걸 알면 성모 마리아 입에서도 죽인다는 소리 나오겠네!”
문제는 그 전화를 마지막으로 부인이 정말로 행방을 감춰버렸다는 점이다. 정팔을 포함한 모두가 의외라고 여기는 부분이었다.
스캔들이 터진 당시 당사자들은 필사적으로 부인했다. 사실 목격자는 증인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고스트뿐이고 증거 사진 한 장 나온 것이 없었다. 또한 곽도출은 무슨 수단을 쓴 것인지 현장을 적발한 부인에게 입막음을 시킨 것이다. 이혼도 물론 하지 않았고.
풍문은 결국 덮였다.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으며 당사자들이 촬영하던 영화에서 하차하거나 광고계약 위자료를 물어주는 일도 없이 마무리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와중에 부인이 갑자기 ‘죽여버리겠다’며 전화 한통을 남기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곽도출 정도면 돈도 졸라 많을 텐데, 내가 부인이면 당장 이혼 소송 걸어서 위자료나 두둑하게 뜯어내겠네. 뭣하러 협박한 다음 버로우를 타겠어요?”
정팔도 그 부분은 동감이었다. 귀책사유가 남편에게 있으니 그녀 입장에서는 훨씬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행방불명이라?
자경단원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제가 볼땐··· 곽도출 저거 다 쇼에요. 부인이 자기 발로 사라진 게 아니라 곽도출이 쓱~ 해 버린 거 아니겠어요?”
목을 손날로 내려치는 시늉을 하며 비아냥댄다.
“간신히 입막음은 했는데, 자꾸 언론에 터뜨린다고 협박하고 난리 치니까 곽도출이 쫄려서 마누라를 묻어버린 거죠.”
“그리고 적반하장 식으로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구했다? 자기 죄를 덮으려는 의도로?”
“그럴싸하지 않아요?”
박정팔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자 자경단원은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애초에, 이것도 다 쓸데없는 짓거리에요. 이능력자도 아니고 선천적으로 몸도 약해서 병원을 집처럼 들락날락했다는 여자가 곽도출을 어떻게 죽여요?”
“총 모르냐, 총?”
“에이, 진짜 누가 자길 죽일 것 같다고 걱정했으면 곽도출도 온 몸에 방탄 부적 같은 건 두르고 다니겠죠. 안 그래요?”
전부 타당한 이야기였지만 정팔은 거드는 대신 조용히 차를 세웠다. 앞서가던 곽도출 차가 한 고급 빌라 앞에 섰기 때문이다.
창 밖을 확인한 자경대원이 거친 욕을 뱉었다.
“에라이! 저 개새끼. 또 떡치러 왔네!”
정팔 역시 옅은 한숨을 쉬었다. 여긴 곽도출이 스캔들이 터졌던 그 하프 엘프와 밀회하려는 목적으로 새로 구한 장소다.
‘간도 크지.’
소란은 잠재웠지만 언론이 여전히 주시하는 상황인데 불륜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 대범함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경찰에 보호요청까지 한 것 치고 지나친 행동이긴 해. 서장님만 아니었으면···.’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곽도출은 벨을 누른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1층 현관문이 바로 열리지 않는 듯했다.
곽도출이 투덜거렸다.
“에이 씨. 자지 말고 기다리라니까.”
몇 번 더 벨을 누르더니 결국 전화를 건다.
그 사이 차 안의 자경단원은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햐! 그런데 확실히 예쁘긴 해. 보세요, 경위님. 대체 곽도출이 얘를 어떻게 꼬셨을까요?”
불륜 상대인 아이돌 사진을 넘기면서 연신 감탄을 터뜨린다. 정팔은 화면을 흘깃 보고 다시 눈을 돌렸다. 그리고 한 마디 쏘아붙인다.
“야, 우리 일하는 중이다. 정신 똑바로 안 차리···!”
바로 그때, 정팔은 등을 타고 흐르는 소름을 느꼈다.
“!”
예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한 걸음. 창 밖 가로등 불빛 아래 얼룩이 끼어들었다. 어둠과 뿌연 빛이 만나는 경계에서 희미하게 누군가의 형상이 보인다.
지금까지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것은 한 여인이었다. 전등이 만드는 그림자가 형상을 뭉갠 탓에 그녀의 모습은 왼쪽 팔이 터무니없이 길고 오른쪽 주먹은 지나치게 큰 괴물 같았다.
또 한 걸음. 불빛을 정면으로 받는 위치까지 오자 정팔은 그녀의 두 손이 기형이 아니라 각각 무언가를 들고 있는 상태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도.
”!”
서류에서 본 적 있는 외모.
접근 중인 자는 곽도출의 부인이었다.
그리고.
우웅! 우우웅!
낮게 울리는 소리.
얼마 전에 정팔이 착각한 적 있지만 이번에는 틀림없었다.
‘검명(劍鳴)?!’
소리의 근원은 왼손에 든 장검이다. 저 가냘픈 팔로 들고 있는 게 용한 무기.
이런 밤중에 칼집 없이 도검류를 휴대하는 것만으로도 문제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그녀의 오른손에 있었다.
반대편 손이 움켜쥔 것은 하프 엘프의 머리였다. 눈물로 번진 마스카라 때문에 엉망진창이 된 얼굴이었지만, 정팔은 그 머리가 방금 전 휴대폰으로 본 아이돌 가수를 매우 닮았다고 생각했다.
“씨발! 내려!”
두 사람이 거칠게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간 순간 곽도출도 상황을 깨달은 듯했다. 소음이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으··· 으아악!”
등을 돌리며 필사적으로 줄행랑을 친다.
그 순간 곽도출의 아내가 무서운 기세로 땅을 찼다. 정팔과 자경대원이 총기를 들고 조준을 마치기도 전에, 한 줄기 바람처럼 여인은 그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몸을 튼 순간 정팔은 곽도출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탕!
밤공기를 찢는 총성. 당황한 자경대원이 제대로 겨냥하지도 않고 총구를 돌려 쏜 것이다. 하지만 총알은 스치지도 못한 것 같았다.
그녀는 오히려 그것을 육상경기의 공포탄 취급하듯, 굉음에 맞춰 하늘로 뛰어오른다.
“?!”
그 모습은 물을 차고 나는 제비 같았다. 시퍼런 살기가 호선을 그리며 쏟아졌다. 검날이 무겁게 울렸다.
웅! 우웅!
여자의 검이 공기를 찢으며 큰 궤적을 그린 순간, 곽도출의 머리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
독일에서 일이 마무리된 뒤, 민준을 따라 한국으로 온 재판관의 이름은 윰투스다.
그가 민준에게 신변을 의탁했다는 사실이 위원회에 알려지면 안 되기에 수형자는 그를 가장 안전한 장소에 머물게 했다.
그곳은 한때 달란트와 융합된 상태의 하은성이 머물던 지하실이었다.
윰투스는 자신이 영광된 성임을 맡게 된 것에 감격했고,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지하실이었지만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민준이 앞으로의 일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자신을 모차원 사제들과 접선시키기를 기다리며.
처음에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기도와 묵상으로 하루를 채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곳에서 내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 화신께서 어떤 뜻을 품으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필이면 이곳에 수형자의 몸으로 임하신 이유가 있을 터!’
화신이 지구를 고른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한동안 떠나지 않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이 세계에 조금이라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겠군.’
당장 자유롭게 밖을 돌아다닐 수 없는 상황이지만 나중에 어찌 될지 모르는 일.
급히 파견되느라 이쪽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도 습득하지 못한 윰투스는 앞에 놓인 TV를 바라보았다.
‘신룡이 말하길, 이 영상송출장치가 정보 및 예술작품을 열람하는 단말기라고 했지.’
하은성이 이 골방을 윰투스에게 물려주며 설명해 준 것을 그는 잊지 않고 있었다.
이단재판관은 TV를 켠다. 하은성의 세팅에 맞춰 넷플릭스 로고가 떠올랐다. 또한, 전 투숙객이 마지막으로 봤던 프로그램이 선택지에 떠올랐다. 윰투스는 어설픈 손짓으로 리모콘을 조작하여 클릭한다.
그러자 화면에 펼쳐진 것은 바닷가에 접한 큰 저택에 모여 사는 오크들 영상이었다. 이곳 언어를 모르니 출연자들 몸짓과 표정으로만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윰투스는 저 영상의 목적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보면 볼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저택 규모를 보면 꽤나 부유한 자들 같은데, 왜 저렇게 천박하게 싸움질을 하는 것이지? 모여 사니 같은 부족일 텐데 왜 아이와 노인은 없는 것이며··· 귀족이라고 해도 어찌 하루 종일 술이나 먹고, 춤추고, 서로 구애하는 장면만 내보내는 것이냐?’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던 윰투스는 드디어 이 영상물의 제작 의도를 간파할 수 있었다.
다수의 남녀가 침대 위에서 함께 엉켜 있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표정을 보면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재판관은 감탄한다.
‘저건··· 우리 교단의 예배 의식 아닌가?!’
의문이 해소되었다.
‘그렇군, 저들 모두 지구교구 소속이었군. 그렇다면 이건 종교홍보물이로구나!’
엘라후-프라가 교단의 위세가 지구에서 이토록 강성할 것이라는 상상하지 못한 재판관은 흐뭇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그자가 괘씸한 소행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나, 지구에서 선교한다는 중요한 목적만큼은 잊지 않은 모양이군. 이렇게 영상물로 제작하여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퍼뜨렸을 정도라면.’
만족감을 느끼며 재판관은 TV를 시청했다. 그리고 점차 빠져들었다.
***
게드윅은 도테스가 전송한 보고서를 보고 경악했다.
그의 부하는 ‘아시프-666’의 동향을 정기적으로 보고하라는 지시를 (불평 속에서도) 충실하게 수행하는 중이었다. 조폐국에서 벌어지는 심상치 않은 일에 신경이 온통 쏠린 상태였음에도 게드윅은 그 보고서를 물리지 않고 열람했다.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40만 달란트라고?!”
현지에서 지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차원에 대위원들이 돌발 임무를 내린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션을 아시프-666이 홀로 완수하여 보상을 독식했다는 사실은 예상 밖이었다.
하물며 대가로 40만 달란트가 입금되었다는 이야기는 더욱 놀라웠다.
“대위원들께서는 그 정도 안배도 없이 임무를 내리셨단 말인가? 수형자 혼자 손쉽게 해낼 수 있는 임무라면 보상으로 건 달란트 액수를 줄였어야지!”
반대로 말하면 대위원들이 총대주교의 머리에 그토록 큰 관심을 뒀다는 뜻이었다.
“대체 그게 뭐기에?’
아시프-666이 위원회 지구대표소를 통해 전송한 머리는 게드윅 같은 중간 간부 손을 탈 일도 없이 바로 대위원에게 전달되었다.
그토록 원하던 시신을 회수한 대위원들이 그것에 만족했는지, 그 머리에서 대체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 게드윅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시프-666의 계좌에서 나타난 최근의 잔액 변동 추이가 위험한 수준이라는 것은 알았다
“고작 몇 달 전 그의 잔액이 2만 달란트 정도였는데 이제 80만 달란트를 돌파했군.”
퇴직금은 500만 달란트를 넘으니 아직 까마득하게 멀었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작 몇 달 사이 40배가 넘게 증가했다는 사실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이건 위험하다. 그리고 수상해. 이번에 받은 40만 달란트를 제외하더라도 짧은 시간 내에 이상할 정도로 빨리, 많이 벌었다.”
그는 즉각 대위원에게 연락을 넣으려고 했다. 건의를 위해서였다.
아시프-666을 대상으로 한 조세징수사령부의 세무조사가 얼마 전에 있었지만, 이 속도를 봐서는 한 번 더 그의 탈세 혐의를 조사하고 겸사겸사 기억 회복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 것.
하지만 그가 통신망에 접속하기 전, 기척과 함께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형노가 보고를 올렸다. 그를 수신자로 설정한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이야기에 게드윅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잠깐 기다려라, 급한 일이 있으니!”
이 정도로 말하면 굽히고 물러날 ‘베즈니’ 수형자는 우물쭈물하며 계속 서 있었다.
“뭐냐?!”
형노는 겁먹은 듯 움츠리면서도 조심스럽게 말한다. 전달하지 않으면 안되는 중요한 이야기라는 뜻.
그리고 들어보니 그럴만한 내용이 맞았다.
카바이트는 의심쩍은 목소리로 되묻는다.
“엔델리온 족의 공주가··· 내게 면담을 요청했다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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