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242
242
함께 온 캐퍼닉 역시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건 본 혁권은 내심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가격이 안 맞으면 어쩔 수 없지요. 다른 구매처를 알아보는 수밖에요.”
보헤멘 회장이 한쪽 볼을 실룩였다.
앞에 있는 사진이 도매상들한테 뿌려진다면 아마 눈에 불을 켜고 서로 차지하려 달려들 것이 뻔했다.
세공을 하면 가격이 몇 배로 뛸 테고 거기다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작품이 만들어질 테니 그 명예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혁권이 주도권을 쥔 걸 인정하기 싫었던 보헤멘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가지고 있는 원석을 한꺼번에 다 받아 줄 곳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이것과 다른 원석들을 분리해서 처분하면 되겠지요.”
문제없다는 듯 가볍게 말을 받자 보헤멘 회장은 똥 씹은 표정을 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입장은 어느새 역전되어 상대방을 재촉하는 것은 혁권 쪽이 되었다.
뜻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 보헤멘 회장은 속으로 이맛살을 찡그렸다.
차라리 강제로 다이아몬드 원석을 빼앗아 버릴까.
잔인한 폭력성을 동반한 강한 유혹에 한 순간 마음이 흔들렸으나 그는 이내 뒤따라 올 위험부담을 생각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미리 조사한 정보에 따르면 혁권은 그저 운이 좋은 애송이가 아니었다.
나름대로 체계화된 조직을 갖추고 있는 데다 무엇보다 CIA와 연결된 흔적이 보란 듯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것이다.
만약 가볍게 생각하고 건드렸다가 CIA가 배후에 있다면 뒷수습을 하는 데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할 터.
그럴 바에는 그냥 원하는 대로 돈을 주고 깔끔하게 거래를 끝내는 편이 나았다.
보헤멘 회장은 이야기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 호텔 근처에 대기시켜 둔 러시아 용병을 떠올렸다.
‘여차하면 다 죽여 버리고 원석을 차지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어렵겠군.’
그는 진한 아쉬움과 함께 한숨으로 쓰린 속을 달랬다.
물론 혁권 역시 아무런 생각 없이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었다.
불미스러운 사태가 벌어졌을 때 맞대응할 준비를 이미 철저히 해 뒀다.
하지만 만약 양측이 충돌한다면 어느 정도 피해를 입는 것은 각오해야만 했기에 정말 최악의 상황이 아니고서야 쉬이 꺼내 들고 싶지 않은 패였다.
혁권을 한참 동안 노려보던 보헤멘 회장은 이내 짧게 혀를 차며 결정을 내렸다.
“좋소. 1억 달러에 거래를 하도록 합시다.”
“대금은 어떻게 줄 겁니까?”
“원하는 대로 해 줄 수 있으니 말해 보십시오.”
“절반은 현금 나머지는 무기명채권으로 줬으면 좋겠군요.”
“그렇게 해 주겠습니다.”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다이아몬드 유통을 움켜쥐고 있는 드비어스사의 재정 능력이라면 그다지 부담스러운 금액도 아니었다.
“언제쯤 가능하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보헤멘 회장이 바로 대답했다.
“내일이라도 대금을 준비할 수 있소.”
“그럼 이틀 뒤 여기서 원석과 돈을 교환토록 하지요.”
“알겠소.”
머리를 끄덕인 보헤멘 회장은 더 볼일이 없다는 듯 벗어 놨던 중절모를 집어 들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보헤멘 회장과 수행원이 나가며 객실 문이 닫히자 그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순순히 돈을 주겠습니까?”
하킴이 여전히 바짝 긴장한 얼굴로 묻자 방금 전까지 보헤멘 회장이 앉아 있던 자리를 힐끔 쳐다보곤 입을 열었다.
“두고 봐야지.”
비록 상대방이 오해를 한 거였지만, 뜻하지 않게 CIA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긴 걸 혁권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보헤멘 회장이 탄 고급 세단은 호텔을 나와 어두워진 런던 거리를 빠르게 내달렸다.
“만만히 보다가 제대로 당했군.”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보헤멘 회장의 말에 나란히 앉아 있던 캐퍼닉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도 이렇게 나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1억 달러를 내놓으라니, 배짱 하나는 두둑한 것 같군.”
“정말 그 돈을 다 주실 겁니까?”
“물건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지금이라도 지시를 내리시면 용병들을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고심하던 보헤멘 회장은 이내 머리를 내저었다.
“놈을 건드리기에는 뒤가 너무 찝찝해. 그냥 놔둬.”
“예.”
“그렇지만 날 화나게 만든 대가는 치르게 해 줘야지. 놈이 원석을 팔았다는 걸 시에라리온 쪽에다 슬쩍 흘리도록 해.”
“반군에 말씀이십니까?”
“그래.”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보헤멘 회장이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굳이 내 손을 더럽히지 않아도 원석을 빼앗겨 눈이 뒤집힌 문둥가가 알아서 처리를 하겠지.”
“알겠습니다.”
보헤멘 회장은 푹신한 가죽 시트에 등을 기대면서 한쪽 입꼬리를 위로 말아 올렸다.
와장창.
책상에 있던 집기들이 바닥에 떨어져 박살 나는 소리에 쉬굼바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지금 1억 달러라고 했어!”
“그렇습니다.”
대답을 들은 문둥가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씩씩거리며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감히 나한테서 훔쳐 간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그런 거액을 챙겼다 이거지.”
가뜩이나 정부군에 밀려 수세에 처해 있는 상황 속에 혁권이 다이아몬드 원석을 처분한다는 소식은 문둥가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이를 부드득 갈아 붙인 문둥가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놈이 지금 런던에 있다고 했지.”
“네.”
“좋아. 이렇게 됐으니 돈이라도 회수 해야겠어. 쉬굼바.”
“옛.”
“지금 당장 믿을 만한 수하들을 데리고 런던으로 가서 놈을 처리하고 와.”
그러자 쉬굼바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런던으로 말씀이십니까?”
“그래. 가서 날 화나게 만들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 주고 오란 말이야.”
사나운 문둥가의 시선에 쉬굼바는 얼른 머리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약속된 날짜에 보헤멘 회장이 수행원들을 데리고 혁권이 묵고 있는 호텔을 다시 찾았다.
다이아몬드를 살펴보기 위한 감정사와 캐퍼닉 그리고 건장한 덩치의 경호원 두 명이 한 손에 큼지막한 은색 알루미늄 가방을 들고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붉은색 카펫이 깔린 복도를 걸어가자 객실을 지키고 있던 알아바디와 백성균이 앞을 가로막았다.
“죄송하지만 몸수색을 해도 되겠습니까.”
정중함을 가장한 강제적인 말투에 보헤멘 회장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 혀를 찼다.
“나도 말인가?”
“아닙니다. 뒤의 수행원 분들만······.”
이에 보헤멘 회장을 따르고 있던 이들의 얼굴이 일그러졌으나 거래를 앞두고 괜히 다투기 싫은 그가 알아서 하라는 듯 시선을 거두자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백성균이 뒤에 있던 감정사와 경호원들의 몸을 수색하자 아니나 다를까 허리춤에 감춰 둔 권총이 하나씩 발견되었다.
“이건 나중에 가실 때 돌려 드리도록 하지요.”
곱지 않은 눈초리를 하고 있는 보헤멘 회장을 향해 백성균이 얌전히 머리를 숙여 보이고, 알아바디가 객실의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안에는 혁권이 보헤멘 회장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문을 등지고 서 있던 혁권이 돌아서며 먼저 손을 내밀었으나 보헤멘 회장은 잠시 그걸 멀뚱히 쳐다보다가 툭 내뱉었다.
“손님 대접이 참 친절하더군.”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안전한 거래를 위한 조치일 뿐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보헤멘 회장은 마지못해 그와 악수를 나누곤 권해진 소파에 앉았다.
“차는 뭐로 하시겠습니까?”
“놀러 온 것도 아니고 서로 바쁜 사람이니 빨리 거래를 끝냅시다.”
한쪽 손을 가볍게 내저으면서 보헤멘 회장이 하는 말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시죠. 대금은 가져 오셨겠지요?”
“먼저 물건부터 보여 주시오.”
기분이 상했는지 퉁명스러운 말투에 혁권은 풀썩 웃으며 손짓을 했다.
그러자 뒤편에 서 있던 하킴이 객실 구석에 있는 소형 금고를 열고 그리 크지 않은 가방을 하나 꺼내 왔다.
가방을 본 보헤멘 회장은 탐욕이 가득 찬 눈을 번득였다.
저 안에 그토록 원하던 청색 다이아몬드가 있다고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딸칵.
잠금장치가 풀리고 이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원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장에 달린 조명을 받아 다이아몬드 원석들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빛이 났다.
그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 한쪽에 따로 칸을 만들어 넣어 둔 청색 다이아몬드였다.
크기도 단연 압권이었지만 불순물 하나 섞이지 않고 투명하고 신비하게 반짝이는 청색은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들게 만들었다.
청색 다이아몬드 원석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는 보헤멘 회장의 모습에 그는 입가에 얇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그쪽 차례 같은데요.”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보헤멘 회장은 작게 헛기침을 하곤 캐퍼닉한테 시선을 줬다.
경호원들이 탁자에 올려놓은 가방에는 100달러짜리 신권 뭉치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현금 5천만 달러입니다. 그리고 이건 미국 재무부에서 발행한 국채입니다.”
캐퍼닉이 두툼한 서류 봉투를 하나 가방에 올려놨다.
1억 달러라는 거금이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자 혁권은 입안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은 채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서 여유롭게 말했다.
“그럼 서로 확인을 해 봅시다.”
보헤멘 회장 역시 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내 입에 물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양측 수행원들이 각자 상대편이 가져온 가방에 들어 있는 내용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안으로 들어온 알아바디가 지폐 다발을 몇 개 집어 들어 주르륵 넘겨봤다.
그런 뒤에 휴대용 위폐 검사기를 꺼내 들고는 무작위로 지폐를 10장정도 빼내 탁자에 올려놨다.
그러고는 지폐 검사기에서 나오는 푸른색 불빛을 지폐 위에 비춰 봤다.
빛을 받은 지폐는 가짜를 구별하기 위해서 새겨진 고유의 무늬와 함께 형광색을 나타냈다.
차례대로 10장을 모두 다 검사한 알아바디는 혁권을 보며 문제가 없다는 듯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바로 이어서 알아바디는 서류에 든 채권을 확인했다.
상대편에서 데려온 감정사 역시 한쪽 눈에 확대경을 끼고는 다이아몬드 원석들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감정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흠집 하나로 가치가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더욱 꼼꼼하게 살펴봤다.
특히 가장 중요한 청색 다이아몬드는 현미경까지 꺼내서 상태를 확인했다.
그 때문에 감정 시간이 상당히 길어졌지만 큰돈이 걸려 있는 만큼 아무도 불평을 드러내지 않았다.
30분가량이 흐르고 나서야 감정이 모두 끝났는데 상태가 아주 훌륭했기에 보헤멘 회장도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각자 물건을 챙기자 보헤멘 회장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이만 가 보겠소.”
따라서 몸을 일으킨 혁권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음에 또 보도록 하죠.”
보헤멘 회장은 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곤 대답했다.
“그럽시다. 기회가 있으면 말이오.”
“······.”
그대로 몸을 돌려 객실을 나가는 보헤멘 회장을 보며 그는 미간을 좁혔다.
탁.
문이 닫히자 그런 혁권을 보며 하킴이 옆으로 다가왔다.
“보스, 왜 그러십니까?”
“방금 보헤멘 회장이 한 이야기를 들었지.”
“······예.”
“무슨 뜻일까?”
“글쎄요.”
“아무래도 뭔가 찝찝해.”
“저쪽에서 암수를 쓰려는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이맛살을 찌푸린 채 서 있던 혁권은 이내 고개를 돌려 하킴을 봤다.
“공항에 비행기를 대기시켜 놨지.”
“네.”
“이륙 준비를 해 놓으라고 해.”
그러자 하킴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지금 떠나실 생각이십니까?”
“느낌이 좋지 않아. 어차피 거래도 다 끝났으니 런던에 있을 이유가 없잖아.”
“알겠습니다.”
혁권의 말대로 괜히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기에 하킴은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머리를 숙였다.
원래는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떠나기로 되어 있었지만 이동을 위해 소형 제트기를 빌려 놔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물론 추가 비용이 들겠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하킴이 전화를 하는 동안 앉아서 곁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혁권은 마치 우연히 발견한 카펫의 먼지가 계속 신경 쓰이는 것처럼 짜증 나는 상황에 인상을 찡그렸다.
대체 보헤멘 회장이 마지막에 던지고 간 말은 무슨 뜻이란 말인가.
그저 신경질을 부린 것뿐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별거 아니겠지.’
그리고 얼마 뒤 혁권과 일행은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나와 히드로 공항으로 향했다.